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riageable Age Wuli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528
제119장 왕묘진입 (5)
왕묘의 내실로 들어가는 거대한 공동 안에는 수천 개의 흙무사들이 서 있었다.
병마용 토우병사.
생전 왕을 지키는 병사들을 본따 만들어진 흙인형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도 묵묵히 왕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다.
“본격적인 왕묘의 시작이로군.”
장보도의 내력을 떠올린 이준호가 어둠 속에 잠든 관을 내려보며 뇌까렸다.
“불길한 곳입니다.”
허나, 신승 정각과 달리, 다른 이들은 천장에 박혀 발광하는 야광주(夜光珠)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렇게 선명히 빛나는 야광주가 이렇게나 많이.”
“하나만 가져가도 평생을 풍족하게 보낼 수 있겠습니다.”
“하아. 왕묘의 입구부터 이런 귀한 보물이 있다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보물이 있을까요?”
야광주는 황제에게 진상해도 부족하지 않을 귀중한 물건이다.
특히 영롱함을 보건대, 야명주 중에서도 보기 드문 물건이 틀림없는데, 그런 것이 거대한 천장에 빼곡히 박혀 있었다.
“손대지 마시오. 어떤 함정이 작동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앞서 함정을 살피는 개방도의 경고가 없었더라면, 아니, 맹주가 이 자리에 없었더라면 앞다투어 천장에 달라붙어 야광주를 뽑았으리라.
“문은 아직인가?”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꽤 오래된 방식인 탓에.”
수백여 개의 관이 놓인 방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벽면을 온통 차지하는 거대한 석문을 열어야 했다.
공력을 실어 밀어도 꿈쩍도 않는 문을 열기 위해 개방에서 파견 나온 진법가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야.”
끈적한 살기에 미간을 찌푸리며 초조하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르릉.
방이 온통 진동하며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맹주님! 기관이 발동하고 있습니다!”
천천히 함정을 탐색하며 나아가던 와중에 벽이 울리며 쇠사슬을 끄는 소리가 울려대자 나아가던 진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 경계에 신중을 기하게!”
외침과 함께 그는 자리를 박차고 나아가 허공을 향해 일검(一劍)을 휘둘렀다.
짜우-!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청광색 검기가 순식간에 소리 없이 날아드는 화살들을 베어냈다.
“흥! 이까짓 것들!”
각자 신형을 박차고 올라 병장기를 휘두르니 암기들이 동강 나며 바닥을 굴렀다.
비처럼 쏟아지는 쇠뇌들이었으나, 이곳에 있는 무림고수들 중에서 위협을 느끼는 이는 거의 없었다.
“고전적인 함정이로군.”
“그래도 꽤 의표를 찌르기는 했습니다.”
“이 정도 함정이라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안도와 달리, 진법은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을 뿐이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사방에서 묵직한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도열해 있던 토우병들의 고개가 일제히 움직이고 있었다.
흙으로 빚은 병사가 움직이다니?
“!”
소리 없는 경악이 사람들을 휘감았다.
***
“뭐야. 이것들은.”
영묘의 가장 깊은 곳, 왕의 보고로 향하는 길은 동서남.
개중에 가장 먼 서쪽 방향으로 진입하던 철무혼은 흙가루를 날리며 움직이는 흙빛의 인형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그의 외침에 사군들이 시선을 나눴다.
“무기를 들어라! 공을 세울 시간이다!”
“죽은 놈들에게 두려워할 것 없다!”
기세등등하게 외치는 뒤를 일견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인형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퍽!
일 갑자에 가까운 공력이 실린 권법이거늘, 그의 주먹은 인형의 가슴팍을 제대로 부수지 못했다.
우수수.
주먹을 당기자 떨어지는 돌가루를 보며 그가 이를 갈아붙였다.
“흙인형 따위가 본좌의 주먹을 받아내?”
강기를 일으켜 진천도로 목을 베어내자, 비로소 시체가 다시 허물어졌다.
“검기조차 튕겨내다니. 귀찮을 정도로 단단하군.”
중얼거린 그가 짜증을 부리려 할 때였다.
“강기로 가슴과 목을 노려라. 그곳이 이놈들의 약점이다.”
준엄하게 일갈하며 휘리릭 날아 토우병 서넛을 일검에 베는 암존의 모습에 뒤따르던 수하들이 환호했다.
“오오! 통합니다.”
“고맙네. 암존.”
“자! 뭣들 하느냐! 두려워할 것 없다!”
