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56
455화.
“가주님, 케일 그 자식 바로 온답니까?”
끊어진 영상통신구를 바라보고 있던 론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평소와 달리 얇고 기다란 검을 든 용병왕 버드 일리스가 보였다.
얇은 검신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무심히 바라보던 론의 입이 열렸다.
“5분 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버드는 그 모습에 별다른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대신 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몰란 가문의 저택.’
현재는 암 비밀 기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 동대륙 뒷세계 가문 중 최고를 다투던 곳. 그곳이 어딘지 알았을 때, 버드는 속으로 놀랐다.
‘몰든 산맥일 줄이야.’
대략 십여 년 전부터 급격하게 성장한 동대륙 강국인 몰든 왕국.
동대륙 중앙에 위치했으며, 상업을 왕국의 성장 동력으로 택해 그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대략 십오 년 만에 동대륙 경제와 물류의 중심이 된 곳이었다.
바다가 없음에도 물류와 상업의 중심이 된 몰든 왕국은 특징이 하나 있었다.
드넓은 평야와 그만큼 넓고 매끈한 도로.
산이 없고, 드넓고 쾌적한 도로를 따라 숙박 시설과 상권이 형성되자 상인들이 절로 모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몰든 왕국의 동북부에 산맥이 하나 존재하지.’
산맥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지만, 굉장히 높고 험준해 동대륙 안에서 등반 난이도 최상으로 꼽히는 곳이었다.
그 험난한 산맥 깊은 골짜기에 몰란 가문의 저택이 존재했다.
‘저택이라기보단 요새에 가깝지.’
강물이 흐르지 않는 메마른 골짜기와 그 양옆 절벽 곳곳에 인위적으로 세워진 건물들이 있었다.
“용병왕님, 1차 경계선을 완전히 뚫었고 2차 경계선에 곧 닿을 것 같습니다!”
용병의 말에 버드는 다시금 검을 들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움직이며 입이 열렸다.
“당신 말대로 1차 경계선을 뚫으니, 암 기지 모습이 보이는군요.”
버드의 친우 그렌 퍼프가 이끄는 용병 길드 마법사들이 1차 경계선의 환상 마법을 파괴했다.
그리고 멸문의 화를 피해 살아남아 동대륙 곳곳에 퍼져 있던 살수들이 1차 경계선과 그 안의 함정들을 부수며 앞으로 나아갔다.
버드의 시선 끝엔 로브로 온몸을 꽁꽁 감춘 이가 바닥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로브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2차 경계선도 내 말대로일 거다.”
마치 꺼져가는 촛불처럼 힘없는 목소리였다.
그때, 환한 빛이 그들이 있는 곳에 피어올랐다. 빛은 곧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나타난 이가 입을 열었다.
“서둘러야겠네.”
케일이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이는 고개를 들었다. 케일은 로브 사이로 저를 올려다보는 용 혼혈의 눈동자가 보였다.
케일은 저놈에게 할 말이 많았다. 하지만 카로 왕국 두보리 영지에서 생각보다 시간을 끌어 한가하게 이야기를 할 틈이 없었다.
“도련님.”
그는 저를 부르는 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와 같은 인자함은 얼굴에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굳은 얼굴에는 서늘한 분노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론 뒤에서 대검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비크로스가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케일이 해줄 말은 하나였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가는데 얼굴들이 다 왜 그래?”
고개를 숙이고 있던 비크로스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부자의 시선을 받은 케일은 정면을 가리켰다.
환상 마법으로 가려져 있던 몰란 가문 저택.
그곳의 원래 주인들에게 말했다.
“갔다 와.”
비크로스는 땅에 박아두었던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 론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정리 다 되면 집들이해. 놀러 가게.”
비크로스는 아버지 입가에 서서히 그려지는 미소를 보았다. 며칠 내내 차갑고 무심하기만 하던 얼굴에 오랜만에 번진 웃음이었다.
마지막 몰란 가주는 빈손으로 앞으로 향하며 말했다.
“집들이 선물 기대하겠습니다.”
타닥.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론은 암 비밀 기지로 향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케일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나 돈 많아.”
결국 론의 입이 열렸다.
“하하, 하-”
웃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참, 귀여운 도련님이었다.
“비크로스.”
“네, 아버지.”
그렇기에 론은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이 귀여운 도련님을 실망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도 집들이 선물 사 간다! 론 할배랑 상냥한 비크로스 집들이 선물이면 내 저금통 돈도 꺼낼 수 있다! 집들이 때문에 신나서 하는 말 아니다! 물론 집들이해 보고 싶다!
그리고 더 귀여운 우리 드래곤 님을 위해 집들이는 성대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는 아들에게 지시했다.
“신호를 보내.”
