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10
#1509.
벌어지다 (4)
“그러니까…….”
조금의 황당함.
그리고 조금의 억울함.
이현수의 표정에 떠올라 있는 감정이 그러했다.
“저를 부르신 이유라는 게…….”
강진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쪽은 이 실장이 전문가니까.”
이현주가 옳다쿠나 맞장구를 쳤다.
“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이 실장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죠. 전문 분야시잖아요.”
“…….”
이현수의 얼굴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재생되고 있는 CCTV 화면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수작질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으흥.”
“그런데, 그 수작질이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
“맞아요.”
아니, 추임새 매번 넣지 마시라고!
“그 수작질이나 비열한 책략, 사람 엿 먹이기, 계략을 짜서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등등에서 제가 전문가라서 저를 부르셨다구요?”
“정확해.”
“그렇습니다.”
이현수의 얼굴이 파들파들 떨린다.
아니! 이 인간들이 사람을 뭘로 보고!
“제가 왜 그쪽의 전문가입니까! 제가 왜!”
“아냐?”
“아니신가요?”
아니!
맞지…….
어, 그건 맞지.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이현수의 얼굴이 급속도로 우울해졌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인정받는 능력의 분야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거참, 희한한 기분이네요.”
“좋게 생각해. 어떻게든 쓸모가 있다는 게 어디야.”
예.
회주님 언변이 참 많이 느셨네요. 이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놓을 줄도 아시고.
거참, 옛날 생각 하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네, 진짜.
“끄응, 알겠습니다. 일단은 좀 보죠.”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현수가 마시던 커피를 입에서 뿜었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라고 했다구요?”
“그렇다네.”
“그걸 살려뒀답니까? 턱을 돌려 버려야지.”
“……조금 늦었지만, 돌려 버리기는 했어.”
“아, 그럼 다행이네요.”
이현수가 피식 웃으면서 CCTV를 여러 번 돌려보았다.
“흐음.”
그러고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한 대 피워도 될까요?”
“얼마든지 피워. 지금은 네가 상전이니까.”
“에이, 뭐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십니까. 듣는 사람 어깨에 힘 들어가게.”
“…….”
여하튼 이놈도 정상은 아니다.
찰칵.
강진호와 이현수가 동시에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현수가 눈을 반개하고는 천천히 담배를 피워 댔다. 강진호도, 이현주도 그런 이현수를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머리를 쓰는 일은 일단 이현수에게 맡기는 게 좋다. 그건 영남회 시절부터 무인계의 법칙 중 하나였다.
“수작질은 확실해 보이네요.”
“그렇지?”
“예. 그냥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음, 저 새끼들이 분명 자신들에게 불리해 보이는 일을 바로 인터넷에 올렸다는 게 걸립니다. 이건 CCTV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거든요.”
이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습은 어려울지라도 면피는 되겠죠.”
“그런데도 일을 벌였다? 그런데도…… 흐음.”
이현수가 동영상 안의 휴대폰을 들고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이쪽에서 CCTV를 풀면 이 새끼들이 찍은 영상을 자극적으로 편집해서 바로 풀 겁니다.”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죠. 지금 우리가 보는 화면은 위에서 보는 화면이잖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그걸 근접해서 찍으면 역동성이 살아나거든요. 저 안에 점주 놈이 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다이내믹하게 사람을 후려치는 모습을 줌해서 올려 버리면…… 아무리 잘못을 해도 그렇지, 사람을 저렇게 쳐도 되냐는 소리가 나오는 거죠.”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그러자 앉아 있던 장영철이 말없이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
강진호가 그런 장영철을 만류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진…….”
“넌 대가리 박아, 새끼야!”
하지만 이현수는 가차 없었다.
장영철이 그 자리에서 바로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아니, 이 새끼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사람한테 손대지 말라고 골백번은 강조했는데! 한 달을 못 버티고 바로 사람 턱을 돌려 버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살벌한 이현수의 기세에 강진호마저 입을 닫았다.
사실 강진호야 그저 전반적인 가이드를 만든 것뿐이고, 실질적인 직원들에 대한 교육은 강유환과 이현수가 했으니 강진호가 나설 부분은 아니었다.
“어쭈? 이 새끼, 재교육받은 새끼네?”
이현수의 눈이 돌아갔다.
“이 새끼가 재교육까지 받고 손님 턱을 돌려? 나도 한 번 돌려봐라, 이 새끼야!”
이현수가 장영철에게 달려들자, 강진호가 손을 뻗어 이현수를 잡아당겼다.
“아오오오!”
이현수가 마구 발길질을 해 댔지만, 그 발은 아슬아슬하게 장영철에게 닿지 않았다.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아니, 저 새끼가!”
장영철이 머리를 박은 채 큰 목소리로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 그 새끼가 아메리카노를 퍼붓고, 사람 얼굴을 후려쳐서 너무 빡친 나머지…….”
“뭐? 빡쳐? 네가 빡쳐? 내가 더 빡친다, 이 새끼야!”
강진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이현수를 끌어당겼다.
“진정해라. 화날 만하지.”
“예? 화가 날 만해요?”
이현수가 고개를 홱 돌려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이글거리는 그 눈을 본 강진호가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회주님은 누가 회주님한테 따뜻한 물 부으면 사람 턱을 돌려 버립니까?”
“뜨거운 물이었잖아. 따뜻한 물이 아니라.”
“저 새끼한테 그게 뜨겁겠냐구요!”
“……어?”
듣고 보니…….
일반인이라면 화상까지 입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무인인 장영철에게는 그냥 조금 뜨거운 정도일 뿐이다.
