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56
2부 98화
검선은 의자에 앉자마자, 순식간에 자신을 짓누르던 강대한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뭐지?’
이 기운은 무엇일까.
단순히 무의 경지가 높다고 하여, 그 내공으로 주변의 공기를 짓누르는 것과는 달랐다.
“당신은-”
검선은 케일을 바라봤다.
왜소한 체격의 젊은 청년.
“당신은, 인간이오?”
피식. 그는 청년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바람 빠지는 웃음을 볼 수 있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인간이지요. 아니면 내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선-”
그 단어가 검선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위 상선과 호 장로의 눈빛에 이채가 일순 감돌았지만.
“아닙니다. 나는 신선이나 신, 이런 쪽 상당히 싫어합니다.”
너무나도 진심을 담아, 확고하게 대답하는 케일의 모습에 그 이채가 사그라들었다.
“그런 쪽하고는 될 수 있으면 안 엮이고 싶은 게 내 소원입니다.”
아주 떫은 감을 씹어먹은 듯한 케일의 표정은 정말 진심으로 꽉 차 있었다.
“…….”
그래서 검선은 더 묻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한 가지는 명백하다.’
그가 몸으로 깨달은 명백한 진실.
‘나는 이자를 이길 수 없다.’
내공을 쓰지 않고, 단순히 주변 공기를 변화시켜 저를 압박하는 김 공자의 힘.
‘…완숙한 현경을 넘어섰다. 자연경이란 말인가?’
살문의 문주. 그 인간이, 살마가 놀랐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연경.
그 경지는 전설 속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물론 검마 최정수가 현재 가지고 있는 무공 천검의 원주인이 자연경이라는 말이 있지만.
검선은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연경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자연에 가까워지는 경지.
그에 도달하는 것은, 속세에 살아가는 인간이 이뤄내기 힘들다고 보았으니까.
하지만 눈앞에 자연경이 아니라면 납득할 수 없는 존재의 인간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김 공자의 나이가 상당하겠군.’
젊은 청년의 모습을 했지만, 김 공자는 나이가 상당할 터.
‘황제, 아니, 태후보다 나이가 많을 것이다.’
황금 호패를 지녔으니, 황실과 어떻게든 친인척 관계이기는 할 것이고.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일 수도 있겠군.’
검선은 여러 가지 생각이 찰나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럼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황실과 자연경.
이 두 가지를 가진 김 공자의 명을 어기고, 남궁세가가 그에게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오대세가는 우리를 외면할 것이고. 무림맹은 당연히 우릴 버릴 것이다.’
무림맹.
무림의 정의를 수호한다는 거창한 명제를 내걸었지만, 결국 그곳도 이익 집단이다.
남궁세가를 지켜줄 이는 남궁가 사람뿐이다.
또한 검선은 안다.
무림에서 남궁세가가 어떤 집단으로 여겨지는지.
‘제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 망하게 생겼으니, 쌍수 들고 반기겠지.’
보나 마나 뻔했다.
“으음.”
절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가슴이 갑갑해져 왔다.
‘만약 김 공자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뜻에 따라 남궁태위가 생강시임을 확인한다면-’
그리된다면, 진실 여부를 떠나 남궁세가의 평판이 안 좋아질 것이다.
‘것보다 만약에 태위가-’
그 아이가-
‘생강시라면……?’
끔찍하다.
검선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남궁태위. 그 아이가 자라온 시간이 그려졌다.
더불어 그 아이의 부모들이 얼굴이, 자신의 동생이자 남궁태위의 조부 모습이 뒤이어 떠올랐다.
‘생강시가 아닐 확률은 낮을 것 같군.’
검선은 냉정해졌다.
‘김 공자의 태도로 보아,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말하는 것 같고.’
분노가 가라앉으니,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아니, 깜깜했다.
‘잘못하다간, 혈교와 남궁세가가 손을 잡았다는 소리가 나돌지도 모른다.’
그냥 남궁세가의 식솔이 아닌, 방계지만 직계와 가까운 혈족이.
그것도 남궁세가의 최강 집단인 창천수호대의 한 조를 맡고 있는 자가 생강시다?
그리고 이를 정파의 오선 중 하나인 검선이 몰랐다?
그걸 어느 누가 믿겠는가.
