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19
제117장 영보산으로 (7)
소호흑랑은 성공적으로 낭인들을 회유해왔다.
어디로 튈 줄을 모르는 이들은 후방에 남겨 정파인들을 돕는 한편, 믿을 만한 이들은 손수 모집해 달려왔다.
“검괴. 그대의 말대로였소.”
최근 일어난 횡재에 그는 꽤나 고무된 모양이었다.
“무림맹에서 정식으로 낭인들을 고용해주기로 했소. 덕분에 별 탈 없이 형제들을 수습했소.”
“생각보다 효과 좋지?”
“어떻게 한 거요? 명천광명전의 부전주가 찾아왔을 때는 정말 어찌 되는가 싶었소. 그런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금으로 의뢰를 해주더군. 어떻게 된 것이오?”
“간단한 이야기야. 지금 같은 경우는 돈을 아끼기보다 하나라도 적을 줄여두자는 생각인 거지.”
짧게 소호흑랑에게 설명했다.
무림맹과 철사련의 대치 구도, 그리고 이런 판이야말로 푼돈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기회라는 것까지.
듣고 있던 소호흑랑은 심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대는 놀라운 사람이오.”
“판국을 읽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그 간단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소. 정말이지 놀랍기 짝이 없군.”
대개 낭인들은 의뢰주를 찾아다니며, 값을 많이 쳐주는 쪽에 의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단독의뢰를 하겠다는 말에 오히려 대우를 잘해주겠다더군. 지금까지는 셈을 치르는 쪽에 따라 검을 바꿔 잡았지만 말이지.”
“경쟁을 통해 몸값을 올리는 방법도 있지만, 때로는 적과 아군을 분명히 해서 몸값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는 뜻이지.”
물론, 신뢰가 있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소일거리는 적대감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어때? 내 말대로 하니, 제법 쏠쏠하지 않나?”
“하하. 이를 말이오?”
소호흑랑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한동안 귀하의 말을 최우선적으로 들어둘 참이오. 감사하오.”
호의를 표하는 그에, 초운휘가 싱긋 웃었다.
“그럼, 이제 또다시 의뢰를 받아봐야지.”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여주는 소호흑랑이다. 이런 자들이라면 써먹을 구석은 얼마든지 있었다.
“적의를 누그러트렸으니, 이제 진짜 돈줄을 챙겨 봐야지?”
소호흑랑과 그의 형제들은 커다란 눈을 껌벅거렸다.
***
낭인들을 대동한 초운휘는 빠르게 앞서 나갔다.
비록 무공은 정파의 고수들에 비해 부족하지만, 야생에 익숙한 이들은 빠르게 이동하는 데 적합했다.
“검괴. 지금 향하는 곳이 어딥니까?”
“철사련과의 경계.”
“헉. 설마 사파와 충돌이라도 하려는 겁니까?”
소호흑랑을 비롯한 낭인들이 식겁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비싼 돈을 쥐여줬다고 목숨을 날릴 생각은 없어.”
“하지만.”
한몫 잡았다고 좋아하던 소호흑랑은, 새삼 이쪽의 진면목을 떠올리고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이라니까. 확인할 것이 좀 있어서 말이야.”
“…정확히 무엇을 확인하겠다는 뜻입니까?”
“내가 철사련주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을 좀 해봤어.”
“음… 다른 사람이라면 어렵겠지만, 귀하라면 철사련주와 비슷한 음험한 생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소.”
“이놈이?”
짐짓 찔끔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호기심에 눈이 반짝이는 것이 장난기가 어느 정도 되살아난 모양이었다.
“영보산이 위치한 등주는 명백한 정파의 영역이야. 정파의 무가들이 군림해온 지역이지.”
“숭산의 인근 아니오? 당연한 일이지.”
“그래. 그럼 철무혼은 어떻게 생각할까? 마음이 급해 몸소 움직였으나, 우위를 점할 수가 없는데.”
일반적으로 사파인의 무위는 정파에 뒤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 수적 우위로 극복해 왔으나, 오랫동안 정파의 땅이었던 등주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잘 모르겠소.”
“머리 위에 얹은 것이 돌아가는 것이라면 생각을 좀 해봐.”
핀잔을 주고는 덧붙였다.
“분명 뭔가 수작을 부려, 어떻게든 이쪽의 전력을 깎으려고 하겠지.”
“아. 그렇구려.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무림맹의 고수들을 상대한단 말이오?”
“꼭 무공만이 답은 아니지.”
이전 삶에서 정사대전이 발발했을 때, 정파를 애먹인 것은 무공을 통한 일전이 아닌, 참으로 비열하고 치졸한 방법들이었다.
“무공이 아니라면 어떤 방법으로….”
“그건 차차 알게 될 거야.”
물론, 그들은 조금의 우위도 얻지 못할 거다.
***
관도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섰을 때였다.
“누구냐!”
