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156
끼익, 끼이익.
멀리서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는 빠르지 않았다. 오직 노를 젓는 힘으로 물길을 타고 다가왔다.
막청주, 장강을 다스린다는 괴물 중의 괴물.
하지만 조금은 의외였다.
보통 물 위를 달리는 절세의 경공을 꼽을 때, 수상비(水上飛), 등평도수(登萍渡水), 무력답수(無力踏水)를 빼놓지 않고 말한다.
허세 가득한 무공들이나, 절대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면 시전조차 불가능하다. 간혹 절대자들이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자 일부러 보여 주기도 한다.
하나 막청주는 그 어떤 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능히 물 위를 걷거나 떠다니는 부유물을 밟고 건너올 수 있음에도 느긋이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하긴, 급할 게 없을 테지.
아마 저 배도 내내 지금의 속도로 천천히 왔을 터였다.
“이놈아, 더 가까이 대라. 신발에 물 묻는다.”
“예, 총채주님.”
와중에 배가 강바닥에 닿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되었음에도 물에 더 가까이 대라며 투덜거리자, 함께 온 중년사내가 공손히 답하며 노로 힘껏 땅을밀었다.
드드득.
작은 배의 용골(龍骨)이 땅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뭍으로 올라왔다.
사뿐히 땅에 내려선 막청주가 어깨에 걸쳤던 낚싯대를 중년 사내, 천휴에게 건네었다.
“허, 이놈은 왜이러고 있누?”
그러다 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왕천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룡어를 감추는 데 급급했던 능운비가 왕천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치울까요?”
“냅둬라. 저리 뒀으면 무슨 이유가 있겠지.”
“알겠습니다.”
막청주와 천휴가 왕천을 지나쳐 능운비가 있는 모닥불가로 다가왔다.
“어디 보자, 어느 놈이 마교 삼공자 능운비인고?”
막청주가 뒷짐을 지고 웃으며 모인이들을 훑어보자, 능운비가 앞으로 나섰다.
“마교의 셋째가 장강의 영웅이신 막청주 총채주님을 뵙습니다.”
“호오?”
예의 바른 능운비의 인사에 막청주가 한껏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기로는 저 아이가 훨씬 더 강해 보인다만, 여인이라는 말은 못 들었으니…… 네가 맞는듯하구나.”
“……”
막청주의 말에 능운비가 향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과연이라고 해야 하나?
일부러 기세를 감추고 있었음에도 그는 일행 중에서 향이와 자신을 단번에 파악해 냈다.
무엇보다 저 여유로움.
물가 근처에서 낚시로 연명하는 노인 같은 행색을 하고 있지만, 그 무게감에 계속 마른침이 넘어갔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었다. 무릇 노장이란 세월의 흐름과 경험이 서린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하더니…….
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게서는 어떠한 반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서하채의 수적들을 구금하고 있는 걸 보았을 텐데도 녹림왕처럼 다짜고짜 화를 내지 않았으며, 자신을 어린 나이라고 무시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반말이나, 마교의 삼공자로서 대접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선단이 아니라 본인과 그를 수행하는 호위 무인 하나만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즉, 걱정할 만한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듯했다. 하니 이제부터 흘러가는 말들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그에게 자신이 생각한 사업에 대해 논하면 될 것이다.
이득이 있다 여기면 자신의 손을 잡을 것이고, 아니라 해도 무사히 보내줄 확률이 높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마교라는 이름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도 일단 좋은 인상을 심어 주어서 나쁠 건 없었다.
“호오, 생선구이를 해 먹고 있었더냐?”
“어른이 오시기 전이나, 황하의 생선 맛이 별미라는 소문을 들어 기다리는 동안 허락도 없이 맛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헛헛, 그놈 참……. 말을 예쁘게 하는구나. 담 교주가 제법 잘 가르쳤다는 뜻이렷다?”
“과찬이십니다.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다고 해도, 평소 총채주님의 이름을 존경해 왔기에……”
“존경해 왔다라……. 허허, 입바른 소리라도 듣긴 좋구나.”
“진심입니다.”
능운비는 자신의 말이 진심임을 표정으로 강조했다.
“진심? 큭큭, 강이 놈은 그리 말하지 않던데?”
“예? 강이……가누구인지?”
“이미 만나 보지 않았더냐?”
“……?”
“종리강말이다, 종리강.”
“아! 녹림왕을 말씀하시는군요?”
