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49
“미쳤습니까!”
“……”
별안간 터져 나온 왕천의 말에,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죄, 죄송합니다, 주군. 저도 모르게그만……”
“너, 그거 습관이야.”
“용서하세요. 하지만 별안간 수적 얘기를 하시니까 놀라서……”
“그게 왜?”
“수적을 찾아가서 협상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당연하지.”
“왜요?”
“단절된 거래선을 되찾아 올 방법은 그것뿐이니까.”
“……하아, 주군.”
“……”
“좋습니다, 좋아요. 수적을 만난다 칩시다. 안전을 확보했다는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방법이긴하죠. 근데 말입니다. 고작 수채 하나 만나서 협상한다고 거래선이 돌아온답니까?”
능운비가 왕천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하아, 이런걸 호위장이라고……. 넌 대체 언제쯤에나 내 말을 찰떡처럼 알아먹을래?”
“예?”
“대호법은 그냥 눈빛만 보내도 교주님 마음을 읽으시던데.”
“그야…….”
답을 하려던 왕천이 입을 삐죽이 내밀었다.
대호법 양선과 자신이 어떻게 같을수가 있겠는가?
최소한 교주님은 정상이시다.
누구보다 마교다운 생각을 하시는 분이지만, 능운비는 아니지 않은가?
도무지 어디로 튈지, 또 무슨 사고를 칠지 가늠이 안 된다.
“난 고작 수채 따위나 만나려는 게 아니야.”
“그럼요?”
“녹림패와는 달리, 수채 조직은 총채주 아래 크게 두 패로 나누어져 있다.”
“……?”
능운비의 친절한 설명이 시작되자, 정효상을 제외한 모두가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과연 삼공자님이십니다. 중원에 대해 이미 많은 부분을 알아 두신 모양입니다.”
정효상의 칭찬이 능운비의 말에 신뢰성을 더해 주었다.
“허, 그러게요? 대체 어찌 아신 겁니까? 생각해 보니 전에 악와지에 마적이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고……정말 중원에 대해 몰래 공부라도 하신거예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능운비가 감탄하는 왕천을 자제시키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황하와 장강.”
“……”
“수채는 그 두 곳에 나누어져 있어. 사람들은 장강수로채라고 하니까 총채가 장강에 있는 줄 알지만 오산이야. 진짜 총채는 황하에 있어. 장강을 다스리는 것은 소채주야.”
“예? 그, 그렇습니까? 저도 몰랐던 사실인데……”
이번엔 정효상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반신반의했다.
설마하니 그가 총채주나 소채주를 만나 봤겠는가?
고작해야 수채의 우두머리 한둘 정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능운비는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한때 임무를 위해 수채를 조사한 적이 있었으니까.
“차라리 잘된 거야. 소채주를 만나서 뭘 하겠어? 자고로 뭐든 결정은 우두머리가 하는 법인데. 안 그래?”
“……”
히죽 웃으며 하는 말에, 왕천이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예, 수채 조직이 그리된다는 것은 그렇다 치구요. 대체 총채주를 어찌 만난답니까? 전서구라도 보내시게요?”
비꼬는 게 역력한 말투에 능운비의 눈매가 가늘어 졌다.
이걸 확 그냥…….
내가 진짜로 교주가 될 생각이었으면, 니 버릇부터 고쳤다.
“이미 해 봤잖아.”
“뭘 해 봐요?”
“녹림왕이 어째서 우릴 찾아왔었는지 기억 안 나?”
능운비의 말에 지나간 기억을 떠올리던 왕천과 주승이 별안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안됩니다!”
“이미 결정했어.”
“그땐 운이 좋았던 거라구요!”
“운도 실력이야.”
“그래도 절대 안 됩니다.”
“명령이야. 생각을 바꾸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둘에게 못 박듯이 단언한 능운비가 곧바로 정효상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뭐 해? 배 띄워.”
“예?”
“수채의 본거지를 알 리는 없을 테고, 가장 가까운 수채가 어디서 주로 출몰하는지 알지?”
“그야……”
“일단 거기가 시작이야. 다들 준비해.”
“……”
능운비는 답조차 듣지 않고 일어났지만, 주승과 왕천은 얼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따라나선 것은 향이뿐이었다.
그리고 정효상은 알지 못했다.
어째서 왕천과 주승이 한목소리로 반대한 것인지.
그리고 왜 저렇게 안색이 좋지 않은것인지.
“아, 배를 몰 정도의 인원이면 충분해. 굳이 많이 몰려갈 필요는 없을 테니까.”
“예.”
지엄한 명을 받은 정효상은 곧바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 결국 이렇게……”
“어쩔 수 없습니다. 주군의 고집을 저희가 어찌 꺾겠습니까? 일단 삭월대에게 단단히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
정효상은 왕천과 주승의 반응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뭐 해? 배 안 띄워? 그냥 앉아서 표국이 망하는 걸 지켜볼 거야?”
“예? 엡!”
* * *
해룡표국이 부산하게 배 띄울 준비를 서둘렀다.
무려 삼공자의 명이 아니던가?
그들이 여태껏 배에 태운 이들 중 가장 높은 인물이다 보니, 평소보다 준비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그들의 열성적인 모습을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아…….”
“후우…….”
왕천과 주승은 배에 오르면서도 내내 한숨뿐이었다.
물론 능운비의 실력은 인정한다. 중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성취가 말도 못 할 정도로 빨랐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총채주다.
녹림왕을 만났을 때도 하마터면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만약 그가 봐주지 않았다면…….
“젠장, 어쩔 수 없지. 주승!”
“예, 호위장.”
“만약에 말이야.”
“예.”