이쪽의 등장을 보며 긴장하고 있던 이들이 강력한 기파를 쏘아냈다.
‘청성파의 무인들이로군.’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들이 청성파를 뜻하는 푸른 도복을 입고 있는 것도 그랬지만, 안에 되먹지 않은 소녀가 이쪽을 먼저 알아보고 달려왔으니까.
“사백! 잠시만요!”
노성을 터트리는 흰 수염의 노도인을 멈춰 세운 서옥랑이 쪼르르 달려왔다.
“교관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평소 뾰족하게 쏘아붙이는 주제에 재회가 꽤 반가운지 색조가 옅은 눈이 선명하게 빛난다.
“어쩐 일이긴. 공무 중이지.”
“이야기는 들었어요. 긴급한 일로 교관님들이 갑자기 소환당했다고.”
“수당은 잘 쳐주겠다고 하는데, 뭐 워낙 많이 속았어야지.”
“킥.”
대화를 하고 있자니, 청수한 차림의 노도사 셋이 다가왔다.
“옥랑아. 이 분은….”
“초운휘 교관님이세요.”
“경천검괴.”
침음을 삼킨 세 도인 중, 가장 키가 큰 도사가 포권을 해 보였다.
“경천검괴를 뵙소. 이야기는 사질에게 많이 들었소.”
“사질에게요?”
“장철심이 바로 나의 사질이라오. 내 소개가 늦었군.”
그가 재차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청성삼로라 불리는 서추생이라 하외다. 이쪽은 추여와, 추밀이오.”
“서추여외다.”
“서추밀이오. 경천검괴를 뵙소.”
각자 인사를 나누자, 서추생이 뒤따르는 낭인들을 힐끔거리고는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런데 이곳에는 어인 일이오? 낭인들까지 이끌고.”
“그러는 도장께서는 굳이 험한 길로 가는 이유가 뭡니까?”
“빠른 길을 택한 것뿐이네. 어떤 위험이 있다 한들 본문을 위협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으니.”
나름 선한 인상이었지만, 소호흑랑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부담스러운지 그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역시 고아한 청성파의 도사답게 낭인들에 대한 평가가 박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지. 적의를 보이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야.’
강호에 숨겨진 보물의 이야기가 떠도는 데다, 인근에서는 철사련주가 직접 사파의 고수들을 이끌고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상황이다.
칼날 위에 선 위험한 상황에서 긴장을 하고 경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초운휘는 모르는 척 대답했다.
“이들에게 도움받을 일이 있어 데리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도움받을 일?”
서추밀은 자존심이 상하는지 눈썹을 꿈틀거렸다.
“청성파의 무공은 천하일절이네. 우리들이 굳이 매검자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 일이 있겠는가?”
낭인도 아니고, 매검자인가?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요. 강호는 넓고, 사건은 많은 곳이 아닙니까?”
“나는 도무지 모르겠군.”
좀처럼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초운휘는 딱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들은 제가 알아서 통제할 테니 걱정 마시지요.”
“끙. 내키지는 않지만, 장 사질의 말도 있고, 랑이 또한 바라는 것 같으니 어쩔 수 없군.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내치도록 하겠네. 이견은 없나?”
“딱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말을 한 초운휘는 씩 웃고는,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낭인들을 향해 외쳤다.
“흑랑. 이 사잇길로 이어지는 마을과 야영지를 알아봐.”
“의뢰주의 명이라면야. 전부 다 알아봐야 하는 겁니까?”
“가능한 많이.”
“알겠소이다.”
소호흑랑을 비롯한 무리들이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
그날 저녁, 흑랑은 몇 개의 수원을 찾아 돌아왔다.
“영보산을 경유하는 길에 통과하는 화전민 마을이 다섯 개 있었소. 길이 협소해서 그런지 의외로 많이 없더군.”
“알아보란 것은?”
“각자 우물이 몇 개나 있는 꽤 큰 마을이었소이다. 수원(水原)도 몇 개 있더군.”
바닥에 조잡한 지도를 그리는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청성파의 도사들이 다가왔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인근 지형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지도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도 있네. 무림맹에서 지급한 것이니 꽤 쓸만할 거야. 사잇길을 택한 것도 이것 덕분이지.”
무림맹에서 정식으로 발간한 지도는 세밀하고, 정확하기로 유명한 탓에 서추생은 좀처럼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지도에 나온 것은 정식 마을과 역전 마을 정도겠지요.”
“당연하지 않은가? 정확하고 확실한 내용을 담아야 할 테지.”
“화전민 마을은 한 해에 몇 개나 생겨나고, 또한 사라집니다. 정식 지도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지요.”
“애초에 매년 경작할 땅을 찾아 떠도는 유랑꾼들이 아닌가. 굳이 넣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세금을 피해 유랑민이 된 이들이 숲에 불(火)을 질러, 경작지(田)를 만들어 정착한 것이 화전민들이다.
