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669
00668 2. 지옥 왕. =========================================================================
그 순간이었다.
“…이제 정신을 차렸느냐?”
아까와는 다른, 자조 어린 음성이 귓가로 흘러들었다. 애써 시선을 들자 어딘가 힘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지옥 대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온몸에 흐르던 나른함과 몽롱함이 흩어지고 긴장감과 당혹감이 대신해서 채워진다. 그리고 비로소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흡사 강아지와 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지옥 대공의 모습은 보는 내가 무안해질 정도였다.
누군가가 세게 잡고 흔들었는지 아름다운 용암 빛 머리카락은 봉두난발로 흐트러졌다. 낯을 비롯한 몸 곳곳에 남은 타격(打擊)의 흔적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능히 짐작을 가능케 했다.
그뿐일까. 터질 듯이 새빨갛게 변한 엉덩이나 항문에 틀어박힌 칼자루는….
‘내가 그랬구나.’
꿈이 아니었다. 아니, 리리스까지는 정말 꿈이었는지 몰라도 지옥 대공부터는 꿈이 아니었다. 어떠한 이유인지는 몰라도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 있었다.
“잠꼬대가 조금 심하더구나.”
내 심정을 알았는지 지옥 대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러나 무언가 억지로 참는 듯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억양으로 보면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았으나, 그래도 나는 참담한 기분을 금치 못했다.
지옥 대공은 여전히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고 싶어 입을 열었으나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쉰 소리만 흘러나올 뿐. 결국 나는 조심스레 칼날을 쥔 후 천천히 뽑아냈다. 빅토리아의 영광이 물에 젖은 소음을 발하며 빠져 나온다.
“…흑.”
갑자기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돌연 파르르 경련한 지옥 대공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렀다. 그러니까 지옥 대공이 울고 있다.
문득 뺨을 타고 떨어지는 한 방울 눈물이 너무나 서럽게 느껴졌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고 말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설마 지옥 대공이 저런 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괜찮으니 계속 하거라. 이왕이면 속히 끝내주었으면 좋겠구나.”
지옥 대공은 곧 울음을 삼키고는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은 모양. 그러나 가볍게 떨리는 아담한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까 성관계를 거부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나를 사내로 보지 않고 목적이나 도구로 보는, 그냥 후딱 해치우고 끝내자는 태도에 화가 났기 때문이다.
허나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또한 지옥 대공을 여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 결국에는 나도 똑같은 입장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돌연 입안으로 들어오는 미미한 바람을 느꼈다. 완전히 얼이 빠져 나도 모르는 사이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나는 입을 닫고 침을 삼켰다. 지옥 대공은 계속 하라는 듯 여전히 강아지 자세를 하고 있었으나 여전히 혼란이 가시질 않는다. 나는 여기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결국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문득 아까 지옥 대공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자신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그러자 아까 지옥 대공이 흘린 눈물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수천 년 동안 바라왔던 목표가 이루어지기 직전에서 지옥 대공도 분명 모종의 기대는 했을 것이다. 특히나 첫 경험이라는 점에서 그 기대는 더욱 증폭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고.
그런데 내가 그 첫 경험을 망칠뻔했다. 아니. 망쳤다. 지금 벌어진 상황은 이미 지옥 대공의 기대를 산산이 조각 냈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지만, 깨진 조각은 붙일 수 있다.
주변은 아까부터 조용했으나 공기는 묘하게 뜨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후끈하면서도 뜨끈뜨끈한 열풍이 나와 지옥 대공을 감싸고 있었다. 흡사 지금 이 자리에서 탄생될 새 생명을 기대라도 하듯이.
“그대여…. 제발…!”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게 수치스러운지 지옥 대공이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목소리는 아직도 살짝 젖어 있었다. 나는 숨이 가쁜걸 느끼고는 차분하게 고르며 가슴을 추슬렀다.
“저기.”
결국 그 기류에 이끌려 나는 멍하니 입을 열었다.
“그럼 계속 할게.”
지옥 대공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고개를 한 번 끄덕였을 뿐. 나는 여전히 같은 자세를 하고 있는 지옥 대공을 응시하다가 빨갛게 물든 엉덩이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
그러자 깜짝 놀랐는지 엉덩이가 움찔 움츠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엉덩이를 때리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생각으로 느릿하게 부드러이 어루만졌다.
잠시 후.
