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96
2부 138화
20장. 마교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어딘가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김 공자가 보여준 놀라운 힘에, 천마가 괜찮아지는 듯한 모습에 들떴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바뀌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자리했다.
“김해일. 여기는 소리가 안 퍼져나가지?”
케일은 공자라는 칭호도 집어치우고 제 가명을 부르는 천마를 띠껍게 쳐다봤다.
‘나는 지 이름 모르는데. 왜 지는 내 이름 부르고 갈수록 말이 짧아지지?’
속에 불만이 차올라서일까, 흘러나오는 대답이 참 대층이었다.
“어.”
단 한 글자였으니까.
천마는 이에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는 그저 살벌한 검붉은 기운을 피워올리며 전각 밖에 선 수뇌부들을 바라볼 뿐.
그러다 입을 열었다.
전각 밖에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말을 내뱉었다.
“김해일. 너는 은밀히 움직이길 원하는 것 같지만. 그건 불가능해졌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내 힘을 첩자들도 봤으니, 대놓고 움직이는 편이 나을 것 같군.”
예상 밖의 상황이지만, 상황이 달라졌다면 그에 따라 움직여야 할 터.
그는 제 생각을 내뱉으며 할 일을 정리 했다.
“사파 수뇌부 쪽 생강시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지만, 별수 없지. 최대한 마교의 일을 빨리 정리하고 사도련주를 만나야겠어.”
오늘의 일이 퍼져나가 사파에 있는 생강시나 혈교 첩자들이, 그리고 검은 연기를 정화하는 김 공자에 대해 혈교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없으니 신속하게 움직이는 편이 낫다.
그때, 천마가 무심히 말했다.
“아니. 사파로 퍼질 일은 없다.”
케일의 시선이 천마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교 밖으로 혈교의 이야기가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마교 안에서 숨기는 것이 불가능해졌을 뿐.”
천마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맺혀 있었다.
케일은 확신했다.
‘이놈, 엄청 화난 거 같은데?’
그러나 이어진 천마의 말에 케일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왜냐면 내가 화가 났으니까.”
본인이 화났으니, 은밀히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천마는 케일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로서는 스스로 가 하는 말에 부족함을 못 느꼈으니까.
천마.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이 이름을 등에 짊어지었을 때부터.
“내가 마교요, 마교가 나이니.”
천마를 감싼 기운이 더 강해져 갔다.
케일은 저도 모르게 지배하는 아우라를 살짝 피워올렸다.
‘아, 살 것 같네.’
소름이 돋았던 팔이 그대로 돌아왔다.
요령을 알게 된 케일은 갈수록 강해지는 천마의 섬뜩한 기운을 따라 지배하는 아우라를 조금씩 더 사용했다.
물론 천마에 비하면 아주 약한 강도였다.
그냥 소름만 안 돋을 정도의 약한 세기였다.
그는 잠자코 천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생강시는 마교에 있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그러나 첩자는 다르지.”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에서 지켜주지 못해 혈교에 의해 생강시가 되었으니 피해자이고, 비록 인지 못 하더라도 지금 마교에 해를 끼치니 가해자다. 그러나 그 속에 본인의 의지는 없으니 이를 두고 화를 낼 순 없는 법. 그러나 마교도 아닌 놈들이 마교에 숨어들어 해를 끼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
천마가 읊조렸다.
“그래,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
그는 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무심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방음은 거두지.”
김해일 공자,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을 내뱉는 그를 천마는 지그시 쳐다봤다.
그에게서 따로 긍정의 말은 없었으나, 방음을 거둔다고 했으니 천마의 뜻대로 하란 소리였다.
‘재밌구나.’
무공도 익히지 않았는데, 천마 자신의 분노가 서린 기세를, 내공을 흘려 보내며 스스로의 기세를 바로 세운다.
“뭘 봐?”
불퉁하게 묻는 얼굴에 천마는 시선을 돌렸다.
“딱히.”
짧게 답하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전각을 둘러싸던 기이한 기운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법이라고 했던가?’
방음 마법이라는 것이 거둬지는 것이리라.
천마의 시선이 전각 밖에 서 있는 마교도들에게로 향했다.
미소는 사라졌다.
여전히 조용한 분위기.
바람이 부는 소리가, 나뭇잎이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가 선명히 들릴 정도로 사람들이 입 다물고 있는 이 분위기가, 천마는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니까.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들어야 했던 밤.
다른 소교주 후보자들에게 얻어맞아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울음을 토해내는 것도 신음을 내뱉는 것도 기력을 빼앗기는 일이라 숨죽인 채 그저 웅크리고 있던 그날 밤.
바깥은 벌레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밤이었다.
유독 그렇게 적막한 밤이었다. 그래서 온몸이 아프고, 굶주렸지만 편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쥐가 천장 위를 뛰어다니기 전까지는.
