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03
502화.
케일의 입이 열렸다.
“정소훈.”
“이름은 갑자기 왜 부릅니까? 잠 덜 깨셨습니까?”
퉁명스레 되묻는 이는 방구석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케일은 그 광경을 빤히 바라봤다. 그에 정소훈은 상당히 찝찝한 얼굴로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놨다.
“…컵라면 하나 끓일까요?”
“컵라면 말고 그냥 라면. 계란 풀어서.”
“아오.”
구시렁거리며 일어선 정소훈이 어기적어기적 방에 딸린 작은 주방으로 향했다.
“팀장님! 지금 라면 먹을 때예요? 정소훈 저 자식이 라면 먹는다고 팀장님도 먹는 겁니까?”
그때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방 한쪽 책상에 있던 서류를 챙겨 들며 케일에게 인상을 한껏 찡그려 보였다.
“…김민아.”
아까 케일의 몸을 대차게 흔들던 이였다. 그녀는 케일이 눈을 뜨자, 미련 없이 서류 쪽으로 향했었다.
“네, 네. 제 이름은 김민아이고 저놈 이름은 정소훈이죠.”
“아, 거, 차장님. 자꾸 놈놈 하지 마세요. 듣는 놈 서럽습니다.”
“서럽기는.”
김민아는 코웃음을 흘렸고,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정소훈은 투덜거리며 입을 열었다.
“차장님 것도 해요?”
“난 계란 빼고.”
“아. 냄비 두 개 써야 하네.”
정소훈은 투덜거리면서도 주방 찬장을 뒤져 냄비를 꺼냈다.
케일은 멍하니 앉아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봤다.
김민아 차장.
그리고 정소훈 대리.
저 둘은 케일이, 아니, 김록수가 이끄는 팀의 팀원들이자 한 명은 서포트 전담. 한 명은 공격 전담이었다.
케일은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부터 그에게선 김록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내가 출근을 안 했다고?”
“그렇죠. 얼른 출근하시죠?”
김민아 차장이 띠꺼운 눈초리로 케일을 쳐다봤다.
케일은 고개를 숙였고 추리닝을 입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방에 하나 있는, 벽에 걸린 거울을 쳐다보니 자다 일어난 것이 틀림없는 덥수룩한 김록수의 머리칼이 보였다.
“제가 팀장님 깨우러 온다고, 오늘 오전 타임 출동도 안 나갔어요. 네? 그 수당이 얼만데!”
김민아 차장은 케일이 속한 팀의 공격조 중 하나를 맡고 있었다.
최전방 공격 요원 중에 한 명이었다.
“저도 정리할 자료가 많은데.”
정소훈 대리가 투덜거리며 끓는 물에 면발과 스프를 넣었다.
그는 대략 2년 전에 폐업한 길드에서 데려온 이로, 치료 능력을 지닌 서포터였다.
곧 그가 끓인 라면이 담긴 냄비가 케일 앞에 놓였다.
탁.
대충 밥상으로 쓰는 테이블 위에 라면 냄비 두 개가 올려졌다.
“김치요.”
그리고 냄비 사이에 김치가 놓였다.
그새 냉장고를 뒤져 반찬 위치를 다 찾아낸 정소훈 대리였다.
“…하.”
케일은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그에 정소훈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기가 차죠? 제가 라면 하나는 기똥차게 끓이죠.”
“팀장님, 이거 드시고 바로 후딱 갑시다. 아셨죠?”
케일은 두 사람의 목소리를 차례로 들으며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라면 면발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익숙하면서도 그리웠고, 너무 맛있었다.
‘…이게 환각이라고?’
케일은 너무 생생한 맛에 기가 찼다.
동시에 그는 고개를 살짝 들었다.
퉁퉁 면발이 불은 컵라면을 한쪽으로 치우고 데운 밥과 김치를 먹는 정소훈 대리. 그리고 라면을 빠르게 흡입하듯이 먹는 김민아 차장.
‘…저 둘도 환각이고?’
이수혁 팀장을 비롯하여 최정수, 다른 팀원들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케일은 더욱더 부하 직원들과 선을 그었다.
“아! 차장님 곧 은수 돌아오죠? 할머니 댁에 갔다고 했나, 그렇죠?”
“어. 은수 아빠랑 오늘 저녁에 올 거야. 넌 다음 주 금요일 연차랬나?”
“네. 아버지 생신이라고, 어찌나 한번 내려오라고 하시는지. 다녀오려고요.”
“그래. 잘 다녀와. 선물은?”
“현금이 최고라고. 현금 달라고 하십니다.”
“하긴 현금이 최고지.”
왜냐면 저들에게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가족이 없는 이들끼리 모였던 이수혁 팀장 체제 때와 달리, 그때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김록수가 다시 팀을 구성할 때에는 다들 책임지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니 김록수는 부하 직원들이 다가와도 가까워질 수가 없었다.
후루룩.
뜨거운 라면을 먹으니 절로 속이 데워졌다.
‘…절망이라고 했던가.’
