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Kim is mistakenly thought as a genius writer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 끝이자 새로운 시작 (完)
화창한 봄날이었다.
계절은 돌고 돌아 어느새 다시 봄이 찾아왔다.
영원히 작별할 것처럼 꽃도 다시 돌아와 피었고 새들도 날아와 둥지를 텄다.
“석필~”
“응, 보라야.”
“갈까?”
“그래.”
나는 보라와 함께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집을 나섰다.
오늘은 꿈에 그리던 결혼식 날이다.
***
결혼식이 열리는 시간은 이른 오후지만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청와대는 김석필과 윤보라의 결혼식으로 하루 통제가 되었고 관계자 외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혹여나 과도한 취재나 시민들의 방문으로 혼란과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내린 조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해외 토픽감 뉴스를 눈앞에 두고 기자들은 속이 타들어 갔다.
그들 앞은 떡대 좋은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막아서고 있었다.
“아니, 턱시도 입고 웨딩 드레스 입은 모습만 좀 찍읍시다.”
“안 됩니다.”
“댁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우리를 막는 거 아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사진 한 장도 못 찍어가면 된통 깨진다고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기자와 경호원들간의 신경전이 벌어지는 사이 그 광경을 보고 실실 웃으며 황반장이 여유롭게 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키야! 내 살다 살다 청와대에서 하는 결혼식을 다 와 보고. 인생 성공했다! 으하하!”
“이 인간이. 잘난 건 석필이지, 당신이 뭐 잘한 거 있다고 유난이야, 유난은.”
“여보. 세상에는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 이거야. 석필이한테 초대받았다? 그건 즉 내가 그만큼 급이 된다는 소리거든.”
“어이구,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시끄럽고 축의금이나 넣고 와.”
황반장은 괜히 촐싹대다가 아내의 등짝 스매싱을 맞은 황반장은 축의금을 내려 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축의를 전달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저, 혹시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두리번거리는 황반장 부부를 본 안내원이 신사답게 물어왔다.
“축의금은 어디에 내는 거요?”
“청첩장에 적혀있는 대로 축의금은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결혼식 비용 부담은 전액 주최 측에서 해결하십니다.”
“아니, 정말요? 그럼, 답례품도 왕창···”
찰싹!
결국 사람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황반장이었다.
***
“으이구, 한심.”
그 꼴을 보고 행여나 아는 사람으로 오해받을까 봐 백정원은 얼른 돌아선다.
“정원 씨. 먼저 와 계셨네요.”
넓은 뜰을 걷던 백정원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세련된 투피스를 입은 서지은이 서 있었다.
빛나는 미모에 늘씬한 몸매.
하객룩의 정석이라고 패션 잡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많이 기다렸어요?”
“별로 안 기다렸어요.”
서지은은 말없이 백정원의 곁에 섰다.
예전과 달리 더는 말을 더듬지 않는 그였지만 그만큼 말수도 줄었다.
결혼식이라는 들뜬 분위기 탓일까, 그와 좀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 평소라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냈다.
“나 오늘 어때요?”
완벽한 서지은의 자태를 훑어본 백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완벽해요, 지은 씨는.”
기어이 그 말을 들은 서지은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 씨.”
“왜요?”
“우리는 결혼 언제 해요?”
“결···혼이요?”
“훗. 오랜만에 말을 더듬네요.”
“아···”
백정원은 한 방 크게 먹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긁었다.
지금까지 말 안 더듬고 잘 지내왔었는데 이처럼 교통사고처럼 들어오는 고백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서지은은 참으로 기뻐 보였다.
“후후.”
“웃지 마요.”
“알았어요.”
“결혼 이야기, 농담이죠?”
“농담 아닌데요? 몸만 와요. 집이랑 혼수는 다 알아서 할 테니.”
“아···”
또 말을 더듬고 말았다.
일부러 놀리는 건가 생각해봤지만 백정원은 알고 있었다.
이제껏 서지은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을.
***
대체 청와대 결혼식 음식은 얼마나 맛있을까.
그게 궁금한 정수완은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물론 홍세은이 이 꼴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수완 씨! 절친 결혼식장에서 식은 안 보고 밥부터 먼저 먹는 사람이 어딨어요?”
“세은 씨. 진지하게 하나 물어볼게요.”
“뭐, 뭔데요···?”
전에 없이 진지한 눈빛.
결혼식장에서 할 얘기란 게 뭘까.
홍세은은 침을 꼴딱 삼켰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 알죠?”
“네에? 어휴, 정말.”
