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34
#1533.
대비하다 (3)
“끄으으으응…….”
“아오, 죽는다……. 이러다가 진짜 죽는다…….”
“난 벌써 죽었어.”
“죽은 새끼가 말을 하네. 빌어먹을.”
수련장에 널브러진 마염들이 몸을 일으킬 생각도 하지 못하고 꿈틀댔다.
입으로 흙먼지가 훅훅 밀려 들어왔지만, 그런 건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뼈마디가 모두 부서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프다기보다는 무력하다고 해야 할까?
“사람도 아니야.”
“나는 진작부터 아닌 줄 알았어.”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장민과 꾸준히 수련을 해온 이들이다. 나름 배려가 있던 강진호와는 다르게 장민은 그들을 정말 혹독하게 몰아쳤다.
그러다 보니 나름 절대강자와 싸우는 법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착각이었다.
이명환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직 전신에 마기의 화염을 휘두른 채 그에게 달려들던 강진호의 모습이 눈가에 어른거린다.
‘진짜 지릴 뻔했네.’
더 무서운 건 그가 실제로 오줌을 지렸다고 해도 그 사실을 놀릴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까부터 뭔가 찝찝한 냄새가 조금씩 나고 있으니까.
“끄으으으응.”
이명환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허리가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이대로 쓰러져 있을 수는 없잖은가.
“으…… 진짜 죽겠다.”
이명환이 덜덜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강할 수 있지?
모르는 건 아니다.
과거의 이명환과 마염들은 강진호의 강함을 체감할 실력이 되지 못했다.
세 살짜리 아이가 보기에는 평범한 어른이나 복싱 헤비급 챔피언이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한 건 마찬가지다.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고, 구분해야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성장하게 되면 그 차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이명환은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했다.
그가 손도 댈 수 없는 강자라는 건 알지만, 그건 장민이나 다른 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저 그들이 강진호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라고 말하기에 그렇다고 이해했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머리로는 강진호의 강함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체감하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 이명환은 강진호가 얼마나 강한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이해한 것도 아니지.’
이제는 이 정도까지 보인다가 정확하다. 아마 이명환이 더 강해진다면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은 절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끄으으응.”
그의 동료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떻게 한꺼번에 다 덤벼도 못 이기냐?”
“원래 이렇게나 차이가 났나?”
다들 지금 겪은 일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하지.’
총회 사람들이 보면 건방지기 짝이 없다고 욕을 하겠지만, 이명환은 지금 마염들의 반응에 십분 공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말 지옥 같은 수련을 해왔으니까.
장민은 사람을 몰아넣는 데는 강진호 이상 가는 측면이 있었다. 그건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장민의 말에 따르면 강진호는 후인을 키워본 적이 없는 사람이고, 본인의 재능이 너무 뛰어나서 평범한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무학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강진호의 눈에 마염들은 원숭이나 다름없다.
반면에 장민은 그동안 수많은 마교도를 키워낸 1타 강사 같은 사람이었다. 학문적인 능력으로 따진다면 1타 강사가 감히 명문대 교수에게 명함이나 내밀 수 있겠냐마는, 사람을 가르치는 능력에 있어서는 반대의 경우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장민의 강의를 들은 덕분에 그들의 실력은 말 그대로 급상승했다. 마공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스스로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리고 적을 상대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단순한 이론뿐 아니라 실전 경험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전보다 두 배는 강해졌다는 이명한의 자평이 허세가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처 발렸네.”
“……개 처 발렸지.”
강진호의 털끝 하나 손대지 못했다.
“끙.”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론 모시는 주인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는 게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해온 모든 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 좀 살려줘도 될 텐데!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밟으시냐.”
“죽이지는 않았잖아. 부상 입은 놈도 없고.”
“그게 더 힘들겠다. 어떻게 이리 잘근잘근 밟으면서 상처를 안 남길 수가 있냐…….”
다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무서웠다.”
“……말도 마라. 나는 어깨가 아까부터 올라오지 않아.”
“이제는 뭐가 좀 된 건 줄 알았더니.”
이명환이 동료들의 반응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겸손해졌네.’
생각해 보면 강진호가 오기 전까지 그들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최근 들어 슬슬 마염들을 총회 최정예 엘리트로 쳐주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 와중에 장민에게 수련을 받으며 마교로 넘어오라는 제안까지 받았다.
딱히 남보다 앞설 것 없던 그들에게는 이러한 경험이 처음 있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다들 자부심이…….
‘아니, 자만심이었구나.’
당하고 나니 실감이 난다.
강진호에게 늘씬 얻어맞고 나니 말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은 구만 리인데 벌써부터 어느 정도 만족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우리가 건방졌어.”
이명환이 단호하게 말했다.
“뭐래, 저 새끼?”
“냅 둬. 또 지가 뭐 되는 척하려는가 보지.”
이명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여하튼 이 새끼들은.’
