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66
#1365.
북진하다 (5)
기이한 광경이었다.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어둡기만 한 도로를 지프의 헤드라이트가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미약한 불빛 뒤를 시커먼 무언가가 뒤따른다.
‘뭐야, 저게?’
장필재가 자신도 모르게 액셀을 꽉 밟았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불길하기 짝이 없다. 본능적으로 저 시커먼 것에서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밀려오는 어둠은 낡은 지프가 내는 속도를 간단히 능가했다.
아무리 달아나려고 해도 더 빨리 밀려오는 쓰나미처럼 어둠이 지프를 덮쳤다.
“흠.”
강진호가 나직한 기합성을 내고는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스르릉.
검이 뽑혀 나오는 소리와 함께 아공간에서 적루와 청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파아아아앙!
뽑혀 나온 강진호의 두 애검이 교차되며 밀려오는 어둠을 십자로 가른다.
균열.
검은 물결에 작은 균열이 생기는가 싶더니, 이내 비단 폭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물결이 갈라진다. 마치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시커먼 형상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강진호의 머리를 노리고 발톱을 휘둘러 왔다.
카아앙!
적루가 날아드는 발톱을 막아내고, 청루가 미처 피하지 못한 검은 육체를 찔러 들어간다.
스윽.
청루가 분명하게 육체를 꿰뚫고 들어갔다.
‘뭐?’
벤 감각이 없다.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
바닥에서 뭔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무거운 지프가 그대로 하늘로 튕겨 올라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야에 하늘과 땅이 교차로 들어온다. 지프째로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장필재가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 댔다.
“꽉 잡아!”
이현수가 고함을 내지르고는 손을 뻗어 장필재의 몸을 시트로 꽉 밀어넣었다.
“흡!”
허공으로 치솟은 지프가 뒤집힌 채 바닥에 거의 처박힐 때 즈음, 강진호가 청루로 바닥을 후려쳤다.
빙글.
장정 셋을 태운 지프가 장난감처럼 회전하고는 정확하게 바닥에 내려선다. 퉁, 허공으로 튀어 오른 지프가 좌우로 뒤집힐 듯 흔들리다가 결국은 바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흐아아아…….”
“핸들 꽉 잡으라고!”
“예! 예!”
장필재가 기겁을 하고는 핸들을 움켜잡았다. 그러고는 액셀을 발이 터져라 짓밟았다.
강진호가 지프의 트렁크 위로 올라서서 뒤쪽을 바라본다. 그의 입가가 점점 말려 올라간다.
이현수는 이 순간 강렬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비슷해.’
저 검은 마기, 그리고 허깨비 같은 형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기괴한 형상과 움직임.
분명 그 질은 다르지만, 어딘가 강진호와 닮아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인인가?’
저건 강진호들을 만나기 전에 이현수가 생각하던 마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는 건?
“혈교(血敎)인가?”
강진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공을 익힌 자는 마인, 그리고 그 마인들을 지배하는 곳이 바로 마교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마인이 마교에 속해 있는 것은 아니다.
마교는 그저 마도의 한 갈래일 뿐이다. 가장 강대하고 가장 강했기에 마교가 곧 마도인 것처럼 인식되지만, 강진호가 중원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마교가 아닌 마도가 분명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라혈교(魔羅血敎)다.
마교가 그 강대한 힘과 파괴력으로 중원을 지배했다면, 마라혈교는 세상의 온갖 사술과 잡술이 모여 있는 곳이다. 천하가 마도를 욕하게 만든 인신공양이라든가 사람을 희생시켜 익히는 마공의 원류가 바로 마라혈교에서 나왔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의 눈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우습지도 않다.
혈교의 무학은 사이의 집합체. 제대로 혈교의 무학을 익히기 위해서는 인간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기에 같은 마도에서도 배척된 곳이 혈교다.
그 혈교의 무학이 인민해방군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혈교의 후예들이 지금까지 숨어 지내다가 살아남기 위해서 군대에 협력한 것이든가.
