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44
543화.
알베르 크로스만은 2층 테라스 밖의 풍경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비록 반가면으로 코 위를 가렸지만 다크엘프 쿼터 모습을 편히 드러내놓은 채, 그의 눈동자가 엔더블 왕국 1구역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밥 형. 안 먹어?”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알베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칙칙한 회색의 후드 망토를 입은 소년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후드를 푹 눌러쓴 까닭에 바로 맞은편에 앉은 알베르를 제외하면 다른 이들에게는 그 생김새가 잘 보이지 않았다.
알베르는 저를 쳐다보는 소년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다시 테라스 밖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계속 보게 되네.”
“왜?”
“어찌 보면… 나한테는 이곳이 상당한 의미가 있거든.”
그때,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알베르의 마음속으로 훅 치고 들어왔다.
“왜? 다크엘프 때문에?”
참 속일 수가 없단 말이지.
알베르는 눈앞의 소년. 케일에게 참 마음을 숨기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내 비밀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고.’
남들 앞에 내세울 수 없는 무언가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어떤 때에는 위안과 편안함을 선사해주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제 속내를 다 들키는 것 같아 민망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전자와 후자가 함께 알베르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의 입이 열렸다.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케일의 말대로 다크엘프라는 존재 때문에 유독 이곳에 시선이 갔다.
“좋지?”
담담한 케일의 물음에 알베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그리고 덧붙였다.
“생각보다.”
생각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엔더블 왕국의 풍경은 좋았다.
비록 중심에만 지상으로부터의 태양 빛이 내리쬐었지만, 여러 마법 장치를 쓴 것인지 수도 전체가 어둡지 않았다.
솔레나가 추천해 케일이 알베르를 끌고 온 이 식당은 비록 2층까지밖에 없어, 2층 테라스에서 내다본 바깥 풍경은 엔더블의 모든 것을 보여줄 만큼 높은 자리가 아니었지만.
‘하지만 그래서 이곳에 사는 이들의 얼굴이 잘 보이지.’
높은 자리가 아니라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표정과 감정이 알베르에게 한층 깊숙이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에 과일 장사를 하는 이의 생동감 넘치는 미소가 담긴 순간이었다.
“형, 비슷비슷하지 않아? 여기나 로운이나.”
“…그렇네.”
힐끗.
묘하게 힘없는 목소리에 스테이크 조각을 입안에 넣고 삼킨 케일의 눈동자가 잠시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어딘가 허탈해 보이고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케일의 짐작대로 알베르는 조금 지쳐왔다.
‘동대륙에 존재했군. 어둠 속성 종족들이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곳이.’
왠지 모르게 알베르는 입안이 씁쓸했다.
기쁘고 반가우면서도 묘하게 뒤끝이 쓰고 매웠다.
그때였다.
케일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해결되고 나면, 형 일하다가 갑갑할 때 여기 놀러 오면 되지 않겠어?”
뭐?
알베르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포크로 저를 가리키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으로 말이야.”
케일이 씨익 웃었다.
알베르는 그런 그를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식당 밖의 풍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갑갑할 때 한 번씩 오면.”
그러면.
“아주 좋을 것 같군.”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동대륙.
그가 곧 서대륙의 왕이 되더라도 이곳에는 그를 아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도 다크엘프 쿼터 모습인 그를 아는 이는 없다.
여기선 이 모습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중엔 가면조차 벗고 돌아다녀도 될지 몰랐다.
‘오히려 이 왕국에서는 사람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시선을 받을지도 모르겠군.’
몰래 프레도 공작 저택을 벗어나 대로변에서부터는 다크엘프 쿼터 모습으로 걸어 다닌 알베르였다.
가끔씩 그를 쳐다본 이들이 있었지만, 그 시선은 그의 가면에 닿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시선도 금방 사라졌다.
‘혼혈도 많고, 흉터가 있는 이들도 많고. 나처럼 가면 쓴 이도 많고.’
알베르의 모습이 특이한 축이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알베르는 걷는 내내 마음이 요동쳤었다.
그는 절로 가면을 벗고 이곳을 자유로이 돌아다닐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재밌겠군. 그런 미래도.”
그리고.
‘로운에도 비슷한 그림이 그려지면 좋겠군.’
자신은 그 거리의 풍경 속에 없을지라도 자신과 비슷한 이들이 자유로이 거닐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면 했다.
로운 왕국에도.
