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57
2부 99화
“그래, 그래. 은인이 맞지.”
검선은 혼자 중얼거렸다.
“흐흘. 남궁가의 은인이라.”
그리고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그것도 케일을 보지 않고 허공을 보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케일은 중원 전문가 위 상선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케일에게는 마법도, 전음도 없었다.
몰래 물어볼 방도가 없었다.
‘…모르겠다.’
케일은 그냥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은인인데 설마 죽이겠어?’
아까 검선 눈빛도 죽이려는 살벌한 눈빛은 아니었다. 묘하게 찝찝할 뿐.
그때였다.
-역시, 김 공자님께서는 큰 그림을 그리셨군요!
위 상선이 상당히 기뻐하는 전음이 들려왔다.
-저는 단순히 이해관계 상의 협력 관계가 되는 것만을 생각했는데, 은인이라, 좋은 관계지요! 남궁세가는 대대로 은인을 직계와 같이 여겼지요. 그들에게 은인으로 인정받은 만큼, 남궁가에서는 자신의 혈족 큰 어른을 대하듯 공자님을 대할 것입니다!
…응?
-그것도 검선의 은인이니, 남궁가에서 공자님은 최소 검선, 혹은 그 이상급의 은인으로 대우받으시겠지요. 이거, 아주 잘 됐습니다!
…응?
…어… 이거… 뭔가 내 생각과 다른데……?
마침 케일의 시선이 수이 칸과 마주했다.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케일은 문득 수이 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팀장은 분명 케일에게 그가 아는 중원과 이 중원은 다른 부분이 존재할 것이라고 하였다.
케일이 아는 무협 소설에서 은혜와 원한에 철저한 가문으로 유명한 곳이 사천당가였다.
주로 독과 비수에 능하다는 설정을 가진 가문인데.
오대세가에서 남궁세가, 제갈세가 등과 함께 빈번하게 등장하는 세가였다.
설마, 이 세상은 남궁세가가 사천당가 급으로, 은원에 철저한 건가?
‘나… 실수한 건가?’
케일은 갑자기 안광이 터져 나오는 검선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검선은 아까와 달리 미소를 계속 띠고 있었다.
“그래, 우리 은인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오?”
순식간에 검선은 케일을 ‘우리 은인’이라 불렀다. 이렇게 빠르게 바뀌어도 되나?
케일은 왠지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뭐라고 할지.
‘으음.’
검선은 그런 케일을 보며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
‘차분하군.’
수백 여년 동안 남궁세가에 ‘은인’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정파의 정점에 서고자 마음먹은 남궁세가인 만큼. 누군가의 은인이 되었으면 되었지, 누구를 은인으로 모실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남궁세가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되었고. 그렇기에 현 무림에서 남궁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 단연 최강의 무력을 지녔으며. 무림맹, 나아가 사파와 마교에서도 남궁세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오만했어.’
혈교가 파고들 틈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다.
‘수백 여년 동안 은인 없이 지내왔던 것을 내 대에, 내 손으로 깨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달라졌다.
‘김 공자.’
가명도 제대로 모른다.
본명은 아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자를 은인으로 맞이하는 순간, 남궁세가에 생강시와 혈교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알려져도 큰 문제 소지가 안 날 가능성이 높다.’
황족으로 추정되는 황실의 큰 어른.
거기다가 자연경에 닿았으리라 추정되는 무위.
또한, 모든 것을 지배할듯한 그 기운.
분명 이자는 혈교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이자가 남궁세가의 은인으로 있는 이상, 남궁세가에 과한 문책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상 남궁태위가 생강시라면, 남궁세가는 피해자였다.
그러나, 현실이라는 것은 그렇지 못했다.
분명 제대로 식솔 관리를 하지 않은 남궁세가를 탓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먹고 먹히는 전장이 무림이 아니었던가.
“하아.”
그때, 김 공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검선은 자세를 바로 했다. 금이 간 의자에서 끼익 소리가 났다.
‘내가 긴장을 했다고?’
그제야 그는 자신이 긴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의 판단에 따라 남궁세가의 미래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심장이 뛸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기력감.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검선의 상상을 뛰어넘는 강자였으니까.
“검선 어르신.”
케일은 복잡한 생각은 집어치우고, 간단하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검마는 포기하세요.”
“…뭐라고 했소?”
검선의 얼굴이 굳어졌다.
케일은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해주었다.
“검마를 포기하라고 했습니다.”
검선의 미간이 대번에 일그러지고, 그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곧 창천수호대가 모두 도착할 것이오! 아무리 남궁세가가 혈교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누명을 받더라도, 그렇다고 하여도 검마를 잡는 일을 포기할 수는-!”
그 순간, 검선은 하던 말을 멈췄다.
“허.”
그리고 탄식을 흘렸다.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네.’
케일은 여지껏 만난 무림인들과 다른 의미로 다루기 힘든 검선이라고 생각하며 툭 내뱉었다.