“주군께서 위험해지면, 내가 어떻게든 막아 볼게.”
“예?”
“그사이에 삭월대와 함께 주군을 탈출시켜.”
“호위장!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야. 삭월대에겐 자네가 필요해.”
“그런 말씀 마십시오!”
“녹림왕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봤잖아.”
“그건……”
“내 말 들어. 내가 몸을 날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반드시 주군을 탈출시키겠다고 약속해.”
“크윽, 알겠습니다. 제 목숨이 다하는 일이 있어도 주군만은 지키겠습니다.”
“젠장, 주군께서 교주에 오르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주겠다 약속하셨는데……. 입신양명을 꿈꾸었는데……”
“호위장……”
“어쩔 수 없지. 이리된 이상 자네에게 내 꿈을 맡길 수밖에.”
“……!”
“나를 대신해, 자네가 반드시 그 자리에 올라가.”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어머님께…… 죄송했다고 전해 주고.”
“예.”
왕천과 주승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다짐을 주고받으며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차라리 배에 구멍이 나버렸으면 좋겠군.”
“저두요……”
못내 배를 침몰시키는 상상까지 해보는 그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배는 무척이나 빨랐다.
화아악!
돛이 활짝 펴지자, 배가 싯누런 물결을 가르며 왕천과 주승의 염원을 산산이 무너뜨려 놓았다.
그리고 능운비는, 두 사람이 좌절하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뱃머리에 앉아 황하의 경치를 감상할 뿐이었다.
그 옆에 앉은 향이는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맛이 좋네요. 뭔가 다른 것들하고는 달리 쌉싸름한 게.”
“원래 배 위에서 마시는 술이 그래. 평지에서보다 더 빨리 취하거든.”
“……”
능운비의 말에 향이가 신기한 듯 술병을 쳐다보다 물었다.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배우신 겁니까?”
“응?
“전부터 궁금했는데…… 평소엔 철딱서니 없는 모습이다가, 한 번씩 경험많은 노고수처럼 말씀하시잖아요.”
“아…… 그게……”
향이의 말에 난감해하던 능운비가 대뜸 되물었다.
“그럼 넌?”
“예?”
“네 조모님과 독고성 그 어른은 어떤 관계인 거냐?”
“……”
“충산? 조부라는 분도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능운비를 빤히 쳐다보던 향이가 홱 하니 고개를 돌렸다.
“서로 비밀 하나씩은 가진 것으로 하시죠.”
“……”
참으로 의아할 따름이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평소엔 그리도 거침없는 향이가 저리 입을 꾹 다무는 건지.
생각해 보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는 것 외에는…….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굳이 캐낼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 독고성을 떠올려서 였을까?
문득 그가 심득이라 말하며 보여 주었던 매화꽃의 환상이 떠올랐다.
청진도, 진산도 그 안에 독고성의 심득이 담겨 있다고 했다.
대체 그게 뭘까?
청진의 말로는 검의를 깨달으려 할때 필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는데…….
어쩌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실마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은 향이가 말하는 잡술(?)조차 배우지 못할 실력이었고, 강기의 경지를 깨닫기 위해 오감을 초월하는 것도 이루지는 못했지만…….
생각이 깊어진 능운비의 머릿속에 독고성이 취했던 자세가 그려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매화가 피고 지는 것만을 본 것은 아니었다.
환각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던 그때, 독고성이 사선으로 늘어뜨렸던 나뭇가지 끝이 땅을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싹이 피어났다.
“싹이…….”
그 순간 능운비의 눈앞이 컴컴해졌고, 그날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또다시 매화가 피어난다. 그런데 되새겨지는 그 모습이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매화꽃 사이로 검의 궤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다시 환해진다.
궤적을 인지함과 동시에 매화꽃은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검이 움직이는 모습은 한층 선명해진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은 마치 하나의 움직임처럼 합해졌다가, 이내 조각조각 나누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기에는 능운비의 수련이 부족했다.
어느새 궤적이 수도 없이 겹쳐진 탓에 진짜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 버렸다.
세세히 보기 위해 정신을 집증해 보았지만,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깨달음.
별안간 찾아온 것이었고, 그 순간을 놓치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름을 알기에 능운비는 어떻게든 궤적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매화꽃이 지고, 자줏빛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 머릿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안타까웠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갈망이었다.
“아……”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뱉어 낸 능운비가 눈을 찡그렸다.
환상이 사라지고, 현실이 보였다.
“……갑자기 뭔 생각을 하세요?”
“응?”
“아니, 말이 없길래요.”
향이가 능운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왜 배가 멈춘 거냐?”
“배가 왜 멈춰요?”
“응?”
“아까부터 잘 가고 있구만.”
“……”
주변을 살피던 능운비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풍경이 그대로이지 않은가?
향이의 말처럼 배는 여전히 제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면 그 찰나에…….
“향아.”
“예?”
“혹시 무아를 경험해 본 적 있니?”
“……아쉽게도 없어요.”
“없어?”
“듣기로는, 깨달음을 얻을 때 그런 과정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럼 넌 겪지 않았고?”
“수련 방법이 달랐으니까.”
“……?”
왠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곱씹는 듯한 표정이었다.
미간까지 찌푸리던 향이가 이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하튼 그래요. 들은 말로는 무아에 빠지는 순간이 찰나일 수도 있고, 몇 년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흠…….”
자신에게 찾아온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던 모양이다.
한데 깨달음을 얻었나?
애매모호하다.
능운비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몰두하려는데, 별안간 표정이 싸늘하게 굳은 향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온 것 같네요.”
“……?”
물길이 절벽 지형을 따라 휘도는 곳.
향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