알베르의 입가에 싱그러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는 그 미소를 띠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케일을 본 순간, 그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 가운데, 그의 눈동자에 케일이 아주 야무지게 음식을 먹고 있는 장면이 담겼다.
“너… 살찐 것 같다?”
알베르가 툭 던진 말에 케일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케일은 살짝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다 입을 열었다.
“음. 그런 것 같네?”
현재 나르 모습이라서 확실치 않지만, 며칠 사이 나르는 볼살이 조금 더 통통해졌다.
분명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도 이전보다는 살이 올라있을 것이다.
“…할 말이 없다.”
알베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
그때, 케일이 주변을 살피며 알베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왜?”
덩달아 알베르도 긴장하며 후드를 쓴 나르 모습의 케일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케일이 속삭였다.
“흰 거 있잖아, 흰 거.”
알베르는 ‘흰 거’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들었다.
분명 하얀 별이리라.
알베르는 차마 밖인 여기선 하얀 별이라고 할 수 없는 케일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
“걔가 왜?”
알베르는 되물으면서도 심장이 뛰었다.
하얀 별을 마족으로 만들려는 시설이 1구역 아래에 존재한다.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하얀 별도 어지간히 미친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그 미친놈을 마족으로 만든다는 시설을 탐색하러 가기로 했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케일이 하려는 걸까?
알베르는 절로 몸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서서히 케일의 입이 열렸다.
“있잖아. 흰 거. 걔가 준 음식들이 맛있더라고.”
“뭐?”
알베르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걸 모르는지 케일은 다시 음식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쿠키도 형 거보다 맛있던데?”
“…그래?”
“어.”
알베르는 허탈함과 황당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흐음. 기분 나쁜데?”
“어?”
“아냐. 계속 먹어.”
알베르는 케일에게 계속 먹으라 말하며 팔짱을 꼈다.
그는 쿠키 상자를 들고 최한에게로 날아가던 라온이 떠올랐다.
그 쿠키 상자도 하얀 별이 준 거라지?
알베르는 이상하게 하얀 별에게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다 먹었어.”
끼이익.
알베르는 의자를 밀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케일을 볼 수 있었다.
낯선 귀공자 모습의 케일은 의자에 앉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형, 가볼까?”
드르륵.
알베르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지.”
***
“공작님. 여기 자주 마시는 차 준비해왔습니다.”
“고맙네.”
집사 멜른도는 프레도가 앉아있던 테이블에 조심스럽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 시선을 눈치챈 프레도가 괜찮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뭘 그리 보나?”
“아뇨. 다만.”
잠시 말을 멈췄던 멜른도는 이내 최한 쪽을 한 번 힐끗거리고는 이어 말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셔서요.”
“괜찮네.”
그 말과 함께 프레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집사는 그 모습에서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그의 의도를 알아챘다.
그는 조심스럽게 프레도에게서 물러나며 최한에게로 다가갔다.
“차보다는 과일 음료를 더 즐기신다고 들어 준비했습니다.”
과일 음료 두 잔이 최한과 라온의 곁에 놓였다.
“감사합니다.”
“고맙다, 집사야!”
집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이내 프레도의 침실을 나갔다.
달칵, 탁!
최한은 닫힌 문을 보며 입을 열었다.
“피곤할 일은 없을 텐데?”
프레도의 시선이 최한에게로 향했다.
최한은 담담하게 그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나는 로운 왕국의 생각을, 케일 님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어.”
최한은 알베르와 프레도의 대담을 지켜보았다.
물론 프레도는 알베르가 대리인인 줄 알겠지만, 최한은 알베르의 정체를 아는 만큼 그 대화 내용들의 무게가 크게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저를 응시하는 프레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로운 왕국에서 정말 많은 양보를 했어.”
씨익.
프레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입이 열렸다.
“그래서 이상하네.”
“뭐?”
많이 양보해줬다는 것을 프레도는 인정하면서도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 행동에 최한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쯤, 프레도의 입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로운 왕국과의 거래는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거래였지. 물론 로운 입장에서는 엔더블 왕국과 그런 대등한 거래를 하는 것 자체가 많은 양보일 수도 있지만.”
프레도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최한을 관찰했다.
가장 속내를 알기 쉬운, 케일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니까.
프레도는 최한의 속내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의 속내를 밝혔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은 알베르 크로스만 왕세자 저하의 생각이야.”