“검마가 내 친우입니다.”
“!”
검선의 눈이 커졌다.
“허.”
검선의 입에서 다시금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랬군, 그랬어!”
뭐야, 이 노인네 갑자기 왜 이래?
케일은 화를 내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감정을 표출할 줄 알았던 검선이 웃자 기분이 이상했다.
“크하하하! 그렇게 됐던 것이었어! 하하하!”
아주 호탕하게 웃는다.
케일의 표정이 점점 더 떨떠름하게 변해갔다.
검선은 점점 더 무심하게 변해가는 표정을 보며 툭 내뱉었다.
“창천수호대에서 검마와 마교가 연관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었소.”
“어르신, 그게 무슨 소립니까?”
호 장로가 놀라서 외쳤다.
“…그런 소리를 들었지. 그래서 그 증거를 잡아 온 창천수호대 조장을 데리고 급히 나 먼저 이 황산에 온 것이야.”
검선의 나직한 음성을 듣는 순간, 이 방에 있는 모든 이들은 전후 관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남궁태위가 검마와 마교가 연관되었단 말을 했소?”
“그렇네. 그리고 천검이 천마의 손에 들어갈 것이란 말도 했지.”
천마.
정사마 중 마교라는 한 축을 담당하는 무력 집단의 수좌.
마교에서 천마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그 증거로 남궁태위가 마교의 서책을 가져왔고, 그 서책에 마교의 사람으로 최정수, 검마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
허허.
검선은 웃음을 흘렸다.
“그래. 혈교가 정사마 모든 곳에 생강시를 심어두었으니, 그런 증거를 조작해서 내게 내보일 수 있었겠지.”
호 장로는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어찌하여 무림맹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검선이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우리 남궁세가의 이름이 드높아질 기회인데, 뭣 하러 무림맹에 알리지?”
“으음.”
호 장로는 침음을 삼켰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남궁세가 놈들!’
마교와 연관되어 있는 일인 줄 알았다면, 더욱더 무림맹 전체가 협력하여 상대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을!
지금 곤륜파와 마교 사이의 신경전을 알면서도, 저 혼자 공을 챙기려고 다른 오대세가도 빼고 그렇게 황산으로 내달려 왔단 말이야?
호 장로는 속에 치밀어오르는 불만을 꾹 눌러 참았다.
검선은 이어 툭 내뱉었다.
“물론 그 천검이라는 무공도 가지고 싶었고.”
그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은인의 친우라고 하니, 이는 포기하겠소.”
검선은 이것만 해도 큰 양보였다.
그를 이겨 검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최정수.
그 호적수를 포기한다는 것만 해도, 검선은 상당한 결심을 해야 했다.
“그래 준다니 고맙군요.”
케일의 평이한 음성에 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케일은 흘러가듯이 톡 말했다.
“검마를 찾는 일도 도와주십시오.”
“…뭐?”
“아, 그리고 혈교를 상대하는 일도 당분간 도와주셔야 합니다. 손이 부족해서.”
검선이 멈칫하며 케일을 쳐다봤다.
“또한 무림맹의 협조가 필요한 일이 많으니, 여기 호 장로가 계시는 구파일방의 대표는 개방이, 오대세가의 대표는 남궁세가가 맡아서 신속하게 진행해주세요.”
검선의 입이 열렸다.
하지만 그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케일이 웃으며 말했다.
“수백 여년 만에 나타난 은인인데, 그 정도는 해주겠지요?”
그리고 덧붙였다.
“또, 이 모든 일은 남궁세가에게 득입니다. 의와 협을 추구하는, 대남궁세가 아닙니까? 이럴 때 발 벗고 나서야지요.”
그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래야, 남궁세가가 혈교의 수족이었다는, 아주 끔찍한 누명이 안 생길 것 아닙니까?”
케일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 순간, 검선은 케일에게 기대어 모든 소문을 종식시키려고 했던 자신의 수작이 들켰음을 깨달았다.
“남궁세가의 큰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산 넘어 산이로구나.
검선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계산은 빨랐다.
“당연히 남궁세가는 정파의 선봉장이 되어 이번 혈교와 관련된 모든 일에 전심을 다할 것이오.”
“아주 좋습니다.”
케일은 활짝 웃었다.
“정사마 대전을 막아봅시다.”
“…혈교의 노림수가 그것이오?”
“네.”
시류가 기이하게 흘러간다는 것은 검선도 알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물자를 많이 비축해두어야겠다고 말했던 아들. 현재 남궁세가의 가주인 장남이 떠올랐다.
“어르신.”
그때, 무심한 어조가 들려왔다.
“남궁세가가 한번 정파의 영웅이 되어보아도,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제왕일 터인데?”
검선의 입꼬리가 묘한 곡선을 띠었다.
‘황실의 사람이면서, 남궁세가의 제왕 검법을 참으로 쉽게 언급하는구나.’
