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565
#1564.
도전받다 (4)
“정명철?”
“예.”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이름이 다시 나온다는 게 의아했다.
“설마 그 정명철이 또 사고를 쳤나?”
사람이면 그럴 수가 없을 텐데.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강진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명철의 뛰어난 의지에 박수를 쳐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명철은 조용합니다. 지도 사람인데 그렇게 처맞아놓고 벌써 예전처럼 쌩쌩해질 수는 없겠죠. 보아하니 정신적인 트라우마가 심해서 일상 생활도 잘 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적당히 하라니까.”
“적당히는 했습니다, 적당히는. 문제는 그 적당히의 기준이 서로 달랐을 뿐이죠.”
“…….”
“여하튼.”
이현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놈은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회장이 대노한 모양입니다.”
“내놓은 자식이라며?”
“……글쎄요. 정확하게는 내놓은 손자라는 말이 더 맞겠죠. 그런데 내놓은 손자도 손자는 손자인 모양입니다. 그 회장이 지금 미쳐 날뛰고 있다네요.”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봐.”
“범인을 잡아내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답니다. 여기저기 다 들쑤시는 모양이네요.”
“음.”
“검경은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있는 대로 다 찌르면서 저희 이름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아마 이제는 MK라는 이름 정도는 알아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강진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문제가 크게 생겼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지만, 조금 귀찮아지기는 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나올까?”
“할 게 없겠죠.”
이현수가 피식 웃는다.
“저들과 저희는 교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업적으로 조금도 얽혀 있지 않다는 거죠.”
“그건 그렇지.”
“기껏해야 카페에 납품되는 식료품 정도가 조금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그거야 언제든 대체가 가능한 거니까 피해라고 할 것도 없고.”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자립이 된다는 거군.”
“저희가 규모에 비해서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피해가 없는 겁니다, 회주님.”
“…….”
그거 좀 뼈아픈 말인데.
강진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이현수가 여전히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놈들이 저희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지금 전 방위적으로 저희를 압박할 방법을 찾아보고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당황하겠죠.”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아뇨. 뭣도 없어서요.”
“…….”
강진호의 이마에 핏대가 살짝 솟았다.
“거, 너무 까는 것 같은데.”
“현실은 현실입니다. 인정하셔야죠.”
그렇긴 하지만…….
뭔가 악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은 강진호의 착각일까?
“사실 압박이라는 건 뭘 하려는 이들에게나 통하는 법이죠. 저희는 지금 아무것도 안 하잖습니까.”
“……듣고 있자니 집에서 노는 백수 같은데.”
“비슷하죠, 비슷하죠. 그 인력과 그 인재 풀을 그만한 일에 소비하고 있으니까요.”
그 인재 풀, 썩었다고 네가 그랬잖아.
저 새끼, 지가 담당 안 한다고 말 바로 바뀌는 거 봐라, 저거.
“여하튼 덕분에 이득입니다.”
“응?”
“저놈들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아마 파보면 파 볼수록 황당하기만 할 겁니다.”
“……진짜 괜찮은가?”
“물론이죠.”
이현수가 싱긋 웃었다.
“저쪽 놈들이 어쩌고 있을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네요.”
* * *
“방법이 없어?”
“……예, 회장님.”
정홍근의 얼굴이 붉게 달라올랐다.
“아니, 그게 뭔 말이나 되는 소리야? 어떻게 압박할 방법이 없을 수가 있어?”
“그, 그게…….”
“그놈들, 카페한다면서! 그 카페는?”
“매, 매출이 워낙 잘나옵니다. 지금 매출만 보면 업계 1위라도 먹을 기세입니다.”
“거기에 우리 쪽 물건 들어가는 건 없어?”
“간단한 식재료 정도라……. 이건 저희가 공급을 끊으면 바로 대체가 됩니다. 그럼 저희 매출만 하락할 뿐입니다.”
“그만한 가게들을 냈고! 또 부동산업을 한다면 은행권에 대출이 밀려 있을 것 아냐? 은행장들 소환해서 그거 회수하라고 압박해! 그런 방법까지 내가 알려줘야 하나?”
“……회장님.”
“뭐야, 또!”
“제, 제가 확인을 해봤는데…….”
박상우의 심상찮은 목소리에 정홍근이 입을 닫았다.
“그, 그…… MK라는 곳은 부채가 없습니다.”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입니다. 부채가 없습니다. 은행권이고 뭐고, 회사에 빚 자체가 없습니다.”
정홍근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빚이 없다고?”
“예.”
“대출이 없다는 소리야?”
“그렇습니다.”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정홍근이 황당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부채가 없는 기업.
그건 회사가 굉장히 우량하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건 회사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운영되었다는 뜻이다.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밖에 없다.
대출이란 단순히 빚을 내는 게 아니다. 대출 상환금을 통해 세금을 줄일 수도 있고, 확실한 기회에 목돈을 끌어들여 더 큰 이득을 볼 수도 있다.
부채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좋은 경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부채를 안고 가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부채가 적은 것도 아니고, 아예 빚이 없다고?
“부동산업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채가 없을 수가 있지? 그놈들은 건물 살 때 뭘로 샀는데?”
“최근 구입한 건물은 없고, 사옥을 새로 지은 건 있는데, 그 돈을 전부 현금으로 냈답니다.”
“……강남 땅에 사옥을 올리면서 현금박치기를 했다고?”
“그렇습니다.”
정홍근이 황당함에 말을 잊었다.
“세, 세금 쪽은? 국세청장하고 연락해 봤어?”
