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9
63. 대결(5)
오랜만에 떠오르는 알림이다.
마인과 엮인 상황도 아닌데 임무가 생겨나다니,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라 살짝 당혹스러웠다.
‘일을 크게 벌이긴 했지만, 임무가 나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초창기의 생도 시절을 제외하면 이런 일이 있었던가?’
소종천은 의아해하며 내용을 확인했다.
[동급 최강]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무인을 상대로 확고한 승리를 거두십시오.] [보상 : 결과에 따른 차등 지급.]‘흐음. 고마운 임무이긴 한데.’
어차피 임무가 아니어도 이겨야만 하는 상황이니, 겸사겸사 뭐라도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긴 하다.
‘확고한 승리라면 다른 이들에게 내가 한 수 위의 강자인 것처럼 보이라는 건가.’
결과에 따른 차등지급이라 써 있으니, 확실한 힘의 차이를 보일수록 보상이 커진다는 것일 터.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림을 한쪽으로 치웠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이지만 최선을 다해 싸워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소종천은 내력을 아끼기 위해 스스로 걸어두었던 제한을 풀고, 권강을 만들며 한껏 기세를 발산했다.
‘동급이 아니면 강기를 쓰지 않겠다던 조건 때문에 조금 답답하긴 했는데, 마침 잘되었어. 초절정 무인 한 명 정도는 혹시 몰라 염두에 두었던 변수지.’
절정 무인들을 연달아 상대하며 내력이 제법 소모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절반 이상의 양이 남아 있다.
소종천에게 적용되는 여러 이로운 효과들을 감안하면, 동급의 상대와 싸우기에 그리 부족하진 않은 정도.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영웅 뽑기도 남아 있으니까 문제없지. 저 양반만 꺾으면 남은 절정 무인들은 이제 몇 명 되지도 않고.’
기존에도 3천 점 이상 보유하고 있던 업적 점수는, 이번 연속 비무로 6천 점을 돌파한 상태.
일류 무인을 상대로는 더 이상 점수가 오르지 않지만, 절정 무인 수십 명을 꺾으며 상당한 점수를 획득했다.
점점 획득량이 줄어들어 이제는 절정 무인을 제압해도 100점조차 오르지 않게 되었지만, 이만큼 모아두었으면 한 번 정도는 써도 그리 아깝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소종천은 진양에게 살짝 목례하며 인사를 건넸다.
“소림제자 소종천. 시원하게 붙어봅시다.”
여태까지 격에 맞지 않는 다른 무인들은 싹 무시했었지만, 이번에는 동급의 무인을 상대하는 것이니 적당히 예의를 차려준다.
진양 역시 검을 세우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무당의 진양이오. 소림이라……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군.”
“앞으로는 자주 듣게 될 거요.”
“흘흘. 글쎄, 지난 과거에 억지로 매달리는 것이 썩 보기 좋은 일은 아니오만. 흘러간 일은 흘러간 대로 두는 것이 순리 아니겠소?”
가시를 품은 말투에 소종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하긴, 당연한가.’
상대는 현 장문인보다 훨씬 전대의 인물이다.
어쩌면 소림의 재건을 방해하는 것에 일조했던 장본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쯧! 어차피 이제 와서 미안해한다고 해서 안 싸울 것도 아니고, 하던 방식대로 때려눕히기나 하자.’
이야기를 더 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소종천은 대화를 그만두고 싸움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합시다.”
자세를 취한 소종천은 지금까지와 달리 먼저 선공을 가했다.
여러 물품들의 효과로 한참 아래의 무인들을 상대할 때는 천천히 시간을 끄는 편이 유리했지만, 동급의 무인을 상대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게다가 임무의 내용을 생각하면,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것으로 여겨졌다.
‘빠르게 몰아붙인다.’
소종천의 신형이 9개로 늘어났다.
“헛!”
“저런!”
놀라는 무인들의 경탄을 한 귀로 흘리며, 소종천은 분신들과 함께 진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양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라 눈을 치켜떴지만, 경지에 걸맞게 침착한 모습으로 검초를 펼쳐 응대했다.
10성으로 대성한 양의무극신공의 기운이 일어나며, 검의 울림과 함께 선명한 검강이 솟구쳤다.
