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120
00120 평화로운 일상 =========================================================================
신전 안으로 들어가자 나를 맞이한 사람은 저번에 비비앙과 왔을때 보았던 사용자들이 아니었다.
“축복을 다루는 사용자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사용자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사용자의 이름 그리고 방문 목적을 말씀해 주십시요.”
금빛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리한 선한 인상의 소유자인 신관이 점잖게 고개를 숙인다. 눈 앞의 남성은 사용자가 아닌, 거주민 이었다. 어차피 계약서를 이용하러 온게 아니라 탐험 보고를 하러 왔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보고는 거주민들을 거치는게 더 나을수도 있었다.
사용자와 거주민은 일반적으로 귀족과 평민의 관계를 지닌다. 그러나 홀 플레인의 설정을 거주민들 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렇게 로 선택된 거주민들의 숫자가 많은건 아니다. 그중 신전에 있는 거주민들은 사용자들과 거의 동등한 입장이라고 봐도 무방 했다. 그렇기에 나 또한 정중한 목소리로 화답 했다.
“이름은 김수현. 0년차 사용자 입니다. 방문 목적은 탐험 보고 입니다.”
“오. 사용자 김수현 이시군요. 일단 들어 오시지요.”
탐험의 보고 절차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간단하다. 보고하는 사용자는 본인이 탐험한 내용을 간추려 문서에 기록하고 제출하면 된다. 그러면 신전에서 일하는 거주민들이 제출한 기록서를 먼저 읽고 부족하다 싶은 부분들을 질문한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제출한 내용들을 토대로, 어디까지나 필요한 경우 조사단을 꾸리기도 한다. 대체로 조사단을 결성 하는 경우는 도시를 위협할 수 있는 일들일 경우, 사용자의 탐험이 실적으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경우 였다.
나는 눈 앞의 선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성에게 그동안 짬짬이 기록한 서류들을 건네 주었다. 공손한 손짓으로 서류를 받은 그는 이윽고 진중한 얼굴로 기록을 읽기 시작 했다.
“흠.”
한동안 기록을 읽던 도중 거주민의 신음성이 들렸다. 시선을 돌리니 마침 그의 눈매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마 클랜 창설을 맡은 고압적인 거주민 놈들이라면 당장에 기록서를 던지고 소리부터 질렀을텐데 확실히 신전에 있는 거주민들은 침착한 면이 있었다.
그는 애매하다는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보고서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더 질문할 부분들은 없어요. 0년차 사용자 치고는 대단하지만…믿을 수 없군요.”
이윽고 모든 기록을 읽은듯 거주민은 조심스럽게 종이를 내려 놓았다. 그의 얼굴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라면 당연히 조사단을 만들어 진상 파악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다. 당장 도시의 대표 클랜이 자리를 비울 정도인데 그렇다고 아무 보호도 없이 거주민 들로만 도시 밖으로 나가는건 요원한 일 이었다.
“혹시 신전에서 조사단을 모은다면 해당 장소들로 우리들을 안내하실 수 있으신지요.”
“힘듭니다. 정비 기간동안 처리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비가 끝난 후 바로 다시 탐험에 나갈 예정이구요.”
내 단호한 거절에 그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다시 그 장소로 조사단을 안내할 의무는 없었다.
“그러면 혹시 증거들을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오해는 하지 말아 주십시요. 너무 엄청난 기록들이고 현재 신전의 상황이 그렇게 좋은편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다만 이 기록들이 사실이라면 필시 확인할 문제들 입니다. 그렇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조사단을 꾸리려면 우리들을 움직일만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어려울건 없습니다. 어떤 증거를 원하시나요.”
거주민의 요청에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를 보여주는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그들의 사정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증거를 꺼낼지 묻자, 다시 기록서를 잠깐 살핀 거주민은 두개의 증거를 요구 했다.
“칠흑의 숲 안에 있는 던전에서 얻은 거미의 영단과 상급 마족 벨페고르의 심장 입니다.”
나는 곧바로 품에서 한손에 잡히는 구슬을 하나씩 꺼내었다. 탁한 마기가 흘러 넘치는 동그란 구슬 하나와 기이한 마력을 띠는 검푸른빛 구슬 하나. 그 물품들을 확인한 거주민은 곧바로 눈이 휘둥그래 변하고 말았다.
잠시 동안 꼼꼼히 그것들을 관찰하던 그는 전보다 훨씬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윽고 내 얼굴과 기록서 그리고 물품을 번갈아 보더니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외람 되지만 그분들이 주신 권능을 사용해 사실 여부를 확인한 결과, 두 물품이 기록서에 적힌것과 일치한다는 판정이 났습니다. 이 모든 기록들이 인정되면 어마어마한 실적 증명이 되겠지만…아무래도 지금은 조사단을 꾸리기 힘든 상황 입니다.”
