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72
#1171.
시작되다 (1)
“개새끼들.”
정요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겨울이 다가오는 새벽은 누구에게나 달갑지 않은 시간이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한기가 아직 익숙해지지 않다 보니, 실제 온도 이상으로 추위가 느껴진다.
더구나 바다 위에서 칼바람을 맞다 보면 추위는 세 배쯤 더 강해진다.
장갑을 꼈음에도 손끝이 시리고 뻗뻗하게 굳어가는 느낌이다. 정요한이 손가락을 꿈지락거리며 앞을 바라보았다.
“저 씨발 놈들, 다 수장시켜 버려야 하는데!”
절로 이가 갈렸다.
그의 눈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중국 어선들이 보였다.
적당히 녹이 슬어 페인트가 벗겨진 어선들이 어둠에 반쯤 잠겨 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유령선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괴한 비주얼이다.
하지만 정요한의 눈에는 공포가 아니라 짜증이 어려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중국 어선들이 한국의 영해를 침범하여 불법 조업을 한다는 뉴스를 여러 번 본 적 있을 것이다. 워낙 대책 없이 밀고 들어오다 보니 외교 문제로 비화될 정도였다.
하지만 국민들이 알고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이유?
간단하다.
사람들은 시각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불법 어선들의 문제가 제대로 화제를 타기 시작한 것도 여러 척의 어선들이 서로를 엮어 경비정에 대항하는 모습이 방송으로 송출된 이후가 아니던가.
하지만 화면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실제로 불법 조업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간은 대낮이 아니라 야간이다.
대외적인 이미지와 달리 중국 어선들이 한국의 해경들을 우습게 본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해경들의 단속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경과 마주치는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들의 목적은 조업이다.
그리고 해경에게 포착되어 단속이 시작되는 순간, 그날 조업은 물 건너가는 것이다. 던져 놓은 그물을 회수하지도 못하고 돌아가면, 애써 먼바다까지 나온 기름 값도 건지지 못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해경의 단속을 피해 조업을 하려 한다. 그래서 중국 어선들이 선택한 방법이 바로 야간에 배의 불을 모조리 꺼버리고 조업을 하는 것이었다.
상식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망망대해에서 그물을 끌어당기는 일은 언제 사고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일이니까. 그런 상황에서 시야마저 제한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다는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 미친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것이 중국 어선들이다. 그러니 단속하기가 힘들 수밖에.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불을 모조리 끈 채 전진하는 어선들을 보고 있으니, 섬뜩함마저 밀려온다.
오늘 이상하게 비상이 떨어져서 감시가 강화되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배를 발견하는 것도 어려웠을 것이다.
“저 새끼들, 어떻게 합니까?”
최구현 경위가 짜증난다는 듯 소리쳤다.
“뭘 어쩌긴 어째. 나포해야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요?”
“짱깨 새끼들…… 성질 같아서는 총으로 다 갈겨 버리고 싶다. 하여간에 중국 새끼들은 상식이 안 통한다니까.”
정요한이 살짝 불안한 눈으로 위쪽을 바라보았다.
‘선내 진입하는 건 아니겠지?’
대한민국의 바다를 지켜야 하는 해경으로서 할 생각은 아니지만, 솔직히 선내로 진입하는 건 부담스럽다.
경찰이라고 몸에 칼이 안 박힐 리는 없잖은가.
게다가 중국인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인과 사고방식이 다르다. 한국인들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저항할지 저항하지 않을지를 계산한다. 죄가 경미하다면 어설프게 가중처벌을 받느니 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쪽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단 잡힌다 싶으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저항한다.
쇠파이프 끝에 용접한 날붙이를 달아 휘두르는 놈들도 부지기수였다.
인터넷에서는 그 사진들이 ‘현대에 부활한 관우’니 어쩌니 해서 웃음거리로 소모되지만, 막상 그 날붙이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단속을 하다 사망한 이도 있다. 부상을 당한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나지만,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때문에 강경한 항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국 어선에 발포를 해 배를 부숴 버리고, 인도네시아는 나포한 선박들을 바다 위에서 폭발시켜 버리기까지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불법 조업을 단속하면서 중국인들을 다치게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다.
‘일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씨발.’
차라리 제약 없이 날뛰게라도 해주면 이처럼 선내 진입을 꺼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찰은 회칼을 휘두르는 범인의 다리에 총을 쐈다고 징계를 먹고 감봉을 당하는 처지다. 총은 쏘라고 주는 게 아니라 손잡이로 후려치라고 지급하는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잖은가.
칼 들고 들이미는 놈들을 다치지 말게 제압하라니, 그게 됐으면 경찰을 왜 하고 있겠나. 이종격투기 선수로 진출하면 떼돈을 벌 텐데.
“저 새끼들, 진짜 미쳤나!”
결국 최구현의 입에서 쌍소리가 튀어나왔다.
멈추라고 계속 방송을 하고 있지만, 어선들은 멈출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최고 속도를 유지한 채 계속 해안을 향해 접근하는 중이다.
저만한 배가 최속으로 달리면 앞을 가로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어설프게 막아서다가 충돌이라도 하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뭐가 여러모로 좀 이상한데요? 배도 평소에 보던 것보다 엄청 크고…….”