괜히 심장을 바짝 조았던 홍세은은 손해본 기둔이라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다.
그러면서도 함께 가자며 손을 잡아 이끄는 정수완을 따라 만찬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박철은 권민혁과 함께 동행 출판사 직원들을 데리고 식장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탑 티어 출판사 대표로서 유명한 곳은 안 가 본 데가 없지만 청와대에서 하는 결혼식은 생전 처음이다.
“참.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우연히 만난 한 작품과 그 작가와 맺은 인연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정말 국가대표 작가의 국가대표 결혼식이로군요.”
지난 날들을 돌이켜 보면 박철과 권민혁은 웃음만 나왔다.
문을 닫니 마니 하던 출판사가 기적같이 살아남고 또 이렇게 성장했다.
그게 단 한 작가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었다니.
“저는 사실 살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인연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믿겠지?”
“그럼요. 안 믿으면 금수만도 못한 놈이죠.”
“하하하.”
함께 웃던 두 사람은 멀리서 그들을 알아보고 다가오는 송영 작가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송영 작가님, 아니, 원장님. 신수가 훤하시군요. 학원은 잘 되십니까?”
“너무 잘 되죠. 요즘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 김석필 작가님 자택 방향으로 큰절을 올리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실제로 있을 법한 농담에 세 사람은 빵 터졌다.
석필이라는 공통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우자 꽃에 벌이 이끌리듯 누군가 다가왔다.
“안녕들 하십니까.”
소설 피아 대표 허종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박철과 권민혁의 주위로는 여러 출판업계 관계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위인들이 되셨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감개무량하군요. 혹시라도 겸손을 잃거든 꾸짖어 주십시오.”
허종표는 그렇게 말하는 박철을 보며 이 사람은 평생 추락할 일이 없겠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정용민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호택과 마주쳤다.
이호택 역시 먼저 마주친 사람이 정용민이라 조금 당황한 모양이다.
“잘 지내십니까?”
“그럼요. 석필이한테 요즘 젊어 보인다는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은근히 석필과 만난 사실을 어필하며 살짝 우월감을 느끼는 정용민이었다.
“그나저나 장관 자리를 연임하다니, 축하드립니다.”
“이거 부끄럽군요. 독재라고 욕도 먹고 있는데 말이죠.”
“그만큼 성과를 내니까 말이죠. 저희 BH E&M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안전제일 작가와 희망사항 작가로 갈려서 다투던 그들도 이제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싸우는 전우가 되었다.
“미국 코쟁이 놈들을 꺾어야죠.”
“그래야죠. 한국인의 한국적인 콘텐츠로 한국의 위상을 드높여야죠.”
“뭐, 저는 사기업 대표로서 돈을 좇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는 죽이 잘 맞는 것 같단 말이죠.”
은근히 관계를 돈독히 다지려는 정용민의 말재간에 이호택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그도 깨달았다.
안에서 박 터지게 싸워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걸.
목적이 달라도 이해관계가 어울린다면 손을 잡을 수 있다는걸.
“그래서 이번 드라마 버전 말고 영화판은 해외에 판권을 팔아볼까 하는데···”
“스읍, 그건 좀···”
역시 아직은 두 사람이 함께 갈 길이 멀지만 말이다.
***
망난이 작가 역시 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식당부터 찾았다.
그 의견에는 글머신 작가도 동의했다.
“자네들은 이제 출판사 대표씩이나 되는 인물들이 품위 없게 끼니부터 찾는가?”
한결 작가가 그들을 꾸짖자 두 사람은 마지못해 발길을 다시 돌린다.
“아재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나중에 밥 먹으려먼 줄 엄청 밀릴걸요?”
“이건 효율을 위한 분산 계획입니다.”
두 사람이 나름의 논리로 한결 작가를 설득하자 어쩔 수 없다며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불효자야, 너도 밥 먹을 거냐?”
“괜찮아요. 저는 이따가 먹을게요.”
“그러냐? 우리 먼저 간다.”
망난이 작가는 더 이상 불효자 작가에게 함부로 굴지 못했다.
지난해 열렸던 지구 최강 공모전에서 불효자 작가가 대상을 탄 이후로 그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작가가 되었으니까.
“아이구.”
“어제도 노가다 뛰셨어요? 적당히 좀 하시지.”
“그래도 어제는 몸 사리면서 했어. 자네도 언젠가 슬럼프가 올 텐데 그때가 되면 내 기분을 알게 될 거야. 글럼프에는 노가다가 특효약이거든.”
“하하. 지금은 사양할게요.”
