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7
60. 연맹본부(2)
남궁건은 나이 많은 자신의 사촌 형 남궁선호를 보며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남궁선호는 현 세가주의 첫째 아들이자 가문의 소가주로, 남궁건과는 띠동갑 차이가 나는 인물이었다.
다음 대의 가주를 물려받는 소가주란 자리는 단순히 현재의 실력뿐 아니라, 미래가치라 할 수 있는 재능까지 고려하여 결정된다.
나이 많은 장자라고 해서 더 우대해 주진 않는다는 의미.
세가의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라 평가되기에, 소가주의 자리에 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자들의 이야기일 뿐.
서자인 애초에 남궁건은 가문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건이 놈…… 제멋대로 떠돌다 객사하기라도 한 건가 싶었더니, 설마 연맹본부에서 마주치게 될 줄이야.’
남궁선호는 알고 있었다.
순수하게 재능에 대한 점수를 매기자면, 자신이 남궁건보다 조금 뒤처졌을 거라는 사실을.
남궁건이 자신처럼 정실부인의 자식이었다면, 하다못해 가문의 인정을 받은 측실에게서 본 자식이기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소가주의 지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남궁선호는 남궁건을 경계하며, 마주칠 때마다 매번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여 왔었다.
“가문에서 대접받지 못하니 바깥에서 마음대로 행동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남궁이란 성을 사용하는 이상 너는 언제나 가문의 부품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뜻이 맞는 친우들과 잠시 세상을 돌아보던 중이었소. 그렇지 않아도 본가에 조만간 얼굴을 비칠 생각이었는데, 선호 형님을 먼저 뵐 줄은 몰랐구려.”
“형님? 하!”
코웃음 치는 남궁선호의 모습에, 남궁건의 입이 다시 꾹 다물어졌다.
말실수였다.
연장자인 사촌이니 형님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으나, 남궁선호를 비롯한 같은 항렬의 형제들은 다들 남궁건을 직계로 대우하지 않았다.
가문의 행사가 있는 자리가 아니면 형이나 동생의 호칭은커녕, 아예 말을 섞지도 않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 바깥 공기가 좋긴 좋았나 보구나. 공식 석상도 아닌 자리에서 너 같은 게 나를 형님이라 부르고 말이야.”
빈정거리는 말투에 남궁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수시로 당해왔던 모욕이지만 한동안 잊고 지냈다 보니, 이렇게 다시 경험하자 기분이 매우 불쾌해졌다.
학관이 그렇게 되었을 때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종천을 쫓았던 선택에는, 남궁선호 같은 이들의 존재도 한몫 단단히 했다.
가문에서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괴로운 것들뿐이다.
‘이런 자들이 뭐라고 그리 아등바등했었는지.’
내부에서는 적손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혈연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기에, 남궁건은 일단은 가문의 직계로 적이 올라가 있다.
그렇기에 다른 편의에서는 모두 제외되더라도, 가법에 따라 무공만큼은 동일한 조건으로 전수받았다.
물론 차별과 부조리가 없던 것은 아니나, 남궁건의 재능은 그런 사소한 방해들을 전부 뚫고 두각을 드러낼 만큼 뛰어난 것이었다.
‘선호 이 작자는 내가 무공 수련에 빠른 성취를 낼 때마다 불쾌해하며 괴롭히려고 들었었지.’
철이 들기도 전부터 가문의 사람들에게 핍박과 냉대를 받으며 지내왔던 남궁건에게, 무공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무재만큼은 정말 대단하군.
-어미가 천한 출신만 아니었어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저만큼의 재능이 있었다면 우리 남궁세가가 새로운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 터인데.
무공을 습득하는 속도에 가문의 어른들이 감탄하며 또래와 비교할 때마다, 남궁건은 속이 시원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같은 항렬의 종형제나 이복형제들에게 받는 모욕은 더욱 심해졌지만, 남궁건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티며 무공에 몰두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미련한 짓이었던 것 같다.
무공에 열중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굳이 자랑하듯 성취를 드러내 다른 이들의 성질을 긁을 필요는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괴롭힘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여기긴 했었지만, 이제는 마냥 다 유치하게 느껴진다.
‘종천 때문이겠지. 초절정이라는, 까마득히 멀었던 경지에 억지로 발을 들이게 만들어버렸으니.’
남궁건은 초연한 눈빛으로 자신의 종형제를 바라보았다.
가문은 물론 중원 무림 전체의 후기지수들 중에서 최고를 논할 때, 항상 빠짐없이 거론되는 인물.
재능은 분명 남궁건이 더 뛰어나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12년의 세월을 쉽게 따라잡을 순 없다.
