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2
8. 금이로구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적막함만이 맴도는 방 안.
‘어떻게 수습하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듯한 감각 속에서 말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덜컹.
문을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 피곤하다. 음? 장가 녀석은 아직 안 돌아왔나?”
초영호였다.
“어째 바깥보다 내부가 더 추운 거 같…….”
냉랭한 분위기를 곧장 파악하지 못하고 떠들던 초영호가 말을 흐렸다.
한사혜의 차가운 시선과 눈이 마주친 탓.
제삼자가 끼어들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이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고, 한사혜는 고개를 돌리고 평소처럼 다시 입을 다물었다.
‘……살았다.’
소종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밉상이던 초영호 녀석이 이 순간은 반갑게 여겨졌다.
아까는 한순간이지만 살기라 해도 좋을 만한 기세를 느껴서 솔직히 쫄아 있었다.
‘이놈의 주둥이를 꿰맬 수도 없고. 아오! 뭐? 손이 예뻐? 에라이! 쪼다 같은 놈아!’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고 제대로 정정하고 싶지만, 등을 돌리고 있는 한사혜에게 다시 말을 붙이기도 애매했다.
솔직히 말해 부르기도 두렵다.
‘쯧…… 매일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굴던 애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는.’
보기 싫어도 같은 방이라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데, 괜히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닌가 싶어 곤란하다.
구시렁거린 소종천은 결국 아무 일도 없던 셈 치고, 평소처럼 조용히 심법 수련에 매달렸다.
* * *
그리고 다음 날.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40금 당첨!]“후아아아암. 벌써 아침인가.”
알림과 함께 깨어난 소종천은 눈을 비비며 기상했다.
전날의 찝찝한 기분을 털어버릴 수 있는 선물이 내려와 있었다.
‘간만에 금이 떴잖아?’
기존에 모은 70금에 더해서 총 110금.
지급 보물 상자를 구매할 수 있는 재화가 모였다.
‘상자 한번은 깔 수 있네. 기분 좋게 대박 한번 나와라!’
[지급 보물 상자 1개를 개봉하시겠습니까?]뽑기로 시작하는 하루.
금, 은, 동 삼색으로 채워진 원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급을 까보는 것은 이번으로 두 번째.
대박을 기원하긴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첫 개봉에서 은색이 나오기도 했으니 이번에는 동색이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확률이 정확히 삼등분되는 것도 아니고 팔 할에 가까운 범위가 동색으로 채워져 있으니, 오히려 동색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금색 영약 당첨!]‘그래. 역시 똥색이…… 어라?’
잠시 생각이 멈춘 소종천은 눈을 끔벅거리며 알림을 바라보다가 허겁지겁 소지품창을 열었다.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구체가 그 안에 있었다.
“어어!? 떴다!”
살짝 남아 있던 잠기운이 확 날아갔다.
설마 금색이 나올 줄이야!
바라 마지않던 진정한 대박이었다.
“저 자식은 요즘 잠잠해졌나 싶더니 또 난리를 치며 일어나는군. 역시 정신 나간 놈이라니까.”
욕을 하는 초영호는 무시하고 결과물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금색 영약…… 은색도 효과가 좋았었는데 금색이라면 과연?’
얼마나 대단한 것이 나올지 기대가 가득하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소종천은 결과물을 감정했다.
아니, 감정하려고 시도만 해야 했다.
‘감정서가? 아 이런 망할!’
그러고 보니 어제 임무 보상으로 받은 인급 상자들을 까느라 감정서를 전부 소모했었다.
감정서를 구매하기 위한 재화인 은 역시도 전부 써버려 0으로 표시되어 있는 상황.
‘빨리 확인해 보고 싶은데. 내일 일일 보상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아쉽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혹시나 이전의 수업 참가처럼 간단한 임무라도 발생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형편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종천이 하루 종일 만룡각에서 반야신공을 외우다 돌아올 때까지도, 알림창은 잠잠하기만 했다.