지붕과 천장 사이. 그 틈에 살고 있던 쥐들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별것 아닌 소리인데, 조용한 밤이어서 그랬을까.
천마는 자신의 위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천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나에게 집은 여기뿐인데, 두두두, 쉴새 없이 놀리는 그 발걸음 소리와 쥐의 울음소리.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터전을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그래, 나는 특히 쥐새끼들을 싫어하지.”
천마는 또 한 걸음을 내디디며 말했다.
“지금 당장 마교의 모든 문을 걸어 잠가라.”
태연한 목소리였다.
흘러가는 물을 보고 감상을 말하듯이, 여상스러운 목소리.
“마교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오늘 이후로 마교 문을 넘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혈교 첩자.
그 쥐새끼들에 대해 들은 순간부터 천마는 결정을 내렸다.
“나가는 자가 나올 시, 살아있을 수 없을 것이다.”
검붉은 기운을 품은 천마의 난폭한 기운에 어느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저 모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여 답할 뿐.
“마(魔)!”
그러면서도 천마의 난폭한 기운 뒤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난폭하고 폭압적인 기운과 다르게, 서서히 숨을 막히게 하려는 듯 피어오르는 기운.
그것은 또 다른 의미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기세였다.
김 공자.
그가 천마의 뒤에 그를 지지하듯 버티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이지?’
법예각의 대표, 공 각주는 늙은 몸으로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도 그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그녀는 옆에 있던 뇌마를 살펴보려던 그때, 천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천마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을 담은 그 목소리는 모두의 귓가에 닿았다.
“혈교가 나를 병들게 했다.”
공 각주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그녀에게서도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꽈직.
지팡이를 움켜쥔 손에 핏줄이 불거졌다.
마교가 존재하는 이 땅은 사막을 옆에 낀 황폐한 곳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가장 강한 자, 천마는 마교에게 있어 땅과 다름없다.
그들이 뿌리내릴 수 있는 터전을, 혹은 그들이 가야 할 방향을 정해주는자.
그 땅을 병들게 했다?
그것은 마교를 무너뜨리겠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그 병을 여기 있는 김해일공자가 고칠 수 있지.”
공 각주는 그제야 김 공자라는 존재를 마교로 불러들인 뇌마와 천마의 진정한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마 협상? 황족과의 친분?
그래, 그딴 것은 마교의 법도가 되지 못한다.
그 순간 천마가, 하늘이 내려준 마가, 마교도들을 받치고 있는 땅이 말했다.
“기 각주, 맹 대주. 여기에 혈교의 쥐새끼들이 있구나.”
공 각주는 고개를 들었다.
천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기 각주와 맹 대주가 자리를 박찼다.
도망치려는 것이 아니다.
자결을 하려는 듯, 혹은 전서구를 보내려는 듯 각자 목숨을 내놓고 행동하는 그때.
“커헉!”
전서구를 띄우려던 맹 대주의 손이 꿰뚫렸다. 그리고 연달아 그의 단전이 꿰뚫렸다.
그 두 가지를 꿰뚫은 것은 지팡이였다.
타닥. 공 각주는 가볍게 바닥으로 내려섰다. 여전히 맹 대주를 꿰뚫은 채.
자결하지 못하게 혈도를 짚어둔 것은 덤이었다.
쿵.
옆에서 기 각주가 자결에 실패하고 제압이 된 채 정신을 잃었다. 그의 목을 쥐고 있는 것은 뇌마였다.
첩자는 들키자마자 바로 사냥을 당해, 덫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
천마는 이것이 당연하다는 듯,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툭 내뱉었다.
“호마대.”
호마(護魔)대. 마를 보호하는 대대로 천마의 직속 부대였다.
스스슷–
바람이 분다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
전각과 그 일대 주변을 빙 둘러싼 검은 복장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눈을 제외한 얼굴마저 가려, 그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보였다.
“마(魔).”
짧은 대답과 함께, 호마대는 사라졌다.
그들이 무엇을 할지는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오늘부로 마교의 모든 문이 닫힌다.
그리고 그 문을 넘어 도망치는 모든 생명체는 죽는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공 각주와 뇌마처럼 점점 더 기세를 피워올릴 뿐.
수많은 내공이 피어오르며,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속으로 침을 삼켰다.
‘미친.’
그간 마교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음을, 그는 깨달았다.
왜 정파와 사파에서 유독 마교를 외면하는 동시에 겁을 집어먹고 있는지 확연히 느껴졌다.
살벌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눈빛들이 천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천마는 그 시선을 오롯이 받으며 더 기세를 올렸다.
‘윽!’
케일은 소름이 돋으려다가 아우라를 더 사용하여 겨우 천마의 기세에 휘말리는 것을 막았다.