오히려 남궁이 몰래 혈교와 내통을 하며 정파를 집어삼키려고 했다는 소리가 더 믿을 만하다고 여겨질 터.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남궁세가의 탐욕을 검선도 안다.
그 스스로, 무(武)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탐욕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에게 검을 든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결국 검을 듦은 싸우는 것을 의미했다.
대개의 전장이 그러하듯, 그 안에 걸린 이득을 위해 싸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강해지는 것은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얻기 위함이라 그는 여겼다.
물론 그 안에 선(善)은 최소한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그 하나를 위해 검선은 이번에 자신이 검을 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검은 드는 마지막 이유.
그것은 지키기 위해서.
검선은 결심했다.
‘남궁을 위해 내가 검을 들어야겠구나.’
가문을 지키기 위해, 검선은 강해져 왔다.
그 강함은 단순히 무의 경지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태위야.’
만약 그 아이가 생강시가 되었다면.
‘내가 해야지.’
그 아이의 끝을 막는 것도 자신이어야 할 터.
김 공자가 그의 온몸을 옥죄게 했던 그 순간처럼. 검선은 숨이 막히는 듯했다.
나이가 들어도.
아니,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
삶이 만든, 기억들 때문이리라.
그는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남궁 식솔들의 얼굴들을 애써 묻어두며 천천히 눈을 떴다.
김 공자는 생각에 빠진 그를 기다려 주었다.
‘가만 보면, 가진 힘에 비해 사람이 참 겸손하긴 하군.’
김 공자의 실력을 느끼자, 그가 지위를 떠나 검선을 꽤나 존중해주고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매듭을 짓자.’
검선의 입이 열렸다.
“확인은 언제 할 것이오?”
케일은 그 물음에 검선이 진정했음을 깨닫고 말했다.
“이제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됐습니까?”
“그렇소.”
검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의 어깨가 전보다 훨씬 더 작아져 있었다.
“일정을 말해주시오. 태위는 내가 알아서 데려오겠소.”
하지만 그 목소리는 아직 단단했다. 그의 눈빛 역시도 분노와는 다른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만, 그 아이의 끝은 내가 낼 것이오. 그것만큼은 다른 이에게 넘길 수 없소.”
케일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검선 어르신-”
“나도 알고 있소.”
검선은 케일의 시선을 외면하며 말을 이었다.
“생강시를 상대하려면 화경 경지의 고수가 부상을 감수하고 덤벼야 한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강자들이 생강시를 상대해야 피해가 적겠지.”
“아니, 검선 어르신.”
“그리고 나는 핏줄이다 보니, 그 아이를 두고 망설이다가 결국 그 아이가 폭주해서 주변의 일반 사람들을 다치게 할까 봐 걱정일 것이고.”
“아니-”
검선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주름진 손에 그 주름이 더 깊어져 갔다.
“그러나 걱정 마시오. 내가 반드시 그대들이 만족할 만큼 깨끗이 처리할 터니. 강시들 처리법이 그러하듯.”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마음이 갑갑해져 왔다.
이러다가 어쩌면 심마. 즉 마음에 마(魔)가 끼어, 주화입마를 겪을지도 모른다.
그는 냉정함을 유지하며 강시 처리법에 대해 떠올렸다.
강시를 처리하는 가장 깔끔한 방법은 그 사지를 분리해, 더 이상 복구가 힘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생강시는 그와 비슷하게 처리해야 했다.
남궁태위는-
그 아이가 생강시라면, 그 시신조차 온전히 보전할 수 없을 터.
분리된 시신은 불로 태워 흔적도 없게 만들어 그 재는 강에 떠나보내야 했다.
그래야, 완전한 파괴였으니까.
“아예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겠소. 제대로 파괴를 하겠소.”
그 순간, 검선은 멈칫했다.
탁!
케일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는 케일의 눈동자를 보았다.
암갈색 눈동자는 짜증에 가득 차 있었다.
‘짜증?’
혹시 그의 심기를 어지럽힌 것인가?
이 황실의 큰 어른은 검선이 제 핏줄을 거두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인가?
검선의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아니, 파괴는 뭡니까?”
“…뭐?”
“후우.”
한숨을 짧게 내쉰 케일은 남의 말 들을 생각을 않는 노인네를 향해 그냥 짜증을 드러냈다.
“아니,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고 하더니, 혼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파괴는 또 무슨 소리야?
