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74
#2부 116화
성벽을 넘어선 무림맹은 수많은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남궁세가는 우습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황궁보다는 훨씬 작다!
하지만 라온의 말대로, 북경에 있는 황궁에 비하면 훨씬 작았다.
케일은 제갈미려와 제갈은소를 앞세운 채, 그 뒤를 느긋하게 따랐다.
‘더스트는 최한과 비크로스에게 맡겼으니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고.’
제갈은소 대신 성문을 지키던 무사 중 한 명이 안내역을 맡았다.
호 장로가 눈치 좋게 나서서 부탁한 덕이었다. 그 때문에 더스트는 더 이상 헛구역질을 안 하며 의당으로 갈 수 있었다.
또한 후기지수들과 무림맹 소속 단원 1명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호 장로만이 제갈세가 2명과 함께 맹주가 있는 곳으로 케일 일행을 데리고 향하는 중이었다.
‘이제 맹주만 만나서 협조 받아내고, 생강시만 처리하면 정파에서 할 건 끝이네.’
그다음에는 곤륜파 후기지수를 따라 마교로 가거나, 아니면 살마나 사도련의 아들을 이용해서 사파에 접근해도 좋을 터.
‘살마는 잘 오고 있겠지?’
그녀는 현재 케일 일행의 뒤를 은밀히 따라오고 있다.
이는 론이 제대로 확인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후딱 해치우고 뜨자.’
그리 생각한 케일의 걸음은 가벼웠다.
그의 입가에 미소도 한 자락 맺혔다.
하지만 이는 케일만의 생각이었다.
-호 장로님.
선두에 선 제갈미려는 호 장로에게 전음을 보냈다.
-권왕께서 황실에 있다는 걸 왜 알리지 않으셨습니까?
어조는 온화했으나, 그 안에는 질책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제갈미려는 위 상선에 대한 보고는 받았다. 하지만 권왕과 그 증손녀 목희에 대한 정보는 받지 못했다.
호 장로는 전음을 못 들은 척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호 장로님, 개방의 뜻이라고 보아도 되겠습니까?
하나, 이어진 제갈미려의 말에 호 장로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이라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것이오! 나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을 뿐이었소!
호 장로는 속이 답답했다.
-사정이 무엇입니까?
-아니, 그것은-
혈교. 이를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장로님, 방주님과 대화를 해봐야겠군요.
다시 한번 제갈미려가 건넨 협박조의 말에 호 장로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김 공자 무리에 기가 눌려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개방의 장로다.
더불어 총군사보다 무림 연배도 높았으며, 연륜을 떠나 그녀의 무시를 받을 실력도 아니었다.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냅다 전음을 날렸다.
-지금 권왕님이 여기 있는 게 중요한 문제인지 아오? 그까짓 거는 아무 일도 아니란 말이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두에 선 제갈미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제갈은소가 이를 눈치 볼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호 장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다 해버렸다.
-도대체가, 무림맹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우리 개방은 왜 들먹이오? 응?
-뭐라고요?
화를 내려던 제갈미려는 멈칫했다.
호 장로의 목소리가 점점 분노가 가라앉고 다르게 변했다.
-내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이분들을 모시고 온 줄도 모르면서! 내가, 진짜, 이 나이 먹고 눈칫밥을 먹으면서! 응? 총군사가 내 고생을 아시오? 거기다가 후기지수랑 단원은 뭐가 궁금한지 나한테 자꾸 답을 재촉하지! 내가 이 나이 먹고, 위아래에서 다 치이면서- 하, 진짜!
호 장로는 점점 울먹였다.
제갈미려의 얼굴에 난감함이 서렸다.
-…그,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당연하지! 총군사도 잠시 뒤에 다 알게 될 테니, 듣고 나면 나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오.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그때였다.
“조용히 갑시다.”
케일의 목소리가 정적을 뚫고 흘러나왔다.
순간 제갈미려가 걸음을 멈췄다.
“허억!”
그리고 호 장로가 숨을 들이마시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케일이 걸어가는 길 주위는 조용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조용히 하라고 했다면 전음을 멈추라는 뜻이었다.
놀란 것은 호 장로와 제갈미려만이 아니었다.
