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0
449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인 물이 역행하기 시작했다.
하얀 별은 저 물이 제 불을 끌 수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본능적인 감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저 물은 위험하다.
그의 몸이 저절로 앞을 향했다.
콰아앙!
“…약아빠진 놈.”
날아든 푸른 창이 불의 검과 부딪치며 그의 앞길을 막았다. 그사이 하얀 별은 저에게서 웃으며 도망치는 놈이 보였다.
“이제 알았냐?”
그 말과 함께 케일은 빠른 속도로 아래로 향했다. 그의 머릿속에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왕관의 힘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저번에 하얀 별과 맞설 때 케일을 버틸 수 있게 해줬던 드래곤 슬레이어 왕관의 힘.
하지만 케일은 짱돌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아래로 향하는 그의 움직임과 반대로 푸른 물이 계속해서 위로 솟구쳤다. 그 물기둥은 곧 사람들의 시야에도 잡힐 만큼 거대해졌다.
푸르고 투명한 물.
본래 어두운 밤 아래서 보이지 않아야 할 물기둥은 오히려 반짝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는 역설적이게도 먼저 자리하고 있던 불기둥의 빛 때문이었다.
“허억… 헉, 허억.”
아이를 안고 쉼 없이 달리던 여인은 드디어 사람들이 모여드는 광장의 풍경을 보았다.
‘왕세자 저하! 기사들이야!’
다크엘프의 말대로 왕세자와 기사들이 광장에 있었다. 저들 곁에 어떻게 붙어 있으면 그래도 살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때, 여인은 사람들이 놀라면서 손으로 한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았다.
콰아아아-
그제야 저 멀리 굉음이 들려왔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달리기 바빴던 그녀는 이제야 주위 소리가 제대로 들렸다.
“엄마! 뒤에!”
품에 안긴 아이가 등 뒤를 가리키며 외치는 말에 여인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리고 보았다.
“…물.”
불기둥만큼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맹렬히 들이치던 불의 강을 피해 도망치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춰 선 채 그 물기둥을 바라봤다.
용암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불 액체와 달리, 솟구쳐 오른 물기둥은 그저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물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두보리 영지 사람들에겐 이 물기둥이 신기했다.
“엄마! 나 저렇게 물 많은 거 처음 봐! 우아!”
아이의 천진난만한 감탄처럼, 옆에 사막을 끼고 있는 두보리 영지에서 물은 생활하기에 부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족한 존재는 아니었다.
작은 실금과 같은 강, 깊은 지하까지 판 우물, 가끔 내리던 비로만 마주하던 물이 거대한 기둥의 모습으로 불의 강을 막아섰다.
치이이익- 치이익-
타들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김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머, 멈췄다!”
무엇이든 잡아먹던 붉은 액체가 더 이상 앞으로 가지 못한 채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었다.
물과 불이 닿을수록 점점 더 많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불의 강 근처에 있던 이들은 마치 하얀 안개가 서서히 밀려오는 것만 같았다.
“어, 어쨌든 꺼지고 있어!”
“사, 살았다!”
“하여튼 도망쳐! 저 물기둥도 무너지면 홍수감이라고!”
강처럼, 해일처럼 밀려들던 붉은 액체가 사그라진다.
“…어떻게-”
불이, 재앙이 멈춘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하얀 별은 눈가에 놀람을 담아 지금도 치솟아 오르는 물기둥을 바라봤다.
그냥 불이 아니었다.
재앙을 담은 불로, 용암의 성질까지 담겨 있는 특이한 불이었다.
그런데 그게 저 물에 닿은 것만으로 수증기가 된다고?
하얀 별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는 케일에게 향했다. 케일은 그런 하얀 별을 응시했다.
-달라.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청아한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잔잔하게 퍼졌다.
-심판하는 물과 나는 다르다.
그녀의 목소리는 케일의 머릿속에만 닿았지만, 그녀는 케일을 내려다보는 하얀 별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남이 만들어준 나보다 내가 정한 내가 진짜야. 그때의 힘은 내 의지가 없는 힘. 내 의지가 담긴 이 힘이 더 강대하다.