그런데 복과 화는 같이 오기라도 하는 것일까?
일과를 끝내고 숙소로 향하던 소종천은 원치 않았던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놈! 잘 만났다! 어째서 수업에 계속 나오지 않는 거냐!?”
기억에 있는 목소리와 용모.
모용설호였다.
‘하필 이놈과 마주치다니.’
다른 선택과목도 들어가지 않는 마당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게 뻔한 권법 지도 수업에 다시 참가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에 비무 뒤로는 딱히 대면할 일이 없었는데, 자신을 일부러 찾아온 것인지 이렇게 만룡각 근처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분명 좋은 용건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여어. 내가 요즘 바빠서 말이야. 나중에 보자.”
“멈춰라!”
혹시나 다시 붙어보자고 할까 봐 피하려 했는데,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는지 모용설호는 소종천의 앞을 막아섰다.
“네 녀석 덕분에 지난 며칠간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이를 갈며 외치는 모용설호를 보며 소종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딴 거 내가 알게 뭐야.’
대놓고 말하고 싶지만,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제대로 싸운다면 이길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대.
괜히 소란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좋게 넘어가려고 시도했다.
“그래그래. 많이 힘들었구나. 거기는 이제 좀 괜찮고?”
걱정스럽다는 말투와 함께 소종천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모용설호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잇, 감히 그딴 표정으로……! 비열한 수법으로 한번 승리를 거뒀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아니, 내 얼굴이 왜? 뭘 어쨌다고?’
딱히 비꼬려고 하거나 업신여긴 것도 아닌데 상대는 더욱 화를 낸다.
부들거리던 모용설호는 결국 소종천이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내었다.
“재비무를 신청한다!”
“거절한다.”
“뭣이?!”
다시 이길 자신도 없기에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설마 거부당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용설호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 이놈! 겁을 먹은 건가? 무인이 대결을 피하겠다고?”
“그래. 그러니 그냥 네가 이긴 거로 하자고.”
빠른 인정에 모용설호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굳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이내 얼굴이 뻘겋게 물들이며 악귀처럼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감히…… 날 우롱할 셈이냐!”
‘아니, 왜 지랄이야 자꾸!?’
마지막의 한방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전까지 두들겨 맞은 걸 생각하면 솔직히 아직 앙금이 남아 있다.
그래도 괜히 엮이고 싶지 않아 적당히 구슬려 피하려고 했는데, 상대가 더욱 길길이 날뛰니 환장할 노릇이다.
‘구슬려 보내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말재간이 없는 건가? 에이 씨…… 하필 주변에 사람도 없고 으슥하네.’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 같은 모용설호를 보면서, 소종천은 머리를 굴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리 행패를 부리는 건 무인다운 태도냐?”
“크윽!”
이번에는 먹혀들었는지 모용설호가 멈칫하며 이를 악문다.
“무인이면 자신의 패배도 인정할 줄 알아야지. 정 억울하면 나중에 다시 자리를 만들어 줄게. 그러니까…… 음, 아주 나중에.”
“……좋다. 네 말대로 지난번의 비무는 내 패배가 맞다. 인정하지.”
대충 떠들어댔지만, 말이 통한 것인지 모용설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권법을 겨뤘던 자리. 이번에는 무인이자 모용세가의 검수로서 내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 정식으로 다시 비무를 신청한다!”
“아니, 왜 또 이야기가 그렇게 돼!?”
소종천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모용설호는 바로 시작하자는 듯이 검을 빼 들고는 날카로운 기세를 발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지난번에 봤던 팔이 잘린 백룡단의 무인이 떠오른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그의 얼굴이, 어째선지 자신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으으!’
맨몸으로 싸우는 것이 차라리 낫지, 칼부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손과 팔을 보호하는 수갑조차 없는 상태.
“잠깐! 지금은 곤란하다니까! 정말 정식으로 할 거면 날을 정하고 그 뭐냐…… 입회인도 두고 그래야지!”