‘권사들의 동작은 대체로 변화를 일으키는 기교보다는, 직선적이고 강직한 움직임을 보이는 법.’
검을 몸의 일부처럼 다뤄 팔에 관절이 하나 더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검사들과는 다르다.
권법이라고 해서 화려한 움직임에 치중한 무공이 없는 것은 아니나, 아무래도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변화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수가 늘었다 해도 그런 단순한 투로에 따르는 공격쯤은 흘려보내기 어렵지 않다.’
진양의 몸을 축으로 검이 움직이며 허공에 수차례 원을 그려갔다.
아홉 살에 처음 진검을 잡은 뒤로, 백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그려온 태극의 이치가 담긴 검로다.
태극의 묘리를 바탕으로 한 무당파의 무공들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공방일체에 가까워져, 공격과 수비의 전환에 빈틈이 사라진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권강의 소나기가 사뭇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진양은 상대의 공격을 모조리 튕겨내고 급소에 검을 찔러 넣을 자신이 있었다.
만약 소종천이 연대구품 하나만을 익힌 소림권사였다면, 그런 진양의 생각대로 되었을 것이었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소종천의 본체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아라한신권을 통해 신체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눈으로 제대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쏘아진다.
마치 신법의 경지가 극의에 달하게 되어야 펼칠 수 있다는 이형환위와도 같은 움직임.
“흐읍!”
그에 맞춰 눈을 부릅뜬 진양의 검법 역시 변한다.
검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며 주변의 방위들을 막아가던 원들이 작게 축소된다.
얼핏 보면 오히려 기세가 약해진 게 아닌지 착각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넓게 퍼져 나가던 검세를 최대한 압축하여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수법.
수백 개의 원을 그려내던 기의 흐름이 검을 중심으로 뭉쳐, 서로 공명하며 무수히 많은 떨림을 만들어 낸다.
무당파 검법의 최고봉이라는 태극혜검.
다루기가 극도로 어려워 대성하는 이가 매우 드물지만,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천하에 적수가 없다 자랑하는 무당의 진산절학이다.
꽈앙!
검강과 권강이 충돌하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격돌의 충격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뒤로 밀려난다.
‘쩝! 역시 쉽게 당해주지 않는구만.’
소종천은 아쉬움을 삼키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전력을 다한 일격이건만, 누가 이득을 봤다 말할 것도 없이 동수를 이루었다.
그래도 이쪽의 공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종천 본인이 진양의 검을 잠시 묶어두는 동안, 분신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상대에게 달라붙을 수 있었다.
사방에서 쇄도하는 공격들.
아라한신권을 적용할 수 없다는 점만 빼면, 분신들의 공격이 갖는 위력은 소종천 본인과 차이가 없다.
좌측과 우측, 후면의 세 방향에서 동시에 치고 들어오는 권강이 실린 공격.
거기에 나머지들이 백보신권과 탄지신통을 통한 공격까지 가하니, 강기의 파도에 포위당한 진양의 모습은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차아압!”
그러나 진양 역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여, 맥없이 당하고 말 하수가 아니다.
비록 생의 마지막에 가까워진 순간에야 겨우 초절정의 벽을 허물었다지만, 진양은 근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검을 다뤄온 무인.
무당의 검수로서 완성형에 가까운 성취를 쌓은 진양의 검이, 무수한 잔상을 남기며 사방을 가득 메워갔다.
이윽고 빈틈없는 강기의 벽이 진양의 전신을 꼼꼼하게 에워쌌다.
검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비식의 극한에 다다른 경지.
세간에는 검막(劍幕)이라 알려져 있는 수법이다.
소종천의 분신들이 검으로 이루어진 벽을 두드리며, 수차례의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쳇.”
흔들림 없이 굳건한 벽을 보며 혀를 찬 소종천이, 재차 아라한신권을 운용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쾅!
분신들의 공격에는 끄떡없던 검막이, 이번에는 물결치듯 크게 일렁인다.
‘막히긴 했지만, 충격이 없어 보이진 않아. 이 정도면 충분히 뚫을 수 있다.’
대단한 수법이긴 하지만 모든 방위를 막기 위해 힘이 분산되는 만큼, 처음 격돌했을 때보다 견고함이 떨어진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쪽의 상태.