찰나의 순간에 통솔력을 발휘해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모습에 철무혼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
묘하게 최근 들어 자신을 위협하는 것 같지 않은가.
저열한 감정에 사로잡혀 암존의 뒷모습을 쫓는 탓에 그는 보지 못했다.
우묵한 얼굴로 뒤따르던 암존의 시동이 사라진 것을 말이다.
***
맹주나 철사련주에게 움직이는 토우병들은 단단하기만 한 적에 불과했지만, 일반적인 무인들에게는 지독한 악몽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아. 검이 튕겨난다….”
오롯이 강기를 뿜어낼 수 있는 이들도 몹시 적었지만,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감당할 수 있는 고수의 숫자가 본질적으로 적었다.
“사람 살려!”
덕분에 방안에서 토우병들이 쏟아져 나오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익! 어째서 베어지지 않는 거냐!”
“각법으로 차 넘어트리고, 힘으로 눌러 제압하세!”
“하하. 이 정도쯤은… 아아악!”
벽에서 튀어나온 손발에 얽혀 어둠 속으로 끌려간 이들의 찢어지는 비명이 난무했다.
“영아!”
근처에 고수들이 있다면 끌려가던 팔을 끊어 구할 수라도 있었지만, 함정을 밟고 도리어 피해를 당하거나, 함께 끌려들어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우드득. 우드득.
아드득. 아드득.
어둠 속에서 살이 찢기고, 뼈가, 부숴지는 소리가 죽음처럼 들려왔다.
—.
적막한 두려움 속에서 죽은 자들과의 쟁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장철심이 비로소 그곳에 발을 딛었다.
“총관주.”
“일단. 가세하세.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야.”
소매에서 판관필을 폭사하며 뛰어나간 그가 병사의 머리를 찌르고, 회전하며 각법을 후려쳤다.
쩍. 퍽퍽.
세 개의 머리가 깨지며 허물어지자, 장철심도 신형을 날렸다.
“검기가 통하지 않는가?”
놀랍도록 단단하군.
뇌까리며 그가 선명한 적색 운무를 뿌려냈다.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
청명한 구름 속에 부서지는 붉은 노을 같은 검강이 달려드는 토우병들을 향해 휘몰아쳤다.
파스슥. 파스슥.
연거푸 토우병을 쓰러트리고 있자니, 등 뒤에 따뜻한 온기가 붙었다.
“심의 상급교관.”
“저쪽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검문인가? 그러고 보니 소양군이 와있다고 하였지.”
한해 전 학관을 들었다 놓았던 괴롭힘 사건을 떠올린 장철심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소양군 같은 권위적인 인물이나, 화검문은 내키지 않지만.”
깔끔한 수염이 반쯤 잘리고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 정신없이 격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니 어쩔 수 없다.
“관도의 학부모라면 어쩔 수 없지.”
그가 외쳤다.
“능 교관! 금 교관! 도와주게!”
“네!”
“네! 상급교관!”
또다시 한차례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
반면에. 유유자적한 쪽도 있었다.
“뭐야. 돌인형?”
돌인형의 입가가 쩍 벌려지며 달려들자, 초운휘는 콧소리와 함께 손을 들었다.
콱!
달려들던 돌인형 병사의 몸이 벽에 부딪힌 것처럼 멈춰 서며 허공에 들려 바둥거렸다.
“어디 보자. 우리 쪽 계열은 아닌 것 같은데. 옛날 방식은 또 아니고.”
전생에 망천회와 싸우며 도움이 된다면 온갖 잡술까지 터득한 초운휘다.
그 안에는 강시술도 있었고, 또한, 사물에 혼백을 불어 넣어 조종하는 인형술도 있었다.
그런 만큼 시험체를 얻게 되자 본질을 빠르게 알아낼 수 있었다.
“온갖 잡술과 비술을 뒤섞었네.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야.”
북해의 얼음과, 남만의 독, 신강의 주술에, 이제는 사라진 소뢰음사의 비경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해 만든 인형이다.
“정말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네. 이런 수준의 돌인형을 만들 수 있는 존재라면 역시 사도뿐이지.”
퍼석!
손아귀에 힘을 주는 것만으로, 버둥거리는 돌인형의 머리를 터트린 초운휘가 중얼거렸다.
“골동품이라면 몰라도, 모조품이라면, 막 부숴도 상관이 없겠지?”
고오오오-.
암혼의 검극 위로 휘몰아치는 묵빛의 검빛에 달려들던 돌인형들이 휩쓸려 비틀거렸다.