유감스러운 인품과는 별개로, 남궁선호 역시 가문의 동량을 책임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재를 가진 무인이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학관에 들어갈 당시 남궁건은 서른 살 이내로 남궁선호를 꺾어 보이겠다는 목표를 정해두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다 부질없는 이야기다.
친우의 기이한 능력으로 인해서, 남궁선호와는 이제 격을 논하는 것이 우스울 정도의 차이가 벌어졌기에.
“피차 서로 불편할 뿐인데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시오. 본가에는 때가 되면 알아서 들릴 터이니, 중요한 이야기가 없다면 이만 돌아가겠소.”
과거의 일에 대한 악감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에 심력을 소모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남궁건은 무미건조한 태도로 등을 돌렸다.
“건방진 놈! 아직 용건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감히 내게서 등을 보여?”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일을 경험하며 변화한 남궁건의 입장일 뿐.
천대와 멸시를 받던 과거의 남궁건만을 기억하고 있는 남궁선호에겐 기가 차는 상황이었다.
‘아직 위로부터 받은 지시에 대해선 물어보지도 않았거늘. 제깟 놈이 감히 나를 무시하려 들어?’
원래 남궁선호는 소종천에 대해 묻기 위해 남궁건의 앞에 나타났다.
무림에 반로환동한 초절정 고수가 나타났고 그가 연맹에 합류했다는 소문은, 본부 소속의 무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남궁선호 역시 소문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런 고수와 가볍게 만남을 청할 위치는 아니었기에, 과연 어떤 인물일지 우연이라도 만나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차에 소종천의 일행 중 같은 세가의 인물이 있다는 이유로, 그에게 접근해 정보를 알아보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이 자리에 찾아온 것이었다.
목에 힘줄이 드러나도록 화를 내며 소리치는 남궁선호의 모습에, 남궁건은 다시 그와 시선을 맞추었다.
“용건이 있으면 그것만 간략하게 얘기해 주시오.”
“허!”
초절정 고수와 동행한 세가의 인물이 남궁건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남궁선호는 꽤 놀라긴 했지만 이내 잘된 일이라 여겼었다.
어디서 뒈지든지 관심도 없는 놈이지만 마침 이렇게 눈에 띄었으니, 필요한 정보를 얻은 후에 본가로 돌려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데 자신에게 설설 기어야 마땅한 남궁건이 저리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건방진 태도를 보인다.
‘이 빌어먹을 놈이 운 좋게 대단한 고수와 인연을 맺었다고 내 앞에서 기고만장하게 구는 건가? 어이가 없군.’
하긴 무려 초절정의 고수라는 인맥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다.
남궁선호는 화를 꾹 눌러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 소종천이라는 분 말이다. 네가 어떻게 그런 고수의 눈에 들었는지 의문이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눌 말은 없소.”
남궁선호가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끊어버리는 남궁건.
소종천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닐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기에, 용건을 눈치채자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말을 잘라냈다.
“이, 이 자식이…….”
남궁선호로서는 오랜만에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경험이었다.
“그래. 세상은 넓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구나. 네놈의 간도 이렇게 커진 걸 보면 말이야.”
남궁선호는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일 년 만에 만난 남궁건은 아무래도 천한 신분에 어울리는 태도를 모두 잊은 듯했다.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예절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어디 얼마나 많이 컸기에 이리 기어오르는지 확인해 보도록 하지.”
당장에라도 검을 뽑고 달려들 듯한 남궁선호의 모습에, 남궁건은 약간 난감해졌다.
연맹본부에 도착한 뒤로 일행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도록 주의하며 거처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소종천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본부를 떠날 때까지, 무위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내려 했기 때문.
특히 남궁건은 경지가 알려지면 파급력이 엄청날 것이기에, 혹시라도 맹주와 마주치지 않도록 방안에 꾹 틀어박혀 있었다.
맹주가 자리에 맞게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라 소종천하고만 따로 독대를 했으니 다행이다.
만약 남궁건을 발견하고 본인과 동급의 경지임을 눈치챘다면 꽤나 소란이 일었을 것이다.
남궁건은 슬쩍 한걸음 뒤로 물러나며 대답했다.
“힘으로 내 입을 열 생각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오. 문제가 생기면 내 뒤에 계신 분이 가만 있지 않을 터이니.”
남궁선호의 무공 수준은 일류의 끝자락에 닿은 경지.
28살의 나이에 절정의 벽을 더듬고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다.
물론 초절정에 들어선 남궁건에게는 손가락 하나로도 제압할 수 있는 정도지만, 지금은 가급적 무위를 숨겨야 하는 상황.
