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e Reign RAW novel - Chapter 298
세상이 뒤숭숭했다.
무림은 물론이고 관부와 민가의 백성들까지 숨죽였다.
하나 정작 당사자인 일월신교는 여유롭기만 했다.
중원의 경계를 넘어선 지 불과 한달. 곤륜을 봉문시킨 세를 몰아 단숨에 청해에 자리 잡은 모든 무파로부터 항복을 받아 낸 그들은 곧장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곤륜과의 일인 비무, 그리고 봉문.
그 두 가지 사건이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마교는 피 한 방울 흘리지않고 청해를 통째로 먹어 치운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민가의 삶은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으니, 중원의 모든 시선이 그들의 행보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혹자는 미리부터 마교 천하가 될 것이라 점쳤고, 발 빠른 상인들은 벌써부터 마교와 줄을 대기 위해 청해성을 향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
청해의 끝자락, 성도 서녕(西寧)에 자리 잡은 철진방.
백년의 역사를 자랑했던 그곳에 일월기가 나부꼈다.
“교주님, 감축드립니다.”
“감축드립니다.”
철진방의 대전.
두 줄로 길게 늘어선 일월신교의 수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능운비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모두가 그대들 덕분이오.”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일인 비무가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교주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입니다.”
능운비의 겸양에 추켜세우는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마치 영명하고 존귀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
“그나저나, 철진방주께선 어찌 맨 끝자리에 계시오?”
“예?”
수하들의 과한 칭찬이 어색해 화제를 돌리고자 한 능운비의 말에, 우측줄 끝자락에 서 있던 철진방주 경하명이 화들짝 놀랐다.
“이쪽으로 오시오.”
“저, 저는……”
웃으며 손짓하자 경하명이 동그래진 눈으로 눈치를 살폈다.
사방이 마두로 평가받던 이들이 아닌가?
가진 이름값만으로도 옆에 끼지 못할 그였으니, 당황하는 것은 당연했다.
“방주, 내 비록 중원으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르고 있으나 본래의 주인은 그대가 아니오?”
“……”
재차 권하는 웃는 말에 경하명이 쭈뼛거리며 능운비의 옆으로 다가갔다.
“주승.”
“예, 교주님!”
“철진방주께 의자를 내어 드리라.”
“예!”
명을 받은 주승이 능운비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빈 의자를 놓았다.
앉으라 하니 앉았지만,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허리는 절로 꼿꼿하게 펴지고, 등은 축축하게 젖은 지 오래였다.
더해 혹시나 누군가 자신을 흘겨보기라도 할까 봐 눈치 살피기에 여념이 없는 경하명이었다.
그 모습을 본 능운비는 괜스레 미안함을 느꼈다.
아마 다들 비슷한 반응이리라. 마교에서 일월신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들, 중원이 가진 편견이 변하겠는가?
“다들 들어라.”
“명하십시오.”
“나는 철진방의 힘이 모자랐다고 여기지 않는다. 가는 길이 달라 목숨 걸고 싸워 명예를 지킬 수도 있었으나, 가솔들을 생각해 자존심을 굽힌 것이리라. 나는 그런 철진방주의 마음을 높이 평가하는 바다.”
“옳습니다.”
“또한 내가 천하에 군림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긴 했으나, 발길 닿은 곳에 사는 이들을 무턱대고 핍박하고자 함이 아님을 알 것이다.”
“……”
“권함에 응하지 않는 자들은 무력을 써 굴복시켜도 좋으나, 응하여 조아린 자들은 예를 다해 대접하라.”
“명심하겠습니다.”
“군사는 지금 즉시 내뜻을 중원에 나온 신교의 모든 곳에 전하라.”
“예, 교주님.”
강자서가 답하자 능운비가 손수 찻잔을 들어 경하명에게 권했다.
“경 방주.”
“예, 교주님!”
“미안하오.”
“예?”
“그대를 불편하게 한 듯하여……”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정 자리가 불편하면 그만 돌아가도 좋소.”