‘어휴.’
한숨을 삼키려는 그때.
천마는 넘실거리는 검붉은 기운을 휘감은 채 말했다.
“멸혈.”
혈교를 멸한다.
그 단어만을 내뱉었고.
쿵!
전각 앞에 자리하던 모든 이들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외쳤다.
“마(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았는지, 주변의 공기가 웅웅거리며 흔들렸다.
파드득, 주변에 숨죽이고 있던 새들이 놀랐는지 하늘로 솟구쳤다. 하지만 그 새들을 지켜보는 눈동자들이 있었다.
저 새들도 마교의 문을 넘으면 죽으리라.
케일은 그 광경을 떨떠름하게 바라봤다.
‘역시, 마교도들도 장난 아니네.’
혈교에서 잘못 건든 것 같은데?
뭔가 정파와는 다른 맹목성이 그들에게서 보였다.
그런데 땅에 저리 세게 머리 박으면 안 아플까.
괜히 케일은 제 이마가 시린 것 같아서, 손바닥으로 슬그머니 이마를 문질렀다.
‘음?’
그러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옮겼다.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법예각의 공 각주. 케일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티 나지 않게.
‘살벌한 노인네!’
단전이 파괴된 채로 기절한 맹 대주.
혈교 첩자가 사지를 덜덜 떨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있음에도 눈 하나 까딱안 하고 오히려 지팡이를 치켜든 채로 공중에 첩자를 대롱대롱 매달고 있었다.
그런 노인이 케일을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론이 생각났다.
아니, 론이 낫다. 론은 저런 적은 없다고!
‘쟨 뭐야?’
공 각주를 피해, 자신을 바라보는 또다른 이를 본 순간 케일은 기분이 상당히 찝찝해져 버렸다.
후보자 중 한 명이 침을 흘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헤헤 웃으면서.
다른 의미로 저런 웃음도 무서웠다.
원래 미친놈이 제일 무섭지 않은가.
눈이 마주치자 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다.
‘…쟤가 천마가 되면 안 되겠는데.’
케일은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 느끼며 후보자, 그녀의 시선을 외면했다.
-인간아, 우리 다과는 안 먹나? 그냥 끝난 거냐?
라온의 힘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케일은 천마에게로 다가갔다.
툭툭.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천마가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대충 이야기 끝났지?”
케일의 무심한 물음에 천마는 답했다.
“그렇긴 하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서 할 것이 아니었다.
그의 대답에 케일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술을 떼었다.
“저기 기 각주랑 맹 대주 보고 혈교 몇 호인지 물어봐.”
“뭐?”
“혈교에서 밖으로 파견 나온 애들은 호를 붙이는 것 같더라고.”
“…그 말은?”
“나한테 혈교 7호가 있거든.”
천마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생각보다 김 공자가 혈교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그대가 정말로 답이야.”
“그래, 그래. 내가 답이지.”
케일은 대충 답하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의 표정이 좀 심각해졌다. 그에 천마도 절로 굳어진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고, 케일은 주위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천마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덩달아 천마도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지며 케일의 입에 집중을 하려는 찰나.
“야.”
케일이 물었다.
“여기 다과 좀 챙겨가도 되냐? 먹고 싶어 하는 애가 있어서.”
케일은 지금도 꼴깍꼴깍 침 삼키며 입맛 다시는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그래서 전음이 안 되니까, 심각한 분위기에 대놓고 물어보기 그래서 천마에게 귓속말로 물어봤다.
“…그래. 그렇게 하도록.”
천마가 허락을 해줬다.
하지만 케일은 기분이 요상해졌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라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아싸! 신난다! 비싼 과자 다 챙겨가자!
그래, 일단 숙소에 가자.
케일은 자신이 할 일은 없겠다 싶어 대충 다과를 주섬주섬 챙기며 숙소로 돌아갔다.
물론 천마에게 변동 사항이 생기거나무언가 결정되면 바로 신속하게 전달해달라는 말을 남겨두고.
그에 천마는 말했다.
“실험을 모레 할 수 있겠나?”
정화를 하는 시간을 당기자는 말에 케일은 답했다.
“당연.”
어려울 건 없었다.
천마는 가볍게 답하고 사라지는 케일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 정순하면서도 파괴적인 기운.
이를 다루는 일은 세밀한 조절을 요할 것인데,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답한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맞을 터.
“천마시여.”
그는 다가온 뇌마에게 말했다.
“대전으로 간다.”
지금부터, 마교는 침묵을 깨고 당분간 시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케일은 이를 생각하지 않고 꽤 빠르게 숙소로 향했다.
할 일이 있었으니까.
오늘 저녁, 최한과 최정수에게 대련을 시켜볼 생각이었다.
* * *
최한과 최정수가 연무장에 서서 케일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