이전에 엘리스네 1세는 최한에게 환각을 보여주며 그에게 절망을 선사할 것이라고 하였다.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을 보여주었다고.
그렇다면 케일에게도 지금이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란 소리였다.
케일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했다.
‘왜 과거가 아니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과거의 기억 중 절망스러웠던 때가 그를 뒤덮지 않았냐고.
왜 그 순간을 보여주지 않냐고.
하지만 금방 답이 나왔다.
가장 심장에 비수가 되어 꽂혔던 때, 그때 떠나보냈던 이수혁 팀장을 만났으니까.
그는 죽었지만, 그가 죽은 과거가 이제는 마냥 마음의 한으로 남지 않았다.
“흐.”
“어? 팀장님, 갑자기 왜 웃으십니까? 제 라면이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입니까? 크으!”
“야. 팀장님은 니가 이러는 게 더 웃길 거다.”
케일은 웃음이 나왔다.
‘영웅의 탄생’ 속 케일 헤니투스로 눈을 떴을 때.
현실에 대한 미련도 무엇도 없었다.
소중한 친구도 가족도 그 어떠한 것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금 걱정도 들었다.
내가 없으면 이 팀은 어떻게 될까?
그런 고민 말이다.
아마 회사에서는 출근을 하지 않는 김록수를 찾아 집으로 사람을 보냈을 것이고, 정소훈과 김민아 같은 부하 직원들이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마주한 것은 무엇일까?
김록수의 시체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일까?
케일은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에 자신이 가진 큰 것을 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딱 그 정도의, 가끔씩 떠오르는 궁금증일 뿐이었다.
다만.
“미안하다.”
“네? 아! 괜찮습니다. 저 보고 웃으셔도 됩니다.”
“어이구, 저, 저- 말을 말아야지. 팀장님이 그것 때문에 그러냐? 집에 찾아오게 만들어서 미안하시다는 거지? 팀장님 저흰 괜찮아요. 사실 일 안 해서 좋습니다!”
정소훈과 김민아가 차례로 대수롭지 않게 케일의 사과를 넘겼다.
하지만 케일에게는 꽤 대수로운 일이었다.
알았으니까.
그를 찾은 절망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저흰 차에 가 있을게요. 준비 다 하시면 내려오세요.”
“설거지할까요?”
라면을 다 먹고 나자 차례로 김민아와 정소훈이 한 말에 케일은 답했다.
“그래. 나도 바로 준비해서 나갈게. 그리고 설거지는 놔둬.”
“넵!”
“빨리 안 해도 되니, 천천히 하세요.”
끼이익.
두 사람이 자취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케일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문밖의 풍경은 김록수가 살던 그 세계였다.
“그럼 잠시 뒤에 뵙겠습니다!”
“뵐게요.”
탁!
문이 닫혔고 곧 잠금장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문이 잠겼다.
방에는 케일 혼자 남았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늘상 그가 입는 정장이 보였다.
케일은 검은 셔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상처투성이인 팔이 보였고, 거친 손끝을 통해 셔츠의 촉감이 느껴졌다.
한번 출근해볼까?
환각 속이지만, 오랜만에 팀원들도 보고 김록수의 힘들지만 꽤 할 만한 일상을, 지겹고 힘든 회사 생활을 겪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좋기는 얼어 죽을 소리.”
김록수의 입꼬리 한쪽이 비틀어져 올라가며 서늘한 미소를 만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그 순간, 조용한 방을 채우는 소리에 케일은 실소를 흘렸다.
그의 손이 추리닝 상의 안으로 향했다.
“역시 신이 준 물건이란 건가?”
처음부터 환각이라 확신했다.
김민아, 정소훈이 이 소릴 못 듣는 걸 확인할 때부터 쭉 환각이라 믿었다.
째깍. 째깍. 째깍.
죽음의 신이 준 편지.
그것이 그대로 김록수의 트레이닝복 상의 안에 있었다.
째깍. 째깍. 째깍.
“이 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저 문밖으로 나가겠어?”
이 편지가, 죽음의 신이 준 물건이 지금도 그의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케일은 그가 가진 절망을 깨달았다.
절망보다는 아마도 두려움이리라.
그가 가진 두려움의 실체.
이 세상엔.
“없다는 거지.”
김록수의 이어진 내일 속에서 ‘영웅의 탄생’은 가짜였다.
현실이 아닌, 그저 소설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김록수가 케일 헤니투스가 되어 겪은 모든 것들이 현실이 아닌 소설이 되고 마는 것.
“은근히 내가 겁이 많단 말이야.”
케일은 제 두려움을 깨닫고 실소를 흘렸다.
그리고 닫힌 문을 바라봤다.
저 문밖에 세상에 있으리라.
그렇기에 저 문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가야지.”
어서 환각에서 깨어나야 했다.
그 방법을 케일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김록수와 케일을 이어주는 매개체.
케일은 ‘영웅의 탄생’ 책을 집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6권이었다.
사라라락-
책장이 넘어갔고, 케일은 코웃음을 흘렸다.
