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41
2부 83화
“참으로, 할아범이 그렇게 말했느냐?”
“네. 태후 마마.”
태후는 고개를 조아리는 목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목현. 권왕의 경지는 최소 화경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했어.’
무림의 경지는 삼류, 이류, 일류를 지나, 절정, 초절정. 그리고 그 너머인 화경. 그리고 그 화경을 넘어 현경에 이른다고 했다.
보통 절정의 경지에만 이르러도 고수라고 하였다.
‘초절정부터는 무림 어디를 가도 대단한 고수로 대우해 준다고 했고.’
그리고 그 위의 경지인 화경은 각 문파 혹은 세력에서도 손에 꼽히는 위치였다.
‘황실에서는 목현 할아범을 현경이 아닐까 추측한다지?’
최소 화경 후반. 최대 현경 초반.
그것이 목현에 대해 황실에서 은밀히 내린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그자가 최소 화경 후반, 최대 현경 초반이란 말인가?’
태후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조금 전 겪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기운은-’
온갖 풍파를 겪어낸 태후였다.
전전대 황제. 전대 황제를 마주했을 때도, 전대 황제와 대립을 했을 때도. 태후는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자의 기운을 마주하는 순간.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그간 삶의 여러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으리라.
‘하지만, 오로지 기세만이 느껴졌다.’
공기를 지배하는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만을 그에게서 느낄 뿐.
실질적인 살기는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무기조차 들지 않고 있지 않던가.
“목희.”
“네. 마마.”
“…무림에서는 강할수록, 그 겉모습이 평범한 이와 같다지?”
“…….”
목희는 잠시 침묵하다가 답했다.
“어느 경지를 넘어서는 순간, 무림인은 그 모습이 일반인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 할아범처럼 말이야.”
사자는 할아범보다 더 평범한 일반인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태후 자신보다 약해 보였다. 왜소한 체형에 피곤이 짙게 서린 얼굴. 그리고-
“…어려 보이던데. 그 정도 강자가 진정으로 어린 것은 아니겠지?”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사옵니다. 하나-”
목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어 말했다.
“반로환동이라고 하여, 일정 경지를 넘어선 고수는 환골탈태를 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 외양이 젊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 이 부분은 실제로 제가 본 적은 없어 단정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렇구나.”
태후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마마.”
문밖에서 궁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태후는 창밖을 내다봤다.
어둡다.
밤임에도 아들이 그녀를 보기를 청한다.
“폐하께 소식이 닿았나 보구나.”
목현을 내어준 아들이, 사자의 방문을 모를 리가 없었다. 태후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월화궁에도 폐하의 귀가 있구나.”
목희는 그 말에 어깨를 살짝 떨었다.
태후는 아들인 현 황제가 그녀의 처소에 정보통을 심어두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언짢음도 없었다.
오히려 기꺼워했다.
“장하시구나. 내 궁마저 뚫었으니, 황궁에 폐하의 귀가 닿지 않는 곳은 없겠어.”
그녀는 진정으로 아들의 수완을 칭찬하고 있었다.
그리고 황제는 이런 태후의 성정을 알기에, 자신의 정보통이 월화궁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며 방문을 청한 것이리라.
“어차피 잠이 들기 힘든 밤이니, 폐하께 어서 오시라고 하게.”
태후는 밖의 궁녀에게 명을 내리며 목희에게도 말했다.
“여기 같이 있자꾸나. 그들의 강함은 나보다 네가 더 설명을 잘할 테니.”
“네, 태후 마마.”
태후는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며 읊조렸다.
“어쩌면 폐하와 함께 그들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녀의 시선이 월화궁에 딸려 있는 여러 객당 중 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엔 불이 들어와 있었다.
오늘부터 저곳은 사람이 머물 것이기에, 불이 꺼지지 않으리라.
* * *
‘뭐지?’
케일은 기분이 찝찝해졌다.
‘왜 아무 반응이 없지?’
조금 전 할아범이 강하냐고 물어서, 그는 약하다고 답했다.
그에 할아범이라 불리는 노인은 케일을 빤히 바라보다가 ‘허허’ 웃음을 흘리고는 입을 다물었다.
‘기분이 좀, 그런데?’
노인의 반응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은 채, 그들은 태후가 내어준 처소로 향했다.
‘고요하지만, 빠르군.’
그 와중에도 케일은 티 나지 않게 주변을 훑어보며 상황을 살폈다.