론의 시선은 2차 경계선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작은 성벽이 존재했다.
그 위에 올라선 수많은 궁사들도 보였으며 마법사들도 있었다.
“다가오면 바로 활을 쏴!”
“마법진을 빨리 가동시켜! 있는 대로 준비해!”
성벽 위에서 지껄이는 모습이 보였지만, 론은 그저 담담히 그 광경을 응시했다.
원래 몰란 가문이라면 저런 인원 구성은 말도 안 되었다. 암의 비밀 기지니까 저런 광경을 보이는 것일 터.
삐이이이이- 삐이이-
비크로스의 피리가 날카로운 울음을 토해냈다.
순간 선두에서 2차 경계선인 성벽으로 향하던 용병이 외쳤다.
“다 모여!”
틀 없이 마구잡이로 달려들던 이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벽을 향해 나아갔다.
“나도 가야겠네.”
그 광경을 보던 용병왕 버드도 앞으로 나섰다.
우우우웅. 그의 가늘고 기다란 검신에 푸른 오러가 피어올랐다.
“어. 갔다 와.”
살랑살랑 손을 흔드는 케일을 뒤로하고 버드는 빠르게 앞으로 내달렸다.
‘이건 몰란 가문만의 일이 아니다.’
버드에게 있어, 아니, 용병 길드에게 있어 지금 이 상황은 전쟁이었다.
용병 길드 대 암의 전쟁.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다른 길드와 정보 조직을 압박하며 동대륙의 권력자로 떠오르던 암을 용병 길드가 누른 것이 될 터.
그렇다면 용병 길드의 힘이 동대륙에서 또 한 번 그 위세를 떨칠 것이다.
검을 쥐지 않은 손이 움직였다.
달칵. 버드는 끼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그러고는 용병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명령을 외쳤다.
“다 부숴라!”
휘이잉-
바람이 그의 몸 주위를 휘감았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의 눈동자에 적들이 보였다. 그중 성벽에서 가장 강한 놈을 보았다.
그가 가진 고대의 힘이 알려준 가장 강한 놈.
버드는 몸을 뒤로 젖히며 팔을 휘둘렀다.
“다 죽여!”
푸른 오러를 머금은 얇은 검이 창처럼 던져졌다.
몇 초도 걸리지 않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
“커헉!”
검은 성벽에서 명령을 내리던 검사의 목을 꿰뚫었다.
그것이 신호였다.
“으아아아!”
“다 부숴! 성벽을 기어 올라가!”
“그냥 잡히는 대로 다 죽여!”
용병들이 거친 목소리를 높이며 성벽으로 달려들었다.
“화살을 쏴!”
“마법 공격을 시작해!”
성벽 위의 적들이 그에 반응해 준비해 왔던 것들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크윽! 야! 나 팔에 화살 맞았어!”
“이 멍청한 놈! 화살도 못 피해? 비켜! 내가 올라갈 거야!”
“크하하하! 화구를 쏠 거면 제대로 쏘라고! 다 피해 버리고 말잖아! 크하하하! 이 멍청한 놈들아!”
선두에 선 용병들은 그 공격에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피하면 피하는 것이고 화살이나 마법을 맞으면 맞는 대로 움직였다. 그들에게서 공포가 보이지 않았다.
“이, 이 미친놈들!”
화살을 쏘던 궁사의 눈동자에 질렸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 궁사와 한 용병의 눈이 마주쳤다. 선두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던 용병은 기세에 눌린 적 궁사에게 이를 보이며 웃어 보였다.
“쫄았냐? 크하하하하!”
용병 길드는 마냥 마구잡이로 덤벼든 것이 아니었다.
전쟁이다.
용병 길드는 이번 일을 전쟁이라 명명했고, 그에 맞춰 가장 뛰어난 베테랑들을 모아왔다.
용병 길드에서 베테랑은 강한 자가 아니었다.
전쟁과 전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자.
크게 다칠 일을 작게 만들어 버리는 자.
몸이 재산이고 전부인 용병들이 최고라 치는 노련한 용병들.
그들이 지금 이 성벽을 오르는 선두로 자리 잡았다.
동대륙에서 큰 전쟁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잘한 전쟁과 전투는 늘 존재했으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강한 힘을 피하며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크윽, 이대론 안 돼.”
“부대장님!”
대장이 버드의 검에 목이 꿰뚫려 즉사한 후, 부대장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기어오르는 용병들의 광기에 찬 모습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시작해!”
“네!”
그의 명이 떨어졌고, 곧바로 옆에 있던 이가 피리를 불었다.
끼이이- 끼이이이-
기이한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고, 용병들은 잠시 멈칫했다. 그때, 그들은 고개를 위로 들어야 했다.
“위, 위다!”
“제기랄! 저기서 공격이라니!”