정요한이 눈을 찌푸렸다.
“게다가 여기까지 들어올 일이 없잖습니까. 조업하려면 어장으로 가야 하는데, 이렇게 깊숙하게 들어올 일이 있습니까?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은데요?”
“음…….”
최구현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배를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규모나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 중국 어선들이 해경에 대항하기 위해 대규모로 선단을 꾸려 불법 조업을 하러 들어오는 일이야 이제는 흔한 케이스가 되어버렸지만, 이렇게 육지에 근접한 곳까지 들어오는 건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불안한데?’
최구현이 눈을 가늘게 뜨고 선박들을 바라보았다.
평소 보던 선박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대형 어선이 스무 정 넘게 밀고 들어오고 있다. 더 수상한 것은 이만큼의 경비정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밖을 내다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점이었다.
보통 단속에 걸렸다 싶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어떻게든 중국 영해로 돌아가기 위해 뱃머리를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놈들은 한국 땅을 밟고 죽겠다는 듯이 닥치고 해안으로 돌진하는 중이었다.
“정선하라! 경고한다! 정선하지 않을 시 발포하겠다!”
배 위에 달린 확성기에서 경고 방송이 계속 나오고 있다. 얼마나 친절한지, 한국으로 경고 방송을 한 뒤에 중국어로 통역까지 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짜 한 번 해보겠다는 건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마, 그 정도 생각도 못할까 봐? 곧 지시 내려올 거야. 대기해 봐.”
“예.”
“……혹시 모르니까, 애들한테 긴장하고 있으라고 해. 무슨 사고 터질지 모른다.”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최구현이 구명조끼를 단단히 조여 맸다.
‘무슨 생각이지, 이 새끼들?’
영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탈출이 어려워진다. 달리는 배를 가로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면 배의 옆구리를 들이밀어 속도를 줄이게 만드는 건 가능하다.
그렇게 속도를 줄이고 사방에서 들이밀어 버리면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지금이야 경비정의 수가 적어서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경비정은 충원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미련하게 자꾸 전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지?”
최구현이 고개를 격하게 돌렸다.
사이렌이라는 것은 범죄자에게 해경이 왔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사용된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사이렌을 켤 필요가 없다.
그럼 왜?
삐이이익.
그 순간, 최구현이 차고 있던 무전기에서 날카로운 비프음이 들려왔다.
[전달한다. 현 시간부로 상대 선박의 해안 진입을 저지한다. 다시 한 번 전달한다. 현 시간부로 상대 선박의 해안 진입을 저지한다.]최구현의 눈이 살짝 떨렸다.
최속으로 달리고 있는 배를 저지한다고?
“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해안으로 더 깊이 들어올수록 저들의 도주로는 길어진다. 적당히 안쪽으로 몰아가면서 되돌아 나가는 것만 막아내면 연료가 떨어져서든, 배가 파손되어서든 멈출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입을 막는다고?
‘도망가라고 박수라도 쳐줄 생각인가?’
[최 경위!]“예, 함장님!”
무전을 받은 최구현이 즉답했다.
[들이받아서라도 저지하라는 명령 떨어졌다! 경비정이 파손돼도 괜찮단다. 갑판 위에 있는 애들 단속해!]“예?”
“예! 알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지만, 현장에서 상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옳은 답을 찾아 각개로 움직이는 것보다 차라리 틀린 쪽으로 모두가 같이 움직이는 쪽이 훨씬 더 안전하고 검거율이 높다.
“야! 안전 바 꽉 잡아! 들이밀 거야!”
최구현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명령이 떨어진 이상, 좌우를 타이어로 보강한 경비정들이 불법조업 선박의 옆구리를 밀어 속도를 줄일 것이다. 그러니 충돌에 대비해야…….
“최 경위님!”
“이 새끼야, 말 못 들었어! 안전 바 꽉 잡아!”
“그게 아니라…… 저기! 저기 좀 보십시오!”
“어?”
정요한이 질린 얼굴로 손을 들어 어선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최구현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선 위를 바라본 최구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조금 전까지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던 어선 위쪽에 사람들이 쭈욱 늘어서 있다.
갑판 주변이 사람으로 빼곡하게 차 있는 느낌이다. 저리 거칠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안전 장비 하나 없이 서 있는 검은 실루엣들을 보고 있으려니,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뭐, 뭐야, 저 새끼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어어억!”
최구현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갑판 위에 올라선 이들이 일제히 바다로 뛰어든 것이다.
“아니, 저 미친 새끼들!”
들릴 리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해안에 근접했다고는 하나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밤바다다. 이런 곳에 뛰어들어서는 채 삼십 분도 버티지 못한다.
그런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최소로 잡아도 수백이 되는 사람들이 단체로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상식을 아득히 넘어서는 상황에 최구현이 넋 나간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린 바다.
녹 슬고 낡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어선의 위에서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다. 앞사람이 뛰어내리면 채 그 몸이 바다에 빠지기도 전에 뒷사람이 바다로 내달린다.
풍덩! 풍덩!
이곳만이 아니었다.
스무 척에 가까운 어선에서 동시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경고 방송마저 멈췄다.
최구현이 떨리는 눈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이곳에서 허물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