“……그건 그렇군. 내가 잠시 흥분했다. 이런 비무를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히 아쉽지.”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되는 대로 주워섬겼는데, 먹혀들긴 했는지 모용설호가 검을 거두어들였다.
‘……근데 이거 좋아할 일이 아니구나? 일이 커지는 거잖아?’
“일시를 정해라. 그 정도는 맞춰주도록 하지.”
여기서 더 빼려고 하면 당장에라도 덤벼들 것 같았기에, 소종천은 속으로 욕설을 잔뜩 내뱉으면서 결국 흐름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일정을 좀 확인하고 다음에 내가 알려줄게.”
“헛소리 말고 지금 정해라. 아니다, 한 사흘쯤 뒤가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가?”
“그건 좀…….”
스윽.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모용설호가 다시 검 자루에 손을 가져간다.
“알았어! 그럼 보름 뒤로 하자!”
“그건 너무 길잖아!”
“내 사정에 맞춰준다며!”
“쯧! 좋다. 그럼 그렇게 하지. 정확한 시간은 수업 일정을 확인하고 정하면 되겠군.”
설욕을 원하며 찾아왔던 모용설호는, 비무의 날짜를 잡고 나자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떠나간다.
억지로 약속을 잡게 된 소종천은 하늘을 바라보며 뒷목을 주물렀다.
‘싫은 예감은 틀리지를 않냐. 끄응…….’
원치 않아도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약자의 입장은 서럽고 짜증 난다.
‘나도 제대로 무공을 익힌 몸이었다면 그냥 들이받았을 텐데! 씁…… 이제 믿을 건 뽑기밖에 없잖아.’
지금의 전력으로는 당연히 험한 꼴을 보고 나야 끝날 터.
소종천은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래도 보름이라는 시간을 벌긴 했다.
아직 감정하지 못했지만, 금색 영약이 손안에 있기도 하고, 운이 좋다면 보름 사이에 전력 강화가 대폭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일단 금색 영약이 내공을 올려준다고 가정해 보자. 은색 영약으로 0.22가 올랐으니 금색은 당연히 그보다 더 많이 올려주겠지?’
지난 대결에서 확인한 모용설호의 내공 수치는 1.98.
현재 소종천의 내공 수치가 1.64이니, 영약을 섭취하고 나면 모용설호와 비슷해지거나 더 높아지게 될 가능성이 있다.
‘검을 상대하는 법은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내공에서 동수라면 그래도 해볼 만하겠지. 이기는 건 무리겠지만, 모양새가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버티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입회인 운운하기도 했으니, 싸움 구경을 위해 분명 관중들이 모일 터.
구경꾼들 앞에서 무참하게 깨지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다.
‘남은 기간…… 뭔가 그럴듯한 무공을 더 뽑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바람을 떠올리며 소종천은 숙소로 돌아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단은 일일 보상으로 감정서를 구매하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
시간은 흐르고 또다시 아침이 찾아왔다.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200은 당첨!]‘그래. 감정서를 살 은이 나왔으면 된 거야.’
알림과 함께 눈을 뜬 소종천은 보상을 확인하고, 곧바로 상점창을 열어 감정서를 구매했다.
[감정 대상을 선택하십시오.]당연히 매혹스러운 빛깔을 흩뿌리고 있는 황금색 구체를 지정한다.
[감정 성공.]‘과연 어떤 녀석이냐?’
소종천은 침을 꿀꺽 삼키고 드러난 정보를 확인했다.
뭔가 대단해 보이긴 하는 것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약초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 건가? 만통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설명을 봐서는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
써보지 않고서는 설명만으로 효과를 알 수 없기에, 소종천은 침을 꼴깍 삼키고는 영약을 사용했다.
파앗!
머릿속으로 벼락이 떨어져 내린 것 같은 번뜩임과 함께 짜릿짜릿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다.
“끄, 흐아……!”
내부에서 무언가가 크게 변화하며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이건……?’
소종천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뭔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뽑기로 무림최강 1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