선두에 있던 용병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골짜기가 아닌 양쪽 절벽 곳곳에 세워진 인위적인 건물들. 그곳에서 화살과 돌덩이, 불화살 등등 수많은 것들이 용병들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끄아악!”
“크윽! 물러서! 돌덩이는 피할 수가 없다고! 무슨 바위 같은 걸! 미친놈들!”
“사다리가 부서졌습니다!”
곳곳에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성벽에 있던 부대장은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됐어! 이대로 하면 돼! 마법도 당장 쏘라고 해!”
“네!”
양쪽 절벽에 늘어선 건물에는 마법사들도 포진해 있었다. 지금 이 쏟아지는 공격 속에 마법까지 곁들이면 더욱더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부대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순간이었다.
“부대장님!”
수하가 절벽을 가리켰고.
“으아아아악!”
절벽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내리며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사람은 마법사였다.
부대장의 시선이 그가 떨어져 내린 절벽 위 건물 중 하나로 향했다.
인간이 손으로 파내어 만든 절벽 속 건물.
그 커다란 창 밖으로 또다시 한 사람이 몸을 드러냈다.
“커헉. 컥!”
그의 목은 한 사람의 손아귀에 잡혀 있었다. 그 손이 그가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는 유일한 밧줄이었다.
하지만 그 목을 움켜쥐고 있는 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무심히 말했다.
“다 던져.”
론이 손을 펼치자, 또다시 마법사 한 명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비크로스의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 삐이-
그 순간부터 절벽 위 건물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절벽 아래로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부대장의 눈이 커졌다.
“…부, 분명 암살자들은 용병 길드 틈 사이에 있었는데!”
지금도 용병 길드 틈 사이로 암살자들이 보였다.
그러나 원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살수가 더 많은 법이었다.
더욱이 그 살수들은 이 절벽 위 건물들의 진짜 주인이 알려준 길을 따라 은밀히 숨어든 자들이었다.
부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자, 다 뚫렸으니까 이제 그만 닥치고.”
“언제 여기에- 커헉!”
성벽 위로 튀어 오른 자의 검이 부대장의 심장에 박혔다.
검을 창처럼 사용하던 이는 심장에 박힌 검을 내버려 둔 채, 암의 대장을 즉사시킨 그 검을 주워 들었다.
검의 주인인 버드의 등 뒤로 용병들이 올라섰다.
하나둘. 성벽이 용병들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 버드는 고개를 들었고, 론은 이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이군.”
동시에 골짜기 전체를 진동케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잉-
2차 경계선이 뚫리고 3차 경계선이 남은 상황. 암 비밀 기지는 모든 것을 3차 경계선에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3차 경계선은 암 비밀 기지의 정문. 과거 몰란 가문 저택의 문이었다.
“막아!”
“3차 경계선은 지켜야 한다!”
으아아아-!
정문이 열리며 수많은 전투 인력들이 2차 경계선을 향해 쏟아졌다.
이를 지켜보던 론의 입이 열렸다.
“부탁하마.”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절벽 아래 어느 곳.
2차 경계선을 넘어 3차 경계선으로 향하는 지점.
“누나, 여기가 맞는데!”
작은 고양이 두 마리가 성벽의 개구멍을 지나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먼지로 뒤덮인 은빛 고양이가 전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적들을 보며 말했다.
“시작하면 되겠는데!”
“오오!”
붉은 고양이가 호응했고, 그 순간 은빛 고양이 온이 있는 곳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안개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 안개에 홍의 독이 섞여들었다.
“이, 무슨 안개가?”
“크윽!”
“야, 너 왜 그- 컥!”
용 혼혈은 이번 작전을 세우며 말했다.
‘암은 약한 자들을 제일 먼저 앞세울 거다. 분명 2차 경계선이 무너진 뒤 3차 경계선에 닿기 전에 병력들을 쏟아낼 터.’
그때, 맨 앞에 선 자들은 약한 자들일 것이다.
‘온, 부탁하마.’
저에게 론이 한 말을 떠올린 온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선두의 가장 약한 자들은 광범위하게 퍼지는 안개독에 금방 걸려들었다.
“크억!”
“야, 네가 넘어지면 전열이 무너진다고! 크윽!”
“컥!”
쏟아져 나오는 병력들.
선두에 선 가장 약한 자들이 미미한 마비독에 중독되어 쓰러져 갔다. 크게 다치는 이는 없었으나, 다리나 몸 일부를 잠시 동안 마비시키기에는 충분한 독이었다.
그 와중에도 뒤에서는 사람들이 밀려왔다.
전열이 무너졌고, 이동에 문제가 생겨났다.
“안개 때문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제기랄!”
안개로 시야가 무너져 내렸다.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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