“음. 2주 안에는 불가능 한가요? 방금전은 무리를 하신다고….”
내 말에 그는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2주는 절대로 무리 입니다. 아니. 사실대로 말씀 드리면 조사단 결성 조차 불투명한 상태 입니다. 현재 뮬의 상태로는 힘들고 그러면 인근 도시나 바바라에 요청을 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지금 상황이 이런지라….”
거주민은 말 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런일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고 왔는지라 당황스러운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쉬운건 어쩔 수 없었다. 클랜을 창설하는것도 하고 싶다고 바로 되는게 아니다. 이 기록들이 증명이 되야 클랜을 창설할 때 실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데, 지금 증명을 받지 못하면 결국 그만큼 시간이 더 지체 된다는 소리 였다.
내 표정이 딱딱히 굳자 거주민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죄를 구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사정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지금 여지껏 일반 탐험 보고는 거의 받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커다란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그것도 둘이나 들어온 터라 시간은 배로 걸릴 겁니다. 더구나 고대 연금술사의 던전은 완전한 클리어를 하지 않은 만큼 저희들로만 나가는건 너무나 위험 합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일단은 할 수 있는만큼 하기로 했다. 안된다는 일을 억지로 시킬수도 없는 노릇 이었다. 무리를 한다고 해서 조금 기대 했는데, 무리를 하는게 다른 도시로의 지원 요청이라니. 나는 입맛을 다시고는 그의 말에 대답 했다.
“휴…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대신 최대한 빠른 조사를 해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대로 상황이 풀리는 순간 이 두 던전의 조사를 최우선으로 삼겠습니다. 아, 그리고….”
“거짓말은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정도 규모의 기록서를 거짓으로 꾸몄다가는 어떤 페널티를 받을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자, 잠시만요.”
더는 시간 낭비하기 싫어 그대로 몸을 일으키자 거주민은 다급한 음성으로 나를 붙잡았다. 나는 왜 잡느냐는 의도를 담아 그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물론 그런 조항이 있기도 하고 조사도 확실히 할 생각 입니다. 그러나 이미 증거를 보여주신 만큼 사용자를 신뢰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아 네. 그러면 왜….”
“원래 오늘 점심즈음 찾아뵐 생각 이었습니다만, 마침 좋은 때 방문해 주셨습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축복을 도우는 분께서 신탁을 주셨습니다. 한번 소환의 방으로 들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였다. 세라프가 나를 불렀다는 말에 고개를 한번 주억인 후 테이블 위에 놓인 물품들을 챙겨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훌륭한 선택 입니다. 곧바로 소환의 방으로 갈 수 있는 포탈로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주민은 말을 마친 후 나를 따라 일어나 기록서를 소중히 품에 넣었다. 이윽고 신전의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뒤를 따르며 나는 한명의 천사를 생각 했다.
오랜만에 보는 세라프였지만, 설레이거나 반가운 마음은 없었다.
*
나는 통과 의례를 통과한 후, 홀 플레인으로 입장할 때 사용 했던 포탈로 몸을 들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푸른 바다빛이 눈 앞에 일렁이는게 보였다. 어떤 무형의 기운이 내 몸을 잡아 이끌고, 그대로 포탈을 뚫고 나오자 익숙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내 모든것이 시작된 소환(召喚)의 방. 이곳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앞으로 시선을 돌리자 낯설지 않은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는 투명한 날개를 살랑이는 아름다운 천사 한명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과 달빛을 내뿜는 머리카락. 아름다운 녹수정빛 눈동자를 가진 천사는 바로 세라프 였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나마 괜찮았던 기분이 땅 끝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천사들을 싫어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들은, 좋아할 수 없는 존재들 이었다.
세라프는 내가 입장한걸 확인 하고는 예의 고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용자 김수현. 오랜만 입니다. 그동안….”
“할 말.”
나는 그녀의 안부 인사를 차가운 목소리로 단칼에 끊어 버렸다. 애초에 천사를 싫어하는것도 있지만, 1회차의 세라프와 지금의 세라프를 동일하게 여길 수 없었다.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그녀는 매몰찬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그래도 끝끝내 말을 이었다. 그런것도 마음에 안들어 나는 한층 더 세라프를 쏘아 붙였다.
“알 거 없고. 그리고 어차피 자세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고 있잖아.”
“사용자 김수현.”
“나 좀 바쁘거든. 할 말만 빨리 하고 보내줬으면 좋겠다.”
“…….”
세라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듯 아무런 말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 조용하다. 지금도 언제나처럼 고고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는 그녀가 내심 당황 했다는걸 느낄 수 있었다.
“없어?”
“…….”
세라프는 여전히 묵묵부답. 확실히 나와 10년간 함께한 세라프와 지금의 세라프는 다르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지금 이 장소에 계속 있다가는 약간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내 성격이 또 이상하게 변할것…아니, 원래대로 되돌아 갈것 같았다.
