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681
#1680.
물어뜯다 (5)
우우우우우웅!
인적이 드문 중국의 북방. 그 외지의 한 곳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순간적으로 확 밝혀진 빛이 사그라들자, 그 속에서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됐습니다!”
위긴스가 상기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이들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뒈지는 줄 알았네.”
“이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좀 쓸 것이지!”
쏟아지는 비난에도 위긴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리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적절한 상황을 기다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위긴스가 손에 들린 커다란 수정을 내려다봤다.
‘너무 늦지 않게 완성되어 다행이군.’
휴대용 마나 배터리.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그건 전달성만 떨어뜨릴 뿐이다. 지금 이 수정에 붙어야 할 말은 그걸로 족했다.
“일회용이라는 게 문제지만.”
쩌적, 금이 가 바스라지는 수정을 보며 위긴스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 마나 배터리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들어간 돈을 말한다면 저기 지쳐 앉아 있는 이현수가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잡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덕분에 그들은 목숨을 구했다.
“그런데 그건 대체 뭡니까?”
그의 속내도 모르고 이현수가 순진하게 물어왔다. 위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마나를 주입해 놓은 배터리지.”
“……마나 배터리요?”
“그래.”
이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마나가 뭔 전기도 아니고,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겁니까?”
“안 됐으면 지금 네가 살아 있을 것 같은가?”
이현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위긴스가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은 마나를 주입한 물건으로 부족한 마나 양을 충당한다는 생각을 누구도 하지 못했을 뿐이야.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은가를 따져 보기 위해서는 우선 시도를 해봐야 하는데, 시도 자체가 없었으니 가부를 논할 일이 없지.”
“그런데 갑자기 그런 발상을 어떻게?”
“보조 배터리로 휴대폰 충전하다가.”
“…….”
“문제라도?”
“아니…… 그냥요.”
이현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보조 배터리 덕분에 그들이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다.
“이리 말하면 쉬운 일처럼 들리겠지만, 애초에 이건 내가 아닌 마법사들은 사용할 수 없는 걸세. 충전을 위해서는 막대한 마나 양이 필요한데, 그만한 마나를 소유한 마법사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몇 번에 걸쳐서 충전하는 것도 불가능하네.”
“파장도 맞아야겠구요.”
“그렇지.”
위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자신의 제자들을 동력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마나의 파장을 맞추면서 곁다리로 나온 결과물이다. 이 작은 수정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들여야 하는 노력과 막대한 돈을 생각한다면 절대 효율이 좋은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살다 보면 때때로 효율을 무시할 필요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덕에 이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럼 진즉에 말이라도 해주시지.”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아군부터 속여야 하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이현수가 입을 다물었다.
불만이야 왜 없겠냐마는 저 말에는 반박할 수 없다. 덕분에 결과가 좋은 것도 사실이고.
‘우리가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니, 창왕이 모든 병력을 거기에 들이박았겠지.’
전투 중에 조금이라도 뒤를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였다든가 믿는 구석이 있는 티를 냈다면, 창왕이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현수야 어떻게든 그 사실을 숨길 수 있겠지만, 바토르나 장민이 창왕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여하튼.
위긴스가 준비한 비장의 한 수 덕분에 그 망할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위긴스.”
“예, 로드.”
강진호가 고개를 돌려 위긴스를 바라봤다.
“상황은?”
“아직 정확한 위치는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있는 힘을 다해서 최대한 북쪽으로 이동했을 뿐입니다. GPS로 정확히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아마도 지금 위치는 장자커우 북쪽의 내몽골 자치구의 경계쯤일 겁니다.”
“내몽골 자치구라…….”
그 말을 들은 차이커창이 눈을 찌푸렸다.
“어째서 북쪽으로 이동했나? 남쪽으로 이동했다면 홍왕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이현수가 썩은 눈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저…… 전부터 좀 죄송한데, 패배자께서는 주둥아리를 다물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이, 이놈이?”
“홍왕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고 좋을 게 뭐가 있다는 거야. 어차피 그대로 밀고 내려오는 창왕계를 막지도 못할 텐데.”
이현수는 위긴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지금 홍왕계는 창왕계에 대항해 저지력을 발휘할 수 없다.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할 수 있다면 다음이 있겠지만, 이대로 아래로 내려간다면 상황을 수습하기도 전에 지리멸렬해지고 말 것이다.
“그럼 어쩔 셈이냐?”
“북상해야지.”
이현수가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일단은 중국에서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최종적으로는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야 돼. 그전에 경유지로 몽골에 가야지.”
“……몽골.”
이현수가 차이커창을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니 선택해라. 이대로 몽골로 가서 한국으로 함께 동행할 건지, 그게 아니면 너희는 너희대로 이곳에서 창왕계를 돌파해 홍왕계의 영역으로 넘어가 볼 건지.”
차이커창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그가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홍왕이 먼저 대답을 했으니까.
“선택할 것도 없다. 우리는 한국으로 간다.”
“홍왕이시여?”
