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ZE RAW novel - Chapter 903
00902 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Three. =========================================================================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르던 엘도라는 의외로 곧장 몸을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한 눈이 잔뜩 찡그려져 있는 게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래, 놀랐겠지.
제 3의 눈으로 확인하기는 했으나 처음 격돌했을 때 정확히 체감했다. 가속이 붙었음을 고려하더라도 근력은 나보다 엘도라가 근소한 우위에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이용해 일 회차 때 애용했던 이화접목(移花接木)을 사용했고, 엘도라는 결과적으로 내가 가한 충격은 물론, 자신이 가했던 충격까지 더해 받았을 터.
전부가 아닌 일부를 되돌린 것에 불과하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저렇게 튕겨 나가지 않았는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는지, 아까까지만 해도 폭풍 같은 질주로 전장을 가로지르더니 이제는 기세가 가라앉았다. 여전히 전신으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으나 두 눈은 나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다.
아쉽네. 격분해 이성을 잃었으면 한결 상대하기 쉬웠을 텐데.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줘야 상대하는 맛도 있겠지.
그럼 슬슬 그 대단한 오딘 로드의 실력을 제대로 구경해볼까?
공교롭게도 엘도라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발을 세게 굴렀다. 땅이 푹 파이는 것과 함께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그리고 사뿐 뛰더니, 빠르게 풋워크(FootWork)를 밟으며 지그재그로 거리를 좁혀온다.
흠. 방향을 흔들어 충격을 분산할 셈인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가볍게 발을 놀리며 똑같이 갈지자(之)형을 밟아 다가갔다. 그리고 서로 사선으로 근접한 순간, 힘차게 오른발을 내디디는 동시에 무검을 비스듬히 세워 찌르는 것으로 선공을 가했다.
엘도라는 예상했다는 듯 허리를 뒤로 젖혀 피했지만, 내 검은 하나가 아니거든. 마침 앞을 돌아가던 빅토리아의 영광은 상대의 젖혀진 머리를 향해 그어내리 듯이 날아갔고, 기함한 엘도라가 황급히 칼을 올려 쳐낸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빅토리아의 영광은 궤도를 이탈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공격이었는지 엘도라의 몸이 중심을 잃고 흔들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땅을 박차 올라, 왼쪽 발을 디디는 엘도라의 어깨로 있는 힘껏 무검을 내리찍었다.
카앙!
“으윽!”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엘도라는 신음을 뱉으며 또 한 번 뒤로 쓰러지듯이 밀려났다. 무게까지 실은 도약 공격이었으나, 엑스칼리버가 워낙 검신이 넓어 방어에 성공했다. 그대로 뛰듯이 물러난 엘도라는 한층 긴장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살짝 앞으로 나가자, 검을 힘주어 바로 잡으며 어깨를 끌어올린다. 일 차로 간단한 탐색전을 한 결과, 우선 기선 제압에는 성공한 것 같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하다. 검이 보이지 않으니 함부로 거리 재는 것도 힘들고, 아까 충격이 되돌아왔던 현상도 염두에 두고 있을 터. 물론 상대가 복잡한 건 내 알 바가 아니라, 곧바로 나는 듯 돌진해 정면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깡!
칼끝이 닿기 직전, 갑자기 팔이 불가항력으로 아래 방향으로 곤두박질쳤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엘도라가 순간 엑스칼리버를 내리쳐 내 검을 땅으로 처박은 것이다. 이어서 칼을 기울여 양팔을 크게 돌리는 게 아마 무검을 그대로 날려보내려는 듯싶지만, 이기어검술을 사용해 검 세 자루를 날리니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워낙 신속히 물러난 탓에 빅토리아의 영광과 칼리고 아브락사스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카운터로 들어간 일월신검까지는 어쩔 수 없었는지 이를 악물며 왼쪽으로 상체를 꼬더니,
“이이이익!”
돌연 반대로 몸을 전환하며 횡으로 크게 베어와, 이번에는 내가 옆구리를 굽혔다.
후웅!
아예 허리를 양분할 생각이었는지 가슴께로 칼날 같은 예리한 기운이 스쳤다. 지나치기를 기다렸다가, 일순 허리를 튕긴 반탄력으로 검을 감듯이 내리찍었으나,
꾸웅!
엘도라가 재빠르게 다리를 드는 바람에 애꿎은 땅만 치고 말았다.
그때였다.
“……!”
대지가 들썩거리는 가운데, 느닷없이 서늘한 풍성(風聲)이 들리며 쇄골이 아릿해진다. 시선을 돌릴 새도 없이, 어깨를 뒤로 비트는 동시에 무검을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때는 엘도라가 이미 충분한 거리를 확보한 상태라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고, 반대로 엑스칼리버는 내 어깨에 확실하게 닿아 지나갔다.