어느 쪽이든 기이한 건 마찬가지다.
“카아아아아아아아!”
검은 마기로 전신을 둘러싼 혈교도가 전신을 길게 늘어뜨리며 강진호를 향해 쇄도했다. 양손에서 길게 뻗어 나온 손톱이 피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강진호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을 향해 손톱을 휘두르는 혈교도를 노려보다가 일순 검을 뻗었다.
카카카캉!
금속이 맹렬하게 서로 충돌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혈교도의 손톱이 잘려 허공으로 튕겨 나간다.
“키키키킥!”
하지만 손톱이 잘린 자리에서 시뻘건 손톱이 길게 새로 자라나더니, 마치 뱀처럼 강진호의 전신을 노리고 들어왔다.
시트를 잡은 채 뒤의 상황을 주시하던 이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미친!’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혈교의 무학은 일반적인 무학의 상식을 초월한다. 이현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크…….”
하지만 강진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적루를 겨눴다.
콰아아아아아!
적루에서 시커먼 마기가 포탄처럼 쏘아지며 혈교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린다.
“카아아아아아아아아!”
이번에는 타격이 있었는지, 끔찍한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현수는 볼 수 있었다. 산산이 찢어져 바닥에 추락한 혈교도의 몸이 꿈틀꿈틀 한 곳으로 모인다 싶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네발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아니! 씨발, 저게 뭐야!”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현수 씨!”
“됐으니까 운전 똑바로 해요!”
“아니, 이현수 씨!”
“아! 신경 쓰지 말고 운전하라고!”
“아니! 이 씨발 놈아! 앞에! 앞에 뭐가 있다고!”
“어?”
이현수의 고개가 앞쪽으로 획 돌았다.
“헐?”
아…… 둘이었지?
이현수의 눈에 도로를 막고 선 검은 그림자의 형체가 들어왔다. 마치 흐느적대는 검은 망토로 전신을 감싼 것 같은 형체가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과격하게 아래로 내려쳤다.
쩌억!
뭔가가 갈라지는 소리가 날카롭게 귀를 파고들었다.
‘갈라져?’
뭐가?
그 순간이었다.
트드득.
뭔가 뒤틀리는 소리가 난다. 이현수가 고개를 돌려 장필재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장필재가 자꾸 그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느낌이 아니잖아! 이런 빌어먹을!”
지프가 정확하게 반으로 잘려 좌우로 갈라진다. 이현수가 뒤집히는 지프의 시트를 잡고는 욕설을 내뱉었다.
“으아아아아! 저 개새끼들이!”
쾅! 콰앙! 쾅!
반 동강이 난 지프가 연신 도로에 처박혔다. 낼 수 있는 속도를 모조리 뽑아내며 달린 만큼 바닥에 처박힐 때마다 전신이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몸을 파고들었다. 이현수가 이를 악물고 시트를 움켜잡았다.
끼익, 끼익, 끼이이이익.
불꽃을 튕기며 밀려 나가던 지프가 속도를 잃고 멈춰 섰다.
“끄으으…….”
뽑히지 않는 안전벨트를 양손으로 끊어낸 이현수가 지프에서 기어나가 몸을 일으켰다.
눈가가 따끔한 걸 보니,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눈에 어느새 바닥에 내려서 있는 강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회주님!”
“음.”
강진호의 안위를 확인한 이현수가 고개를 획 돌려 반대쪽으로 튕겨 나간 지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부리나케 뛰어가 그 안의 장필재를 끌어냈다.
“아, 아악! 살살! 살살 좀!”
입을 놀릴 힘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무사한 모양이다.
“악! 거기 부러졌다고! 아, 씨바! 그거 당기지 말라고! 그거! 악! 다리도 당기지 마! 부러졌다고, 이 새끼야!”
머리만 멀쩡한 모양이다.