분신들에게 강기를 적용하고 절기들을 펼치게 하며 본인은 아라한신권까지 운용하려니, 절반 이상 남아 있던 내력이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몸의 내부 여기저기에서 따끔거리는 통증까지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너무 대량의 내공이 빠져나가며 기혈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멈출 순 없지.’
당장은 상대가 완전히 수비에만 치중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면 반격을 통해 분신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갈 것이다.
지금처럼 밀어붙이는 상황일 때 승부를 봐야 한다.
단전을 쥐어짜며 내력의 순환을 최대한도로 유지했다.
파앙! 쿵! 프훙! 쾅!
분신들의 공격 사이사이로, 극한까지 위력을 끌어낸 소종천의 주먹이 연거푸 진양의 검막을 두들겼다.
창이 부러지느냐 방패가 뚫리느냐의 싸움.
석판을 덮어 보강한 바닥이 발을 구르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쩍쩍 갈라지며, 사방에서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우윽!”
결국, 누적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검막이 깨어지며, 낭패한 얼굴의 진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 아슬아슬했다.’
진땀을 닦아낸 소종천이 태연함을 가장하며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막 영웅 뽑기에 손을 대려던 차였다.
“……졌소.”
과도한 충격에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검을 떨어뜨린 진양이 눈을 감으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수가!”
“진양 사백마저…….”
“끝이다…….”
믿었던 사문의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자, 무당파 무인들의 사기는 급격히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남아 있는 절정급 무인이라고는 장문인을 포함해 열 명 남짓한 정도.
더 싸움을 이어가 봐야 승산이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소종천은 떠오르는 알림을 확인했다.
[임무 : 동급 최강을 완료했습니다.] [결과 등급 : 상]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상 등급이라, 이거 너무하는구만. 나름 빠르게 승리한 것 같은데. 초절정 무인을 상대로 이보다 더 잘하려면 얼마나 더 강해지라는 거야?’
하마터면 내력이 부족할 뻔했지만 나름 최선의 결과를 냈다고 생각한 소종천은, 임무의 등급 판정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보상을 확인하고는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었다.
[5청강석 획득.] [심득 : 맞춤형 획득.]‘어라라?’
청강석은 그렇다 쳐도, 맞춤형 심득이라니?
이름만 봐도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보상이었다.
‘설마 별호나 이름이 ‘맞춤형’ 인 사람이 있지는 않을 텐데. 그렇다는 건……?’
[심득 : 맞춤형] [사용자의 상태에 맞춰 최적화된 심득을 제공한다.]재빨리 정보를 확인하자, 예상한 것처럼 이름 그대로의 효능을 지닌 심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 볼 것도 없이 바로 자신을 대상으로 지정하여 심득을 사용했다.
맞춤형이라서 그런지 따로 동화율 판정도 뜨지 않고, 그대로 몇 개의 알림이 떠올랐다.
[연대구품 10성 습득.] [백보신권 9성 습득.] [나한철종 8성 습득.] [탄지신통 7성 습득.] [불영선하보 9성 습득.] [사자후 8성 습득.]“……와우.”
익히고 있던 무공들의 절반가량이, 1성 혹은 2성의 진보를 이루었다.
뽑기가 아닌 수련으로는 성취를 볼 일이 없다시피 한 절학들이 대부분이기에, 굉장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오의 서로도 성취를 올릴 수 없는 8성 이상의 무공들.
한순간에 10성으로 대성하게 된 연대구품이나, 9성으로 오른 백보신권과 불영선하보에는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뭐지? 그리 대단한 임무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리 퍼주는 거냐?’
너무 과한 보상이 아닌가 싶어 괜히 불안해질 지경이다.
그렇게 소종천이 달달한 보상에 의문을 품고 잠시 멍하니 있는 동안.
무당파의 수뇌부들 사이에서는 바쁘게 전음이 오가고 있었다.
-더는 방도가 없습니다.
-본문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상황이오.
-이 사태를 대체 어찌할 겁니까?
장문인 현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비무를 끝낼 수는 없다.
정말로 뭔가 방법이 없는 것일까?
짧은 순간 고민을 거듭하며 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이 된 현일이 눈을 떴다.
이내 그의 입이 열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6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