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27
#1526.
교육하다 (1)
강진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알아?”
본인을 아느냐는 의미였다.
그 대답은 정명철이 아닌 이현수의 입에서 나왔다.
“설마 지가 엿먹이려는 회사 회장도 모르겠습니까?”
“……그래?”
“몰랐어도 CF 보고 하면서 주워들었겠죠. 회장님은 이제 유명인이라니까요.”
강진호가 미간을 좁혔다.
상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켰다는 게 짜증이 나는 게 아니다. 그걸 걱정했다면 맨 얼굴로 이곳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진호가 짜증이 난 이유는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딜 가도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생길 것이다.
‘마스크라도 끼고 다녀야 하나.’
강진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우울해져 버렸다.
“얘가 그놈인가?”
“예. 정명철, 태광 P&D의 사장입니다.”
이현수가 짧게 부연했다.
“사장이라고는 해도 태광 그룹의 핫빠리밖에는 안 됩니다.”
“이게 머리는 맞아?”
“조사를 좀 해봤는데, 그룹 차원에서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이놈이 지시한 게 맞습니다.”
“흠.”
강진호의 시선이 정명철에게로 향했다.
값비싸 보이는 슈트를 입고는 있지만, 검게 죽어 있는 안색과 흐트러진 머리 덕분인지 초췌하게만 보인다. 이런 놈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MK를 건드린 것인지 황당할 정도였다.
“어쩌시겠습니까?”
“응?”
“죽일까요?”
“…….”
강진호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이현수가 한쪽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
이현수의 의도를 알아챈 강진호가 피식 웃고는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냥 죽이자고?”
“회장님의 취향대로라면 그리 쉽게 죽이시진 않겠지만…….”
이현수가 정명철을 돌아보았다.
“뭐 그리 재미있어 보이는 놈은 아닌데요?”
정명철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장난기가 어려 있는 말투지만, 정명철의 입장에서는 절대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낮의 강남에서 사람을 납치해 끌고 오는 이들이 뭘 못하겠는가.
더구나 이렇게 얼굴을 팔아버린 이상, 그를 살려주는 것보다 죽이는 쪽이 훨씬 뒤끝이 없다는 건 정명철이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다, 당신들, 이러고도 뒷감당이 될 것 같아?”
“응?”
이현수가 재미있다는 듯 정명철을 돌아보았다.
“뒷감당?”
“그, 그래! 뒷감당! 나를 죽이거나 이대로 잡아두면 경찰이 당신들을 찾아낼 거야! TV에 얼굴이 나오는 인간이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별걱정을 다 해주시네. 마음도 넓으시지.”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정명철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너,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것 같냐?”
으득으득.
머리카락이 통째로 뜯겨 나가는 것 같은 고통에 정명철이 비명을 질렀다.
“웬만하면 주둥아리 좀 닥치고 있어라. 이쪽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서 거기에다가 살인 하나 추가한다고 지옥불 온도가 달라지지 않을 사람들이거든.”
이건 농담도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특히나 나는 너를 죽여 버릴 이유가 너무 많아. 나는 생리적으로 너 같은 놈을 혐오하거든. 어떻게든 남을 괴롭히려고 안달이 나 있는 놈, 목적이 아니라 재미로 타인을 괴롭히는 놈.”
이현수가 정명철의 머리채를 잡아 뒤로 확 젖혔다.
“네가 우리 쪽에 수작질을 부린 이유도 그냥 우리가 꼴보기 싫고 괴롭히고 싶어서 아니었나?”
“나, 나는 아무것도…….”
“명철아, 명철아. 쓸데없이 힘 빼지 말자. 네가 그 일을 저질렀다는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설마 너도 그 팀장인가 뭔가 하는 놈이 그 일을 다 저질렀다는 걸 우리가 믿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잖냐?”
“…….”
이현수가 이를 드러냈다.
“우리가 알아도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뿐이지. 그렇지 않아?”
“나, 나는…….”
“내가 진짜 빡친 게 언젠 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그 오피스텔 지하에서 너를 만났을 때, 내가 니 새끼 동선 훑어서 사람 몇몇을 뿌려놨단 말이야. 그런데 오피스텔은 내가 맡았어. 귀찮았거든. 이 새끼가 사람이면 설마 이런 일을 벌여놓고 애인 만나러 오지는 않겠지 했지.”
이현수가 정말 놀랐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이게 진짜 오네? 네가 내쪽으로 오고 있다는 전화를 받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처음에는 황당했는데, 나중에는 열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더라.”
정명철에게는 카페 루오고가 파탄 날 뻔하고, 그 죄를 뒤집어쓰고 부하 직원이 잡혀간 것 따위는 여흥 거리조차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그 와중에 다른 짓 할 생각을 하지.
“너 같은 새끼들이 있지.”
이현수가 정명철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지 혼자 다른 인생 산다고 생각하는 놈들, 사는 게 게임인 줄 아는 놈들, 무슨 일을 벌여도 현실성이 없어서 자신은 절대 피해를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놈들.”
이현수가 이죽거렸다.
“보통 그런 놈들은 알아서 도태되거나 현실에 처맞고 정신을 차리기 마련인데, 너 같은 놈이 재벌가나 권력가의 집에서 태어나면 괴물이 되지. 너는 한 오 년만 더 그렇게 지냈으면 진짜 미친놈 됐을 거야. 아, 물론 지금 미친놈이 아니라는 뜻은 아냐. 알지?”
이현수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정명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사람 만들어줄 테니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일단 시체로 만드는 방법이 있지. 악인이고 선인이고, 죽으면 똑같은 시체가 되니까. 그것도 갱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주둥아리 처 닫아. 네 목소리만 들어도 역겨우니까.”