권왕과 목희, 위 상선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때, 제갈미려를 따라 멈춰 선 케일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각과 전각 사이에 놓인 길을 걸어가는 그의 시야에 수많은 전각들이 보였다.
“무림맹은 일이 안 바쁜가 봅니다? 대화하기 바쁜 걸 보니.”
제갈세가 2명과 호 장로가 움찔했다.
현재 주변에 무림맹 사람들이 꽤 많이 이곳을 집중하고 있었다.
총군사가 직접 마중을 나와 데리고 가는 이.
이에 대한 호기심에 내다보는 이들.
그리고 총군사의 명으로 은밀히 케일 일행을 관찰하는 자들.
그들 모두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갈미려는 김 공자에 대해 한 가지를 깨달았다.
‘심계가 깊은 자구나.’
세상에 전음을 몰래 들을 수 있는 자는 없다.
분명 김 공자는 전음 내용을 듣고 말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관찰하는 이들의 기척을 느끼고 이를 바탕으로 경고를 한 것일 터.
제갈미려는 선택해야 했다.
‘모른 척할까, 아니면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후자다.
“앞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조용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제갈은소가 살짝 손짓했다.
궁금해서 내다보던 이들은 그대로였지만, 관찰을 하려던 자들은 물러났다.
“좋습니다.”
케일은 담담하게 답했다.
“어서 가지요. 멈출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갈미려에게는 케일의 말이 이리 들렸다.
‘내가 멈출 이유를 만들지 마라.’
긴장해야겠구나.
김 공자는 만만히 볼 자가 아니다.
“공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갈미려는 담백하게 답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야말로, 겉으로도 안으로도 모두 조용한 이동이었다.
그리고 케일은.
-고맙다, 인간아!
라온의 말에 살짝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조금 전. 케일은 아무 생각 없이 맹주실을 향해 가볍게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한 가지 생각은 했다.
‘언제 도착이지?’
생각보다 맹주가 있는 곳까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사실에 조금 불만이 생기려는 찰나.
-인간아, 인간아!
라온이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여기 무림맹 조금 이상하다!
응?
-마법진은 아닌데, 어떤 진 같은 게 설치되어 있다! 황궁에서도 비슷한 걸 본 거 같은데, 여기 진은 조금 특이한 것 같다!
진?
그 순간 케일은 제갈미려의 등을 바라봤다.
제갈세가.
그곳은 다른 오대세가에 비하면 무력은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명석한 두뇌를 지녔으며, 병법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하는 곳이었다.
더불어 진법.
그들에게는 무공 외에도 진법이라는 무기가 존재했다.
-이거 왠지 마법에도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라온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 여기 마나 흐름 좀 집중해서 살펴보겠다! 공부해야 한다!
그 모습에 케일은 흡족했다.
‘어디서든 배우려는 자세는 훌륭하지.’
은근히 잘 자란 라온이었다.
경제관념도 훌륭하고, 오만하지 않았다. 이대로 잘 크면 아주 훌륭한 용이 될 터.
-인간아, 그런데 너무 시끄럽다.
응?
케일은 그 말에 의아했다.
‘조용한데? 아, 전음.’
곧바로 답이 나왔다.
저번에 라온이 한 말을 기억해두고 있는 케일이었다.
‘분명 마법이 아닌데, 여기 있는 인간들이 서로 뭔가 대화를 몰래 주고받는 거 같다! 그 공기 파동이 마나로 읽힌다!’
라온은 전음을 마나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들린다! 조금 더 연습해야 할 것 같지만, 난 집중력이 뛰어난 용이라, 이제 조금씩 들린다!’
하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라, 케일은 처음에 위 상선과 권왕의 전음을 엿들은 후로는 굳이 라온에게 전음을 읽어달라 부탁하지 않았다.
-여기 특이한 진의 마나 흐름을 구분하려면 이곳의 모든 마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 사방이 시끄럽다!
하긴 그럴 만했다.
케일은 사방에서 그들에 대해 전음이 오갈 것이라 금방 추측해냈다.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터전에 들어선 미지의 존재는 탐색하는 것이 옳았으니까.
-머리 아프다! 복잡하다!