“이미 완납 처리된 지 오래랍니다. 전담 부서까지 따로 있는데, 손댈 거리 하나 없으니 괜히 진 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박상우가 한마디를 더 붙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거기 어설프게 파고들려고 하시다가는 이쪽에서도 귀 사에 곤란한 일을 해드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거기 좀 민감한 곳입니다. 적당히 하시죠.”
MK를 들쑤시려고 하면 바로 세무 조사를 들어오겠다는 뜻이었다.
이 말은 괜히 전해봐야 정홍근의 화만 돋을 뿐이다.
“방법이 없다는 거야?”
“……가만히 있는 곳을 찾아가 시비를 거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저희와 아주 얽히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그 불가능을 해버리는 놈들이라…….”
이건 박상우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이 쥐게 될 카드 중 가장 덜 예민한 것을 들이밀 생각이었건만, 그렇게 뛰어다녔음에도 카드를 아예 확보할 수가 없었다.
살다 살다 이런 황당한 기업은 처음 봤다.
“그럼 불법이라도 건드려야 할 것 아냐. 그 건물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게 분명하잖아! 불법 건축물이나, 유흥 쪽으로 손대고 있는 것들 싹 다 털어봐!”
“없습니다, 회장님.”
“뭐…… 뭣?”
“정말 없습니다. 건물은 다들 깨끗합니다. 불법 건축물은 존재하지도 않고, 불법으로 증축된 것들은 올초에 모두 재건축을 하거나 철거를 마쳤습니다. 심지어 건물에 들어온 이들의 업종도 관리하는지, 손댈 것 없이 깨끗합니다.”
“…….”
정홍근이 멍한 눈으로 박상우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예.”
“저놈들이 그럼 불법도 하나도 안 저지르고, 편법도 안 저지르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 대출도 안 내면서 맨바닥에서 기어 올라와 중견 기업이 됐다는 소리야?”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걸 나보고 지금 믿으라고?”
이 순간만큼은 정홍근의 말에 백 프로 공감하는 박상우였다.
대한민국이라는 곳은 기업을 운영하려면 도무지 편법을 저지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고 중견 기업, 그것도 대기업에 육박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
“그, 그러니까…… 음…….”
정홍근도 이 사태만은 예상하지 못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뜻인가?”
“예, 그렇습니다.”
“……그쪽 카페 근처에 다른 프렌차이즈를 내버리는 건 어떤가?”
“무립니다.”
박상우가 고개를 내저었다.
“저쪽, 프렌차이즈가 너무 영업이 잘됩니다. 어설프게 옆에 들어갔다가는 이쪽이 죽습니다.”
정홍근이 달아오른 얼굴로 담배를 빼 물었다.
“도대체 이게 뭔 일이야, 대체!”
“회장님…….”
“그만. 무슨 말 하려는 건지 아니까, 거기까지 하도록 해!”
“…….”
박상우가 입을 닫았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정홍근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그렇단 말이지.’
정홍근이 눈을 찌푸렸다.
박상우의 말대로라면 도무지 파고들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태광 단독으로는 MK에 압박을 넣을 수 없다.
“부동산 사업은 건드릴 방법이 없겠지?”
“불법 건축물이 좀 있거나 세금을 빼돌리는 정황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무리입니다.”
“그래. 그럼 건드릴 게 카페뿐이라는 건데…….”
정홍근이 손에 든 MK의 서류를 휙휙 넘겼다.
“이 회장이라는 놈은 못 건드리나? 강진호라는 놈?”
“이미지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놈이 왜 이미지가 좋다는 거야?”
“이 사람이 그…… 저번 총리 사태 때 구속되었던 그 사람입니다.”
“……뭐라고 했나?”
“김명찬 총리 사태 때 중국에서 암살당할 뻔한 그 사람이 바로 강진호입니다.”
정홍근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권이 약점을 잡혔군.”
“그것까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최근 이미지가 너무 좋습니다. 카페의 매출도 이 회장이 광고 모델로 나서면서 급상승했다고 합니다.”
“멀겋게 생겼군.”
정홍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이미지, 잘나가는 이미지란 말이지.”
“회장님?”
“그 카페가 망하게 되면 그 이미지도 작살나겠군. 이미지로 뜬 건 이미지가 망가지면 금방 거품이 빠지는 법이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필요가 없지.”
“……예?”
정홍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원사들에게 모두 연락 돌려서 내가 보잔다고 해.”
“모, 모두를 말입니까?”
“아니, 아니지. 굳이 모두를 모을 필요는 없지. 의결권 있는 주요사들에게 돌려. 해야 할 게 있다고, 내가 소집했다고 해.”
“설마?”
“뭘 그리 놀라나. 올라오는 기업 하나 밟는 거야 심심하면 벌어지는 일인데. 하나 추가되는 것뿐이야.”
박상우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가능하다.
태광 하나로는 저 카페를 망하게 할 수 없겠지만, 회원사, 그러니까 한국 십대그룹이 모두 모인다면 MK 하나 박살 내는 건 일도 아니다.
그 압력은 MK가 아니라 태광도 버텨낼 수 없다.
“권력이라는 건 이렇게 쓰는 거지. 걱정할 것 없어. 일주일, 딱 일주일이면 돼. 일주일 뒤에는 그 강진호라는 놈이 여기에 머리를 처박은 채 울고 있을 테니까.”
“…….”
“뭐 하나?”
“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박상우가 밖으로 뛰쳐나가자 정홍근이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감히 대한민국에서 내게 대항을 해?”
돈과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