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65
64. 북진(5)
‘귀마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도박을 하진 않았을 터인데.’
무공 실력은 다른 고위 간부들보다 떨어졌지만, 강시술로는 견줄 자가 없던 술법의 대가.
검마는 귀마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며 눈앞의 적, 소종천을 노려보았다.
‘중원 무인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새로운 거점을 만들겠다는 연락을 남기고 사라지더니, 남만의 오지에서 목숨을 잃게 되었을 줄이야.’
운남까지는 워낙 거리가 멀어 제대로 조사 인원을 보내지 못했지만, 권괴라는 별호로 유명한 무인이 귀마를 죽였다고 스스로 밝혔다고 했다.
청해에서 도마가 그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확인했고 권마 또한 자신 있게 기습했으나 목숨을 잃었으니, 분명 귀마에 대한 이야기도 사실일 터.
‘소종천. 저놈 하나 때문에 너무 많은 계획들이 어긋났군.’
마교의 입장에서 이번 작전은 꽤나 모험적인 측면이 컸다.
마인은 무인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지만, 연맹과 마교의 인원수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소규모 전투에서는 마인들이 압승한다 해도, 중원 전체를 정복하기엔 절대적인 숫자가 너무 모자란 것이다.
그런 전력 차를 메우기 위한 대안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강시들.
다만, 일반 강시는 일류급 이상의 무인을 상대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양측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절정급 이상의 위력이 나오려면, 특수한 대법으로 만들어지는 생강시가 필요했다.
하지만 생강시는 제조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본래의 터전인 신강 땅에서나 만들기를 고려할 수 있는 병기.
중원 각지에 숨어 지내며 보급이 원활하지 않은 지금의 마교로서는, 십 년에 한 구를 제작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나마 최근 몇 년 사이 술법의 대가였던 귀마가 생강시를 개량한 새로운 강시의 제조법을 개발하는 것에 성공하며, 마교의 간부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새로 만들어진 강시는 생강시처럼 생전의 무공을 쓸 수는 없지만, 검기로도 베기 어려울 정도의 단단함과 절정급 무인에게 맞먹는 힘과 속도를 가졌다.
무엇보다 일반 강시 정도로 대법이 쉽진 않아도, 귀마의 능력이라면 제법 빠르게 양산이 가능했다.
‘마인을 재료로 사용해야 하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새 강시의 이름은 마혈강시.
마기를 통해 강화되는 강시로, 살아 있는 마인을 재료 삼아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수가 적은 마교의 교인들을 갈아 넣는다는 것은 아니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들을 납치해 강제로 마공을 익히게 만들고, 재료로 삼을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성취에 도달하면 마혈강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마혈강시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긴 했다.
제작 후 기동 수명이 평균 삼 년 전후로 매우 짧다는 점.
물론 그 정도는 크게 단점이라고 볼 수도 없다.
대략 이 년 정도 안에 수천 구의 마혈강시를 만들 수만 있다면, 수명이 다하기 전에 무림을 전복시키고 중원 전체를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강력한 병기가 개발되자 마교의 수뇌부들은 하나같이 기대에 부풀었다.
‘교주님의 빈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지만, 그래도 마혈강시를 대량으로 만들어낸다면 중원일통의 대계를 다시 시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는 대규모 제작설비를 갖춘 거점을 만들겠다며 떠난 귀마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너무나도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남아 있는 인원으로라도 마혈강시의 제작에 착수하려 했지만, 강시술에 일가견이 있던 마인들이 귀마와 함께 대거 떠난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번 하북의 전투에 투입된 마혈강시는 대부분 귀마와 그의 세력이 기존에 만들어둔 전력들.
지난 일 년 사이 새로 만들어진 강시의 수는 몇 구 되지도 않는다.
마교의 남은 수뇌부들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들어져 있는 마혈강시라도 이용해서 연맹에 최대한의 타격을 입히거나, 또다시 귀마 같은 강시술의 천재가 나오길 기도하며 기다리거나.
마교는 전자를 선택했다.
기다림은 지금도 이미 너무 길었다.