“하! 진짜 환각인 게 맞네.”
백지였다. 6권에는 글자 하나 없었다.
당연히 케일이 읽은 적이 없었으니까.
김록수의 머릿속에 기록되지 않았으니까.
케일은 6권을 대충 소파 한구석에 던져놓고는 책 한 권을 향해 손을 뻗었다.
5권.
케일은 이 책을 들고서 고민했다.
분명 이 책을 통해서 환각이 깨질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으로 뭘 어떻게 해야 환각이 깨질지 감이 안 잡혔다.
왠지 평범한 방법은 아닐 것 같았다.
찢어?
태워?
아니면 먹어?
별별 고민을 하던 케일은 그냥 책을 펼쳐 들었다.
사락. 사락.
한 장씩 그는 빠르게 장을 넘겼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에 도달했다.
그 글자를 보자 케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재미없네.”
그 말과 함께 책을 덮었다.
탁!
책이 덮인 순간.
“…뭐야? …이렇게 쉽게?”
케일은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환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깨지는 거였나?
케일은 의문이 들었다.
째깍. 째깍. 째깍.
그때, 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고개를 숙였고, 그의 손에 들린 죽음의 신 편지에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이게 뭔 짓을 했구나.
환각이 깨지는 데에 신의 물건이 한 손 거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돌아가야지.”
현실로.
케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분명히 놀랐을 것이 틀림없는 일행들이 떠올랐다. 케일은 얼른 일어나 해결해야겠다 생각하며 눈을 떴다.
쾅! 콰앙! 쾅! 콰아앙!
“…뭐야?”
그리고 그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함께 눈을 떴다.
“어?”
그는 저를 옭아맨 나뭇가지와 더불어 제 주위를 감싼 검은 나뭇가지들을 볼 수 있었다.
파괴하는 불도 사라진 케일은 새장처럼 만들어진 나뭇가지에 갇혀 있었다.
-…괘, 괜찮으세요?
소심한 목소리와 함께 일전에 그가 잡았던 얇은 나뭇가지가 다가왔다.
-제 의지로는 이 정도밖에 안 되어요.
나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일은 검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제대로 밖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뭇가지들 틈새로 시야를 맞추며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 헉!”
그리고 놀랐다.
무언가가 날아왔다.
실눈을 뜨고 있던 케일이 놀라서 움츠러들었다.
콰앙!
곧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나무가 살짝 흔들렸다.
나무 밑동과 부딪친 이가 바닥으로 철퍼덕 쓰러졌다.
“커헉. 컥.”
케일이 아는 자였다.
엘리스네 수하 중 하나인 안경 쓴 중년인이었다.
“크헉. 아, 아파.”
중년인은 부들부들 떨며 손을 움직였다.
몸을 뒤덮은 심한 통증으로 사지가 짓밟히는 기분이었으나, 움직여야 했다. 그의 손이 자신의 귀에 걸린 안경으로 향했다.
이걸 잡아야 한다.
그래야 싸울 수 있다.
아니, 살 수 있다.
그때였다.
“어딜.”
안경이 벗겨졌다.
시력이 멀쩡한 그는 그 안경이 한 사람의 손에 들려 곧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콰직.
떨어진 안경을 짓밟는 발이 있었다.
“커헉! 컥!”
곧 그는 제 안경을 부서뜨린 이에게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졌다.
키가 작은 편인 그의 발이 땅에 닿지 못해 그의 몸이 버둥거렸다.
“제발, 사, 살려-”
안경 쓴 중년인은 제 멱살을 잡은 이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어떻게든 멱살을 풀려고 하며 저를 잡은 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살려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러나 그 사람은 중년인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중년인의 멱살을 잡은 채로 굳어버렸다.
중년인의 어깨 너머.
흉측한 나뭇가지들로 감싸여 인질처럼 잡혀있던 사람.
그 사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케일 님?”
케일은 무슨 피인지 알 수 없으나 여기저기 피를 잔뜩 묻히고서 순한 얼굴로 놀라고 있는 최한을 향해 어색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안녕?”
그리고 그는 살벌한 모습의 최한 어깨 너머 광경들을 볼 수 있었다.
“다 부순다!”
투명화해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서 라온의 외침이 울려 퍼졌고, 동시에 일제히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미로 벽들이 있었다.
“크아아!”
“크르르르!”
곳곳에서 몬스터들이 울부짖으며 무너지는 벽들을 피해 도망 다니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야. 힘을 쓰면 바로 충전이 되면서 더 강해지네!”
“이 새끼들, 다 죽여버려!”
미로 벽 사이로 터져 나오는 죽은 마나를 잔뜩 뒤집어쓰고 날뛰는 다크엘프들이 보였다.
“…잘하고 있었네?”
케일은 제 말에 순하게 웃는 최한을 볼 수 있었다.
뚜욱. 뚝.
그런 최한의 턱을 타고 그의 피가 아닌 것이 틀림없는, 남의 피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살벌한 때에 눈을 뜬 것 같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나뭇가지들을 움켜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