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369
제88장 또 다른 외인 (1)
“역수귀를 죽였다?”
만독연 앞에 모인 부족들의 분위기가 단번에 뒤바뀌었다.
전설상의 역수귀는 대수림이 보낸 숲의 사자로, 죽음을 뿌리는 저주받은 존재이되 동시에 불사의 존재다.
숲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역신이 죽는다는 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속았다. 역수귀가 아니다.”
청랑부족 전사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그렇게 떠들어댔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호승심이었다.
“외지인이 역수귀를 사냥했다. 우리도 사냥할 수 있다.”
대수림의 가호를 믿는 이들은 외지인을 한결 낮춰 보는 경향이 있었다. 신성한 숲의 힘을 믿지 않는 이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외지인들이 역수귀를 죽였다. 그 말은 그들 또한 가능하다는 뜻.
“외지인은 용맹했다. 괴물을 향해 덤벼드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용맹은 대수림에서 살아가는 전사들이 가장 높이 치는 덕목.
때문에 초운휘의 활약은 전사들의 호승심을 자극하며, 그들의 심장에 불을 붙였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대수림은 우리의 땅이다. 우리 땅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의 손으로 해결한다.”
“역수귀. 아니. 저주받은 마물을 사냥하는 것은 우리다.”
두려움을 떨쳐낸 부족들은 각자 병기를 벼리고, 반려수를 이끌어 역수귀 사냥을 나섰다.
언제 두려워했나 싶은 반격이었다.
***
“숨을 죽이고 기척을 감춰.”
수풀에 숨은 채 초운휘가 속삭였다.
“달려 나갈 때는 한 번에 발끝에 힘을 주어 내달리는 거다. 멈춰 설 생각은 하지 마. 오직 돌진만을 생각해. 그것이 부유신공의 탄(彈)이다.”
“네. 교관님.”
지도에 따라 숨을 죽이고, 거리를 좁힌 백리설은 밀림 너머를 응시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 늪지에서 일어난 역수귀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던 녀석과는 달리 다소 작고 약한 개체였다.
백리설은 가르침 대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거리를 좁혀갔다.
파라락!
허공에서 작은 파공성이 들렸을 때였다.
그르르륵?
허공을 날아다니는 인간을 발견한 괴물이 고개를 들었을 때, 백리설은 진각을 찍으며 달려 나갔다.
그녀의 소맷자락이 펄럭인 순간, 안고 있던 오검이 허공을 날았고, 백리설의 신형이 화려하게 괴물의 주변에서 번쩍거렸다.
크아아아악!
또 다른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챈 역수귀가 머리를 돌렸을 때는, 이미 사검이 놈의 발뒤꿈치를 도려낸 후였다.
파파팟!
춤사위는 독혈을 피하며 춤을 추듯 미끄러졌다.
독연을 뿜어댔지만, 이번에는 반대편에 숨어 있던 당애희가 허공을 박찼다.
파앗!
허공에 분진을 뿌려 독연을 제압하고 뿌려대는 암기는 단단한 거죽을 두들겼고.
커어어어엉-!
늑대의 얼굴과 호랑이의 꼬리를 한 역수귀가 주둥이를 하늘로 향하며 괴로움에 포효를 내질렀다.
독혈을 뿜으며 녀석은 생각했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인간들에게 어떻게든 보복을 하기로. 하지만, 녀석의 의도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 닥쳐.
밀림 너머에서 존재하는 압도적인 살의 때문이었다.
끄으응-. 끙-.
뇌리에 선명히 박히는 두 개의 안광에 괴물은 겁을 먹고 몸을 굳혔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백리설의 검격이 한층 더 허공을 수놓았고.
촤아아아악!
당애희가 던져댄 암기들이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며 움직임을 묶어 놓았다.
결국 무수한 검격 속에서 괴물의 생명이 빠져나갔다.
뻐-억!
마지막 숨결을 끊은 것은 허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내리며 요격하는 모용소혜의 철권.
***
“휴우. 성공했군요.”
괴물의 사냥이 끝나자, 조마조마 상황을 지켜보던 모용선야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은 개체라서 다행일까요? 제가 나설 필요까지도 없었네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관도들의 성장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 교관으로서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아쉬울 따름이에요.”
모용선야는 어디까지나 보조 역할. 하지만, 숲에 적응한 관도들 사이에서 그녀가 나설 기회는 없었다.
“싸움이 없는 것은 좋은 일이죠.”
“그건 그렇네요. 위험한 것보다는 안전한 쪽이 낫죠.”
“제 말이요.”
말을 한 초운휘가 손을 들어 뒤에 대기하고 있는 당간을 불렀다.
“이놈을 수레에 실어라.”
“교관은 나만 부려 먹어.”
