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58
#757.
내맡기다 (2)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시각이라 말할 것이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다. 그들의 감각은 대부분 시각에 집중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인간은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을 느끼게 된다.
불길함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불길하다 말하는 것의 대부분은 시각적인 정보다.
음산한 어둠, 무너져 가는 폐가, 혹은 기이한 느낌을 주는 사람.
하지만 홍왕은 시각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무인의 목적은 스스로 자연이 되는 것이다. 보이는 것 전부가 모두 자연인 법. 음산함도, 활기참도 모두가 자연이라면, 그 자연의 모습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그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시각이 아닌 감각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사실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었다.
섬뜩함.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감각을 굳이 말로 풀어낸다면 섬뜩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강진호에게서 느끼던 공포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귀가 몸을 일으킨다.
갈라져 버린 바다의 한중간에서, 마귀는 비척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 동작 하나하나가 홍왕의 두 눈에 아프도록 박혀들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강진호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강진호였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저자가 강진호가 아니라 외치고 있다. 시각과 감각이 충돌한다. 평소라면 고민의 여지없이 감각의 손을 들어주었을 홍왕조차 지금은 주저하고 있었다.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눈앞에 보이는 자는 분명히 강진호다. 그런데 강진호가 아니라니?
혼란.
지독한 혼란이 홍왕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혼란조차 오래가지 못했다. 혼란을 밀어낸 곳을 불길함과 고통이 채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홍왕은 고개를 내려 자신의 상처를 볼 수 있었다.
베였다.
깊게 갈라진 상처 사이로 새하얀 뼈가 드러났다. 언제 이런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는가를 돌이켜 보게 될 정도로 위중한 상처다.
그럼에도 홍왕의 시선은 상처에 머물지 않았다. 육체의 상처는 치명적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저 존재보다 치명적이지는 않다.
보인다.
그가.
강진호이되 이제는 강진호라 지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홍왕을 향해 덜컥대는 목각인형처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움찔.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홍왕의 몸이 들썩였다.
알 것 같다.
지금 저 존재를 왜 홍왕이 강진호와 다르다 규정하고 있는 건지.
강진호에게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두려움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강진호에게는 없던 것이 있다.
사내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홍왕의 코는 지독한 비린내에 시달렸다. 마치 짐승이 날카롭기 짝이 없는 이빨을 드러내고 그의 목 앞에서 으르렁대는 것과 같은 야성.
금방이라도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짐승에게서 느껴지는 날것의 느낌이 홍왕을 물러서게 만들고 있었다.
거걱대던 강진호가 마침내 몸을 완전히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새로운 차에 탄 사람이 살짝 살짝 액셀을 밟으며 차의 상태를 점검하듯이, 강진호는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움직여 보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마치 이 몸이 처음이라는 듯, 그게 아니면 익숙하지 않은 육체를 움직이고 있다는 듯.
그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불길하기 짝이 없다.
“크흐…….”
마침내 강진호의 입이 벌어지고 낮고 무거운, 그리고 섬뜩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놈, 이제야…….”
강진호가 손을 들어 얼굴을 훔쳤다. 얼굴 위로 흘러내리는 바닷물을 거칠게 훑어 바닥으로 뿌린 강진호가 고개를 들었다.
‘다르다.’
이제는 확실하다.
다르다. 확실히 다르다.
강진호가 흘리는 눈빛은 조금 전의 그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강진호는 지독한 마기와 내뿜는 존재였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진호의 눈은 요사스레 번들대고 있다. 그런 탓에 같은 얼굴임에도 그 인상이 확연히 변해 버렸다.
“너는…….”
홍왕이 뭔가 말하려던 순간, 갈라진 바닷물이 일거에 그들에게 들이쳤다. 홍왕은 입을 다물고 몸을 띄워 올렸다. 몇 번이고 파도가 치고 물결이 백색의 포말을 뿜어낸다.
그 혼란의 와중에도 홍왕은 강진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강진호가 어느새 다가와 그의 목에 칼을 박아 넣고 낮게 이죽일 것 같은 압박이 그의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강진호는 굳이 바다 위에 서지 않았다. 무릎까지 바닷물에 잠겨든 그가 고개를 들어 홍왕을 바라보았다.
“너는 누구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리석은 질문이겠지만, 이걸 묻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질문을 받은 강진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하…… 하하하…….”
나직하게 시작된 웃음.
하지만 그 웃음은 결코 나직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하하…… 하하하핫! 크하하하하하하핫!”
광소가 메아리친다.
핏빛이 담겨 있는 것처럼 진득한, 절규에 가까운 그 광소에 바다마저 두려움에 떨었다. 그, 만지면 묻어날 듯한 과도한 광기에 홍왕은 짓눌리는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홍왕이 말이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가 누군가.
그는 홍왕이다.
그는 중원을 지배하는 삼왕의 하나이자, 하늘 아래 권으로는 무적을 자부하는 자다. 그의 명이면 목숨을 바칠 이가 십만을 넘는다. 그는 말 그대로 왕이었다. 천하를 지배하는 왕.
그런 홍왕이 지금 저자의 존재감 앞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강진호가 이를 드러냈다.
야수처럼 으르렁대던 그가 적루를 움켜잡았다.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물은 거냐? 내가? 내가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이 머저리 같은 놈! 내가 누구냐고?”