홍왕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우리 둘만의 힘으로는 독이 오른 창왕계의 영역을 돌파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게 아니면 크게 우회해야 할 텐데, 그 시간이면 창왕이 우리의 구역을 모두 짓밟은 뒤겠지.”
“……옳은 말씀이십니다.”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는 게 맞다. 한국으로 갈 수만 있다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테니까.”
정확한 판단이었다.
하지만 이현수는 의외라는 얼굴로 홍왕을 바라보았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동행하지 않겠다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홍왕의 높은 자존심을 고려한다면 짐 덩이처럼 얹혀 한국으로 가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홍왕은 그런 취급을 감수하고서라도 최선을 수를 선택하려 했다.
과거의 홍왕이었다면 과연 이 길을 선택했을까?
‘회주님과 창왕의 대결을 보고 뭔가 느낀 게 있는 걸까?’
가만히 홍왕을 바라보던 이현수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어찌 됐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이현수가 강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100㎞ 정도는 무인에게 그리 먼 거리가 아닙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한 시간 내에 따라잡힐 수 있는 거립니다.”
강진호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창왕이 우리가 어디로 이동했는지 모른다는 점이겠지만…… 그놈의 머리를 생각하면 지금쯤 대충은 짐작했을 겁니다.”
이현수는 절대 창왕을 예측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건 괴물이야.’
위긴스가 말도 안 되는 변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이곳의 모두가 목이 잘렸을 것이다. 창왕이 만들어놓은 판 안으로 뛰어든다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절대로.
그러니 우선은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서 이탈해 판 자체를 새로 짜야 했다.
“그러니 빨…… 쿨럭! 쿨럭!”
이현수가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했다. 그의 입가로 붉은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빌어먹을.”
상황은 여전히 최악이다.
창왕에게 제대로 엿을 먹이기는 했지만, 그들을 중독시킨 이 생화학무기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대로 자연 치유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무인이기에 아직 버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독이 심해지고 체력이 떨어질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가진 시간적 여유는 불과 30분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찰칵.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 강진호가 연기를 뿜어내자마자 말했다.
“이동한다.”
강진호가 슬쩍 뒤를 돌아봤다.
“이러고 다시 잡히는 것만큼 망신스러운 일도 없겠지.”
“……확실히 그건 최악이죠.”
강진호가 담배 연기를 뿜어내고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우선은 살아남고 볼 일이지. 간다.”
“예!”
그 말이면 충분했다.
모두가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논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건 이곳을 탈출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위긴스.”
“예, 로드!”
필사적으로 강진호를 따라붙던 위긴스가 즉각 대답했다.
“계획은?”
“내몽골 자치구는 엄밀하게 말해 중국입니다. 이곳을 완전히 벗어나 몽골에 들어서야 안심할 수 있습니다.”
“음.”
“몽골에 들어서면 픽업할 이들이 올 겁니다.”
“그럼. 몽골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거로군.”
“예. 몽골의 힘은 감히 중국과 비교할 수 없지만, 국경을 넘어 병력을 파견한다는 건 쉬운 게 아닙니다. 수많은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 모든 조건이 단기간에 충족될 리가 없습니다.”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위긴스가 눈을 찌푸렸다.
예전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창왕을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이 차마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몽골로 가야 합니다. 몽골에는 바토르 님을 따르는 초원의 전사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를 도와 저들과 싸우려 들 이들은 그들밖에 없습니다.”
강진호가 슬쩍 바토르를 돌아보았다.
“이미 대기하고 있을 거다.”
“좋아.”
대충 상황이 정리가 됐다.
문제가 있다면…….
덥석.
강진호가 손을 뻗어 뒤처지려 하는 이현수의 뒷목을 움켜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회, 회주님!”
“곱게 데려갈 여력은 없군. 버텨.”
이현수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짐짝 취급을 당하는 게 기분 좋을 사람은 없겠지만, 진짜 피해야 할 일은 짐짝 취급이 아니라 정말 짐이 되는 상황이다.
체력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정신이 얼얼해진다.
“그 가스의 정체는 파악할 수 없나?”
“지금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조사를 할 수 있는 어떤 기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 창왕의 성향으로 판단했을 때, 지금까지 사용된 적 없는 신무기일 확률이 높습니다.”
“신무기라…….”
강진호가 슬쩍 이현수의 상태를 살폈다.
‘그런 것치고는 그리 심각하진 않군.’
하기야 그들의 감각을 속이면서 가스를 살포한다는 게 쉬울 리 없다. 무색무취하며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해독제가 분명하여 아군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충족하면서 살상력까지 갖춘 화학무기를 손에 넣었다면,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도 남았겠지.
“버틸 만합니다.”
“못 버텨도 버텨.”
“예!”
이현수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데…….”
“예, 로드.”
“내몽골 자치구에는 사람이 살지 않나?”
“……그럴 리가요. 사람이 사니 자치구죠.”
“그럼 왜 아까부터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거지?”
“…….”
위긴스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멈춰졌다.
“아무래도…….”
강진호가 먼 앞쪽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냈다.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군.”
저 멀리 보이는 황무지 너머로 흙먼지의 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