“네 가치는 짐꾼이잖아. 싸움에 도움도 안 되는 놈. 어중간한 놈.”
“쳇.”
투덜대며 당간이 준비해온 밧줄로 괴물의 사체를 묶었다.
***
“또 잡았어.”
“정말 대단하군. 벌써 다섯 마리 째야.”
질질 끌고 오는 역수귀의 시체를 본 부족의 전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 아니에요?”
“뭐가 말입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숲의 저주가 임한 것이 외지인 탓이라며 경계하던 이들이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상당히 호의적으로 되었어요.”
“다 제가 잘난 탓이지요.”
우쭐거리자 어깨에 탄 흑묘가 울었다. 자신의 활약을 잊지 말라는 듯.
하지만, 모든 전사들이 호감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호승심을 참다못해 결투를 신청하는 이들도 있었다.
“외지인. 멈춰라.”
길을 가로막은 이는 붉은 털을 지닌 곰을 대동한 근육질의 전사.
“혈웅부족의 와달이다. 외지인 강하다고 들었다.”
“혈웅부족?”
당애희가 속삭였다.
“대수림에서도 열 손에 꼽히는 대부족이에요. 와달은 부족에서도 인정받는 인물이고요.”
“아, 그러셔?”
초운휘가 목을 꺾자 모용소혜가 혀를 찼다.
“언니. 또 저지를 것 같죠?”
“응.”
“이러다가 괜히 원한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어요.”
“그건 아닐 거예요.”
당애희의 대답에 모용소혜가 물었다.
“왜죠?”
“전사들의 결투는 존중을 받을지언정 원한을 만들지는 않으니까.”
솔직히 그녀는 초운휘의 대처에 꽤 놀라고 있었다.
“교관님께서는 정확하게 대수림의 부족들을 다루고 계셔. 강자존. 포식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을 다루는 방식이거든.”
“에엑. 인간으로서는 부끄러운 계층 최하위 같은 교관님이 의외로 대수림에서는 잘 먹히는 체질이라는 뜻인가요?”
“뭔가 다르지만. 대수림에서 전사들이 선망하는 모습임은 확실해.”
당애희가 긍정하는 가운데, 초운휘는 손마디를 꺾으며 실실 웃고 있었다.
“이야. 지치지도 않나. 몇 번째 결투인지도 모르겠네.”
초운휘가 짝다리를 집었다.
“어이. 거기 곰.”
“나는 곰이 아니다. 곰은 이쪽이다. 내 반려수는 붉은 곰 중에서도 가장 용맹한 녀석이다. 몰란이라고 한다.”
“말하는 곰, 너를 부르는 거야, 눈치 없는 곰 같은 자식아.”
“곰 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닌가? 혈웅은 용맹하다. 숲의 전사다.”
“넌 지금까지 전사가 아니었어. 나한테 뒈지게 맞고 전사하면 진짜 전사가 될 수 있겠지.”
“무슨 뜻인가?”
어눌하게 대꾸하는 와달에 초운휘가 대화를 마치고 침을 뱉었다.
“덤비라고. X만아.”
도발적인 언사에 한쪽에서 지켜보던 당가원들 사이에서 반응이 일었다.
“성격이 화끈하군. 본가와 꽤 잘 어울리지 않나?”
“태어날 때부터 당가의 일원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 같습니다.”
“무인은 독하고, 잔인해야지. 초운휘 교관은 독하고, 잔인한데다, 속까지 좁으니 딱이다.”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모르겠네.’
벙긋벙긋 웃는 것을 보면 후자인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정파에서도 개차반이라 욕하는 당가원들이 칭찬한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아.’
불쾌한 감정을 눈앞의 와달에게 쏟아 내주자.
“결투 방식은?”
“주먹과 주먹을 나누며 쌓는 교류를 원한다. 전사 대 전사로 붙자.”
“난 내 주먹과 네 아구창이 부딪히며 교류를 쌓고 싶네. 이왕이면 네 귀염둥이랑 함께 덤벼. 아, 할 수 있으면.”
“…후회할 텐데. 내 반려수 혈웅과 함께 펼치는 야수공은 무적이다. 몰란!”
우아아아아-!
그가 도발에 넘어가 거센 함성을 내질렀다.
전사의 호령.
그것은 전투를 시작하는 신호와도 같았다.
하지만.
“뭐야. 네 반려수는 함께 싸울 마음이 없어 보이는걸?”
“어, 어째서지?”
와달은 바닥에 머리를 묻고 벌벌 떠는 혈웅을 보며 깜짝 놀랐다.
전사의 호령을 내지를 때면, 언제나 듬직하게 포효하며 함께 적을 향해 돌격하던 용맹한 혈웅이 지금은 겁을 먹고 있었다.
“왜…. 왜 이러지?”