월화궁.
밤이라서 고요했지만, 곳곳에 등이 켜져 마냥 어둡지는 않았다. 그곳을 많은 궁인들이 오갔다.
‘위 상선과 비슷하네.’
조용히 걸어가는 위 상선처럼, 월화궁 궁인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러했다.
그때였다.
-인간아, 인간아!
갑자기 등 뒤에 있던 라온이 케일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지?’
케일의 눈썹이 살짝 들린 순간.
-인간아! 이상한 게 자꾸 잡힌다!
음?
-금 용 할배가 그랬다! 새로운 세상에 가면, 반드시 그 세계의 마나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역시, 고룡의 조언은 훌륭하다.
케일이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인 때.
-그래서 마나 흐름을 읽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발견했다고?
-분명 마법이 아닌데, 여기 있는 인간들이 서로 뭔가 대화를 몰래 주고받는 거 같다! 그 공기 파동이 마나로 읽힌다!
응?
몰래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그거 전음 아냐?’
자고로 무림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고수가 되면, 자신의 내공을 사용해 전음이라는 방법으로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대화를 나누는 법이었다.
‘…그게 읽힌다고?’
마나로?
케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다.
‘그니까, 지금 라온이 남들의 전음을 몰래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 아냐?’
이거, 이거!
잘만하면!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순간에도 라온은 계속 말을 건네왔다. 전음이라는 것을 아주 신기해하는 기색이었다.
-인간아! 지금 위 상선이라는 노인과 할아범이라는 노인이 서로 대화 나눈다!
그렇단 말이지?
위 상선이 조용해 보이더니, 그는 할아범이랑 대화를 나누느라 바빴나 보다.
그리고 허허 웃고 입을 다물던 할아범도 지금 대화를 나누는 중이고.
케일은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어떻게든 꾹 참았다.
-집중하면 뭐라고 대화하는지 들릴 것 같은데! 아직 저들의 방식이 낯설어서 파동 파악이 어렵지만, 가능할 것 같다!
라온은 새로운 문물을 발견한 사람 같았다.
-마나와는 파동의 결이 다르고, 힘도 미묘하게 다르다! 이건, 착한 최한이 사용하는 오러랑 비슷하다! 하지만 오러랑도 조금 다르다!
그렇지.
무림인들이 사용하는 내공은 마법, 오러와는 조금 달랐다.
그나마 최한의 오러와 비슷하긴 할 터.
-오오!
라온이 감탄했다.
-들린다! 조금 더 연습해야 할 것 같지만, 난 집중력이 뛰어난 용이라, 이제 조금씩 들린다!
케일은 콩콩 심장이 뛰었다.
전음이 들리는 무협 세계라니.
‘…역시 용은 위대하군.’
케일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아! 뭐라고 하는지 알려줄까!
역시 라온은 이제 케일이 뭐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진행했다.
케일이 답하지 않아도, 라온은 그가 듣고 싶어 했던 것을 전해주었다.
-위 상선이 말한다!
-…최소 화경이란 말씀이십니까?
-노인이 말한다!
-그렇네. 하지만 스스로를 약하다고 말하다니. 힘을 딱히 쓰고 싶은 생각은 없나 보군.
씰룩.
결국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인간아, 화경이 뭐냐?
화경이 뭐냐고?
‘엄청나게 강하다는 소리지.’
케일은 기가 찼다.
‘내가 화경으로 보인다고?’
그는 황당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화경은 얼어 죽을. 지금은 평소 중간 수준의 힘만 쓰려고 해도 피 토하고 기절하고 난리가 날 판국이구만.
‘그나마 재생이나 바람의 힘이 그럭저럭 덜 봉인되어서 다행이지.’
파괴력이 높은 물, 불, 땅은 봉인이 상당히 되었지만. 파괴력이 낮은 고대의 힘들은 그래도 반 이상은 남아있었다.
-인간아! 할아범이 또 말한다!
-그리고 이 사자 외의 다른 이들도 상당히 강해 보이네. 다만 이들에게서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군.
당연하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내공을 가진 이는 없다.
다들 다른 힘을 사용하지.
“여기이옵니다.”
위 상선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2층짜리 전각을 가리켰다.
“월화궁에 딸린 별당 중 한 곳으로, 이곳에서 머무시면 됩니다.”
위 상선은 별당 앞에 서 있는 이를 보고 잠시 멈칫했지만, 입을 열었다.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책임자는 저이옵니다만. 이 아이들이 별당 내의 일을 할 것이니,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들에게 편히 말씀하시면 됩니다.”