“그, 그건……”
경하명은 차를 권하는 행동과 물러남을 허하는 말이 능운비의 배려임을 모를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도리어 교주께서 철진방에 어떤 폐도 끼치지 말라 명하신 덕에 다들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하오?”
“예. 다만, 들어 온 소문들로 인해 저희 스스로 위축되었을 뿐입니다.”
“그러하다면 다행입니다. 자, 듭시다.”
“예.”
비록 그 말이 능운비를 생각한 것이라 할지라도, 경하명의 표정이 조금은 여유로워졌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 그럼…… 이제 다음을 어찌할지 논하여 봅시다.”
“예?”
“왜? 준비가 되지 않았는가?”
“그것이 아니라……”
능운비의 말에 강자서가 경하명을 슬쩍 쳐다보았다.
“군사.”
“예.”
“말했듯, 식솔을 지키려 자존심을 굽혀 스스로 문을 열어준 사람이다. 그 진심을 욕되게 하진 말아야지.”
“……송구합니다.”
능운비의 핀잔에 강자서가 고개를 숙였다.
“크흠! 하면 보고드리겠습니다.”
헛기침과 함께 강자서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곤륜이 봉문한 뒤, 현재 저희 신교는…….”
강자서가 벽 한편에 붙은 청해의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감숙과 사천이 맞닿은 경계.
북으로부터 악도, 동인, 흥현, 감덕의 네 곳에 일월의 문양이 표시되어 있었다. 청해를 점거한 일월마교가 중원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 점거한 전초 기지였다.
“악도를 점거한 계율존자께선 현재 감숙 난주를 향해 진격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권고는 하였는가?”
“예. 이미 청을 넣었고, 사령문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라 합니다.”
“좋군.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렇습니다. 다만, 야수문주께서 맡으신 감덕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사천 때문이군.”
“예, 당가, 청성, 아미에 공히 연락을 취한 지 벌써 닷새가 넘었으나, 어떠한 답도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천을 쉬이 내어 주려 하지 않겠지.”
“예. 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이미 정무맹이 손을 썼을테니까.”
“예. 하여 홍현 지역을 점거한 천력탑주께 연통을 보내, 속히 남하하여 야수문주를 도우라 했습니다.”
“구양휘와 소선화라……”
두 사람을 떠을린 능운비가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였으나,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믿을 만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사천이다.
“당가, 청성, 아미. 세 곳의 전력이 만만치 않을 텐데 괜찮을지 모르겠군.”
“일단은 지켜보시지요. 거리가 멀지않고 본대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니, 저들의 대응을 지켜보고 움직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흐흠……”
그 말에 능운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에 잠겼다.
그들만이라면 괜찮을 터다.
하지만 제갈천우, 그가 지금의 상황을 두고 볼 리는 없었다.
“정무맹은 어찌 움직이고 있나?”
“앞서 침투한 성화곡의 무인들이 알려 온 바에 따르면, 통문(通文)을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통문?”
“여기……”
강자서가 품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성화곡의 무인 중 하나가 입수한 것이라 합니다.”
“흠.”
강자서가 내민 서신은 ‘정사의 동도들에게 고함.’이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었다.
대부분이 마도를 욕하는 말이었고, 그에 따라 힘을 모아 막고자 하니 힘을 모아 달라는 호소가 가득했다.
무심한 눈으로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능운비.
그런데 어느 순간, 그의 눈동자가 흠칫 떨렸다.
“……정무맹 군사, 제갈민?”
“예.”
“허!”
마지막에 적혀 있는 이름을 본 능운비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찌 잊을까?
삼문협에서 처음 만난 이후 악연만을 가득 쌓았던 놈이다.
윤안로를 덮쳤던 놈이고, 자신의 탈출로를 유일하게 꿰뚫었던 놈이다.
또한 검제와의 싸움에서 불리함을 느낌과 동시에 도망쳐 버린 놈이기도 했다.
“군사.”
“예.”