이윽고 암암리에 날린 검들까지 능숙하게 피해낸 엘도라는, 양손으로 거둔 칼을 바로 어깨까지 끌어올려 나를 겨냥한다. 나 또한 두어 걸음 물러나 칼자루를 고쳐 잡고 숨을 추슬렀다. 흘끗 눈을 흘기자, 견갑 쪽에 기다랗게 그어진 선이 보였다.
허. 타격 저항, 특히 관통 공격은 무시해버리는 치우천왕의 갑옷이…. 엑스칼리버가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 엘도라도 대단하다. 근력은 말할 것도 없고, 저 작고 소담한 체구서 뿜어지는 탄력은 진심으로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벌써 이기어검술에 익숙해져 나를 상대하는 걸 보니, 그냥 무작정 힘만 앞세워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유연함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근력만 우위에 있는 줄 알았는데, 검술, 즉 검을 가지고 싸우는 기술도 나와 비슷하거나 약간 웃도는 수준인 것 같다.
확실히 나기는 난 사용자구나.
좋아. 이건 인정.
생각을 정리한 나는 세 자루 검 중 빅토리아의 영광과 일월신검을 수거했다. 상대가 익숙해진 이상 여러 개에 신경을 분산하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낫다. 한편으로는 마력 소비도 무시할 수 없었고.
어쨌든 꽤 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딱히 질 것 같지는 않다.
왜냐고?
검술만 아는 공주님한테 굳이 검술로만 승부를 볼 이유는 없잖아?
『사용자 김수현의 마력 흐름이 2.5배로 상승합니다!』
마력 활성을 발동하자 가일층 빨라진 마력이 전 회로를 미친 듯이 질주한다.
현재 내 마력 흐름 속도는 평소의 4.5배. 제대로 제어할 수 있다면, 사용자 중 나를 압도할 수 있는 이는 어디에도 없다. 심지어 엘도라라도.
웅웅웅웅웅웅웅웅!
이윽고 흐름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기이한 진동이 주변을 흔들며 사방을 가득히 메워가기 시작한다. 삽시간에 몸이 뜨거워지고 시야로 시뻘건 불꽃이 튀기는 것 같다.
엘도라도 무언가 느낀 걸까. 목울대가 꼴깍 움직인 찰나, 갑자기 뜀뛰듯이 들어오며 공격을 시도했다.
정면으로 찔러오는가 싶더니 돌연 검을 반 바퀴 회전시키며 왼쪽으로 힘차게 베어 들어온다. 서둘러 반대 방향으로 쳐내니 신속에 가까운 속도로 거두어들였다가 곧장 찔러온다.
문득 엘도라가 나를 상대하는데 어떤 방법을 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엑스칼리버의 길고 넓은 검신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칼을 마치 창처럼 다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선 발을 놀려 엑스칼리버가 팔과 갈비뼈 사이를 지나가게 한 뒤, 팔꿈치를 힘껏 내려 검신과 밀착시켰다. 그렇게 옆구리에 단단히 낀 다음 칼리고 아브락사스를 날려보내자, 엘도라는 얼른 몸을 웅크렸다. 그 틈을 타 나는 몸을 전진, 있는 힘을 다해 육탄으로 부딪쳤다.
쿵, 바위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엘도라가 양팔을 활짝 벌리며 엉거주춤 물러난다. 두 눈을 크게 치뜬 건 덤인가.
훙, 훙!
그 와중에도 검을 연달아 휘두른 건 칭찬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중간하게 공격했다. 처음 공격은 회피한 후, 두 번째 공격은 아까 엘도라가 그랬듯 무검으로 강하게 내려쳐 땅으로 처박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다리를 굽히며 들어가, 무릎으로 균형을 잃은 엘도라의 종아리를 강하게 때렸다.
“아악!”
육중한 감각이 느껴지는 동시에 앳된 비명이 터졌다. 다음 순간, 나는 굽혔던 무릎을 펴는 동시, 아담한 턱을 향해 무검을 어퍼컷처럼 찔러 올렸다.
그러나.
“큭!”
무언가 걸리는 느낌은커녕, 칼끝은 하염없이 수직으로 치솟는다. 올라가는 팔 옆으로, 턱을 한껏 젖힌 채 나를 고요히 응시하는 두 눈동자가 밟혔다.
…뭘 담담해 하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피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곧장 팔꿈치로 엘도라의 얼굴을 강하게 찍어버리자, 또 한 번 칠칠치 못한 비명을 내지르며 형편없이 떨어진다. 아직 끝이 아니다.
후퇴하는 지점을 노려 칼리고 아브락사스가 가열차게 그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엘도라는 얼른 칼을 들어 방어하려고 했으나 코앞까지 근접한 순간,
“부서진 파편(Broken Fragments).”
꽝!