케일의 시선이 총 5명의 사람에게로 향했다.
궁녀 2명에 내시 3명이었다.
‘음?’
그때, 케일의 시선이 내시 3명에게로 향했다.
“…위 상선.”
“네. 사자님.”
“…저 아이는 너무 어린데?”
웬 6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잔뜩 움츠러든 채 서 있었다.
위 상선이 멈칫하다가 허리를 숙였다.
“저분, 아니… 저 아이가 사자님의 가장 곁에서 보필할 아이입니다.”
호오.
케일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서 있는 궁인 중에서 유일하게 이물질 같은 존재. 그러면서도 케일을 아는지 눈치를 보는 존재.
그리고 묘하게 위 상선이 눈치를 보는 존재.
그럼에도 다른 궁인들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아이와 위 상선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케일은 저 존재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남자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더 움츠러트렸지만, 애써 웃고 있었다. 볼을 긁적이며.
그때였다.
“그건 곤란하군요.”
케일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한 순간, 위 상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를 볼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지만, 조금 더 젊어 보이는 반백발의 남자.
“도련님을 보필하는 것은 저의 일입니다.”
론이 인자한 미소를 띤 채, 위 상선에게 말하고는 케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요, 도련님?”
케일은 슬쩍 론의 시선을 피했다.
‘왠지 껄끄럽단 말이지.’
론과 비크로스. 그 두 사람과 달리 케일의 외양은 상당히 많이 변했다.
스무 살 적의 김록수니까.
물론 하얀 별을 떠올리지는 못할 것이다. 머리칼 색부터 다르고, 더불어 건장한 하얀 별에 비하면 지금의 김록수는 너무 비실비실해서 딴 사람 같았으니까. 무엇보다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그렇지만 케일은 저를 관찰하는 론의 시선을 눈치챈 순간, 왠지 모르게 그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 힘들었다.
‘곤란하네.’
하지만 굳이 케일은 이 김록수라는 모습에 대해 설명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굳이 말이다.
“도련님?”
한 번 더 보채는 론의 목소리에 케일은 얼른 답했다.
“당연하지!”
저도 모르게 과한 대답이 나왔다. 케일은 론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었다.
“그렇다는군요.”
“으음.”
위 상선이 케일과 론의 대화를 다 들었음에도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에 케일은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저 아이는 곁에 두죠.”
위 상선은 그 말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숙였다.
“네. 사자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일이 툭 내뱉었다. 할아범을 향해.
“모르시나 봅니다?”
“응?”
“저 아이가 누군지요.”
그 순간 내시 아이와 위 상선이 흠칫했으나,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태후 마마와 그리 가까운 분은 아니신가 보네.”
대신 의뭉스러운 미소를 띤 채, 할아범에게 한마디를 던지고는 미련 없이 별당으로 향했다.
“태후 마마와의 대화를 최대한 빨리 하고 싶군요. 한시가 급해서.”
위 상선에게 말을 남기고, 케일은 별당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내가 급한 것이 아니라, 그쪽이 급해질 일이지만요.”
위 상선이 멈칫하는 것을 본 그는 별당 정문으로 다가갔다.
배정받은 궁인들이 비켜서며 허리를 숙였다.
케일은 허둥지둥 이를 따라 하려는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원래는 어깨 위에 손을 올리려고 했으나, 아이가 키가 작아서 머리 위에 손이 올라갔다.
케일은 그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멈칫했다.
스르륵.
아이의 검은 머리칼이 아이의 머리에서 뚝 떨어져나왔다.
가발이었다.
케일과 시선이 마주친 아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밤톨같이 맨들맨들한 머리통을 가진 아이는 내시복을 입고 있었지만, 누가 보아도 동자승 같았다.
“헤헤.”
계속 어색하게 웃는 아이에게 케일은 툭 입을 열었다.
“중원이, 가발도 쓰네?”
헤헤.
아이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케일의 눈빛은 살벌했다.
“…할 말이 많은데.”
봉인된 힘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것도 싸우는 데 유용한 파괴력 높은 힘들이 유독 많이 봉인되었다.
그의 눈빛을 마주한 빡빡머리의 아이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입을 열었다.
“헤헤.”
내시복을 꼬옥 움켜쥔 채 그냥 웃었다.
물론 그 입꼬리가 달달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