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26
725화.
149장. 제정신일 리가.
‘착각인가?’
분명 온도가 낮아졌다. 케일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얀 별.”
피식. 그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착각이 아니네.’
피부에 닿는 서늘함. 그것은 단순한 느낌이 아닌 현실이었다.
인적이 드문 공원 한 켠.
케일과 최정건. 그들 두 사람을 둘러싼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그 막은 바깥과 안을 분리했다.
마치, 케일은 최정건과 함께 홀로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기이한 감각을 공간 안에서 느꼈다.
그리고 그 감각의 중심.
최정건은 가만히 서서 케일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그전에 이따금씩 느껴졌던 어리숙함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본모습이라는 듯, 냉철한 분위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다.
케일은 아무 말 없이 그런 그를 마주 바라보았고, 최정건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네란 베로우. 하얀 별.”
최정건은 스스로 내뱉은 말을 음미하듯 입안에 몇 번 굴리다가 툭 내뱉었다.
“그것들은 어떤 착각으로 내뱉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닌데.”
그 순간이었다.
사아아-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는 생각이 든 그때.
“이야.”
케일은 짧게 탄성을 흘렸다.
어느새 최정건은 김록수의 바로 앞에 서서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최정건의 손은 케일의 목 바로 앞에서 멈췄다.
“설명해 보도록.”
최정건은 그 말만을 내뱉고 케일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어떻게 그 이름을 알아?
어디서 그런 걸 들었어?
뭐야? 무슨 일이야?
이런 당황스러움과 어리숙함이 담긴 질문은 최정건의 입에서 결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저 ‘네란 베로우, 하얀 별’ 두 이름이 나온 순간, 의문은 무의미하다 여기고 행동을 택했을 뿐.
‘그러면 나도 편하지.’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케일 역시도 굳이 사근사근한 동아리 후배인 척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말이죠,”
꿈.
그 단어에 최정건이 멈칫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케일이 빤히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그에게 케일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꿈에서 하얀 별이라는 자가 나오더군요.”
케일은 최정건과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갈까 고민했다. 이곳이 환상이라고, 시험이라고, 나는 케일 헤니투스에 빙의한 김록수라고 모두 말해야 할까?
답은 쉬이 나왔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그냥 말이 통할 정도만 말하면 돼.’
다만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면.
케일은 제 몸 안에 존재하는 고대의 힘들을 느끼며 생각을 이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면, 시원하게 한판 붙는 거지.’
툭.
케일은 제 목 앞에 멈춰 있는 최정건의 손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그 손을 관찰했다. 확실히 굳은살이 많이 박인, 최한보다 더 투박한 손이었다.
“하얀 별. 케일 베로우라는 자가 꿈에 나오는데.”
점점 더 케일의 분위기가 살가운 후배에서는 멀어져갔지만, 이는 최정건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얼굴이 나랑 비슷하더라고?”
라온고를 다니며 도서부에서 활동한 총 5일간의 시간. 그동안 케일은 놀았을까? 그 순간을 즐겼을까?
‘그럴 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저번에 제가 도서부 가입한다고 도서실에 갔을 때, 선배가 쓰고 있던 연습장을 황급히 덮었을 때 말이죠.”
이번에는 케일이 최정건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내가 로운이라는 글자를 봤다는 거 아닙니까?”
아이구.
케일이 전혀 놀라지 않은 투로 감탄사를 흘리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내 꿈에서도 로운이 나왔는데?”
툭툭.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미안합니다, 선배. 선배 관찰 좀 했습니다.”
“그래?”
최정건은 무심히 되물었고, 케일 역시 무심히 답했다.
“선배가 어찌나 연습장을 철저히 관리하던지, 4일 동안 본 글자가 몇 개 없었어요.”
정말 몇 개 못 봤다.
최정건이 반납된 책을 정리하러 가거나 혹은 책을 찾는 이들에게 위치를 가르쳐주러 갈 때.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케일은 슬쩍 보는 게 다였다. 평소 케일이라면 하지 않을 짓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관계된 일인데.
최정건이 조금의 감정도 없이 툭 내뱉었다.
“예의 없네.”
“미안합니다. 그런데 내가 마냥 미안해할 일이 아니더라고?”
이번에는 케일의 표정이 사라지고, 최정건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얀 별, 로운, 퍼슬. 내 꿈에 나온 단어들이 선배 연습장에도 있는 거야. 그런데 그 연습장 안을 보니, 나한테 가이드북이라고 한 글의 제목이 있더라?”