신이 지어준 이름인 ‘심판하는 물’은 그녀에겐 족쇄였다. 그 족쇄를 벗어던지고 ‘역행하는 물’로 살아가고자 마음먹었을 때.
그녀는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나는 하늘을 잡아먹어야 하니까.
손에 닿을 수 없는 것을 잡아채 집어삼키려면 더욱더 강인해져야 했다. 그리고 흉폭해져야 했다.
쿵. 쿵. 쿵.
케일은 심장이 뛰었다. 이건 하늘을 잡아먹는 물이 보내는 신호였다. 모두 준비가 되었다고, 어서 시작하라고.
그의 입이 열렸다.
“이게 다인 줄 알았지?”
하얀 별은 그 벙긋거리는 입모양을 읽어내려 했고, 케일은 틈을 주지 않았다.
휘이잉- 바람에 둘러싸인 채 아래로, 광장의 중심으로 향하던 케일이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어?”
물기둥을 지켜보던 이들의 눈동자가 커졌다.
우우웅. 물기둥이 회전하며 물이 그 안에서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하얀 별은 그 모습에 불길함을 느꼈다.
찌릿, 찌릿. 강한 힘의 회오리가 하얀 별을 소름 돋게 했다.
“…케일 헤니투스!”
하얀 별의 몸이 빠른 속도로 케일을 향해 낙하했다. 불의 검에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불이 마치 부메랑처럼 붉은 초승달 모양이 되어 케일에게로 향했다.
콰아앙!
하지만 붉은 초승달은 검은 오러에 가로막혔다. 치지직, 검은 오러가 붉은 초승달에 먹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하얀 별의 불은 결국 케일에게 닿지 못했다. 하얀 별은 광장 근처 가장 높은 건물 지붕에서 저를 향해 검을 겨눈 최한을 볼 수 있었다.
불을 막은 것은 최한의 오러였다.
“…저 새끼가……!”
하얀 별의 얼굴이 일그러진 순간, 케일의 입이 열렸다.
쿵!
몸을 거세게 두드리는 진동이 케일의 심장에, 그의 마음에 닿았을 때.
“잡아먹어.”
쏴아아-
광장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케일에게서부터 네 줄기 바람이 동서남북으로 퍼져갔다. 그 바람을 따라 시선을 돌린 사람들은 보았다.
“…창……!”
“화살?”
솟구쳐 오르며 회전하던 물기둥의 끝이 뾰족하게 바뀌었다. 네 개의 창이 마치 화살처럼 팽팽하게 그 끝을 붉은 기둥을 향해 겨눴다.
케일은 바람결에 제 목소리를 실어 보냈다.
“쏴.”
-기다렸어.
하늘을 잡아먹는 물의 대답과 함께 거대한 물의 창이 불기둥을 향해 쏘아졌다.
근처에 있던 이들은 넋을 놓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거대한 창의 움직임에 귀가 멍멍해져 왔다.
까악. 까악.
그런 사람들은 제 옷깃을 물고 잡아끄는 까마귀에 정신을 차려 뒤로 물러났다. 물러나는 걸음이 점점 빨라지며 모두가 뒤쪽으로 달렸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개를 돌려 불과 물이 부딪치는 광경을 바라봤다.
콰아앙!
물과 불이 부딪치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땅이 흔들렸다.
타들어가는 소리가 사방을 뒤덮었다.
꼭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이럴 순 없어. 재앙을- 먹는다고?”
낙하하던 하얀 별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흔들렸다.
치이익, 용암과 같던 불이 거세게 부딪치는 물에 부서져 갔다.
쾅! 쾅! 쾅! 물은 창끝이 무뎌져 가도 계속해서 불기둥을 두드렸다. 갉아먹었다. 그리고 잡아먹었다.
맹렬히 회전하는 물은 불을 잡아먹으며 마침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갔다.
발렌티노 왕세자는 그 광경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불이 땅을 뒤덮어 다 태우지도 않았고, 거대한 물이 해일이 되어 주변 농작물을 휩쓸어가지도 않았다.
둘 다 그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공기 중으로 흩어져 갔다.
