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171
#1170.
요격하다 (5)
“총리의 상태는?”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겠지.”
위긴스가 끌끌대며 턱을 쓸었다.
“전쟁이라는 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니까.”
“그것도 있지만…….”
“응?”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사부님은 한국인이 아니라서 잘 모를 겁니다. 일본과의 전쟁이라는 건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어떻게든 생각해 보는 일이거든요. 그게 공상이든, 아니면 현실을 기반으로 한 예측이든.”
“으음, 그렇군.”
“하지만 결론이야 항상 같습니다. 얻을 게 없다. 그리고 승산도 애매하다. 원래 전쟁이라는 게 그런 것 아닙니까?”
“그렇지. 전쟁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그런데 하루아침에 전쟁이 벌어지게 생겼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무인계의 전쟁이라고 하지만, 자국민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야 동일하지 않습니까?”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유럽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정치인들이 고위직에 오르게 되면서 가장 당황하는 것 중 하나가 원탁의 존재다. 원탁이라는, 법이 닿지 않는 곳이 유럽 내에 존재하고, 그 원탁이 세계 각지에서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치인들은 자신이 알아온 세계가 붕괴하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대부분은 현실에 적응하기 마련이지만, 그 와중에 정치인의 길을 포기하거나 세상에 진실을 알리려 드는 이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 결말이야 대부분 빤한 거지만.
정치를 하는 이상 전쟁의 가능성이야 언제든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인간은 그리 이성적이지도 않고, 그리 현명하지도 않다.
특히나 동아시아, 그중에서도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전쟁이란 발밑의 그림자와 같다. 언제나 함께하기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
“여하튼 저쪽에서 정식으로 입국하는 이들은 보호하겠다는 말을 했다, 이거지?”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능성이야 두 가지겠지요. 정식으로 입국을 시켜서 어떻게든 보호를 해보고 그쪽의 상황을 유리하게 몰아가겠다는 수작질. 그게 아니면…….”
위긴스가 이현수의 말을 받았다.
“대량의 밀입국인가?”
“예. 저는 그쪽의 가능성을 더 높게 봅니다.”
“이유는?”
일본 쪽에서는 무인들을 정식으로 입국시키는 것이 이득이다. 정식으로 입국한 이들이 승리한다면 그걸로 좋고, 패배한다고 해도 한국에 책임을 물어올 수 있으니까.
“항의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만이라면 모를까, 무인을 일반인으로 치환하여 책임을 묻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세계적 반발을 불러올 겁니다. 당장 중국이나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그놈들이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있잖습니까.”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볼 때, 타국에 무인들을 가장 많이 파견하는 곳은 세 곳이다.
하나는 원탁, 그리고 다른 둘은 중국과 미국이다.
유럽이야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구실이라도 내밀고 있지만, 다른 두 곳의 무인을 쓰는 방법은 전혀 달랐다.
중국은 당이 무인계의 독자성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대가로 분쟁이 있는 주변국에 은밀히 무인들을 파견하여 요인을 암살하거나 무력으로 반항 세력을 분쇄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군대를 동원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일단 서방 세계의 언론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고, 기사화도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미국?
미국은 또 다르다.
미국은 역사가 짧은 만큼 무인의 역사도 짧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무인이라는 존재들을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타국의 무인들이 적당히 관련 있는 용병처럼 이용되고 있는 반면, 미국의 무인들은 정규군에 가깝다.
그렇기에 타국의 무인계에서도 미국의 무인들은 무인 취급을 하지 않고 군인 취급을 한다.
그리고 그 군인들이 미국의 적국과 주변국들을 지금도 누비고 있다. 중동에 투입된 미국 무인의 수가 몇이나 되는 줄 안다면, 다들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이 무인을 일반인으로 취급하여 항의하는 수작을 부린다?
당장 중국과 미국의 압박에 나라가 박살 날 수도 있다.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럼 그런 워딩을 친 이유가 뭘까?”
“한국 정계는 무인계에 대한 이해도가 극도로 떨어지니까요. 지레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겠죠.”
“흐음, 이유는 그게 전부인가?”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그들을 정식으로 입국시키게 되면, 그들이 벌이는 범죄에 대한 대가도 치러야 합니다. 공항으로 여권 찍고 들어온 이가 살인이라도 저지른다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그리고 다른 건 다 집어치우고라도 그 신니치카이 놈들이 자신의 기록을 남겨가며 공항으로 들어오는 방식을 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긴스도 그렇고, 총회도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무인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아무리 타국을 침공하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기록이 남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같은 방식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위긴스가 턱을 굈다.
“같은 방식이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공항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한국으로 들어올 방법은 해로밖에 없다. 한국인들이야 애초에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이걸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건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한 메리트였다.
당장 유럽의 체코 같은 나라는 위로는 독일과 폴란드가 도사리고 있고, 아래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노려보고 있다. 모든 국경은 육로로 이어져 있어 밀입국하는 이를 막기 위해서는 나라의 주변을 모두 둘러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기본적으로 타국과 육지로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은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몇몇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자국에 대한 침공을 원천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나마 남은 한 면은 상식과 법이 통하지 않는 세계 최고의 불량국가가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그 불량국가와의 국경에는 60만 장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지 않은가.