“왜긴. 진짜 곰 새끼가. 인간 곰 새끼보다 눈치가 빠른 거지.”
야수는 인간보다 민감하다.
머리나 감정보다는 본능에 의존하는 혈웅은 초운휘에서 풍기는 포식자의 기세를 알아본 것이다.
“내 혈웅을 무시하지 마라. 오늘은 몸이 안 좋은 것뿐이다.”
반면에 되도 않는 머리를 굴리고, 눈에 보이는 것에 속아 넘어간 인간 곰은 끝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실 너를 상대하는 데는, 혈웅도 상관없다. 내 용력으로 충분하다.”
우람한 근육이 꿈틀거리자 툭툭 앞섬이 찢어지며 쩍 갈라진 근육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당황하고 말았다.
‘야수공이 일어나지 않아!’
야수공은 영혼으로 맺어진 반려수의 힘과 영을 빌어 신체의 능력을 증폭시키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반려수와의 호흡이 맞을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하지만, 혼자 싸우더라도 기본적으로 무공인 만큼 반려수 없이도 힘을 낼 수는 있었다.
이렇게 야수공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오직 하나.
‘몰란이 싸움을 말리고 있다?’
절대 싸워서는 안 된다고, 지금은 물러내야 할 때라고 주둥이로 옷자락을 잡아끈다.
강력한 혈웅부족의 자랑스러운 전사로 살아오며, 이런 경우가 없었던지라, 와달은 어찌 반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짐승 새끼보다 둔해서 어떻게 써먹겠냐? 모자란 놈.”
힘 싸움을 하자는 듯 양 손바닥을 마주치는 상대에 역시나 양손을 들어 깍지를 낀 와달은 이윽고 순식간에 근육을 쥐어짜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악!”
“요거 요거. 통 물근육이네.”
퍽퍽!
순식간에 양팔이 비틀려 비명을 지르던 와달은 눈앞에 나타난 마빡에 눈앞에 불이 번쩍거렸다.
“커… 억.”
“모자란 놈은 좀 맞아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지.”
퍽퍽!
연거푸 들이받는 박치기에 시야가 백색으로 물들다 못해 뭔가 멀쩡한 하늘에 은하수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컥.”
결투는 시시하게 끝났다.
아니, 끝났지만 초운휘는 끝내려고 하지 않았다.
“야. 일어나. 싸우다 말고 이런대서 잠들면 어쩌냐? 일어나.”
고꾸라진 인간의 멱살을 잡아 올리더니, 번갈아 가며 귀싸대기를 후리고, 나중에는 아무렇게나 짓밟는다.
“…와달마저.”
“저 외지인은 괴물인가?”
원래라면 패자를 유린하는 이 잔악무도한 모습에 화를 내며 나설 이가 있을 것도 같지만, 대수림의 전사들은 그저 침묵했다.
“눈 안 깔아?”
끼잉. 끼잉.
저 성질 나쁜 외지인이 눈을 부라리면, 사납기로 유명한 청랑이, 교활하기로 이름난 성성이가, 심지어 거대한 흑상마저 모른 척 고개를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흡사 천적을 발견한 것처럼 겁을 먹고 물러서는 반려수에 부족의 전사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강호의 감시 밖에서 존재하는 초운휘는 대수림의 어떤 맹수보다 무섭고, 종잡을 수 없는 생명체였다.
“곰 새꺄. 네 주인 데려가.”
곤죽이 된 주인을 내려놓자, 슬금슬금 다가온 혈웅이 주인의 뒷덜미를 물고 뒷걸음질 쳤다.
주인을 데리고 감에도 한시라도 초운휘에 대한 복종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모습은 복날에 끓는 물을 지켜보는 백구 같았다.
“몸도 안 풀렸네. 맹한 쉐끼.”
칠비도 당현은 순식간에 장내를 정리하는 모습에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모용 교관. 은천관의 교관들은 하나같이 저렇게 강한가?”
“…그럴 리가요.”
보고 있던 모용선야도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저도 모용세가에서 상당한 수준이라 평가받고 있어요. 하지만, 저도 저렇게 압도적인 승리는 장담할 수 없겠군요.”
“초운휘 교관이 특별한 건가? 유독 야수들이 그에게만 겁을 먹는 것 같긴 해. 일종의 천적을 마주친 것처럼 말이야.”
천적이라는 말에, 듣고 있던 모용소혜가 딱 손가락을 튕겼다.
“야수들도 본능적으로 교관님의 못된 성격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요?”
“…….”
“딱 보고 있으면, 지독한 인간은 인생 끝날 때까지 괴롭힐 것 같은 직감이 들잖아요.”
듣고 있던 당가십수와 당가원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흥.”
“바로 제 교관님이시랍니다?”
각자 반응은 달랐지만,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교권 추락의 현주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