나는 양손으로 골반을 잡아 억지로 강아지 자세를 흩트렸다. 그렇게 지옥 대공의 몸이 빙글 돌아 나를 마주하고, 뜻 모를 묘한 감정이 깃들어 있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정신을 잃은 사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최소한,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지옥 대공의 첫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정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면 행동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 생각뿐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뺨에 자국 진 눈물을 닦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면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그러자 불안하게 흔들리던 한 쌍의 눈동자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반대로 이번에는 내 시야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드러난 지옥 대공의 몸매는 진정 완벽하다고, 아니 완벽이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엄청났다. 아까 생각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탐스럽다 생각될 정도의 아름다운 선을 그리는 쇄골과, 커다란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먹음직스러운 흰 젖무덤. 그리고 언덕 중앙에 도도록이 솟은 연한 붉은색의 젖꼭지….
그 아래로 잘록한 선을 그리는 아랫배와 군살을 찾아볼 수 없는 허리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그뿐일까. 감히 손을 대는 게 죄악이라 여겨질 정도의 미끈한 허벅지와, 가랑이 사이로 도톰하게 오른 살에 찰싹 붙은 붉은 솜털은 그야말로 고혹적이기 이를 데 없는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침이 넘어간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젖가슴으로 돌진해 얼굴을 비비고 싶었다. 그 따뜻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간신히 참았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지금부터는 나는 최대한 내가 아닌 지옥 대공을 생각하며 행동해야 한다.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지옥 대공은 눈만 깜빡깜빡 움직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미미하게 웃어준 후, 살짝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머리를 이동했다. 이어서 양손으로 허벅지를 부여잡고 좌우로 천천히 벌렸다.
“그, 그대?”
깜짝 놀란 음성이 들렸으나 두 허벅지는 무기력하게 양 방향으로 벌어지고 말았다. 이내 활짝 개방된 가랑이 사이로 붉은빛 솜털을 따라 깊숙하면서도 반듯하게 그어진 계곡선이 보였다. 그 어느 곳보다 열화와 같은 열기가 느껴지는 그곳은, 허벅지를 벌렸음에도 발그스름한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나는 허벅지에서 손을 떼고 외음부 주변으로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어진 살 틈을 최대한 조심스레 좌우로 벌렸다. 수줍게 닫힌 계곡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걸까.
“자, 잠깐! 지금 무얼 하려는…?”
지옥 대공이 이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비틀었다. 그러나 이미 반 이상 열린 꽃봉오리는 흠뻑 젖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흡사 화려한 장미꽃이 활짝 피듯이 소중한 곳이 적나라하게 내부를 드러내면서, 깊은 구멍에서 지금껏 품고 있던 뜨거운 공기를 왈칵 토해냈다. 콧속을 가득 채우는 향기로운 살 내음에 취하며 나는 시선을 집중했다.
한껏 입을 벌린 동굴에는 날개를 연상케 하는 한 쌍의 주홍빛 꽃잎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더욱 안쪽에는 차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숙한 구멍이 나 있었는데, 가지런히 주름진 붉은 속살들이 연속돼 동굴처럼 뚫려 있는 곳이었다.
“아….”
이내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속살이 선명한 붉은빛을 발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어느덧 고른 숨도 상당히 거칠어진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이곳을 내 것으로 점령하고 싶다는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들었으나 겨우겨우 참을 수 있었다.
이제는 침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진정되지 않을 만큼 목이 바짝바짝 타올랐으나, 나는 억지로 참으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입을 맞추는 기분으로 벌어진 꽃잎을 살그머니 머금었다.
“그, 그곳은…!”
당황하는 음성이 연신 귓가를 때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입을 맞췄을 때부터 입가는 뜨거워지고 있어, 나는 망설임 없이 부드러이 흡입하듯이 빨아들였다. 그러자 후끈한 공기가 밀려들어옴과 동시에 묘한 맛을 내는 액체가 섞여 들어와, 나는 구멍을 더욱 크게 벌리며 혀를 비죽 밀어 넣었다.
다음 순간.
“그, 그대는…! 어이하여 이 몸을 자꾸만 부끄럽게…. 흥아?”
혀가 내부를 파고든 순간, 지금껏 얌전히 있던 둔부가 펄떡 경련했다. 이어서 나를 밀어내려는 듯, 내 머리를 짓누르는 지옥 대공의 두 손이 느껴졌으나 어디까지나 겉 행동에 불과했다. 아마 정말로 밀어내려고 했으면 진작에 밀어냈을 것이다. 이렇게 힘이 빠진 행동을 보인다는 건 지옥 대공도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 생각에 힘을 얻을 수 있어 나는 한층 현란하게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음부에 맞춘 입으로는 계속해서 쭉쭉 빨아들이고, 혀는 속살을 하나도 빠짐없이 핥는다.
