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1851
#1850.
다그치다 (5)
‘그러니까…….’
천태훈이 멍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이유는 뭐…….
그래, 이유는 간단하다.
방진훈이 그를 뒷산에 있는 연무장으로 불렀고, 그는 부르는 대로 도착했다. 여기에 별다른 이유가 붙을 게 뭐가 있겠는가.
문제는 이유가 아니라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광경이었다.
‘저분들이 여기 왜 와 계시냐고. 그것도 저런 얼굴로.’
그의 앞에 이사들이 보인다.
평소에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거나, 화통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터뜨리던 양반들이 지금은 전쟁을 앞둔 장수들처럼 비장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서 있었다.
“…….”
그 기세에 눌린 천태훈이 슬쩍 옆을 돌아보았다.
‘이 새끼들은 여기 또 왜 있지?’
눈엣가시 같은 놈들.
마염들의 수장인 이명환과 바토르의 수제자인 공영길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서 있다.
응? 기절할 것 같은 얼굴?
천태훈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 둘을 돌아보았다.
이명환이야 그렇다 치자. 저 인간은 제 놈이 가진 직위나 능력과 다르게 좀 소심한 타입이니까.
하지만 공영길은 다르다.
저 뇌까지 근육으로 차 있는 인간은 과한 자신감 때문에 평소에도 다른 회원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던 인간이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생각 없는 황소 같은 인간이라 문제를 만드는 타입이란 의미다.
그런데 그런 놈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다고?
“야…… 너흰 뭐 알고 왔냐?”
“……응?”
이명한이 고개를 돌려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뭐, 이런 병신이 다 있냐는 눈으로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신 겁니까?”
“……난 그냥 사부님이 오라길래.”
“아…….”
공영길과 이명한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천태훈은 급격하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뭔 일이…….”
“이 새끼들이.”
그가 막 입을 연 순간, 방진훈이 잡아 죽일 듯한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찔끔한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푹 숙였다.
“다 처 돌아 가지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사님.”
특히나 방진훈의 제자인 천태훈은 감히 눈도 마주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 씨. 진짜 미치겠네.’
적어도 왜 불렀는지라도 이야기를 해줘야…….
바로 그때였다.
“회주님 오십니다.”
방진훈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앞쪽에서 걸어오는 강진호와 이현수의 모습이 보였다.
연무장에 도착한 강진호가 모두를 한 번 훑어보고는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
강진호의 시선을 받은 천태훈이 마치 메두사라도 본 것처럼 굳어졌다.
“한 명?”
“예, 뭐…….”
방진훈이 머리를 긁었다.
“그냥 평가만으로는 애매하고, 다른 놈들은 테스트를 해서 뽑아야 하는데…… 아직 테스트를 시작도 못했습니다. 개중에 좀 확실하다 싶은 놈 하나만 불러왔습니다.”
“…….”
네? 이게 뭔 소리이신지?
여전히 영문을 모른 천태훈이 방진훈에게 시선을 보냈다.
“쟨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인데?””
“안다고 달라질 게 있습니까? 그냥 굴리면 그만이지.”
“그래도 동의를…….”
“아, 제가 동의하면 됩니다. 제자라는 건 대학원생 같은 거라서 선택권도 없고, 인권도 없거든요.”
“…….”
강진호가 더없이 안쓰러운 눈으로 천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천태훈이 눈에 힘을 주고 먼 산을 바라보았다.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은 충동을 겨우 막아낸 강진호가 코를 한 번 문지르고는 입을 열었다.
“이걸로는 좀 부족해.”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음?”
이현수가 강진호를 보며 말했다.
“물론 회주님의 말대로 이대로는 저들과 수를 맞출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수를 맞추는 것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음…….”
“최대한 수는 맞춰야겠지만,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는 건 되레 이쪽의 전력을 깎아먹는 일입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최대한 영리하게 써야죠.”
“그럼?”
“여기 있는 인원은 이대로 훈련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가능성 있는 이들을 테스트해 합류시키는 건 찬성이지만, 애매하면 그냥 집단으로 왕급을 상대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겁니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이현수가 단호한 눈으로 말했다.
“이제는 ‘될까’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안 됩니다.”
“…….”
“그럼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야죠.”
이현수의 단호한 말에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회주님께서는 일단은 여기 있는 이들만 확실하게 처리해 주시면 됩니다.”
“안 그래도…….”
강진호가 이를 드러낸다.
“그러려고 했어.”
그리고 그 살기 어린 눈빛을 본 천태훈이 동그래진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요.’
곧 알게 될 일이었다.
털썩.
“…….”
사람이 정말 지치고 아프고 힘들면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된다?
그건 정말 누구도 바라지 않는 상황일 것이다.
‘죽을 것 같다.’
엄살이 아니라 진짜로.
이건 매타작 수준이 아니라 사람을 탈곡기에 넣고 돌린 수준이다. 전신에 아프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그야 당연하지.
저 강진호를 상대로 일대일로 싸웠는데.
순간순간 의식이 저 멀리 날아가다 보니 정확하게 인식을 할 수가 없다. 과연 이 상황을 영광으로 알아야 하는가, 아니면 지옥에 떨어진 자신을 저주해야 하는가.
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왔다.
쿠우우우우웅!
“가, 감사합…….”
쿵!
공영길의 커다란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아, 잘렸다는 말이 아니라 의식이 날아가면서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는 뜻이다.
그래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천태훈과는 다르게 공영길은 깔끔하게 기절하고 말았다. 하지만 천태훈은 그 광경을 보면서 조금의 승리감도 느끼지 못했다.