강시 파괴법을 모르는 케일로서는 검선이 하는 소리가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물론 대략 무슨 소린지는 알겠으나, 그의 입장에서는 허튼소리였다.
“아니, 그것이-”
검선이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호 장로가 검선의 곁으로 다가와 꽉 쥔 그의 손을 잡았다.
“어르신. 김 공자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분께서 길을 알려주실 겁니다.”
“그게 무슨-”
검선이 뭐라 말을 하려고 했으나, 케일은 그냥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했다.
‘최정수도 찾아야 하고, 혈교도 쳐부숴야 하는데. 이 중원 노인네들 설득하다가 시간 다 가겠네.’
이제는 설득 없이 그냥 통보다.
“남궁태위가 생강시로 확정이 나면, 정화를 할 겁니다.”
“…정화?”
“네, 네. 정화요. 아마 결과는 두 가지일 겁니다.”
검선이 굳은 것처럼, 가만히 케일만을 쳐다봤다.
케일은 그런 반응은 바로 무시했다.
대신 할 말만 했다.
현재, 신물 난로를 매개로 하여 파괴하는 불을 이용한 생강시의 정화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략적인 결과가 예상 가능했다.
“첫 번째, 정화된 시신이 된다.”
샤올렌에서 정화한 강시들처럼, 온전한 시신의 형태로 돌아간다.
“두 번째, 일반 강시가 아닌 ‘생’강시. 즉 살아 있는 강시이니 원래의 살아 있는 상태로 간다.”
죽은 상태에서 강시가 되는 것과 달리. 생강시는 살아 있는 상태에서 강시가 되는 만큼. 결과가 다를 수 있었다.
“물론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세 번째 상태일 수도 있지만. 이 두 가지 범주를 크게 넘어서지는 않을 겁니다.”
케일은 덧붙였다.
“물론,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하여도. 그 상태가 이전과 같을 것이라는 건 확답 못 하겠습니다.”
즉, 살아 있지만 혼수상태거나 혹은 신체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거기까지 말한 케일은 멈칫했다.
‘왜 이래?’
검선 노인네의 눈동자가 케일이 아닌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케일은 그 모습에 조금 찝찝했지만, 일단 말했다.
“다만 정화를 하지 못하고, 대응이 늦어 폭주해버린다면, 그게 진짜 최악일 겁니다.”
폭발해버리면, 정화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찌 되었든 폭발 전에 정화해야 한다.
케일은 넋이 나간 듯한 검선을 보며 탁자를 두드렸다.
탁. 탁.
그 순간, 케일은 검선과 눈이 마주쳤다.
‘음?’
뭔가 눈빛이 이상한데?
케일은 묘한 찜찜함을 느꼈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어르신, 뭔 말인지 알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정화를 하자. 그게 요지입니다. 알겠죠? 내 말 쉽죠?”
자, 그러니 이제 본론이다.
케일이 원하는 목적은 지금부터 할 말에 있었다.
빙빙 돌려 말할까 했지만. 더 이상 이 무림인들 앞에서 좋게 말하는 것도 귀찮고. 그냥 말하자.
“자, 검선 어르신.”
내가 생강시 찾아주고, 정화도 시켜줄 테니까.
“남궁세가가 나에게 은혜를 입는다. 그 말이에요.”
그러니, 이제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알겠지?
“그 뜻은 알겠죠?”
-인간아! 역시 인간은 이렇게 말해야 인간답다! 마음에 든다!
케일은 라온의 말을 흘려들으며 검선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 순간, 검선이 나직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그래. 나 검선이, 남궁이 은혜를 입게 되는 거군.”
케일은 원하는 대답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뒷목이 서늘해져 왔다.
‘…눈빛이 이상한데?’
검선 이 노인네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크큭.”
노인네가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남궁세가의 은인이라. 근 몇백 년 만에 은인이 생겼군.”
케일은 혼잣말을 하는 그를 보며 괜히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무협 소설 보면, 은인이 많지 않나?’
소설 보면, 은인 많던데……?
주인공은 가는 문파나 세가마다 은인이 되던데?
그리고 막 보면 손님이라고 해서, 남궁세가처럼 큰 문파에 가면 은인 격의 손님들이 머물고 그러던데?
왜 여기, 남궁세가는 은인이 몇백 년 만에 생긴 거지?
…이거 괜찮은 거 맞나?
…나 은인 해도 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