“제갈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아직……”
하긴, 마교에서만 살아온 그가 제갈민에 대해 어찌 알겠는가?
“실로 뱀 같은 놈이다.”
“……”
“누구보다 야비하고 교활한 놈이지. 또한 남을 내세워 일을 도모하고, 실패와 동시에 꼬리를 잘라 제 안위를 도모하는 놈이다.”
그에 대한 묘사를 한마디 한마디씩 더해 가는 능운비의 눈동자에 옅은 살기가 스쳤다.
어쩌면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놈이 검제를 충동질해서 자신을 뒤쫓지 않았다면, 윤안로는 무사히 마교에 도착했을지도 몰랐다.
“흠,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무엇이 큰일인가?”
“교주님의 말씀대로 그런 자가 군사라면, 정공법보다는 편법이나 변칙적인 수에 능할 테니까요. 아무래도 쉽지 않을 싸움이 될 듯합니다.”
“그러한가?”
“예. 교주님께선 지금 정공법을 택하고 계시니까요.”
“……”
“아직 그와 수 싸움을 해 본 적은 없으나, 말씀하신 성격대로라면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려 할 것입니다.”
“진흙탕?”
“예.”
추잡한 수를 서슴지 않는다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능운비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괜찮네.”
“예?”
“혹자는 붓이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나 또한 틀리지 않은 말이라 생각하네.”
“……”
“하나, 붓을 꺾는 것은 결국 힘이네. 만약 저들이 우리를 진흙탕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면, 나는 도리어 그들의 멱살을 잡아 끌어내 버릴 생각이니까.”
능운비의 말에 강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하나, 일단 염두에 두고 상황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리고 사천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곳에 연통을 보내게.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 일단은 답을 기다리며 대기하라고.”
“……”
“재차 권고하고, 듣지 않으면 그때 나아가는 것일세.”
“예, 교주님.”
“하면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테니, 다들 그만 물러가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
“예, 교주님.”
능운비의 축객령에 모두가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강자서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제갈민이라……”
“그자에 대해선 저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예?”
강자서가 고민하던 그때, 운황대주 주승이 말을 건네 왔다.
“교주님 말씀대로 정말 뱀처럼 교활한자입니다.”
“아! 교주님의 증원행에 함께했다고 하셨지요?”
“예. 제갈민이라는 자는 그때 본 적이 있습니다.”
“음…….”
주승이 추억담을 얘기하듯 중원행에서 겪었던 제갈민과의 일화를 풀어놓자, 강자서의 얼굴에 어린 수심이 더욱 깊어졌다.
야비하고 교활한 자다.
아니, 능운비의 표현보다 훨씬 더 지독한 자였다.
“주 호법님.”
“예?”
“아무래도 본성에 연락을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성엔 왜……?”
“신녀님을 불러 주십시오.”
“신녀님을요?”
“예. 그분이 있어야겠습니다.”
“……?”
“또한, 중원 곳곳에 잠입한 성화곡 무인들에게도 은밀하게 연락을 보내주십시오.”
“이유를 알수 있겠습니까?”
“주군께선 인정에 약하신 분입니다.”
“그야 저 또한 알지요.”
“필시 과거의 연을 떨치지 못하실 것입니다.”
“과거의 연이라 하심은?”
“교주님의 중원행 이후 마교와의 결탁을 의심받은 소림, 화산, 종남, 그리고 녹림왕과 창랑.”
“……?”
“들은 대로 제갈민이라는 자의 교활함이 뱀 못지않다면…… 그들을 이용할지도 모릅니다.”
“예에?”
“아직은 추측입니다. 하나, 대비는 해야겠지요.”
“음, 알겠습니다. 속히 그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라 하겠습니다.”
“예.”
주승이 강자서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빠르게 뛰어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자서가 이내 입을 꽉 다물었다.
전쟁은 이미 벌어졌고, 수 싸움도 시작되었다.
“부디 그의 계책이 내 예상 범위 안에 있어야 할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