황실에서는 남궁세가의 검법 이름을 싫어했다. 제왕이라는 글자가 들어갔으니까.
검선은 저를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를 마주하며 답했다.
“기꺼이 은인의 장단에 맞춰드리겠소.”
듣고 있던 호 장로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남궁세가를 끌어들였다!’
권력을 두고 견제하는 형세였지만, 마교와 사파, 나아가 혈교를 상대하는 데에 남궁세가가 앞장서기로 했으니. 오대세가는 구파일방과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궁금한 것이 하나 있소.”
검선의 날카로운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그대의 정체는 무엇이오?”
그는 김 공자의 입가에 맺히는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김 공자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사자(使者).”
심부름꾼?
‘아니지.’
검선은 사자의 다른 뜻을 떠올렸다.
죽은 이의 혼을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귀신.
검선은 허한 웃음을 흘렸다.
“혼을 뺏기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군.”
그 말에 케일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검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위를 데려오지요.”
위 상선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인근에 빈 폐가를 매수해놓았습니다. 그곳에서 확인 및 정화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미 준비는 다 마쳤군.”
“그래야 얼른 움직이겠죠?”
생글생글 웃으며 케일이 건넨 말에 검선은 피식 웃었다.
“나는 김 공자를 믿기로 했으니, 부디 은인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오.”
그러고는 방 밖으로 휘적휘적 나가버렸다.
-안심할 수 없는 상대군요.
위 상선의 전음에 케일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전음을 할 수 없기에 생목으로 답했다.
“그쪽도 우리에게 방심할 수 없겠지요.”
대범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검선은 케일의 목소리를 들었다.
‘독하군.’
저 말은 분명 수하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검선을 향한 경고일 터.
‘무서운 은인이군.’
검선은 일그러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그는 지쳐버렸다.
‘…검마의 친우라더니, 검마 놈과 똑같군.’
사람 좋게 웃으면서, 사람 속 박박 긁는 꼴이 검마와 똑같았다.
‘나보다 약하니까, 봐 드리는 겁니다. 그만 덤비세요. 네?’
검마 최정수가 했던 말이 검선의 귓가에 아른아른거렸다.
‘…똑같은 것들끼리 친하다더니.’
하지만 검선은 마냥 김 공자를 욕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가 남궁세가에 기회를 준 것은 사실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남궁유학을 데리고 걸어오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궁태위.
저 아이를 살릴 방도는, 아니, 적어도 인간답게 죽을 방도를 가진 자는 김 공자뿐이었으니까.
“…….”
그는 한숨을 삼키고, 핏줄들에게로 다가갔다.
* * *
“이상하네.”
최정수는 육포를 입안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겅질겅. 나무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그는 고민에 빠졌다.
“왜 이리 잔챙이들만 보이지?”
황산의 어딘가.
여러 봉우리들 사이. 깊숙한 어딘가에 자리를 잡은 최정수는 며칠 동안 분위기가 그의 예상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뭔 일이 있나?”
검선은 당연히 황산으로 올 줄 알았다.
그리고 사파와 마교, 나아가 다른 놈들까지. 꽤 무림의 거두인 놈들이 그를 잡으러 이곳에 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약한 잔챙이들만이 보일 뿐. 제대로 된 적수는 보이지 않았다.
“하, 억수로 궁금한데.”
분명 뭔가 일어났다. 오랜만에 사투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최정수는 궁금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심심한데.”
그냥 기척만 조금 숨기면, 안 들켰다.
그래서 그런가 몸이 근질근질했다.
물론 안 싸우는 게 최고로 좋지만.
연유를 모르니, 더 근질근질했다.
“…설마?”
최정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쥐!”
그리고 쥐가 올라 저린 다리를 붙잡았다.
“쓰읍.”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댄 그는 생각했다.
‘야. 최정수, 기억해라.’
누군가의 조언을 떠올렸다.
‘네가 생각한 것과 상황이 다르지? 그러면 변수가 생긴 거야. 그러면 제일 먼저 뭘 해야겠냐?’
‘몰라?’
‘하…….’
한숨을 내쉰 그 누군가는 말했다.
‘변수를 확인해야지. 그것부터다. 알겠냐? 팀장이 물으면 좀 이렇게 대답하라고. 어?’
‘응! 그래!’
최정수의 입이 열렸다.
“…김록수.”
그의 시선이 황산 입구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변수를 확인하러 움직여야겠다.
“내가 먼저 이 산을 내려가리라곤 생각 못 했는데.”
피식 웃으며, 최정수는 쥐가 난 다리를 주물거렸다.
일단 쥐가 다 풀리면 그때 내려갈 생각이었다.
* * *
-공자님, 검선과 남궁태위가 옵니다.
위 상선의 보고에 케일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객잔이 있는 마을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폐가.
그곳에서 케일은 의자에 앉은 채 입을 열었다.
“도 대협, 부탁합니다.”
“네. 정화자시여.”
정화의 불 신관 더스트가 코를 킁킁거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