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n's Advent RAW novel - Chapter 938
#937.
내리밟다 (2)
부우우웅.
운전을 하는 이현수가 슬쩍 룸미러로 시선을 옮겼다.
뒷자석에 위긴스와 강진호가 타고 있다. 차를 타고 이동한 지 한참이나 되었음에도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았다.
‘이래도 괜찮을까?’
살짝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마스터.
유럽을 지배하는 원탁, 그 원탁의 수장.
그런 이와 회담을 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대책이 없어도 되는 걸까?’
타국의 정상과 회담을 하러 가는 자리다. 드러난 세계에서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각 국가의 명운을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극단적으로 흐르지 않더라도, 매우 중요한 자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정상회담의 자리는 치열한 정보전의 전장이 된다.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에게서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
상대의 취향은 어떤 쪽인가.
어떤 식으로 말을 풀어가야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가.
보통은 그런 정보를 조사하고 적용하느라 끝도 없는 회의가 이어지는 게 정상인데…….
“하암.”
나른하게 하품을 한 위긴스가 입을 두드렸다.
“아, 죄송합니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무인이 잠 좀 못 잤다고 피곤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 차라리 지루해서 참을 수가 없다고 할 것이지.
슬쩍 기지개를 켠 위긴스가 강진호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로드.”
“음?”
“마스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마스터?”
“예. 정확하게는 원탁이지요.”
강진호가 창문을 살짝 열었다.
“한 대 피우면서 이야기해도 괜찮을까?”
“물론입니다.”
“그럼 저도…….”
이현수가 은근슬쩍 끼어들자, 위긴스가 빙긋 웃었다.
“한 번씩 나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담배를 피우는 건 개인의 자유지. 왜 그런 것에 내 허락을 맡는지 모르겠어.”
“그럼 한 대 피우겠습니다.”
“안 돼.”
“…….”
위긴스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해는 할 수 없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는 법이지. 연장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못된 버릇은 어디서 배워 먹었나?”
한국인이다, 한국인이야.
이현수는 말없이 꺼낸 담배를 다시 집어넣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한국 생활 몇 달 하더니, 꼰대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따지면 연장자 앞에서 담배 피우는 건 회주님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회주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연장자더냐! 나이가 백 살이 넘으신 분인데! 살아 있는 화석이시다! 영감님이시라고!”
“그래도 호적상 나이가…….”
“노인에 대한 공경을 표하는 게 동아시아의 미덕 아니던가?”
“…….”
강진호가 떨떠름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늙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백 살이면 늙은 거죠.”
“그건 사실입니다.”
“…….”
뭔가 멕이는 느낌이 났다.
반항하고 싶지만,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강진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만은 젊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사실 동 나이 대의 친구들에게 꼰대 취급을 당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경우는 ‘마음만은 젊다’가 아니라, ‘몸만은 젊다’가 맞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마스터는 워낙 연륜이 있는 분이라, 상대하는 이들이 곤란해하는 편이거든요. 나이로는 뒤지지 않습니다.”
“그건 이쪽이 유리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렇지.”
“…….”
이쯤 되면 응원하는 건지, 먹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강진호가 막 한마디 하려는 순간, 차가 호텔에 도착했다. 이현수가 차를 입구에 세웠다.
강진호와 위긴스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 요원에게 키를 넘긴 이현수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호텔을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호텔을 보고 긴장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 호텔에 누가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마스터라…….’
거물 중의 거물이다.
중국의 삼왕급이 아니라면 마스터 이상의 거물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현수의 가슴에는 두 가지의 마음이 혼재하고 있었다. 그만한 거물을 이제부터 대면해야 한다는 긴장감, 그리고…… 그만한 거물을 만나는데 생각만큼 긴장이 되지 않는다는 의아함이었다.
‘확실히.’
마스터가 가지는 명성과 지위에 비해 그의 존재감이 와닿지 않는 느낌이었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도 있을 것이고, 결국 원탁이라는 곳은 강하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집단이라는 점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먼 곳에 있는 초강대국보다는 바로 옆에 있는 강대국이 더욱 위협적인 것이 사실이니까.
‘조금 더 현실감이 있어야 해.’
그런 이유로 무시하기에는 원탁은 너무도 위협적인 곳이다. 그들이 전 세계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 아니던가.
게다가 그들은 직접 한국을 찾아왔다.
그 말은 목적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목적은…….
이현수의 시선이 슬쩍 옆으로 돌아갔다. 태연한 표정의 강진호를 보고 있으려니,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정말 별생각이 없을 수도 있고.’
생각해 보면 홍왕이 한국으로 강진호를 만나러 온다고 해서 강진호가 뭔가 대단한 생각으로 홍왕을 만날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만나자니 만나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거, 이대로 괜찮은 건가?’
