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370
#1369.
증명하다 (4)
“잘도 내 앞에서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구나.”
장민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금방이라도 방진훈에게 달려들 듯 말이다.
위긴스가 기겁을 하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장로님, 일단 진정하십시오!”
하지만 방진훈은 그런 위긴스를 밀어냈다.
“장로님이 회주님을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건 다 압니다. 하지만 호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냉정하게 상황을 생각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지금 중요한 건 장로님의 기분을 푸는 게 아니라 회주님의 안전입니다!”
장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방진훈도 더는 찔러 들어가지 않고, 장민의 반응을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동안 이를 갈아붙이던 장민이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틀리지 않다.”
“…….”
“위긴스.”
“예, 장로님.”
“마존과 연락은 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다시 통신을 재개했습니다. 지금 로드께서는 국경을 넘기 위해 하얼빈으로 진입 중이십니다.”
“하얼빈?”
“예.”
장민이 얼굴을 굳혔다.
“알겠다.”
장민이 뭔가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 너희에게 함부로 말한 것은 사과하겠다.”
“아, 아닙니다, 장로님.”
“마존의 안위에 내가 눈이 뒤집힌 모양이다. 방 이사의 말이 맞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 기분을 푸는 게 아니라 마존께서 안전하게 돌아오시는 거겠지.”
위긴스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잔뜩 힘이 들어갔던 몸에서 힘이 풀린다.
“위긴스.”
“예, 장로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존께서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오셔야 한다. 교가 지원할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하겠다.”
“예. 저도 필요한 일이 있으면 요청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음…….”
장민이 뭔가 말을 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아니다. 이건 굳이 너희와 말할 필요는 없겠지. 여하튼 나도 자체적으로 움직이겠다. 보고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보고하도록 하지.”
“보고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장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하나는 명심해 둬라.”
“예?”
“만약 너희의 말대로 최선을 다했는데도 마존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면…….”
장민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너희 모두 살아날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
둘을 가만히 노려보던 장민이 몸을 돌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장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자 위긴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진훈은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와, 뒈지는 줄 알았네.”
“대체 무슨 담량이 있어서 저분께 그런식으로 대드는 건가?”
“제 말이 맞잖습니까?”
“자네, 위인들이 왜 일찍 죽는 줄 아는가?”
“글쎄요?”
“바른말을 해서 그렇네, 바른말을!”
“…….”
위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제정신이 아닌 거지.’
이성을 잃은 광신도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방진훈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답도 없는 반골.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장민 장로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조금 전까지 자네가 우기던 것 아닌가.”
“그거 아십니까?”
“뭘?”
“내가 하는 말을 남이 하는 걸 보면 사람이 객관적이 되더라구요.”
“그게 아니라 동족 혐오겠지.”
“그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위긴스가 한숨을 내쉰다.
‘끔찍하군, 정말.’
장민의 일은 어떻게 잘 수습했지만, 이건 그리 단순히 볼 문제가 아니었다.
‘벌써 불협화음이 나는군.’
장민도 그렇지만, 방진훈과 위긴스도 당장 조금 전까지도 의견을 맞추지 못했다. 위긴스가 그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것에 불과하다.
강진호라는 억제기가 사라진 순간, 개성이 넘치는 총회의 이사진들이 서로의 의견을 굽히지 않게 된 것이다. 당장 이 자리에 강진호가 있었다면 방진훈은 핀잔을 먹고 찌그러졌을 것이고, 장민은 문을 박차고 들어온 속도보다 더 빠르게 처 맞고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갔을 게 빤하다.
위긴스가 깊이 한숨을 쉬었다.
“미리 체험시켜 주시지 않아도 좋은데.”
“예?”
“아니, 아닐세.”
위긴스가 손을 휘휘 저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자꾸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일단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일단 회주님이 적의 추격에서 벗어나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으니, 일이 잘만 풀린다면 며칠 내로 한국으로 들어오실 수 있을 걸세. 그럼 모든 게 해결되겠지.”
“그건 그렇죠.”
“다른 문제만 없으면 말이야.”
위긴스와 방진훈이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민이라는 제삼 세력이 나타나니 기존 세력들이 동맹을 맺는 모양새였다.
“다른 문제는 없겠지?”
“딱히 문제라고 할 게 있겠습니까? 일단 정부 놈들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지. 그게 문제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다른 건 회주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설마 밥 못 먹고 다니겠습니까?”
“응? 자네 지금 뭐라고 했나?”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아니, 그거 말고 말일세.”
“밥 못 먹고 다니겠냐구요.”
“…….”
멍한 위긴스의 반응에 방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지금 생각난 건데 말일세…….”
“예.”
“회주님…… 돈은 있으실까?”
“에이, 그 양반이 얼마나 부잔데. 뭐 그런 농담…… 아니, 잠깐. 인출이…….”
“…….”
* * *
“……이 개새끼들.”
장필재가 부들부들 떨며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0원.
며칠 전만 해도 가득가득 들어차 있던 그의 통장에서 돈이 사라졌다.
“이…….”
개인 통장을 건드리는 건 불법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냐고 생각한 장필재가 머리를 감싸쥐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네. 개새끼들, 그동안 내가 나라를 위해서 헌신한 게 얼만데.”
“없어요?”
“…….”
“뭔 돈이 땡전 한 푼 없어.”
“…….”
장필재가 푸들거리는 얼굴로 이현수를 돌아보았다. 이현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장필재를 보고 있었다.