그는 번듯하게 적힌 제목과 저자 이름을 본 순간을 떠올리며 이어 말했다.
“영웅의 탄생. 저자 네란 베로우.”
케일은 어깨에서 손을 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쳤다.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가. 선배님도 나랑 같은 꿈을 꾸나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그런데 저 막은 뭡니까? 신기하네. 마치-”
케일의 목소리는 은밀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마치 선배, 다른 세계 사람 같네요.”
“웃으면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만.”
“선배도 웃는데요?”
최정건은 그제야 제 입꼬리를 매만졌다.
“맞네. 나도 웃네.”
그는 이어 무심하게 말했다.
“기가 차서 그렇나 봐. 이런 건 전혀 생각도 못 했거든.”
정말로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는 듯, 최정건은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은 전혀 고3 같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김록수 네가 하얀 별이라는 자의 꿈을 꾼다고?”
“네. 나쁜 놈이던데요?”
“꿈을 꾸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나?”
“아뇨. 얼마 되지는 않았고. 꿈을 꾸면 그 사람이 서대륙에 벌이는 짓들이 보이던데요?”
“…그래?”
최정건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인생뿐만 아니라, 기억이나 꿈에도 영향을 미치는 건가?”
이를 보며 케일은 생각했다.
‘알아서 착각해주고, 답을 내려주네.’
편해서 좋네.
담담하게 현 상황에 대해 감상을 내린 케일은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입에 담았다.
“선배는 누굽니까?”
“나?”
“네.”
케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막이나, 조금 전에 선배가 순식간에 제 앞으로 온 거나. 이런 건 보통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꼭.”
케일은 서서히 미소를 그렸다.
“꼭 신 같네요. 세상의 상식을 벗어난.”
“신?”
큭.
최정건은 웃음을 어떻게든 참으려는 듯, 억눌린 웃음소리가 그의 입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잠시 웃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 케일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빌어먹을 것들하고 나를 같게 보면 안 되지.”
“그럼 선배는 뭔데요?”
최정건은 그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눈동자는 어른스러웠지만 반대로 아직 순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흔들림 없이 올곧이 눈에 비친 것을 담을 정도로 투명했으니까.
“하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고, 그는 한숨에 진실을 흘려보냈다.
“앞으로 그 빌어먹을 것이 될지도 모르는 영혼?”
케일은 그 한숨을 놓치지 않았다.
“신이 될지도 모르는 영혼이란 뜻입니까? 그런 게 있습니까?”
잘됐다.
케일은 그리 생각했다. 이참에 잘만 하면 단생자와 신에 대한 여러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래. 신이 될 영혼이 있어. 물론 그 영혼이 아니라도 신이 될 방법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극소수야.”
분명 저 영혼은 단생자. 시련자를 일컫는 것일 터.
태양신이 저 단생자 영혼이었고, 봉인된 절망의 신은 단생자들을 사냥하던 사냥꾼 출신으로 그 사냥한 영혼으로 어떤 수작을 벌여 신이 되었을 것이다.
“신이 여럿인 겁니까? 그럼 선배는 무슨 신이 되는 겁니까? 신이 되면 뭘 하죠?”
케일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최정건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더니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근처 벤치로 걸어갔다. 케일은 그 뒤를 따랐다.
여전히 두 사람을 둘러싼 막은 그대로였다.
“후우.”
벤치에 앉아 연신 한숨을 내쉬던 최정건은 몇 번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이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이것도 이유가 있겠지.”
그는 고개를 돌려 케일을 바라봤다.
‘음.’
순간 케일은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그를 바라보는 최정건의 눈동자. 저 눈동자는 확실히 인간의 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케일은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조금… 쫄리는데.’
살짝 쫄은 케일이었다.
“록수야.”
최정건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잘 들어둬.”
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기억을 넘어, 의식을 넘어. 무의식에 박힐 정도로. 아주 집중해서 들어놓는 게 네 인생에 도움이 될 거다.”
그의 눈은 언제라도 공격할 듯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이 세상은 절대적인 규칙 혹은 법칙이 존재해. 그리고 여러 영역을 관리하는 ‘신들’이 존재하지. 그 신들은 소멸하지 않아.”
여기까진 케일도 아는 내용이었다.