조금 전 대화의 결과로 로운 왕국은 딱히 손해를 보지 않았다.
다만.
“왕세자 저하 개인이 참 많은 배려를 나에게, 미래의 엔더블에게 해주었지.”
대리인 밥의 입을 통해 나온 알베르의 배려가 프레도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
프레도는 알베르 대리인 밥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자, 왕국 간 거래는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군요.’
대화가 끝난 무렵.
‘그러면 왕세자 저하께서 개인적으로 전하라 명하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왕세자 저하께서 개인적으로요?’
‘그렇습니다.’
‘무엇이죠?’
‘저하께서는 프레도 공작께서 올바른 왕으로서, 엔더블을 꾸려나가시고자 한다면. 경우에 따라선 왕국 자립과 행정 체계, 그리고 서대륙 왕국들과의 인맥 형성 등과 관련해 도움이 될 ‘개인적인 조언’들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프레도는 진정으로 놀랐었다.
그래서 그가 뭐라 말을 하려 입을 열었을 때, 밥이 먼저 말했다.
‘물론 프레도 공작께서 원하신다면 말이지요.’
‘…어쨌든 조언을 하고 대화를 나누겠단 말입니까?’
‘그렇지요. 언제든, 아낌없이요.’
알베르 크로스만.
로운이라는 강국을 만들어가고 그 왕의 자리를 차지할 자가 프레도에게 선뜻 조언을 주겠다고 하였다.
‘다만 로운 자체가 아닌 단순한 왕세자 저하 ‘개인’으로서요.’
밥이 선을 그으며 명확한 범위를 다시 한번 언급했지만, 프레도에게는 이것도 놀라웠다.
왕국을 하나 이끌어간다는 것.
그것도 신생 왕국을,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진 뱀파이어로서 이끌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병력이나 자금 문제로 해결되지 않을 여러 고민이 많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현재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는 행정가이자 정치가가 개인적으로나마 조언을 해준다?
무엇보다도 처음 왕이 되어볼 프레도에게는 귀중한 선물이었다.
‘왜 그런 호의를 베푸시려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저도 그것까진 모르겠습니다.’
밥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부드럽지만 명백한 선이 느껴지는 그 미소와 어조에 프레도는 더 이상 자세히 알베르 크로스만의 의중에 대해 물을 수가 없었다.
생각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 프레도는 최한을 보며 말했다.
“왕세자 저하께서는 왜 엔더블에 호의를 가지고 있지?”
서대륙이 아닌 동대륙이라?
아니면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왕국이라?
그렇기에는 그 호의는 ‘선의’를 지니고 있었다.
피식.
그 순간, 프레도는 최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호의에 대해서 고민하지?”
“…나는 뭐든 의심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프레도가 지켜야 할 삶이 참으로 많았다.
더욱이 엔더블 왕국은 어쩔 수 없이 위태롭게 버텨내야 할 순간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조그만 것이라도 의심하고 조심해야 했다.
알베르의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가 프레도에게는 또 다른 걱정거리이자 피곤함으로 느껴졌다.
프레도는 더 이상 말이 없는 최한을 보며 말을 이었다.
“뭘 알긴 알지만, 말해줄 생각은 없나 보군.”
“…내가 너에게 도움을 줄 이유는 없다.”
“냉정하군.”
최한은 프레도의 말을 무시하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라온이 흘린 쿠키 부스러기를 주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살짝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알베르 크로스만.’
어쩌면 케일 다음으로 그의 비밀을 제일 많이 알게 된 사람이 최한이었다.
그는 밥의 모습으로 알베르가 엔더블에 보낸 호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한은 이전보다 더 알베르를 돕고 싶었다.
‘검술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
“형, 왜 그래?”
“갑자기 뒷골이 서늘한데? 누가 나 욕하나?”
케일은 제 뒷목을 매만지는 알베르를 떨떠름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 시선을 마주한 알베르가 슬그머니 케일을 외면했다.
“크흠. 그런데 왜 우리가 2구역으로 왔지?”
1구역 아래.
하얀 별을 마족으로 만드는 시설로 가기로 했던 케일과 알베르는 현재 1구역 위층. 2구역으로 와있었다.
씨익.
알베르는 올라가는 케일의 입꼬리를 보았다.
“여기에 우리의 첩자께서 계시거든.”
케일은 소년의 얼굴로 사뭇 세상에 찌든 어른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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