자유분방한 것이 마염들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이놈들은 자유분방하다 못해 발랑 까졌다.
“솔직히 니들, 이 정도로 수련했으면 회주님과도 한 번 해볼 만 하다고 생각했잖아.”
“…….”
웬만하면 바로 자기는 아니라는 말을 할 마염들이지만, 이번만은 찔리는 게 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단독으로 강진호와 싸울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미친놈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마염들이 전부 달려들면 강진호를 이기는 못해도 대등한 싸움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건 사실이다.
저 장민조차도 이제는 그들 전부를 상대하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 예상이 처참하게 무너진 것이다.
“……아마 회주님은 우리가 자만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제대로 밟아주려고 하신 거고. 덕분에 자만심이 쏙 빠졌잖아.”
“……자신감이 더 빠졌는데.”
“강냉이도.”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긴 하지만, 다들 이명환의 말을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내려가자.”
“그래야지.”
마염들이 살짝 기가 죽은 얼굴로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뭐가?”
“우리가 더럽게 약하다는 건 알았는데, 거꾸로 말하면 앞으로 회주님한테 배울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이야기잖아.”
“그렇지…….”
“미묘하네, 미묘해.”
수련장을 벗어나며 이명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린 아직 멀었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일부러 과하게 손을 써 그들의 자만심을 빼준 강진호의 배려에 보답할 수 있다.
이명환이 굳은 결심을 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내일부터는 더 열심히 수련한다. 회주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
“다음에 다시 회주님하고 붙을 때는 적어도 생채기라도 내야지!”
이명환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영 시원치 않았다.
“……너 아까 못 들었냐?”
“응?”
뒤따라오던 이들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이명환을 바라보았다.
“회주님이 내일도 나오란다. 내일 다시 한다고. 아, 그때 너 기절해 있었나?”
“…….”
“개소리하지 말고 내일은 어떻게 살아남을지나 걱정해. 그게 빠르겠다.”
“…….”
* * *
우둑우둑.
강진호가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의 얼굴에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떠올라 있었다.
“간만에 몸 풀었네.”
역시 한 번씩은 이런 게 필요하다.
최근 들어서는 총회와 MK의 경영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강진호의 본질은 무인. 싸우고 투쟁하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이다.
물론 중국에서 탈출하면서 무공을 쓰기는 했고, 미국에서도 사단과 전투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런 전투로는 갈증이 해소되지가 않는다.
강한 무인과 주먹과 주먹을 맞대고 싸울 때만이 무인으로서의 갈증이 충족되는 것이다.
‘많이 컸어.’
강진호가 싸울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염들의 성장을 칭찬해 주고 싶은 기분이다. 덕분에 원래 하려던 말은 반도 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강진호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좀 심했나?’
괜히 흥에 취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이 두들겨 버렸다. 원래는 일본에서 한 일을 칭찬하고 취하할 생각이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냥 냅다 두들겨 팬 꼴이 되지 않았는가.
강진호가 살짝 뒷머리를 긁었다.
“괜히 미안하네.”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강진호가 목을 두어 번 좌우로 꺾고는 허리를 돌렸다. 간만에 내력을 운용해서인지 몸이 꽤 올라온 기분이다.
‘확실히 명상만으로는 한계가 있군.’
이제 강진호는 육체적인 수련이 거의 의미가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몸을 단련하는 방식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다. 강진호의 몸은 수련하지 않아도 절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무리를 바탕으로 한 연구와 명상이지, 몸을 쓰는 수련이 아니다.
그걸 잘 알고 있지만, 한 번씩은 이렇게 몸을 풀고 싶어진다. 이건 수련이라기보다는 욕구의 방출에 가깝다.
‘애들 안 잡으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번에야 강진호도 나름 자제를 했고 저들도 힘이 넘치는 상황이었으니 이 정도로 끝났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마염들 전체가 골병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낮게 한숨을 푹 내쉰 강진호가 수련장을 내려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슬쩍 고개를 돌려 마염들이 남아 있는 수련장 쪽을 한 번 응시했다.
‘이 정도면…….’
확실히 많이 강해졌다.
예전에는 이놈들은 언제 과거의 마염처럼 만드나 하는 암담함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차이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나 장민의 가르침이 제대로 효과를 본 모양이다. 야성은 좀 더 살아났고, 움직임이 정교해졌다. 마기에 휩쓸려 싸우는 게 아니라 마기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더 강해지겠지.’
그렇다면 정말 마염이 부활했다고 말해도 될 것이다.
저들이 지금 가진 마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고, 자신의 뒤를 받쳐 줄 수 있다면?
강진호가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슬슬 강진호가 구상하던 총회의 모습이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무력으로도 저 중국의 삼왕계에 밀리지 않는 시간이 올 것이다.
그러니…….
“응?”
생각에 잠겨 산을 내려가던 강진호가 소란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저거, 뭐 하는 거지?”
연무장 쪽을 바라본 강진호의 눈이 살짝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