해마다 좋은 땅을 찾아 떠도는 이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들과도 같았다.
“하지만, 저들이 정착한 곳은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곡식을 추수해 팔기도 수월하고, 숨기도 수월한 곳 말이지요.”
“알고 있네. 청성파에서도 화전민들이 드나드는 것은 익숙하니까.”
여전히 의구심을 피하지 못하는 그를 대신해 서옥랑이 다가와 속삭였다.
“교관님. 정말 뭐 하는 거예요? 태사부님께서 표정이 좋지 않아요. 이럴 때는 적당히 흘려 넘기는 게 좋은데….”
“괜찮다.”
한 손을 들어 서옥랑의 머리를 헝클어트린 초운휘가 몸을 일으켰다.
“다들 말에 오르시지요. 가서 확인해 볼 것이 있으니까.”
***
두두두두.
말을 달려 도착한 화전민 마을에서는 일대 소란이 일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강호의 영웅들께 촌부가 인사드립니다.”
덜덜 떨며 나선 촌장을 물리고는 안내를 따라 들어가니, 과연 마을의 한가운데 우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길이 바쁘네. 굳이 이런 곳에 들를 이유가 있겠는가?”
따라붙는 의문의 시선을 무시하며, 우물에 다가간 초운휘는 안쪽을 살폈다.
“저희 마을에서 쓰는 공동 우물입니다. 이 물을 길어 밥을 짓고, 생활하지요.”
“흐음.”
촌장의 설명대로 일반적인 우물이었다. 다만, 꽤나 중요한 식수원이라는 말이 맞는지, 우물 주변에 돌을 쌓아 벽을 세우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형태였다.
“잠시 내게 두레박을 주게.”
안에 두레박을 던져 물을 떠올린 초운휘는 물의 냄새를 맡고, 이내 살짝 입에 머금었다.
“흐음.”
“지금 뭣 하는 건가?”
점차 알 수 없는 행동에 인내심이 달한 서추생을 향해 말했다.
“퉤. 독입니다.”
“뭐라? 독?”
당황한 청성파의 고수들의 외침을 한 귀로 흘리고 있자니, 소호흑랑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내 우물물을 길어 마신 그가, 바닥에 물을 뱉고는 말했다.
“혀가 아리군요. 확실히 미약하지만 저열산이 섞여 있습니다.”
역시나 독이나 암습에 익숙한 소호흑랑은 순식간에 물을 마시고 은은한 약효를 단숨에 잡아냈다.
“정말이군요. 공력을 흩트리는 산공독에, 광인초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광인초는 마교에서도 광폭단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극약이다.
소량만 섭취해도 평정을 잃고 광전사로 변하게 만들어, 자살을 각오한 싸움을 할 때 복용하는 약이었다.
“굉장히 희석되어 있어 일반인은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세심하게 진기를 다루는 무림인에게는 위험하지.”
“확실히 그럴 것 같습니다.”
“근방의 우물이나 수원도 조사해줘. 이런 류의 것은 많이 겪어본 이들이 확인하는 것이 빠를 테니까.”
“흐흐. 독과 암습이라면 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아닙니까? 맡겨 주십시오.”
소호흑랑이 낭인들을 이끌고 흩어지자, 서옥랑이 눈을 껌벅껌벅 뜨며 달달 떨고 있었다.
“교, 교관님. 진짜 독이에요?”
“그래. 소량이지만,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
“어, 어째서….”
지켜보고 있던 서추생이 물어왔다.
“독이라니. 어찌 된 일인가?”
“간단합니다. 철사련이 독을 풀었고, 확인했습니다.”
“사천당가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네.”
“당가라도 이런 작은 마을까지 확인할 여력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한 해 몇 번이나 생기고 사라지는 이런 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테지요.”
“으음.”
낭인 하나를 불러 세워, 대나무통에 물을 담아 쥐여주며 초운휘가 한쪽을 가리켰다.
“너는 이것을 들고, 사천당가로 향해라. 당군악 가주라면 바로 알아볼 거다.”
“네, 의뢰인님.”
이내 날쌔게 사라지는 이들을 보던, 청성파의 도사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과연. 경천검괴. 모르는 것이 없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그런데 어떻게 우물에 독이 타 있는 것을 안 거지?”
“사백들께서도 오기 전에는 짐작조차 못 하신 것 같았는데.”
‘어떻게긴 어떻게야. 다 전생의 기억 때문이지.’
철사련의 치졸한 수법이라면 책 몇 권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비록 망천회에 비해서는 장난 수준이라지만, 온갖 비열한 수법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철사련의 방식이니까.
무엇보다, 자존심 높은 무인들의 생리를 아는 그들이다. 가장 먼저 줄여둘 필요가 있는데 수단 방법을 가릴 리가.
“확인을 좀 더 해봐야겠습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그, 그러시게.”
더 이상은 군말이 나오지 않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