“왕은 무슨? 산적질이나 하는 놈을……”
막청주가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둘이 친구라더니…… 저리 스스럼없이 까는 것을 보면 참말인 모양이다.
수적과 산적. 산과 바다로 나뉘어 살아가기에 모두가 앙숙이라 여기지만, 실상은 친한 모양이다.
그런데 이리되면…… 천하 삼재(三災)를 대표하는 이들이 전부 회동한 셈인가?
“한데 녹림왕께서는 저에 대해 안 좋게 말씀하신 모양입니다.”
“오냐, 아주 편지에 욕이란 욕은 전부 써 두었더구나.”
“요, 욕까지요?”
“아무렴? 어린놈이 어찌나 거침이없고, 노인 알기를 우습게 아는지 어이가 없다고 하던데?”
“예?”
“네가 그놈 손찌검을 수차례나 피했다면서?”
“아! 그게……”
“쯧쯧, 요즘 것들은 노인 공경을 몰라.””
“……”
“적당히 맞아 주면서 장단 맞춰 줄줄도 알아야지.”
“……그, 그런가요?”
능운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맞아 줘? 그랬으면 여기서 당신을 만나고 있겠어?
진작에 염라대왕과 함께 이승에서 지은 죄를 토론 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막청주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니 되었다.
저건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찐 웃음이다. 자신을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는것이다.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야 할때다.
그리고 이럴 땐 직설적인 게 좋다.
괜히 말을 빙빙 돌리다가 헛소리라도 내뱉었다가는 막청주가 어찌 나올지 모를 일이 아닌가?
“실은 제가……”
“자리도 권하지 않을 셈이냐?”
“……예?”
“늙어서 관절도 시원찮은 나를 계속 세워 둘 참이냐? 거참, 듣던 대로 예의가 없는게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마음만 앞섰습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진작에 그랬어야지.”
능운비가 통나무 의자를 가져오자 막청주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삼공자라는 위치 정도가 되다 보면 사람들을 부리는 데에 익숙할 법도 한데, 의자를 직접 가져오다니?
마교와 수적 패의 만남이기에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할 만했으나, 능운비는 자신을 어른으로 대하고 있는것이다.
좋은 만남이다.
이미 녹림왕으로부터 그에 대한 칭찬을 전해 받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막청주는 능운비의 행동과 말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너도 거기 앉거라. 이야기는 찬찬히 나누어 보자꾸나.”
“예.”
능운비가 자리에 앉자 막청주가 옆을 힐끗 쳐다보며 손을 뻗었다.
허공섭물이라도 쓸 줄 알았더니, 직접 움직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데 평범한 백주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왜? 나는 따로 명주라도 챙겨두고 마실 줄 알았더냐?”
“장강의 수좌이자 사파 무림계를 대표하는 거두시니까요.”
“콕콕, 녀석. 그렇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더냐?”
“……”
“그저 허례고 허식이다. 좋은 술을 마신다하여, 혹은 좋은 옷을 입는다하여 그 내면이 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
“또한 일부러 꾸민 것은 언제고 티가 나는 법이 아니더냐? 나는 있는 그대로를 좋아한다. 하니 너도 굳이 보이는 것에 치중하지 말거라. 일부러 보이려 하면 오히려 실수하게 되기 마련이니.”
“좋은 말씀이군요.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빈말이라도 좋구나.”
능운비는 그제야 그의 성격이 어떠한지 알 것 같았다.
늘 진심인 사람이다.
그의 말, 행동, 입고 있는 옷까지.
그것만 보고 누가 그를 장강의 수좌라고 생각하겠는가?
또한 힘이 있음에도 굳이 그 힘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물 위를 떠다니는 부평초와도 같다.
그는 흐름에 따라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무척이나 소탈하게. 애써 거스르지않으며.
문득 그런 모습이 절대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더욱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나저나 안주가 없구나?”
“아, 그렇군요. 총채주님의 진솔함에 놀란 터라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소리 그만하고, 구우려던 생선이나 가져와 보거라.”
“예?”
“아니더냐? 모닥불 양쪽에 이리 걸개까지 세워 두고, 흥건한 핏물이며 제법 많은 양의 내장이 있는 것을 보면 꽤 큰 놈을 잡은 모양인데?”
“……”
그 말에 능운비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안도했다.
다행히 황룡어임을 눈치채지는 못한것 같았다.
그래도 막청주가 다른 이들처럼 용왕의 아들이니 뭐니 해 버리면 이 좋던 분위기가 어찌 될지 모르니까, 일단 황통어는 빼고…….