“그런데요?”
“음. 예를 들어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하자. 그 신은 소멸할 수 없으니, 영원히 죽음을 관장해야 할 거야.”
최정건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그 신은 얼마나 힘들겠니?”
전혀 힘들어하는 것을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는 이어 덧붙였다.
“물론 죽음의 신은 빌어처먹을 놈이야. 평생, 영원히 고생해도 부족해. 아쉬워.”
그는 살짝 케일의 시선을 피해 눈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죽을 수 없는 놈이라니. 참 아쉽지.”
케일은 살짝 의아했다.
죽음의 신과 최정건.
두 존재는 상당히 밀접한 사이로 보였다. 그런데 그 속은 다른 건가?
“아무튼, 대부분의 신들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 영원한 일에 힘들어해. 그래서 은퇴라는 게 있지.”
언젠가 봉인된 신도 여의주를 보며 죽음의 신 은퇴를 케일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꼭 직장 같네요?”
“비슷해. 직장인 출신 신도 있는걸?”
피식.
최정건은 실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
“은퇴는 ‘격’을 잃는 거야. 격은 그 신이 관장하는 영역에 대한 일정 범위의 절대적인 힘을 뜻하지.”
신이 관리하는 영역에 대한 힘을 격이라고 한다면, 그 격을 잃은 신은 해당 영역에 대한 신이라고 하기 어려우리라.
“격은 스스로 내놓을 수도 있고, 세상의 규칙을 어기는 바람에 빼앗기는 경우도 있어.”
케일은 봉인된 신의 시험에 관여했던 죽음의 신을 떠올렸다.
죽음의 신은 규칙을 몇 가지나 바꿨다. 그 바람에 봉인된 신도 규칙을 어기며 시험을 망가뜨려 현재의 환상 시험을 새로이 보게 만들었다.
“물론 격을 잃는다고 소멸하지는 않아. 신에게 소멸은 불가능하니까. 그냥 격을 잃고 은퇴하면 은퇴 라이프를 즐기는 거야.”
“…백수 라이프요?”
“어? 어, 어. 그런 거지. 백수 비슷하겠네.”
“…그래요?”
케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고, 이를 알아챈 최정건은 살짝 의아해하다가 이내 웃음을 흘렸다.
“신에게 은퇴라니까 이상하지? 근데 거기나 여기나 사는 건 다 비슷해.”
그리 말하는 최정건의 입가는 씁쓸했다.
“물론 은퇴 라이프도 각 신마다 달라. 스스로 격을 내놓는 자는 즐거운 은퇴일 것이고, 격을 빼앗긴 자에게는 은퇴가 곧 형벌이겠지.”
“격을 잃지 않으면요?”
“그러면 그 영역에서는 평생 신 하는 거지. 그런데 그러고 싶겠어? 세상사가 얼마나 복잡한데. 쉬고 싶어 하는 신들이 꽤 많아. 신도 꽤 힘든 자리거든.”
“그러면 그 뒤를 이어 그 영역을 이어받는 게, 선배와 같은 영혼들입니까?”
“오, 바로 알아채는데?”
최정건은 뭔가 홀가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 영혼들을 시련자라고 하지. 나는 시련자야.”
세계수가 말한 시련자.
곧 친모 주르 템스 일기장에 적힌 ‘단생자’를 뜻했다.
“시련자들은 죽은 후, 각기 영역의 신과 계약을 맺고 일종의 전수를 받는 과정을 거쳐. 그리고 신이 은퇴하면 그중에서 가장 그 영역과 비슷한 성질을 지닌 이가 자리를 이어받지.”
“선배는 무슨 신하고 계약했습니까?”
잠시 최정건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죽음.”
케일은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
“상종도 하기 싫다면서요?”
“제기랄.”
답지 않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최정건은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차마 케일에게는 화를 낼 수 없었던지, 억눌린 목소리로 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거래를 했거든.”
“계약이요?”
“아니, 계약과 달라. 나는 전수받는 걸 거부했어. 단지 거래만 했을 뿐.”
특정한 조건이나 의무로 얽힌 관계가 아닌, 그저 주고받는 관계.
최정건은 죽음의 신과 자신의 사이를 그렇게 표현했다.
“시련자는 반드시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냐. 그들은 택할 수 있어.”
“무엇을 택할 수 있습니까?”
“계약자가 되거나. 혹은 방랑자가 되거나.”