***
차에서 먼저 내린 주명원은 서지영을 조심히 내려주었다.
“조심, 조심.”
“뭘 그렇게까지 호들갑이야?”
“당연한 거야. 우리 공주님 놀라면 어쩌려고.”
항상 칼 같고 카리스마를 지키던 주명원은 서지영의 뱃속에 있는 아기가 딸이란 걸 알자 벌써부터 딸바보가 되어버렸다.
“으휴. 진정 좀 해. 누가 보면 곧 출산 임박한 줄 알겠다.”
서지영의 꾸짖음에 머쓱해진 주명원은 민망한 듯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마침 익숙한 얼굴과 눈이 마주친다.
“선배님.”
“왔어?”
사준철이 희진이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희진이는 지난번보다 더 부푼 서지영의 배를 보고는 신기해했다.
“우와! 언니, 안 무거워요?”
“후후. 당연히 무겁지.”
“그런데도 일하시는 거예요?”
“이번 달까지만 하고 휴직할 거야.”
“지금 당장 그만두시는 게 좋지 않아요?”
“일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희진이도 그렇잖니. 갑자기 글쓰기를 그만두라고 하면 할 수 있겠어?”
“절대로 못 그만둬요! 히히.”
은근히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들이 웃는 모습을 보며 남자들의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
결혼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의 빛나는 눈동자가 축복을 보내왔다.
신랑이 입장하고 신부가 입장하고 화촉을 점화하는 모든 순서가 우아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메인 이벤트라고 생각했던 대통령의 주례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요즘 같은 세상에 주례로 서는 것도 머쓱한데 괜히 길게 끌면 욕만 먹는다며 후딱 끝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결혼식을 매듭짓는 마지막 멘트는 쿨하고 임팩트 있게 외쳤다.
“신랑 김석필 군과 신부 윤보라 양이 국민 앞에 자랑스러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 꿈 같은 봄날의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꿈을 꾸며 깨어난다.
행복한 결혼식 날, 보라의 손을 잡고 행진했던 그 순간을.
“여보~”
아침 햇살도 깨우지 못한 내 잠을, 보라의 목소리 깨운다.
그 목소리를 들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기분에 취하지만 얼른 그 얼굴을 보고 싶어 벌떡 일어나게 된다.
“잘 잤어?”
“응. 오늘은 늦잠을 잤네.”
“후후. 모처럼 일요일이잖아. 여보야도 오늘은 글을 쉬는 날이니까.”
비몽사몽 서 있는 내 뺨에 보라가 다가와 입을 맞춰주었다.
기분 좋은 꿈을 꾼 데다 세계 최고의 행운을 주입하자 기운이 끓어올랐다.
지금이라면 힘이 펄펄 나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오오!!”
그런 내 괴성을 들었는지 작업실에서 작은 요정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아빠!”
“오, 우리 아들! 표정이 딱 비행기 타고 싶은 표정인데?”
나는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고 어린 아들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섯 살 난 아들은 까르르 웃으며 하늘을 날았다.
“어우, 그러다 다쳐.”
“괜찮아, 괜찮아. 이래뵈도 나 노가다 김씨 출신이야.”
여전히 탄탄한 근육 덕분에 아들에게 비행기 티켓도 끊어줄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우리 아들, 뭐 하고 있었어?”
“아빠 컴퓨터 만지고 놀았어!”
다섯 살이 컴퓨터를 가지고 놀아?
무슨 지뢰 찾기 게임이라고 했으려나 모르겠다.
“으음, 과연 뭘 했을까?”
“헤헤. 키보드 가지고 놀았어!”
키보드를 가지고 놀았다고?
지뢰 찾기는 마우스로 하는 건데.
그렇다면 다른 게임을 했나?
“어디 볼까.”
나는 내 작업실로 가 아들이 만진 컴퓨터 화면을 확인해봤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건··· 하··· 하하···”
화면에 띄워진 건 문서창,
그리고 그 하얀 여백을 채운 건 빼곡한 문장들이었다.
아들의 유희는,
글짓기였던 것이다.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으면 마구마구 두드리고 싶어지는 거 있지?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이 막 떠오르고 동화책처럼 이야기가 만들어져!”
아들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자기가 벌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고백했다.
“아빠, 나 잘했어?”
사랑하는 우리 아들의 티 없이 맑은 눈을 바라다보며 나는 기대감에 심장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저 깨끗한 눈으로 본 세상과 저 순수한 마음으로 쓴 천재의 글은 어떤 글일까 하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제 내 시대는 막을 내려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천재가 등장할 테니 말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