‘이놈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더없이 완벽했을 미래였거늘!’
콰과강!
검마가 휘두른 검에서 길게 솟아난 검강이 흩뿌려지며, 땅거죽에 여러 줄의 고랑을 만들어냈다.
내공이 대단해서 그런지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강기의 양도 상당하다.
불영선하보의 절묘한 보법과 의지만으로 몸의 위치를 움직일 수 있는 금강부동신법.
둘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피해내기 버거웠을 것이다.
검마의 검초를 파고든 소종천이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으로 주먹을 뻗었다.
곧게 내지른 것도 옆으로 휘두른 것도 아닌 애매한 동작.
사권의 형에 속하는 유연한 자세에서 펼쳐진 투로에 따라, 기이한 각도에서 쉬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함께 권격이 가해졌다.
아라한신권까지 운용하고 있었기에 극한의 속도가 더해져, 그야말로 정면에서 보고도 피할 수 없는 변화막측한 일격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거의 3갑자에 가까운 내공을 쌓은 검마다.
초절정 무인의 시력으로도 제대로 쫓기 힘든 권격이었지만, 검마의 감각은 눈으로 인지하는 것보다 빠르게 소종천의 공격 궤도를 파악해 냈다.
까가각!
주먹 끝에서 하박 전체를 감싼 수갑의 금속부를 긁어내며, 검마의 검이 소종천의 권격을 밀어냈다.
두 사람 다 강기를 다루고 있기에 강력한 반발력이 발생하며, 주변 기의 흐름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들과 제법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있던 강시와 무인들이, 기압에 밀려 나동그라질 지경이었다.
펑! 퍼벙!
소종천과 검마가 격돌하며 폭음이 연달아 울렸다.
‘역시 내공만 아니라 검법도 장난 아니네.’
최선을 다해 검마를 공략해가던 소종천은, 상대가 역시나 만만치 않다는 것을 실감하며 입맛을 다셨다.
검마가 사용하는 천강혈룡검법은 마교 최강의 검법으로, 마공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중원을 통틀어서도 손에 꼽을 만한 절학이다.
그런 무공을 대성한 검의 고수답게, 검마의 검세는 매섭고 파괴적이며 지독했다.
한 가지도 익히기 힘든 소림의 절예를 여덟 가지나 가지고 있는 소종천으로서도, 승기를 가져올 방법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자.
게다가 내공의 총량에서 차이가 나다 보니 강기의 출력 또한 상당한지라, 충돌할 때마다 어깨가 뻐근해지고 뱃속이 요동치는 느낌이다.
마기에 상극인 반야신공이 아니라 다른 심법으로 운용되는 내공이었다면, 뭘 해보기도 전에 내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엔 이기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이쪽에는 실력이 확실한 조력자가 있으니까.
쉬익!
소종천의 미간을 노리고 찔러가던 검마의 검이, 다가오는 위협을 감지하고 검로를 변경했다.
자색의 검강과 연청색의 검강이 부딪히며, 순간적으로 통제력을 벗어난 강기의 일부가 허공에 뿌려졌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격돌의 충격으로 남궁건이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남궁세가의 검수 따위가…….”
자신과 검을 맞대고도 한 발자국밖에 밀려나지 않는 남궁건을 보며, 검마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기세로 말을 내뱉었다.
소종천과는 달리 똑같이 검을 쓴다는 점에서, 남궁건은 검마의 자존심을 자극하는 상대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주위로 수십 개에 달하는 검의 잔상이 그려졌다.
둘이서 워낙 빠르게 검격을 주고받다 보니, 검을 하나씩이 아니라 대여섯 개쯤 들고 싸우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보다 잘 싸우는 것 같네. 에이, 부러운 재능충!’
심득과 비약의 힘으로 130년가량의 내공을 가졌던 남궁건은, 소종천을 따라다니며 그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심득의 힘을 빠르게 체득해 왔다.
현재는 150년을 넘어 거의 160년에 달하는 내공을 지닌 상태.
검마와는 10년 정도의 차이가 날 뿐이니, 그럭저럭 동수를 이룰 만하다.
