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768
#767.
조율하다 (2)
[몰라?]“어.”
강진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대답하는 데 거리낌이 있을 수 없다.
[나를 모른다고?]강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모르는 걸 모른다고 대답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반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자신을 알고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좀 과한 면이 있었다.
“알아야 하나?”
[하……. 그렇지. 네가 나를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 이유는. 그래, 그럼 소개부터 해야 하나? 나는 차이커창이라고 한다.]“그래서?”
[…….]한동안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런 대화가 이어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해서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그러니까…….]“기다려.”
강진호가 전화기를 밑으로 내리고는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도 뭔가 이상하다는 듯 바로 물어왔다.
“누굽니까?”
“모르겠어. 차…… 차 뭐라더라? 차?”
강진호가 다시 전화를 들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사람을 열 받게 만들 생각으로 이러는 거라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해두지. 차이커창이다.]“차이커창이라는데?”
“아, 네. 차이…… 누구요?”
이현수가 눈을 부릅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확인을 위해 이현수의 고개가 바토르에게로 바로 돌아간다.
“주인, 차이커창이다. 그곳에서 보지 않았나?”
“응?”
“뒤쪽에서 지시를 내리던 놈 말이다. 홍왕계의 책사라고 할 수 있는 놈이지.”
“아!”
강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두에서 본 기억이 있다. 잠시 설명도 들은 것 같다. 하지만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시금 전화를 든 강진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알겠군. 그래, 무슨 일이지?”
[마존께서 제 이름을 알아주시니 기쁘기 그지없군. 이번 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해봐.”
[지금은 아니다. 그쪽도 정리가 필요할 테니, 십 분 뒤에 다시 걸지.]“그러든지.”
강진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랍니까?”
“십 분 뒤에 다시 건다는데?”
“…….”
이현수는 눈을 감고 애도를 표했다. 다시 건다고 말이야 했겠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만 보면 강진호가 전화를 끊어버린 것 아닌가.
아마 지금쯤 전화를 잡고 길길이 날뛸 차이커창을 생각하니, 괜스레 이현수가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참 한결같으시단 말이야.’
최근 강진호 덕택에 스트레스가 나날이 증가하는 이현수이지만, 이런 강진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가 얼마나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지 실감하곤 했다.
강진호는 자신의 사람이라 생각되지 않는 이들에게는 정말 지나치리만큼 관심이 없었다. 굳이 엮이려 하지 않고, 대화 자체도 하지 않는다.
이제는 강진호의 주변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들어차고 있어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거지, 저 사람이 결국 총회에 합류하지 않고, 나이가 들어 친구들과도 매일 볼 수 없게 되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차이커창이라…….”
바토르가 턱을 문질렀다.
“잘도 연락을 했군.”
“당연한 겁니다.”
“응?”
그 순간, 위긴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강진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급해 보여 예를 표하지 못했습니다.”
“앉아.”
강진호가 앞쪽을 가리켰다. 위긴스도 더 이상은 쓸데없는 예를 표하지 않고 바로 자리에 앉았다.
“전쟁을 했으니 연락을 해야죠.”
바토르가 눈을 찌푸린다.
“적에게?”
“적이니 더욱 연락을 해야 하는 겁니다. 전후 처리와 협상은 전쟁을 마무리 짓는 과정이니까요. 모든 전쟁의 직후에는 이런 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됩니다. 흐지부지 끝나 버린 전쟁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이니까요.”
“흠…….”
뭔가 할 말은 많지만, 딴지를 걸기는 힘들었다. 위긴스는 이런 일들을 전문적으로 해오던 사람이니까.
원탁은 세계의 수많은 분쟁들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대규모의 충돌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 위긴스보다 잘 알고 있는 이는 이곳에 없다.
위긴스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로드께 직접 접촉을 해온 방식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들로서도 최선이었을 겁니다. 어떻게든 상황은 정리해야 할 테니까요.”
“정리?”
“저들은 현재 다른 삼왕들과 전쟁 중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우리와의 관계도 최악 중의 최악이 되어버렸죠. 생각이 있는 자라면 앞뒤로 적을 두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화친을 원하겠죠.”
“화친이라…….”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강진호에게는 더더욱.
살면서 단 한 번도 다른 세력과 화친을 해본 적이 없다. 그가 원하는 것은 굴복, 아니면 죽음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의 상황을 중원과 동일시할 수는 없었다.
강진호의 시선이 이현수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현수의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바로 앞에 위긴스가 있음에도 강진호가 자신에게 의견을 묻는다는 것은 꽤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받아들이셔야겠죠.”
“왜?”
“그들과 지금 싸워서 얻을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강진호가 살짝 고민하는 듯하다 입을 열었다.
“싸울 수는 있고?”
“쉽지 않겠지만…….”
이현수가 살짝 입맛을 다셨다.