칼리고 아브락사스가 거친 폭발을 일으켰다. 흡사 수류탄이 터진 듯 잘게 깨진 칠흑색 파편이 확 퍼지며 엘도라를 삼켰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이것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는지 엘도라는 조용한 전장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응? 조용해?
그러고 보니, 어느새 전장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있었다. 모두 전투를 멈추고 나와 엘도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다.
“…….”
그 정도로 격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건, 남 대륙 사용자들의 얼굴빛이 과히 좋지 않다는 것. 아니, 좋지 않은 걸 넘어서 거의 절망에 가까운, 믿을 수 없다는 수준이었다.
잠시 후.
파편의 폭풍이 휩쓸어 지나가고, 뭉게뭉게 일어난 흙 연기가 걷히기 시작한다.
차츰차츰 드러난 엘도라의 모습은 몹시 처참하다. 빨갛게 익은 살과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아지랑이. 아름답던 경장 갑옷은 온통 파편에 긁혀 추레해졌고, 자신감 가득하던 두 눈동자는 빛을 잃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윽고 두 다리가 힘없이 꺾이는 찰나,
“아….”
미약한 침음이 새어나오며 반쯤 굽혀진 무릎이 빳빳해졌다. 그리고 이빨 가는 소리를 내며 칼을 땅에 박더니 끝내 다시 자세를 잡는다.
그럴 줄 알았다. 왜냐면 감지에 걸리는 상대의 기운이 아직 여력이 남은 듯했으니까.
뭐, 처음에 비하면 많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크으으으…!”
입을 열기도 힘든지 흡사 짐승이 우는 소리를 낸다.
그러다 문득, 상대의 마력이 심상찮게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엘도라의 주변으로 영롱한 황금빛 구체가 무수하게 떠오른다. 새삼 느껴지는 성스러우면서도 파괴적인 기세에 저절로 눈에 힘이 들어갔다.
“호오.”
나는 비웃듯이 감탄하며 발을 굴렀다. 그러자 회로의 마력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그 결과는, 곧 이글거리며 생성되는 수십 개의 열화 검으로 나타났다.
저 능력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지만, 글쎄. 이 열화 검은 게헨나조차도 인정한 능력인데….
과연 어떨까?
흘끗 쳐다본 엘도라의 얼굴에는 황망하다는 감정이 거미줄처럼 번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끝을 낼 때가 온 것 같아, 나는 속으로 외쳤다.
‘부인!’
– 응! 맡겨둬!
화정은 신 나는 음성으로 화답했다.
============================ 작품 후기 ============================
독자 님들. 죄송합니다. 오늘은 잠시 후기를 빌리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헤이, 브라더?
모르는 척 하지 말고, 다 알고 있거든? 지금은 자고 있고, 아마 내일 회사 가서 이 후기를 읽고 있던가 하겠지.
어떻게 알았냐고?
님이 어제 차에서 대놓고 말했잖아요.
곧 완결 나겠다고? 아니, 이건 좋아.
뭐?
근데 왜 주인공 이름이 김수현이냐고? 또 왜 십 년 이나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반복하는 거냐고?
내가 말하지 말라고 하니까 캬캬캬캬 웃더라? 하하하하.
후.
내가 그렇게 읽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니 아니. 백 번 양보해서 좋다고 쳐. 굳이 읽으시겠다는데 어떻게 막겠어.
그런데 내가 말했잖아. 티 좀 내지 말아달라고. 놀리지 말아달라고. 근데 내가 계속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로 보이나배?
아, 맞다. 혹시 이거 알아? 나도 님 비밀 세 개 알고 있다는 거.
1. 님의 방에서 발견한 자줏빛 네모난 비닐 포장. D…. 여기까지만 하자.
2. 저번에 님 여행 끝내고 돌아왔을 때, 님의 가방에서 발견한 XX. 내가 이건 독자 분들한테도 창피해서 더 못 말하겠다. 세상에 어쩜 그러냐? 이건 진짜 반성해.
3. 님 출근 전 샤워할 때 님 전화기에 누구한테 전화 와서 살짝 봤는데, 와, 이름 저장한 거 대박이더라? 뭐 말하는지 알겠지? ㅋㅋㅋㅋ
자, 브라더? 제가 이 1, 2, 3번을 싹 다 까발리면 님은 어떻게 될까요? 3번은 그냥 놀리고 마는데, 1, 2번은 진짜 빼박캔트인 거 알고 있지? 우리 엄마 아주, 매우, 굉장히, 엄~~~~청나게 보수적인 거 알잖아.
협박이냐고?
응. 맞아. 기분 나쁘지?
나도 기분 나빴어.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제발 서로 그만두자. 응?
*
…독자 님들 죄송합니다.
한 번쯤은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후기 보고 뜨끔하겠지요.
부득이하게 빌린 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 드립니다.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