북한을 통해서 한국으로 내려온다?
몇몇이야 그럴 수 있지. 무인이니까. 하지만 천 단위가 움직이면 아스팔트를 발로 밟기 전에 잔뜩 먹은 총알로 몸무게가 증가하고 말 것이다.
그럼 결국 해로라는 건데…….
“이미 한 번 그 꼴을 당해놓고도 다시 해로를 이용하겠다는 건가?”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흠.”
위긴스가 마뜩찮다는 얼굴로 인상을 썼다.
‘해로, 해로밖에 없다.’
하지만 해로로 잠입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저만한 인원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거대한 선박이 몇 대나 필요하다. 하지만 까딱하다가는 이동하는 도중에 요격이 될 확률도 있잖은가.
민간인 선박?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상한 선박이 포착되면 적당히 해경을 투입해 진압을 시도하고, 해경이 살해되거나 제압당하면…… 그때 군대를 투입해 버리면 그만이다.
육지라면 저항할 수 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 배에 구멍을 뚫는 걸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인가. 이미 같은 방법으로 피를 봐놓고는 또다시 같은 수를 시도한다.
“그럴 리가 없지.”
크게 바뀔 수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변화를 줄 것이다.
이번 일에는 저들도 사활을 걸었다.
“동해 쪽 감시는?”
“해군 쪽과 연동해서 하고는 있습니다만, 아직 딱히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해안 쪽을 감시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원탁에서 정보를 보내주고 있지만, 아직 해안에서 따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일본의 특성상 그 넓은 해안을 무두 감시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무인들은 선착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지.”
이건 이미 총회에서 한 번 썼던 수다.
일반인들은 선착장에서 배를 타야 하지만, 무인들은 적당히 바다 위에 배를 띄워놓는 것만으로도 탑승이 가능하다. 어두운 밤바다를 몇 킬로쯤 헤엄치는 정도는 무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일단은 최대한 감시를…….”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실장님!”
“뭐야?”
“원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공항 쪽에 모여 있던 인원들 절반이 사라졌답니다.”
“뭐?”
이현수의 눈이 떨렸다.
“언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상 추정 시각은 여덟 시간 전쯤이랍니다.”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발견해?”
“이 새끼들이 무인들을 섞어놓은 것 같습니다. 반은 남아 있을 인원으로 배치하고, 남은 반은 움직일 놈들로 배치해서 교란한 모양입니다.”
빤한 수다.
하지만 그 빤한 수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빤하지 않은 수가 된다.
“빌어먹을.”
책임 소재를 따질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대응이 중요하다. 이현수가 격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로 빠졌다는 거야? 부두로?”
“고, 공항에서 사라졌다는 것 같습니다.”
이현수가 멍한 얼굴로 보고자를 바라보았다.
공항에서 사라졌다?
사라질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많은 인원들이 땅을 파고 이동한 것도 아니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비행기를 탔군.”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항에서는 특이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원들 전부 체킹하고 있잖습니까?”
“비행기를 탔다고 해서 꼭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지.”
“예?”
“아마도…….”
그때였다.
“저…….”
문 앞쪽에서 한 사람이 머리를 슬쩍 들이밀었다.
“뭐야?”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이게 보고를 드려야 할 상황인지 아닌지가 조금 애매해서…….”
“뭐?”
“해경 쪽 상황인데, 이번 일하고는 관련이 없는데, 아무래도 보고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현수가 눈을 찌푸렸다.
“그냥 빨리 이야기해 봐. 뜸들이지 말고.”
“예! 지금 중국 쪽 선박들이 한국 어장으로 들이대고 있답니다. 대응해야 해서 남해에 있는 경비정들을 좀 빼야 할 것 같다는데요.”
“중국 선박?”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 중국 놈들 어선이 한국 어장으로 들어와서 불법 조업을 하는 건 흔한 일이잖습니까. 요새 좀 잠잠하더니, 이번에 대규모로 또 들이닥친 모양이라 그거 단속하려면 경비정이 더 필요한 모양입니다. 동해 쪽은 못 빼니까 남해에 배치되어 있는 경비정 절반 정도를 서해 쪽으로 지원시키겠다는데요.”
“개 같은 짱깨 새끼들, 왜 하필 이럴 때. 그러라고…….”
이현수가 입을 닫았다.
서해?
중국 선박?
대규모?
그리고…….
“여덟 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공항에 밀집해 있던 이들이 대규모로 사라졌다. 비행기를 탔다면 분명 타국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니, 이 미친 새끼들!”
차이커창!
타국을 침공하러 가는데, 자신의 나라를 통과하게 해주는 미친 나라는 없다. 더구나 더 약한 나라가 강국의 길을 빌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미친 짓을 가능하게 해주는 놈이 있다.
“한 방 먹었군.”
위긴스도 사태를 파악했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당장 회주님에게 보고해! 그리고 지금 동해 쪽으로 빠져 있는 놈들 전부 서해로 돌려!”
찢어질 듯한 이현수의 비명이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