발악하는 장필재를 어찌어찌 끌어낸 이현수가 억지로 부축해 강진호의 옆에 섰다.
“괜찮나?”
“예. 그런데 저 새끼들, 대체 뭡니까? 왜 잘려도 안 죽습니까?”
“사람이 아니니까.”
“……예?”
사람이 아니면?
귀신이라도 되나?
“마법으로 말하자면, 소환수 같은 거다.”
“……여기 중국 아닙니까?”
“중국에도 기환술(奇幻術) 정도는 있지.”
그리고 혈교는 그 귀환술과 사술의 조종 같은 곳이고.
강진호가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흐느적흐느적 흔들리고 있는 검은 두 형체 사이로 누군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
이현수의 목소리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벅, 저벅, 저벅.
인민해방군의 군복을 입은 사내가 천천히 강진호들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자 검은 형체들이 마치 그를 호위하듯 주변을 배회했다.
새하얀 얼굴.
아직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서 있는 듯 기이한 느낌의 사내였다. 사내가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러고는 장난스레 군대식 경례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강진호 씨.”
“누구지?”
“적이요.”
“…….”
사내가 어깨를 으쓱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씀드렸는데, 표정이 왜 그렇죠?”
강진호가 피식 웃었다.
그동안 그의 앞을 가로막은 이들이야 수도 없지만, 저런 배짱은 또 처음이다.
“혈교의 후예인가?”
“역시나 바로 아시네요. 그쪽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마교도 놈들이 뼈다귀 본 개처럼 헐떡였다는 소리는 이미 들었습니다. 당신이 당대의 교주인 모양이네요.”
사내가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웃는 듯, 우는 듯.
표정만으로는 사내의 감정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너는?”
“아, 저요? 저는 어, 인민해방군…… 아니, 아니지. 그냥 이게 낫겠네요. 제가 당대 혈교의 교주입니다.”
“혈마라는 건가?”
“……그쪽에서 붙인 그 닉네임을 딱히 즐기지는 않습니다. 유치하기도 하고. 하지만 뭐…… 부정은 않죠. 대부분 그렇게 불렸으니까.”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가 나를 막겠다고?”
“에이, 설마요.”
사내가 양손을 내젓는다.
“제가 아무리 겁대가리가 없다지만, 그 ‘적마’를 상대로 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강진호가 눈을 좁혔다.
“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주세요. 천시적종(天始赤終)의 전설이 전해진 곳이 마교만은 아니니까요. 마교도 놈들이 하나같이 천시적종, 천시적종…… 귀가 닳도록 지껄이고 다니는데, 모르면 그게 바보죠.”
혈마가 비틀린 미소를 머금었다.
“솔직히 좀 무섭거든요. 만드느라 개고생한 흑강시 하나가 벌써 너덜너덜해졌네요. 이거, 손해가 막심한데…….”
강진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꽤나 얕보인 모양이군.”
과거의 혈마 따위는 감히 강진호의 앞에 나서지도 못했다. 적천마존이 세상을 발아래 두던 시대, 혈교의 무리들은 터전을 버리고 그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기 급급할 뿐이었다. 그런데 저런 애송이가 감히 그의 앞에서 주둥아리를 놀리다니.
“화가 나신 모양인데……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겁이 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말투가 원래 이런 거니까. 지금 오줌 싸기 직전이거든요.”
“다 지껄였나?”
“아뇨. 하나만 더.”
혈마가 손가락을 튕겼다.
“저는 솔직히 이러기 싫었는데 말이죠, 위쪽에서 제 말을 안 들어주네요. 혹시 느려 터진 화살로 짐승을 잡는 법이 뭔지 아세요?”
“…….”
“정답은 못 움직이게 잡아두고 화살을 쏘는 거죠.”
그 순간, 강진호의 발아래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마구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카아아아아앙!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수십 발의 미사일이 강진호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콰아아아아아아앙!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폭음이 어두운 밤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