“얼굴을 쳤다잖아.”
“회주님은 애기가 얼굴 만지면 애기 턱을 돌리십니까? 일반인이 아무리 때려봐야 저 새끼가 아프기나 하겠냐구요!”
“…….”
그것도 그러네?
“저 새끼는 뜨겁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으면서 그냥 열 받아서 손님 팬 거라니까요. 그런데 저걸 그냥 둡니까, 저걸?”
강진호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고는 이현수를 잡고 있는 손을 살며시 풀었다.
“가라.”
“으아아아아! 이 새끼야!”
이현수가 장영철에게 달려들어 몸통 박치기를 했다. 장영철이 허공을 붕 날아 바닥에 떨어진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죽어!”
“악! 아아아악! 실장님, 잘못했습니다! 실장님, 살려주십시오!”
그 모습을 보며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안 아프구나.’
이현수가 필사적으로 걷어차 대고 있지만, 얻어맞는 장영철은 전혀 아픈 표정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이현수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픈 척을 할 뿐이다.
그러니 새삼 알게 된다.
손님이 아무리 때려봐야 장영철이 아플 리가 없었다.
한참 동안 장영철을 후려친 이현수가 결국은 자기가 더 지칠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씩씩대며 강진호에게 돌아왔다.
“회주님이 저 새끼 아가리 한 대만 갈겨주시면 안 됩니까?”
“……그럼 죽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네. 어휴.”
이현수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결국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일이 생각보다 일찍 터졌고, 생각보다 찝찝하게 터졌다.
“잘했다! 아주 잘했다, 이 새끼야! 대놓고 건수 만들려는 새끼들한테 건수 주고!”
“……죄송합니다.”
“몰라. 이제 니가 알아서 해. 나는 참아. 나는 참는다고. 그런데 네 동기들이 참을지는 모르겠다.”
동기라는 말에 장영철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어휴, 진짜.”
이현수가 고개를 휘휘 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담배 한 대를 빼 물었다. 강진호가 본능적으로 이현수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거!”
이현수가 한숨을 푹푹 내쉬더니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빨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작업당한 건 확실해 보입니다.”
“음…….”
“문제는 이 새끼들이 대체 무슨 의도로 작업을 했냐는 거죠. 이거, 단순히 합의금 노리고 한 짓 같지는 않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현주가 맞장구를 쳤다.
“합의금을 노리고 한 일이었다면, 공론화를 시키기 전에 저희와 먼저 접촉하려 했을 거예요. 물론 일을 키워놓고 합의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지 어떤 접촉도 없는 걸로 봐서는 그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건데…….”
이현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이쪽에 안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건데, 그래서 이득을 볼 데라고는…….
“이거, 설마 다른 프렌차이즈에서 작업 들어온 건가?”
“응?”
“네? 설마요.”
“아니, 아니죠……. 이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진호와 이현주는 영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업 초기에 타 프렌차이즈에서 이런 일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여긴 레드 오션입니다.”
“응?”
“카페 사업이라는 게 그런 거죠. 프렌차이즈 업소들이 먹을 수 있는 파이는 이미 거의 먹었어요. 그럼 남은 건 파이를 얼마나 나눠 먹느냐는 거죠. 저희 매출이 다 어디서 오겠습니까?”
“기존 프렌차이즈들의 파이라는 건가?”
“곱게 볼 일이 없죠. 그쪽도 지금 지옥일 테니까요. 안 그래도 지금 정부 쪽에서 프렌차이즈 정산 비율이랑 불공정 계약으로 후려 패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심지어 저희 프렌차이즈는 계약도 점주 쪽으로 과도하게 유리하죠.”
“…….”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쪽에서 이쪽을 상생 모델이니 어쩌니 선정하고 밀어버리면 다른 데는 다 억 소리 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프렌차이즈 본사가 가져가던 돈이 과도하다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죠. 심지어 점주들도 갈아타려고 할 거구요.”
강진호의 얼굴이 살짝 멍해졌다.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업체 쪽에서 볼 때, 우리는 절대로 망해야 하는 회삽니다. 아니, 망해야만 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되레 잘나가고 있잖습니까.”
“어…… 그렇지.”
“저라면 이 회사 어떻게든 망하게 합니다. 저라면 이런 어설픈 수는 안 써요. 커피에 바퀴벌레 넣어버릴 겁니다. 그것도 반으로 잘라서.”
“…….”
강진호가 기겁을 하며 이현수를 바라본다. 이 정도면 거의 인간쓰레기급 아닌가.
“……그거, 비약이 너무 심하지 않아요?”
이현주는 이현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비약?”
“예. 겨우 한 매장에서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리고 CCTV는 너무 명백하게 그쪽 잘못이구요. 아무리 촬영을 따로 한다고 해도 파급력에 한계가 있을 텐데.”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CCTV…….”
“아니, 그전에!”
“하, 한 매장이요. 한 매장에서…….”
이현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당장 전 매장에 연락해서 오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손님이랑 싸우지 말라고 해! 반드시 시비 거는 새끼들이 있을 테니까!”
“아…….”
이현주의 눈이 흔들렸다.
“한 매장에서 벌어진 일이면 시시비비가 가려지지만, 여러 매장에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우리 잘못이 된다! 빨리 움직여! 그리고 음식 관리 잘하라고 해. 수작질하는 놈 반드시 있을 거니까!”
“예! 알겠습니다!”
연락을 위해 뛰어가는 이현주를 보며 이현수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어떤 새낀지 몰라도 뼈를 갈아 마셔주지.’
세상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