“할 말 없으면 이만 가겠어. 그리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시간 낭비는 하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사용자 김수현….”
등 뒤로 세라프가 무어라 말을 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의도적으로 무시해 버렸다. 그때, 뭔가 번쩍이는 빛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아랑곳 않고 포탈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나는 뒤에서 구현 되는 거대한 마나의 이동을 포착할 수 있었다.
츠츳! 츠츠츳!
빛이 연발적으로 터진다. 동시에 마나의 이동은 내가 있는 소환의 방 안을 뒤덮으려 하고 있었다. 이정도의 기운이 움직이는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급히 몸을 돌려 세라프를 돌아보자 그녀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 그만 두세요!”
방금 세라프가 지른 고함은 나한테 한 말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깜짝 놀란건, 그녀가 뒷말을 가 아닌 자로 끝냈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요자를 쓰지 않는 세라프인 만큼 이례적인 일 이었다.
펑!
세라프가 손을 한번 휘젓자 허공에 생기던 빛무리가 크게 비틀리고, 이내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으로 눈을 돌리니 막 모이던 마나들이 흩어지고 있었다. 세라프는 빠르고 침착한 손길로 방 이곳저곳에 생기는 빛무리를 하나씩 처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누구와 대화를 하는듯 끈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신은 상관할 수 없습니다…!”
또한 평소처럼 천사들만의 대화 라인을 통하는게 아니라는 점도 상당히 신선 했다. 아무래도 무언가 내부 다툼이 있는게 분명 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있는 소환의 방에는 연신 하얀 빛이 번쩍이고, 손이 허공을 가르고, 빛이 터지는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츠츳! 츠츠츳!
“산달폰. 다시 한번 경고 합니다. 당신은 이곳으로의 소환을 불허 합니다. 이 소환의 방은 저와 사용자 김수현만의 공간. 외부인의 강제적인 침입은 허락지 않습니다.”
츠츳…츠츠츳….
“저아말로 마지막 경고 입니다. 사용자 김수현의 담당 천사는 바로 저 세라프 입니다. 사용자를 교환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츠츳….
그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소환의 방을 가득 메웠던 빛들이 완전히 사라지는걸 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목소리를 내던 세라프도 다시 입만 오물거리며 대화를 이었고, 화났던 표정도 처음처럼 고요하게 가라 앉기 시작 했다.
나는 간만에 좋은 구경 했다 싶어 품 안에서 연초를 한대 꺼냈다. 이윽고 연초를 입에 물고, 한대를 거의 다 피울 시점이 되자 세라프도 문제를 어느정도 마무리 지은것 같았다. 지금 상황은 나로 인해 일어난듯 보이니, 그대로 가기에는 뭐한감이 있었다.
이윽고 세라프는 고개를 돌렸고, 아직 남아 있는 나를 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안도하는 세라프를 보며 물끄럼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 했다.
“사용자 김수현.”
“왜.”
여전히 날이 서 있는 내 목소리에 세라프는 잠시 나와 시선을 교환 하고는, 달래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로유진 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세라프네요. 그러나 시작부터 삐걱삐걱.
그럼 저는 오늘은 이만 물러 나겠습니다. 다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리리플 』
1. 파카사리 : 1등 축하 드립니다. 🙂 거의 냠을 자주 하시는. ㅋㅋ
2. 세류화 : 음. 그러지 말아주세요. 무서워요. ㅜ.ㅠ
3. 율라우 : 율라우 님도 무서워요. ㅜ.ㅠ
4. 虛虛空空無不在無不容 : 오타 수정 완료 했습니다. 감사 합니다.
5. rhkdel2 : 암 쏘 쏘리! 비비앙이 너무 귀여워서…. ㅋㅋ
6. MT곰 : 그렇군요! 학교 생활 항상 건강히 하시구, 행복하세요. 가끔 코멘트도 남겨 주시면 기쁠거에요~. 🙂
7. 쿤라이 : 예. 홀 플레인 + 거주민의 아기는 사용자가 될 이 있습니다. 홀 플레인 + 홀 플레인은 100% 사용자 입니다. 🙂
8. 간지남이돌아왔다 : 오. 그런 스토리도 가능은 하겠네요. 하하하.
9. GradeRown : 소원은…만능이 아닙니다. 차차 진행 되면서 알게 되시겠지만, 초반 살짝 드러난 소원의 설정을 보시면 정말…헙.(스포 주의!)
10. ★꼬마돼지★ : 쿠폰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알찬 내용으로 보답 하도록 하겠습니다. (__)
여러분의 추천과 코멘트는 연참의 원동력이 됩니다.(이건 진리입니다.)
코멘트는 항상 전부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리리플에 없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정 궁금하신 부분은 쪽지로 주시면 답변 드릴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글은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작, 추천, 코멘트, 비평, 질문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