“괜히 이런 시간에 일어나 버부적대지 말고 다시 누워라.”
후웅. 연거푸 이어지는 묵빛 선의 선율에 토막 난 돌인형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
돌인형, 토우병들을 부수고 나아가던 것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거. 이거.”
색시를 찾아야 하거늘, 왜 이런 우연만 겹치는지. 또 다른 낯익은 이들과 만나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재회네.”
부서진 돌인형들 사이로, 대치하고 있는 두 무리의 사람들.
개중에 익숙한 것은 작달막하지만, 쓸데없이 시끄럽고 활동적인 권사였다.
“어이. 너희들. 순순히 대가리를 내미는 것이 좋을 거다. 편안히 한 방에 죽여줄 테니.”
언호승의 등 뒤로는 마찬가지로 손등에서 팔꿈치까지 이어진 철갑을 찬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주먹을 꼬나쥐고 있었다.
진주언가의 무인들이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힐끗 보면 두 발로 서 있는 곰 같은 무식한 체구의 사내다.
‘언가의 가주까지.’
전생에 마주쳤던 권사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반면에 그들과 대치한 이들은 화려한 무복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각자 벽에 몰린 채로, 경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들 앞으로 유독 울적해 보이는 사내가 나서 말을 나누고 있었다.
“…굳이 싸워야 하는 건가?”
그 또한 아는 얼굴이다.
“뇌호문의 흑광이었나? 날 벗겨 먹으려던 모자란 녀석.”
허나, 더욱 반가운 것은 그의 너머에 차게 식은 안색의 소녀였으니.
– 아장.
한때 자신에게 새 이름을 안겨주었던 소녀가 아닌가 말이다.
‘도랑물 고라니라는 이름은 좀 그렇지만.’
***
‘제길. 왜 이들은 마주쳐서는.’
뇌호문의 흑광은 등 뒤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끼자 잔뜩 짜증이 일었다.
‘대공자만 아니었어도.’
애초에 대공자가 영보산에 오자고 한 것부터가 화근이었다.
딴에는 비밀이랍시고, 몰래 동정호의 후기지수들을 끌고 와 멀리서 구경한다더니, 땅이 꺼지고, 산이 허물어지는 통에 휘말려 버리고 말았다.
‘개새끼. 대공자면 다야? 괜히 엄한 것에 눈독을 들여서는.’
일말의 보물에 대한 흑심에 이끌려, 영보산 가까이 온 것이 문제였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와중에 최악의 적을 만나고 말았고.
토우병들과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더욱 무서운 호랑이와 마주치고 말았다.
‘진주언가의 고수들을 어쩔 거냐고.’
대공자는 물론이고, 평소에는 거들먹거리기에 여념이 없던, 고검문이나 사흑문, 소학문의 장자라는 것들도 뒤에 숨어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X. 독박썼네.’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어떻게든 살기등등한 저들을 향해 좋은 말을 내뱉었다.
“진주언가의 소문은 익히 들었소. 우연히 휘말렸을 뿐이니 보내줄 수 없겠소?”
“사파 새끼가 무슨!”
‘니X!’
역시나 꼴통으로 유명한 집구석답게 단번에 쌍욕이 박힌다.
“흐흐. 사파놈들 뼈마디가 얼마나 튼실한지 보자.”
“마침. 근질근질하던 차였어.”
다들 신나서 주먹을 푸는 것도 두려운데, 가장 짜증 나는 것은, 사파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사내, 진주언가의 가주 언광필의 옆에 있는 애새끼였다.
“실전이다. 어이, 뺀질이. 너부터 손봐주마.”
작달막한 녀석이 으르렁거리는 통에, 어떤 말로도 싸움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X미. 죽겠네.’
싸가지 없는 놈들을 버리고 냅다 튀고 싶지만, 그러기도 힘든 게, 두 손을 맞잡고 이쪽을 지켜보는 여인들 때문이다.
하나같이 동정호의 미녀들로 이름 높은 소녀들.
사내대장부가 어찌 저들을 두고 내뺄 수 있겠나.
“다시 말하지만, 싸우려는 의도가.”
“혓바닥이 왜 이렇게 길어! X발!”
‘니X. 튈까?’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등 뒤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때였다.
“어? 뭐야!”
갑자기 호전적이던 미친개가 펄쩍 뛰더니, 사르르 순한 양이 되었다.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흑광의 눈이 뱅글뱅글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