“실은, 잡은 고기는 저희가 다 먹어버렸습니다. 수채의 창고에 육고기가 있던데, 그거라도 구울까요?”
“저런, 아쉽구나. 내장이 이만한 양이면 보기 드문 놈을 잡았을 것인데……. 나도 그런 큰 놈은 아직 먹어보질 못했거든.”
“예, 좀 크긴 했습니다.”
막청주가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자, 능운비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쌓여 있는 내장을 쳐다보던 막청주의 얼굴이 한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와중에 눈빛까지 싸늘해졌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린 분위기에, 능운비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지? 갑자기 왜 그러지?
설마 진짜로 내장을 보고 무슨 물고기인지 맞추는 경지인 건가?
그런데 그때, 내장 사이로 무언가 반짝거리면서 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건…… 비늘?
그 순간 정효상의 말이 능운비의 머릿속을 스쳤다.
-비늘이 제법 두껍습니다. 따로 추려 보관해 두겠습니다.
이런 염병할…….
하필이면 저게 왜 저기 있단 말인가?
막청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커다래진 눈동자에 어느새 핏발이 가득했다.
능운비가 침을 꼴깍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총채주님? 왜 그러시는지……?”
“……”
능운비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막청주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가갔다.
손가락까지 바들바들 떨면서…….
빌어먹을. 결국 알아보고 만 모양이다.
진짜 용왕의 아들이라는 미신이라도 믿고 있으면 어찌한단 말인가?
뱃사람들은 항해 중 재앙을 피하고자 그들을 신성시하고, 매년 제사를 지내며 예물까지 바치질 않던가?
능운비가 혹시 몰라 슬며시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리던 그때, 막청주가 비늘을 주워 들었다.
“혹시 잡은 것이…… 눈알은 누렇고 동공은 새까맣더냐?”
“아, 그게…… 눈깔까지는 제가 세심히 살피지 못해서……”
“혹, 주둥이 옆으로 긴 수염 두 개는 없었더냐?”
“무, 물고기가 수염도 나던가요?”
“길이는 다섯 자에, 무게는 대략 예순 근쯤 나가지 않더냐?”
“……”
수염까지 파들파들 떨어 대며 묻는 말들…….
능운비는 더 이상 답을 하지 못했다.
다 맞다. 길이는 물론이고 무게까지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이미 확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황룡어라고하는 놈이다.”
“……”
“내 직접 그놈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그랬었나요? 전 당최 모르는 일이라……. 혹시 다른 물고기와 착각하거나하신 건……?”
“내 황하에 산 세월이 얼마인 것 같더냐?”
“……”
“황룡어는 딱한마리다.”
능운비는 자신의 처지가 실로 엿 되었음을 깨달았다.
하필이면 직접 이름까지 지어 주며 애지중지해 온 용왕 아들을 잡아다가 구워 먹으려고 했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능운비는 눈알을 좌우로 굴리며 도주로부터 물색했다.
“놈을 잡아다가 거나하게 술판을 벌이고자 했거늘!”
“……예?”
순간 황당함에 긴장이 풀려, 전신에 힘이 쪽 빠지는 것만 같았다.
뭘 어쩐다고?
잡아다가 술판을 벌이려 했으면……용왕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잡고 싶었던 물고기란 소리잖아!
근데 왜 분위기 잡고 지랄이야!? 하마터면 심장 쪼그라들 뻔했잖아!
그래도 다행이다. 용왕의 아들 같은것이 아니어서. 빨리 사과하면 분위기를 풀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게 제가 먼저 잡아 버렸네요. 이미 잡아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 이참에 소망하셨던 것처럼 함께 거나하게 술판을…….”
뭐지? 이 서늘한 눈빛은?
그리고 그 몸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엄청난 기세는 또 뭐고?
자신을 쳐다보는 막청주의 눈에서 짙은 살기를 느낀 능운비가 입을 꾹 다물고 눈을 끔벅였다.
“내 목표인 황룡어를 네놈이 잡아버렸으니…… 나는 네놈을 잡아 배를 갈라 주마!”
“아……? 이런 미친!”
그게 무슨 논리야!
하지만 이 치 에 맞고 안 맞고는 나중의 문제였다.
지금 능운비의 눈앞에, 이제까지의 소탈하고 진솔한 수적 노인네는 없었다.
무림 삼대 재앙.
괜히 그리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미쳤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