딱히 대책 회의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이현수의 입장에서는 이런 거물끼리의 만남에 그가 끼어드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상대의 입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것도 문제다.
모든 것은 강진호에게 맡긴다.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강진호의 얼굴이 너무 태연해서 되레 불안하다. 아무리 봐도 심각한 회담을 하러 가는 사람 같지 않다.
“어디에 있지?”
“회의실을 대관해 두었습니다. 아마 지금쯤은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음…….”
이현수가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
‘애들이라도 조금 끌고 올 걸 그랬나?’
최소한의 수행 인원을 데리고 온 이들이다. 그런 이들과 회담을 하러 가면서 수행원을 우르르 끌고 들어가 압박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판단에 이쪽에도 최소한의 인원만이 왔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자, 그 압박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모시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호텔 직원이 그들을 안내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서비스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을 이현수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상층으로 오른다. 그런 후에 회의실을 향해 걸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커다란 회의실의 문을 본 이현수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때, 그의 어깨에 닿는 것이 있었다. 이현수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위긴스가 가볍게 웃고 있었다.
“그리 긴장할 것 없어.”
“예?”
“긴장하는 건 저쪽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을지 모르지. 우리는 마스터를 상대해야 하지만, 저쪽은 로드를 상대해야 하니까.”
몸에 잔뜩 들어간 바람이 새어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상대가 원탁이고, 마스터라는 사실만 너무 신경 썼다. 저들도 강진호가 부담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쪽이 가지는 부담이 훨씬 심하다. 이현수에게 상대할 사람을 택일하라고 한다면, 절대 강진호를 고르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강진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런 이현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진호가 입을 열었다.
“바토르를 데리고 올 걸 그랬네.”
“……예?”
“자기가 편히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고 좋아했을 텐데 말이야.”
이현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저 큰 문을 보면 바토르가 좋아했을 것 같기는 하다.
“들어가지.”
“예.”
농담을 주고받으니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다.
똑똑.
호텔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강진호가 느릿한 걸음으로 회의장 안으로 들어간다.
상석에 앉아 있던 마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은색의 가면과 깔끔한 슈트, 가면 위로 보이는 백발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확실히 저 겉모습만으로도 압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처음이 아니라 조금 어색하군요.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마스터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가 강진호 역시 가벼운 목례로 마스터의 인사를 받았다.
“반갑군.”
“푸웁!”
이현수의 입에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반말?’
아, 아니…….
상관없겠지, 뭐. 저 사람들이 한국인도 아니고, 이쪽 말이 반말인지 존대인지 알 게 뭐…….
‘아네.’
안다.
통역을 맡은 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거참, 잘도 배웠네. 어딜 봐도 백인인데, 한국말은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나.
통역이 이뤄지자 마스터가 눈썹을 치켜떴다.
“재미있는 회담이 될 것 같군요.”
“…….”
그러면서 마스터가 이현수와 위긴스를 돌아봤다.
매우 민망하다.
‘뭐가 정상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기대한 내가 바보지.’
강진호가 하는 일에 정상적인 게 뭐가 있었던가.
‘원래 이랬지.’
최근 강진호가 워낙 상식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저도 모르게 안심한 모양이다.
“일단은 자리에 앉으시죠.”
이현수는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회담의 주도권은 이미 마스터에게로 넘어가 있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이건만, 회의의 진행이 저쪽으로 넘어가 있다.
‘역시 능수능란하시다니까.’
위긴스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회담의 장소가 저들이 묵고 있는 호텔이 된 점이나, 약속 시간보다 먼저 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마치 손님을 맞이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버린 것이나.
이현수는 확실히 이런 면에서는 부족했다.
기본적으로 계략을 짜고 행정을 하는 데는 능수능란하지만, 다른 문파나 조직과 힘겨루기를 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아니, 힘겨루기는 했지. 주먹으로.
‘조금 안일하긴 했지.’
위긴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나서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원탁에 그가 지고 있는 원죄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마스터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이런 안배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런 식으로 주도권을 잡는 행동은 상대가 평범하게 나올 때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위긴스가 아는 강진호는 평범과는 일억 광년쯤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마스터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강진호가 자리에 앉지 않고 마스터를 보며 말했다.
“그쪽은 사람을 상대할 때 마스크를 끼나? 그쪽은 예의를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곧이 아닌 모양이다.
통역을 들은 마스터가 눈을 치켜뜨고 강진호를 바라본다.
살짝 떨리는 마스터의 입꼬리를 보면 알 수 있다. 저 마스터가 감정의 동요를 숨기지 못할 만큼 당황하고 있었다.
위긴스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 진짜 재미있겠군.’
팝콘이라도 튀기고 싶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