‘빌어먹을.’
기절했다는 건 기절할 때까지 달려들었다는 뜻.
그에 비해 공영길이 몇 배는 더 열성적으로 싸웠다는 뜻이었다.
부들부들 떨며 몸을 옆으로 돌린 천태훈의 눈에 이미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괴물 같은…….’
강진호가 강한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가 이사들과 연신 차륜전을 벌이면서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고 생각한 이는 또 몇이나 되었겠는가.
하늘 위에는 언제나 하늘이 있고, 그 하늘 위에 또 하늘이 존재했다.
털썩.
마지막으로 이명환이 그 자리에서 꼬꾸러지자 강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다음.”
다음?
이미 다 쓰러졌는데 또 다음이라니? 여기 누가 또 있나?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대자로 뻗어 있던 바토르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짐승같이 이를 갈며 투기를 끌어올렸다.
‘저분, 분명 기절했었는데?’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는 모습을 분명 두 눈으로 봤다. 그런데 강진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식을 회복하고 투기를 내뿜고 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앗!”
그러고는 성난 황소처럼 강진호를 향해 달려든다. 전신에서 붉은 마기를 화염처럼 내뿜으며 말이다.
하지만…….
쿠우우우우웅!
그그그그그극!
강진호가 뻗어낸 손이 바토르의 어깨를 움켜잡는다. 황소처럼 날뛰던 바토르가 그 손을 밀어내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 파댔다.
“힘만으론 안 된다고 했을 텐데?”
“흐흐,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주인! 이제 와 내가 정교함을 추구한다고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겠나? 힘이 모자라다면, 힘을 더 기르면 그만이다.”
강진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좋지.”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아아앙!
바토르의 몸이 쏘아낸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그의 배에 날아든 강진호의 일격이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힘은 단기간에 기르는 게 아니지.”
“쿨럭!”
피를 토해낸 바토르가 핏발이 선 눈으로 강진호를 노려본다.
“네 힘은 이미 충분해. 내력도 모자랄 게 없지. 오히려 내공과 외공의 조화 덕분에 네가 낼 수 있는 힘은 나조차 능가할 거다.”
“…….”
“하지만 그건 힘이 세다 이상이 되지 못해. 드넓은 강에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흘러도 느릿하게 흐르는 강물을 무서워하는 이는 없어. 하지만 그 십분의 일도 되지 않는 양이 폭포가 되어 흐를 때는 감히 그 아래에 들어가려는 이가 없지.”
“……무슨 의미냐?”
“힘이라는 건 끊어 칠 때 의미가 있는 거다.”
바토르가 멍한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동일한 힘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폭발시킬 수 있는가, 뭉치고 뭉친 힘을 얼마나 단기간에 상대의 안에 쑤셔 박을 수 있는가.”
강진호가 고개를 내저었다.
“네 권은 늘어진 고무줄 같다. 힘은 어마어마하게 실려 있지만, 그 힘이 긴 기간 동안 나뉘어 분출돼서 딱히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아. 적당히 방향만 바꿔주면 관계도 없는 곳으로 계속 뻗어 나가지.”
이건 이미 백연홍과의 싸움에서도 느낀 것이다.
“모르진 않았겠지.”
“……알고 있었다.”
“그래. 예전에는 알았겠지. 지금은 잊었고.”
그 말에 바토르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호의 말이 딱 맞다. 모르지는 않았다. 무학을 배우기 시작할 때 누구나 듣는 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잊었다. 머리로만 알고 되새기지 않는 지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방향을 찾았다고 생각하면 더는 돌아보지 않아. 그걸 갈고닦아 나가는 게 옳다고 믿으니까. 물론 그건 틀리지 않았지.”
“…….”
“하지만 자신이 옳다 생각한 길이 한계에 도달했다면, 무얼 놓쳤는지에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바토르가 피에 젖은 이를 드러냈다.
“한 방 더!”
“얼마든지.”
바토르가 괴성을 내지르며 강진호에게 달려든다. 그 한 발, 한 발에 지축이 흔들리고, 산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기세의 돌진을 보면서도 강진호는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콰앙!
짧은 폭음.
그 폭음과 함께 바토르의 몸이 산 너머로 날아간다.
“바, 바토르 님…….”
천태훈이 기겁을 했지만, 그를 제외한 누구도 날아간 바토르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빨리 시작하시죠.”
위긴스.
언제나 여유 넘치던 그의 얼굴이 아니다. 차갑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한 위긴스가 살기를 있는 대로 내뿜으며 강진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진호가 그런 위긴스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대책은?”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럼 똑같을 텐데?”
“알게 뭡니까. 수련이라는 게 그런 거죠. 몸으로 수도 없이 겪어보며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
“좋은 대답이야.”
위긴스가 검을 휘두르며 강진호에게 달려든다. 그의 검이 뇌전을 두르고 맹렬하게 휘둘러진다.
“끄으으.”
“……빌어먹을.”
그 와중에 쓰러져 있던 이들이 하나둘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또 하나를 쓰러뜨린 강진호를 향해 짐승처럼 달려든다.
이윽고…….
“뭐 해?”
천태훈이 가만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날려진 이들은 보이지 않고, 쓰러진 이들은 의식을 잃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것은 그뿐이다.
“들어와.”
“…….”
자신이 재수가 좋은 건지, 아니면 재수가 없는 건지 판단을 내리지 못한 천태훈이 눈물을 머금고 강진호를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