정명철이 재빨리 입을 닫았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정명철도 수많은 이들을 만나보았다.
그중에서는 과격한 조직폭력배도 있고,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권력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들 같은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이들은 뭔가 다르다.
단순히 말이, 행동이 다른 게 아니다. 풍겨 나오는 분위기부터가 평범한 이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카페 루오고의 뒤에 이런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명철은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네가 한 짓거리 때문에 피해 본 건 다 남이지. 우리 카페들 피해 보고, 우리 점주들 피해 보고, 너 때문에 괜히 남의 카페에서 진상 부린 것들 잡혀서 벌금 내고, 징역 살고, 그리고 심지어 네 부하 직원까지 잡혀갔지.”
이현수가 정명철의 머리채에서 손을 떼고는 그의 턱을 움켜잡았다.
“그런데 넌 무슨 피해를 봤지, 이 새끼야?”
“…….”
“법이란 게 이래서 좆같은 거야. 빤히 저지른 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법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거든. 그게 법관님들 잘못이겠냐? 증거가 없는데 뭘 어쩌겠어. 엿 같아도 참아야지.”
이현수가 피식피식 웃었다.
“아마 네가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빠져나간 일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그런데 어쩌지?”
이현수가 정명철의 턱을 꽉 조였다.
“나는 법이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받은 피해는 손톱만큼이라도 백배로 갚아줘야 성이 풀리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강진호가 살짝 움찔했다.
“쪼잔해 보여? 아, 맞아. 쪼잔하지. 그런데 뭘 어쩌겠어, 내가 원래 쪼잔한데.”
“…….”
강진호가 묘한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지금 나 멕이는 건가?
말은 정명철에게 하는데, 이상하게 말의 방향이 이쪽이라는 느낌이 자꾸 들었다.
“여하튼.”
이현수가 정명철을 걷어찼다.
쾅!
“커헉!”
의자가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정명철이 경련했다. 횡경막에 충격이 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넌 이제 좆 됐다고 복창해라. 네가 지금까지 저지른 걸 다 돌려받게 해줄 테니까.”
이현수가 몸을 획 돌렸다.
강진호가 그런 이현수를 보면서 쓴웃음을 머금었다.
“다 했냐?”
“다 하긴요. 이제 시작해야죠. 회주님이 직접 하실 겁니까?”
“흐음.”
강진호가 볼을 긁었다.
“내가 하긴 좀…….”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건 아니다. 그때마다 강진호는 직접 나서서 상대를 처리해 왔다.
죽여 버리든 백치로 만들어 버리든, 자신을 건드린 적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게 강진호의 행동 원칙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강진호가 직접 나서기 조금 그렇다.
배가 불렀냐고?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뭔가 애매한데…….’
저놈이 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이 일은 정신머리 없는 재벌가 놈이 저지른 방종에 가깝다. 강진호를 위협하거나 강진호의 주변인을 위협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패자니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안 패자니 딱히 벌을 줄 방법도 없고.
“알아서 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현수가 피식 웃었다.
“이런 조무래기까지 회주님이 직접 건드리시면 체면이 상하는 법이죠. 닭은 제가 잡겠습니다. 회주님은 용이나 잡으시죠.”
“……어쩌려고?”
“글쎄요.”
이현수가 고개를 슬쩍 돌려 정명철을 바라보았다.
‘거, 새끼. 죄를 지으려면 좀 제대로 짓든가.’
확 파봤더니 뒷구멍으로 사람 몇몇 죽였다든가, 아니면 국가적으로 손해를 크게 입혔다든가. 뭐든 좋으니 적당히 묻어버려도 괜찮을 명분만 있었어도 고민할 게 없다.
그냥 죽을 때까지 패서 묻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저 또라이 같은 놈은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면서도 마지막 선만은 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재력과 권력이 보호해 줄 수 있는 선을 철저히 지키며 일을 저질러 온 것이다.
‘이런 놈들이 정말 개 같은 놈들이지.’
이현수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때려 죽이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면 같은 짓거리를 또 하고 다닐 테죠.”
“그렇겠지.”
“그럼 뭐, 차라리 잘됐습니다. 저 새끼 죗값도 치를 겸해서 사람 한 번 만들어보죠.”
“응?”
“저 새끼가 멀쩡한 정상인이 돼서 여기서 나가면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쟤 회사 좋아, 쟤들 집안 좋아, 우리도 좋고, 저 새끼도 좋고.”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놈이 갱생이 된다고? 잘 안 되던데?”
“회주님은 뭔가 답이 없다 싶으면 그냥 목을 쑹덩쑹덩 썰어버리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애초에 갱생시키려고 노력을 해보신 적은 있습니까?”
“있지.”
“누굴요?”
“너.”
“…….”
할 말이 없어진 이현수가 입을 뻐끔거렸다.
어, 그게…….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크흐흐흠.”
이현수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여하튼 간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완전 바른생활 사나이 한 번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는요.”
이현수가 씨익 웃었다.
“총회의 방식이야 하나밖에 더 있습니까? 한 번 해보는 거죠. 저 새끼가 사람 되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뒈지는 게 먼저인지.”
“…….”
순간, 뭔가를 떠올린 강진호가 눈을 부릅떴다.
“이 실장, 설마?”
“네?”
“점주들 불렀냐?”
“이야, 말씀도 안 드렸는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지금 여기로 오고 있을 겁니다.”
이현수가 낄낄 웃으며 정명철을 툭툭, 걷어찼다.
“와, 점주들 사이에 이 새끼 던져 넣으면 어떤 꼴 벌어질지 궁금하네. 거의 사바나 다큐멘터리 수준일 텐데. 낄낄.”
강진호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상에 자신보다 나쁜 놈이 있다는 걸 새삼 실감하는 강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