때문에 남궁건은 소종천을 들먹이며, 남궁선호가 스스로 물러나도록 만들려고 했다.
“이 자식이…….”
남궁건의 행동은 주효하긴 했다.
소종천은 맹주가 직접 나서서 영입을 논의하고 있는 초절정 무인이다.
그런 이의 심기를 언짢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은, 상부의 지시로 찾아온 남궁선호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남궁선호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남궁건은, 그가 덤벼들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려 했다.
남궁건의 생각대로 남궁선호는 검을 뽑진 않았으나, 그대로 곱게 물러나지도 않았다.
“꽤나 예쁨을 받는 모양이군. 더러운 네 어미에게 몸으로 남자를 꾀는 재주라도 물려받았나 보지?”
검 대신 악의를 담은 말이 휘둘러진다.
남궁건의 발길이 멈췄다.
“남자는 아랫도리를 잘 간수해야 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지. 첫째 숙부님이 조금만 조심했어도 창기의 새끼 따위를 가문에 들이진 않았을 텐데.”
남궁건은 천천히 다시 걸음을 떼었다.
세가에 있을 때도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도발을 통해 이쪽에서 덤벼들도록 만들 속셈인 듯하나, 저런 소리에 욱해서 어울려줄 마음은 없다.
‘누가 누굴 봐주는 건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
“야, 왜 그냥 가?”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피하는 남궁건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소종천이었다.
연맹의 높은 사람들과 만나느라 매번 바쁘게 돌아다니더니, 하필 이런 상황에 돌아와 못 볼 꼴을 보인 모양이다.
“저딴 소리를 하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무슨 생각이냐 너?”
“신경 쓸 것 없소.”
“얌마! 저놈 말대로면 내가 꼭 남색이라도 밝히는 것 같잖아!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쪽이 문제였소?”
허탈하게 웃는 남궁건에게 다가온 소종천은 팔뚝을 툭툭 때리며 말을 건넸다.
“너 괜히 내 사정을 생각한다고 참았던 거지? 참을 게 따로 있지 짜샤, 엄마 욕은 선을 넘은 거야.”
소종천은 남궁선호를 향해 턱짓하며 말을 이었다.
“조져 버려. 어차피 경지가 드러나 다른 문파들의 경계를 산다고 해도, 그냥 조금 귀찮아지기나 하겠지. 괜히 마음속에 화를 쌓아두기만 하며 머리카락 다 빠진다? 안 그래도 넌 조심해야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아, 아냐. 아무튼, 가서 주먹질이라도 하고 오라고. 속이 시원해질 거야.”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소종천의 행동에 남궁건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저렇게 말하는데 더 빼는 것도 우습다.
남궁건은 어정쩡한 자세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남궁선호에게 다가갔다.
그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소종천을 발견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하던 차였다.
“남궁선호. 옛날부터 내게 당신은 아주 개자식이었소.”
“뭣? 이놈…….”
“저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알고 싶다 했소? 그럼 알려드리지.”
경지의 차이가 나기에 검을 뽑을 필요도 없었다.
남궁건은 주먹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런 행동을 좋아한다오. 순 깡패나 다름없지 않소?”
“야?”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며 남궁건은 남궁선호의 얼굴에 일 권을 내질렀다.
누군가에게 주먹질을 해본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다.
빡!
“끄윽! 이, 이 자식이!”
권법은 제대로 수련해 본 적도 없는 남궁건이지만, 남궁선호는 그 주먹을 피할 수 없었다.
“으음. 확실히 검을 쓰는 것하곤 손맛이 많이 다르오. 그래도 이쪽 역시 나쁘진 않구려.”
“이 미친놈이! 가만두지 않겠다!”
코를 움켜쥐며 뒷걸음질 친 남궁선호가 검을 뽑아 들었다.
일류의 극에 달한 무인인 만큼 깔끔한 발검 동작이었으나, 남궁건이 보기엔 한심할 정도로 허점투성이였다.
‘정말 너무나도 심하게 차이가 벌어졌구나. 화낼 가치도 없어 보일 지경이야.’
자신을 베기 위해 다가오는 검을 보며, 남궁건은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남궁세가 검법의 극의에 닿은 경험이 덧씌워진 남궁건에게, 남궁선호가 펼치는 검초의 동작들은 허술하고 하찮기만 할 뿐이었다.
주먹이 휘둘러졌다.
뻑!
“컥!”
퍽! 빠악!
타격음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짜식. 좀 치네.”
그런 남궁건의 모습을 지켜보며, 소종천은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14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