그건 절규였다.
홍왕은 강진호가 내뿜는 절규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감정이 홍수처럼 그에게 밀려 들어온다.
분노, 좌절, 슬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강함은 있되 그 방향이 존재하지 않는 마구잡이의 감정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왔다.
“내가 누구인 것 같으냐?”
그 목소리에 담겨 있는 분노는 홍왕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상이 떨고 있다.
한마디, 한마디가 울릴 때마다 바다가 웅웅대며 그의 말에 호응한다. 마치 세상에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넌…….”
“닥쳐.”
강진호가, 아니, 강진호가 아닌 강진호가 섬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지?”
“…….”
맞는 말이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저 또 다른 강진호는 지금 명백하게 홍왕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게 뭔지 가르쳐 주지.”
저벅.
강진호가 홍루를 떨치며 홍왕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홍왕이 자신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홍왕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버렸다.
‘물러난다?’
홍왕이 당황하는 이유는 자신이 물러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물러남은 이전의 강진호에게서도 경험했다. 특별히 대단케 여길 일이 아니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물러남의 과정 때문이었다.
저자가 두렵기 때문에 뒤로 물러난 게 아니다. 절로 굽혀지는 무릎을 당황 속에서 억지로 펴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난 것이다.
무릎이 굽혀진다?
무릎이?
홍왕의 얼굴이 치욕으로 물들었다. 그는 무릎을 꿇게 만드는 존재이지, 스스로의 무릎을 굽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왕이다.
왕이 누구에게 무릎을 굽힌단 말인가.
“이, 이노오오오오오옴!”
분노와 수치로 점철된 그의 감정이 마침내 폭발했다.
단전에서 끓어오른 내력이 주먹에 맺힌다. 홍왕은 지체 없이 모든 힘을 권에 실어 전방으로 발출했다. 눈부신 백색의 기둥이 뻗어 나가며 바다를 좌우로 밀어낸다.
보라.
이것이 그의 힘이다.
자연마저도 밀어내는 그의 힘이다!
이 힘을 가진 그가 대체 누구를 두려워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결코…….
“약해.”
그 순간, 그의 귀에 나직한 목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발출된 기운이 천지를 무너트릴 만한 굉음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그 굉음을 뚫고 저 작은 목소리가 천둥소리처럼 그의 귀를 울리고 있었다.
파아앗!
무언가를 가르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그가 뿜어낸 빛의 기둥이 칠흑의 검기에 침식된다. 검기는 타오르는 홍왕의 권강을 썩은 무 자르듯 갈라 버리고 홍왕의 육체마저 갈랐다.
서걱.
육체가 베이는 느낌.
아무런 저항도 없이 육체가 가볍게 베이는 감각.
홍왕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인가.
“약해.”
콰아아아아아앙!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채 알아채기도 전에 홍왕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튕겨 나간 몸이 바닷물을 가르고 바닥에 처박혔다 튀어오르기를 반복한다. 물 위에 튕겨진 물수제비처럼 홍왕의 몸이 몇 번이고 튕겨 오른다.
“으…… 으으…… 으아아아아악!”
겨우 바닥을 움켜잡고 몸을 일으킨 홍왕이 하늘을 보며 절규했다.
이성을 마비시켜 버릴 것 같은 분노.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얼굴에 날아든 일격은 홍왕의 눈 밑을 내려앉히고 얼굴 전체를 순식간에 피로 뒤덮이게 만들었다.
침략자에게 얼굴을 얻어맞은 왕은 분노했다. 권위를 침탈당하고, 능력을 부정당한 왕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분노는 갈 곳을 몰랐다.
“왕이라고?”
섬뜩한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을 시리게 만드는, 그러는 동시에 그 목소리에 녹아 있는 조롱으로 사람을 치욕스럽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까짓 게?”
쿠웅!
등으로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충격이 가해진다. 홍왕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다시 튕겨 나갔다.
바닷물에 연신 처박히면서 홍왕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팔다리를 휘저었다.
이건 조롱이다.
이건 명백한 조롱이다.
검수가 등을 잡고 검조차 쓰지 않은 채 사람을 걷어차는 것을 조롱이 아닌 어떤 말로 설명하겠는가.
“으아아아아아! 이 개자식아!”
홍왕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는 황급하게 몸을 뒤집었다. 저놈은 지금…….
그 순간, 홍왕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분명 그를 추격해 일격을 먹이려 할 것이라 생각했건만, 강진호는 그가 튕겨져 온 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검 하나를 바닥에 박아 넣고, 그곳에 팔꿈치를 기댄 채 말이다.
“홍왕이라고 했나?”
“이, 이…… 이…….,”
분노에 말문이 막혀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하는 홍왕에게 강진호의 천둥 같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홍왕, 왕이라……. 그따위 실력으로 잘도 왕을 자청하는군. 알려주지, 왕이 무엇인지. 왕을 칭하는 이가 어떠한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 말이야.”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육체를 똑바로 세운 강진호가 바닥에 박아 넣은 청루를 뽑아냈다.
그러고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 목숨을 대가로.”
먹이를 발견한 굶주린 이리처럼 강진호가 슬금슬금 홍왕을 향해 다가갔다.
달빛이 요사스레 그를 내려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