강진호는 지금 화친하지 않을 시에, 저들이 한국으로 쳐들어올 수는 있는지 묻는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대답은 무조건 ‘그렇다’이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다. 저들이 내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인 홍왕이 한 번 봉쇄된 이상 저들도 무조건 확전을 외치지는 못할 것이다.
“주인.”
그때, 바토르가 입을 열었다.
“홍왕계의 전력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바토르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홍왕의 힘이 우리가 예상한 이상이었듯이, 주인의 힘 역시 그들의 예상 이상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이 발생했지. 처음부터 홍왕계가 주인을 완벽하게 경계하고 가용한 힘을 모조리 끌어다 박았으면 주인은 절대 거기서 살아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빤한 이야기지.”
“아니, 빤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토르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어중이떠중이가 수천 명 더 붙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홍왕계의 핵심 전력들이 주인을 노렸을 거다. 지금은 다른 삼왕계를 견제하느라 전선에 나가 있는 이들, 그리고 홍왕의 명령조차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는 호법들까지 나선다면…… 이곳은 삼 일 내로 무너진다.”
“그들도 삼 일 내로 무너지고?”
“그렇게 되겠지.”
이현수가 바토르의 말을 보충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만큼 무서운 말은 없습니다. 저들도 공멸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란 말도 안일합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났습니다. 결국 우리도, 저들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감정적이 될 수 있는 생물입니다.”
“음…….”
강진호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야 적겠지만, 이번에 제대로 당한 홍왕이 다른 삼왕들에게 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에 전력을 모조리 때려 박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처 성장할 시간을 벌지 못한 총회는 박살이 날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멍청한 짓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저라면…….”
위긴스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모든 전력을 빼서 한국을 치겠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까지 접수를 하겠죠. 명심하십시오, 로드. 결국 세상 모든 세력은 돈에 좌우됩니다.”
“음…….”
“한국과 일본의 뒷세계를 접수한다면, 중국의 삼분지 일 정도는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돈이 됩니다. 귀찮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지역 기반을 잃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수틀리면 충분히 고려할만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결론은?”
“상의를 조금 더 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휴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을 얻는다면 우리 쪽이 더 이득입니다.”
“그럼 그 부분은 알아서 해.”
강진호는 이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반응은 강진호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달랐다.
“알아서 할 일이 아닙니다. 로드께서 결정하셔야지요.”
“회주님이 생각을 해주셔야 합니다.”
“주인, 이건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 아니다.”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불만에 강진호가 입을 슬쩍 벌렸다.
“어…….”
위긴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잡다한 일은 우리가 얼마든지 알아서 합니다. 몸을 쓰든 머리를 쓰든 모두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일은 회주께서 집적 생각하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스스로의 권위를 축소시키지 마십시오. 머리가 생각을 그만두면 몸은 나태해집니다.”
“동감한다, 주인. 아랫사람에게 권한을 주는 것은 자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감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권한은 반드시 썩는다.”
“동감입니다.”
강진호가 눈을 감았다.
이런 일들은 그의 전공이 아니다. 머리를 써서 세력을 비교하고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생각하는 건 청마의 일이었다. 이들은 청마와는 다르게 강진호 역시 생각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보통은 알아서 할 테니 편히 쉬라고 하지 않나?”
“그런 이들이 간신인 법이지요.”
위긴스가 가볍게 웃었다.
“다행히 여기는 충성스러운 이들만 있으니 마음은 편히 먹으셔도 됩니다.”
조금도 편해지지 않습니다만?
강진호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 거지?”
“얻어내야 합니다.”
“음?”
이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화친을 한다는 결과야 같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다릅니다. 우리는 저들과 휴전을 해주는 대가로 저들에게서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합니다.”
“뭘?”
강진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나라 간의 싸움도 아니고, 뭘 얻어야 한단 말인가. 쌀이나 철을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공 비급을 받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럼 대체 뭘 달라고…….
“돈?”
“크으!”
이현수가 박수를 쳤다.
“회주님이 드디어 여기까지 오셨군요.”
좌우에서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강진호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이런 취급을 받고 있었을 줄이야. 거의 뇌까지 근육으로 이루어진 생물체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가. 강진호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드는 건, 바토르조차 기특하다는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훌륭하다, 주인. 이 바토르는 감탄했다.”
“……닥쳐.”
막 강진호가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전화가 다시 울렸다. 액정에 뜬 번호가 차이커창의 것임을 확인한 강진호가 짜증 어린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준비는 이제 됐겠지, 강진호? 나 역시 이렇게 전화를…….]“아직 덜 끝났으니까 기다려. 내가 전화한다.”
뚝.
전화가 끊겼다.
이현수가 살짝 얼이 빠진 얼굴로 강진호를 바라보았다. 강진호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리고는 이현수를 마주 보았다.
“그래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잘하시고 계신데요?”
“응?”
바토르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건 협상의 기본이지.”
위긴스도 추임새를 넣었다.
“휴대폰이 멀쩡해야 할 텐데.”
“……응?”
강진호만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내가 뭘 했나?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