신과 계약한 자와 계약하지 않은 자.
“선배는 방랑자입니까?”
“방랑자는 용병에 가까워. 신이나 계약자보다 조금 더 규칙에 자유로운 방랑자들은 하기 힘든 일들을 도맡아 하는 대신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지.”
“선배는 그걸 상종도 하기 싫은 놈과 하는 거네요?”
“…너 지금 나 놀리냐?”
“아니요?”
“표정이 놀리는 표정인데?”
“전혀요.”
최정건은 말문이 막힌 듯 케일을 바라보다가 한결 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음의 신은 나에게 있어 가문의 원수야. 하지만 유일하게 나랑 원하는 결말이 같지.”
“무슨 결말인데요?”
순간 다시 한번 케일은 주변 온도가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카디건을 걸쳤음에도 팔에 소름이 돋아올랐다.
“…궁금해?”
나지막이 웃는 최정건의 눈동자는 왠지 모르게 살벌했다.
‘아, 느낌이 안 좋은데.’
꼭지가 돌아가 버린 최한을 보는 것 같았다. 평소의 케일이라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상이고 정보를 알아야 한다는 목적이 있어 케일은 나름 스스로 느끼기에 조심스럽게 답했다.
“네. 궁금한데요.”
최정건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간 크네.”
내가? 전혀 안 그런데?
케일은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최정건은 케일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냥꾼을 모조리 죽이는 거.”
그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지 않게. 모조리, 전부 다.”
케일의 눈동자가 최정건에게로 향했다.
“아주 처절하게 다 죽여버리는 거. 핏자국 하나 남지 않게 소멸시키는 거.”
최정건의 입가는 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 눈이 웃고 있었다.
케일은 그 순간 알았다.
‘…맛 갔네.’
최정건. 이 최정수의 조상은, 돌아있다.
케일은 일단은 그 웃는 눈을 따라 마주 웃었다. 그로서는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이었으나, 최정건 입장에서는 죽인다는 소리에 웃으며 말하는 놈이 케일이 되어버렸다.
“에이, 살벌한 소리네요. 선배, 사냥꾼이 뭐길래 그렇게까지 하려고 해요?”
케일은 물으면서도 그 답을 대강 유추하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사냥꾼 출신인 봉인된 신과 연관된 답일 것이다.
그때, 최정건이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타인의 운명을 훔치는 놈들이지. 그자들은 시련자를 찾아다녀. 징그러울 정도로. 김록수야, 그거 아니?”
최정건은 귓속말을 내뱉었다.
“그 새끼들은 차원을 넘을 줄 알고, 사람의 기억에 손을 댈 줄 알지. 물론 차원을 넘나드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지극히 어려워서 하기 힘든 일이고 기억을 손대는 일도 마찬가지야. 신도 하기 힘든 일인데, 어쨌든 그들은 할 줄 알아. 인간인데. 이상하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왜 네 옆에 있는 줄 알아? 하얀 별 꿈 꾸는 거? 나도 몰랐던 그런 것 때문에 네 옆에 있을까?”
아, 이거 안 좋다. 뭔가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케일의 머릿속을 뒤덮기 시작했다.
최정건의 목소리는 깊고 낮았지만, 조금씩 알 수 없는 열기가 느껴졌다. 최정건은 지금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틀림없다.
그때, 최정건이 이어 말했다.
“사냥꾼이 있거든. 네 옆에.”
뭐?
케일의 눈이 커진 순간.
“그놈은 네가 시련자인지 아닌지 지금 관찰 중일 거야. 왜냐면 너는 하얀 별 영향으로 그 기운과 운명이 독특해서 보통 사람과는 다르거든.”
사냥꾼이 지금 이 세상에 있다고?
그리고 하필 내 곁에 있다고?
나를 관찰한다고?
“…왜?”
케일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구했지만, 최정건은 답해주지 않았다. 그는 아직 할 말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난 오늘 너에게 꽤 좋은 추억을 선사할 계획이야.”
최정건은 시선을 돌렸다.
스스스-
두 사람을 감싸던 반투명한 막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막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최정건은 이어 말했다.
“동시에 사냥꾼 그놈을 죽이러 왔어.”
나직이 덧붙였다.
“만약 그놈이 너를 관찰하러 쫓아왔다면 말이야. 혹 우연을 가장해 너한테 인사라도 한다면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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