하지만 많이 시끄러운 건 공부에 도움이 안 되고.
‘어차피 조만간 다 말할 거니까.’
케일은 입을 열었다.
조용히 가자고.
-조용해서 좋다! 이 특이한 진 금방 파헤칠 수 있을 것 같다!
케일은 흡족한 미소를 띤 채, 걸음을 옮겼다.
이를 본 호 장로와 위 상선이 침을 삼켰으나, 케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생각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해서 의아할 뿐이었다.
이는 제갈미려가 빙빙 돌아서 가던 것을 멈추고 가장 빠른 길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남은 수는 정면 돌파다.’
맹주 고세범과 함께 결판을 낼 작정을 한 제갈미려였다.
“이곳입니다.”
무림맹의 중심에 자리한 5층짜리 전각.
그 꼭대기 층은 맹주실로, 고세범이 이곳에 있다고 하였다.
케일은 그 맹주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 앞에는 호위로 보이는 무사가 두 명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앞만 바라봤다.
제갈미려 역시 닫힌 문만 바라봤다.
어떠한 제스처도 없었다. 그에 케일이 의아해하려는 찰나, 위 상선이 앞으로 나섰다.
“맹주님께 도착했다고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른 말하고 문 열어라.
그 소리였다.
제갈미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미 우리가 도착한 것을 맹주님께서는 다 아실 겁니다.”
아.
위 상선이 탄성을 흘린 순간.
끼이익-
닫힌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음.”
권왕이 짧게 침음을 흘렸다.
‘내공으로 문을 밀어내고 있다.’
무림맹주 고세범.
그는 정파의 오선 중 한 명이었다.
그를 칭하는 별호는 ‘광선’.
빛날 광(光)이었으나, 그를 아는 자들은 그를 미칠 광(狂)으로 불렀다.
끼이익—
열리는 문을 바라보는 케일에게 위 상선이 다급히 전음을 보냈다.
-맹주는 내공에 미친 자입니다.
공공층심법.
그를 맹주 자리에 앉힌 심법이자, 고절한 무공으로.
내력을 쌓는 것에 있어 경이로울 만한 비법을 지닌 무공이라 하였다.
쿠웅.
두 개의 문이 활짝 열렸다.
넓은 공간.
그 중심에 탁자에 앉아 맹주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케일은 문을 힐끗 쳐다봤다. 철로 만들어진 단단한 문이었다.
그 문을 맹주는 내공으로만 열었다.
케일은 그에 대한 황궁의 정보를 떠올렸다.
마지막 정보.
케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이 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래서 힘을 드러내며 이 문을 활짝 열었음에도.
또한 자신이 황족이라고 알고 있으면서.
‘시험하는군.’
맹주는 케일 쪽에 시선 하나 두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며 차를 마셔댔다.
그리고 맹주가 앉아있는 의자 말고 놓인 의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케일을 위한 자리이리라.
그러나 그 자리로 와서 앉으라 말하지 않았다.
“재밌네.”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맹주의 귓가에 닿았다.
하지만 그는 케일을 보지 않았다.
‘아무리 황족이라 하여도, 황제는 아니다.’
현 황제는 자신의 권력에 방해가 될 존재를 근처에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황족이어도 상당히 먼 방계일 터.
‘나는 맹주다. 끌려다녀선 안 돼.’
기선 제압이 필요했다.
더불어 남궁세가에서 은인이라고 칭하는 자를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 그릇을 알고 싶었다.
맹주는 입꼬리에 미소를 매단 채 느긋하게 찻잔을 입가로 가져왔다.
그때였다.
“손님을 이리 대하면 곤란하지.”
케일은 담담하게 말하며, 최고의 기선제압용 무기를 사용했다.
지배하는 아우라.
황제를 마주했을 때보다 더 강한 기세가 그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이게 중원에서는 최고네.’
케일은 느긋한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맹주가 하는 꼴이 조금 짜증 나서, 힘을 좀 많이 썼다.
-이 정도는 이제 쉽지!
심장의 활력, 노인네가 신나서 외치는 말을 들으며.
케일. 김 공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아우라가 공간을 잠식해갔다. 아니, 지배했다.
찻잔을 든 맹주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