“그러는 그쪽은 현금도 안 가지고 다닙니까?”
“현금이 왜 필요해요. 요즘 중국이 얼마나 자동화가 됐는데. 모바일 페이 쓰면 되지.”
“그래서 그 모바일 페이 어떻게 했냐고!”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걔들이 준 신분이랑 휴대폰 가지고 들어왔는데, 걔들이 막아버리면 그만이지. 새로 등록할 수 있을 리도 없고.”
“…….”
장필재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렇게 치사하게 나온다, 이거지?’
결제가 안 된다.
장필재도, 이현수도 돈을 쓸 수 있는 방법이 막혔다. 한국의 은행은 진즉에 차단이 됐고, 위장 신분으로 받은 카드도 모조리 막혔다.
극심한 타격은 아닐지라도, 끔찍한 타격임은 충분하다.
“지금 이틀째 굶었단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네요.”
“이제 북한으로 들어갈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럼 앞으로 한국 갈 때까지는 계속 굶어야 한다는 거잖습니까?”
“듣고 보니 그러네.”
“…….”
장필재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아니! 빌어먹을! 이러다가 장마당의 꽃거지가 불쌍하다고 적선하고 가겠습니다! 돈이 없어서 밥도 못 먹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이 양반이 고쳐 줬더니 성질이네. 그걸 왜 우리한테 그래요? 당신이 지키던 나라가 하는 짓인데.”
“빌어먹을, 헛살았지!”
장필재가 짜증을 억지로 억눌렀다.
‘개새끼들.’
단순히 밥을 못 먹는다는 것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다. 그의 통장이 막혔다는 건 국정원이 그를 적으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평생을 바쳐 일한 직장이 그를 버리고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는데,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더구나 장필재의 직장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국가라는 이름의 살아 있는 권력이다.
‘이거,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건가?’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국가의 타깃이 된 사람은 그 국가를 벗어나기 위해 악을 쓰기 마련이다. 중국의 타깃이 된 달라이라마가 중국을 벗어나 해외를 전전하는 것처럼.
하지만 대한민국의 타깃이 된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북한을 뚫는다는 미친짓을 시도하고 있었다.
“밥 한 끼 못 먹고 북한 땅을 횡단하자구요? 차도 없이?”
“……다이나믹하겠네.”
장필재가 웃어버렸다.
“이보십쇼, 이현수 씨.”
“예.”
“우리, 그러지 말고 현실적이 되어 봅시다.”
“뭘요?”
“우리가 돈이 없지, 힘이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
“눈 딱 감고 두어 명만 쓱삭해서 지갑을 털면…….”
“미친놈이신가? 당신, 공무원 아냐?”
장필재가 발악을 했다.
“내가 대한민국 공무원이지, 중국 공무원은 아니잖습니까! 내가 왜 중국인 안위까지 생각을 해줘야 합니까?”
“와, 인성.”
“끄으으응.”
장필재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한 번씩 긁어 대는 이현수의 저 말투가 장필재를 돌아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부글대는 장필재를 바라보던 이현수가 고개를 슬쩍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합니까? 지금 밥을 먹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라, 북한을 횡단하려면 나름 준비가 필요합니다. 돈 한 푼 없이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난 괜찮은데?”
“…….”
“…….”
거, 인간 진짜.
사람이 양심이라는 게 있어야지.
“회주님.”
이현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회주님은 모르겠지만, 저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먹어야 힘을 쓰는 법이죠. 당 떨어져 죽겠습니다.”
“무인이 그 정도도 못 참아서야.”
장필재가 손을 들었다.
“저는 무인 아닌데요?”
“정보원이 그 정도도 못 참아서야.”
“……아니, 정보원은 무슨 당분 주머니라도 있는 줄 아시나.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지.”
강진호가 한숨을 내쉰다.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네.’
강진호는 대한민국에서는 손꼽히는 부자다. 그런 강진호가 돈이 없어서 쩔쩔매는 상황이 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게 제가 평소에 시계라도 좀 좋은 거 차시고! 명품 좀 두르고 다니라고 했잖습니까! 돈도 많으신 분이 왜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입고 다니십니까?”
“……너는?”
“저야 잃어버릴까 봐 못 차고 왔죠.”
강진호와 이현수가 서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 서로다.
“그래도 하나는 좋네요.”
“뭐?”
“워낙 거지꼴이라 사람들이 별 의심을 안 합니다. 지금 우리 꼴이 장필재 씨랑 뭐가 다릅니까.”
“아니, 거기서 나는 또 왜 끼워 넣습니까?”
“저 보십쇼. 저 거지들도 새로 나타난 거지인 줄 알고 오잖습니까. 보나마나 우리 세력이니 저리 꺼지라고 하겠지.”
이현수가 짜증 난다는 듯 고개를 돌려 접근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추레한 몰골이 정말 장필재의 동료로 손색이 없었다. 이현수가 접근하는 이들을 물리려는 순간, 그중 하나가 낮게 입을 열었다.
“이현수?”
“…….”
이현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 반응을 확인한 거지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이현수가 막 눈앞의 거지를 후려치려는 순간이었다.
“마존을 배알하나이다!”
“마존을 뵙나이다!”
접근한 이들이 일제히 엎드리며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
“…….”
이현수가 엎드린 이들을 가만히 보다가 강진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왕초로 전직하셨습니까?”
“…….”
그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