그의 고개가 빠르게 위로 향했다.
“…케일 공자.”
하늘에서 케일 공자가 땅에 내려서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든 광장의 중심, 발렌티노 왕세자 근처로 향했다.
그는 케일이 내려서는 바로 앞까지 넋을 잃은 사람처럼 다가갔다. 아직도 소름이 돋은 게 사라지지 않았다.
‘케일 헤니투스, 케일 헤니투스.’
그 이름이 요 몇 년 사이 사방팔방에서 얼마나 많이 들려왔던가. 카로 왕국 전쟁에서 그가 펼쳤던 놀라운 활약도 눈앞에서 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만큼은 놀랍지 않았다.
‘사람인가?’
그는 사람일까?
이리 자유자재로 자연의 힘을 다루는 그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놀람, 고마움, 동시에 두려움과 낯섦이 발렌티노의 마음을 뒤덮었다.
하얀 별이라는 자와 케일 헤니투스는 결국 둘 다 비슷한 힘을 지녔잖아.
한 가지 사실이 발렌티노의 머릿속에 경고음을 울렸다. 그렇지만 그는 자연스레 케일에게로 다가갔다.
이 놀라운 일을 벌인 그를 보고 싶었다.
케일이 땅에 내려선 순간, 발렌티노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깨라도 두드려 주고 싶었다.
“케일 공자.”
하지만 그 손은 공중에서 멈췄다.
“커헉!”
케일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발렌티노는 불과 다른 검붉은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케일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검붉은 피가 빠른 속도로 그의 옷과 바닥을 적셨다.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다가온 가샨이 케일을 부축했다.
발렌티노는 가샨에게 몸을 기대는 케일의 두 손이 보였다. 잘게 떨리고 있었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창백한 안색은 입가에 흐르는 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아.”
발렌티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인간이구나.’
케일 헤니투스도 인간이구나.
왜 케일 헤니투스가 피를 토하며 저리 괴로워해야 하는가?
발렌티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라면서도 걱정을 담아 케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도망쳐 온 영지민들이 모인 광장이 보였다.
사람들의 눈동자와 표정을 하나하나 보던 발렌티노는 깨달았다.
케일 헤니투스는 저 하얀 별이라는 자와 다르구나.
그때, 가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님,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발렌티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시선은 곧 하늘로 향했다.
콰아아앙!
불과 부딪치는 반짝이는 검은색이 보였다.
최한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와 하얀 별의 불의 검이 서로 부딪치며 싸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한의 검은 오러가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얀 별이 땅으로 내려오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발렌티노는 하얀 별의 눈동자가 광장으로 향했다는 것을 굳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저 붉은 검이 광장의 사람들을 노리는구나. 바로 깨달았다.
그때, 하얀 별의 눈동자에 케일의 손에서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은빛 선이 보였다.
‘…방패!’
발렌티노도 익히 아는, 케일을 유명하게 만든 그 힘.
그는 케일이 방패를 만들려 함을 깨달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발렌티노는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을 부릅뜨고 힘을 주었다.
피를 흘리면서, 덜덜 떨면서 조금씩 뿜어져 나온 은빛 선의 빛깔이 선명해져 갔다.
“…공자님!”
가샨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던 케일은 미간을 찌푸렸다.
‘제기랄!’
하늘을 잡아먹는 물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힘의 크기가 너무 막대했다.
거기에 땅의 힘까지 같이 썼다.
더욱이 바람의 소리를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하루 종일 사용했다.
다섯 가지의 힘을 모두 쓴 것도 아니건만, 물을 너무 많이 써서 몸이 떨려왔다.
‘왕관을 쓸 걸 그랬나?’
그랬다면 지금 멀쩡했을 텐데.
-그만하자.
짱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케일은 그만할 수가 없었다.
‘최한이 오래 못 버틴다!’
그리고 자신이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 모으지 않았던가.
-그래. 넌 그때부터 이미 힘을 쓰기로 마음먹었지.
짱돌의 씁쓸한 목소리에 답하듯,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씁쓸한 미소를 그렸다.
그 순간, 고개를 든 사람들의 눈앞에 아름다운 은빛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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