“이, 이 못된…!”
지옥 대공의 음성이 들려올 때마다 나는 혀의 움직임에 변화를 주었다. 둥글게 말아 올려 음핵이 있는 곳을 건드리다가, 최대한 쭉 빼서 있는 대로 동굴 쪽으로 찔러 넣기도 했다. 그리고 혀끝으로 느껴지는 미끈미끈한 주름들을 세심하게 핥으며, 흘러나오는 뜨거운 액체를 들이켰다.
사실 액체라고 해봤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無味)한 맛이나, 이상하게 들이마실 때마다 목의 갈증이 더욱 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윽…! 흑…!”
어느덧 나를 매도하는 지옥 대공의 음성을 뚝 끊긴 상태였다. 그 대신 야릇한 비음을 중간중간 흘려냈는데, 국부에서 느껴지는 감각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느덧 허벅지 부근은 투명한 액으로 흥건해져 있었다. 시작부터 흡입을 멈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 주름에 고이는 액체가 더욱 압도적으로 생성돼 홍수처럼 흘러 넘친다.
‘생각보다 많이 민감하네…. 아무튼 이 정도면 아픔이 덜 하겠지.’
그렇게 이쯤이면 윤활유로는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혀를 뺐을 무렵, 돌연 조금 전부터 인중에 부드러이 비벼지는 작달막한 융기의 감촉이 느껴졌다.
살며시 낯을 떼자 눈앞으로 작고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보였다. 상부 쪽 깊숙이 갈라진 살 틈을 뚫고 꼿꼿이 머리를 내민 그것은, 매우 자그마하면서도 어여쁜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부르르, 물기 젖은 채 애처롭게도 홀로 떨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돌연 나도 모르게 입을 오므리듯이 모으고 말았다.
“이, 이제 끝났느냐?”
지옥 대공은 간신히 참아냈는지 숨을 헐떡헐떡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다는 대답 대신, 처음 그랬던 것처럼 경련하는 음핵에 오므린 입을 맞추듯이 넣었다. 이어서 입안으로 들어온 공알의 존재를 느낀 찰나.
“아, 아…?”
나는 지옥 대공이 무어라 말하기도 전, 기습적으로 “쪽!” 소리가 나도록 있는 힘껏 빨아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흐아아앙!”
아까와 같은 미미한 신음이 아닌 처음으로 제대로 된 교성이 터졌다. 흡사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크게 펄떡거린 지옥 대공이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듯이 몸부림쳤다. 이내 푸들푸들 떠는 허벅지가 좌우서 얼굴을 깊숙이 조여오는 동시에, 한껏 수축한 동굴에서 뜨거운 물을 흠씬 토해내었다.
============================ 작품 후기 ============================
出師表
메모라이즈 글쟁이 로유진은 아뢰옵니다.
로유진은 시즌 4로 들어가기도 전에 잦은 휴재를 일삼고, 지금 외전을 연재하는데도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다 현(現) 몸의 상태는 오랜 연재로 피폐해져 있으니, 이는 실로 소설이 흥하느냐, 망하느냐가 걸린 위급한 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되 독자를 곁에서 모시는 글쟁이가 악착같이 일일 연재를 잇고, 추석 조카들의 습격에도 스스로의 몸을 잊고 글을 적음은, 글쟁이가 독자의 남다른 사랑을 그리워하여 이를 보답하려 함인 줄 압니다. 글쟁이는 마땅히 독자의 읽으심을 두루 생각해, 저에게 주신 사랑으로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하며, 뜻있는 독자들의 만족과 즐거움을 더욱 넓히고 키우려 노력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독자께서는 저에게 일일 연재를 이어가는 일을 맡겨 주시옵소서. 그리고 신이 만약 제대로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그 죄를 다스리시고 선호작의 목록에서 삭제하옵소서. 만일 독자의 기대에 부응할 연재가 없다면 코멘트로 저를 꾸짖어 그 게으름을 밝히옵소서.
독자 또한 어여쁜 코멘트로 자주 의논하시어 스스로 그 길로 드시기를 꾀하소서. 욕설과 비꼼은 지양하시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옛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겨 좇으시옵소서.
이 불민한 글쟁이는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늦은 저녁으로 삼각 김밥을 먹고 힘을 내려니와, 편의점으로 떠남에 즈음하여 후기를 올리려 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