다만, 남궁세가의 창궁대연신공이 신공절학 소리를 들을 만한 심법이긴 해도, 반야신공처럼 마기를 몰아내는 성질의 내공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남궁건 역시 극강한 마기를 다루는 검마를 상대로는, 완벽한 상태로의 전력을 다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쉬이 밀리지 않는 것은, 남궁건의 검법이 그만큼 특별하기 때문.
미래의 대영웅인 창천검성의 깨달음이 내포되면서, 남궁건의 무공은 기존의 남궁세가 검법이 가지는 한계를 살짝 벗어난 묘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후우. 검마의 악명이 무림을 떨게 한다더니, 예상보다 제법 할 만하구려.”
“감히 그따위 건방을…….”
“사특한 마공 따위로 쌓아 올린 검공이란 그런 것일 수밖에 없겠지.”
남궁건이 웬일로 평소의 행실답지 않게, 상대를 향해 도발적인 언사를 던졌다.
도발이라기엔 그의 성격답게 꽤나 얌전한 말이었지만, 효과가 있는지 검마는 이를 드러내며 더더욱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크아앗! 본교의 것보다 뛰어난 검공 따윈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마기와 내공의 차이로 유리해야함에도 남궁건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검을 다루는 기량에서 살짝 처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기에,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조금 무리한 공세를 이어가게 되었다.
‘좋아. 더 흉포하고 강렬해졌지만, 위력은 높아졌어도 오히려 노려볼 만한 틈은 늘어났어.’
막 자신을 향해 쏘아진 궁마의 화살을 피해낸 소종천이, 눈을 빛내며 날뛰는 검마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쉽진 않아도 힘을 합친다면 우리가 더 유리해.’
이 대 이의 싸움이라 해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 궁마의 지원사격으로는, 소종천이나 남궁건에게 치명상을 입히기가 어렵다.
궁마의 궁술은 초절정 미만의 무인들에게는 다른 오악보다도 더 위협적이지만, 동일한 경지의 무인이라면 대처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
아무리 빠르고 정확한 화살이라도 바로 앞에서 내지르는 칼이나 주먹보다 앞설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궁마의 화살은 부가 되고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검마의 검이 주가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형태.
반면 소종천과 남궁건은 기회가 보이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위치를 바꾸며 공수를 전환할 수 있다.
이 대 이라기보단 사실상 둘이서 궁마의 공격을 주의하며, 양쪽에서 검마를 압박해가는 식이다.
퍼버벙! 콰앙!
폭음과 함께 강기가 비산하며 주변의 환경을 초토화시킨다.
소종천과 남궁건은 날뛰는 검마를 상대로 교묘하게 치고 빠지며 상대의 힘이 빠지길 기다렸다.
충돌할 때마다 온 힘을 다해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검마의 무위는 확실히 대단한 것이었지만, 부담을 몰아받기에 두 사람을 상대로 점점 피해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남궁건의 도발로 거의 존재하지 않던 상대의 허점이 미세하게나마 늘어난 것도, 현 사태를 만들어내는 것에 한몫했다.
검마를 상대로 조금씩 승기가 보이고 있는 순간이었다.
“읏!”
막 남궁건에게로 향하던 궁마의 화살을 대신 쳐내고 그와 자리를 바꾸려던 소종천은, 옆에서 달려든 강시들을 때려눕히느라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어째 주위에 강시가 더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이런 썅?’
주변을 둘러본 소종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연맹의 무사들과 거리가 제법 멀어졌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아오! 맹주 저 인간이 진짜!’
퇴로를 만들겠다며 이쪽에 합세하지 않고 무인들을 지휘하더니, 성과가 있긴 한 모양이다.
문제는 그로 인해 소종천 쪽으로 마교 측의 전력이 몰리게 되었다는 점.
강시나 다른 졸개 마인들은 소종천과 남궁건의 상대가 되지 않지만, 지금처럼 대장전에서 아슬아슬하게 우세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
‘망할! 이러면 기껏 잡은 승기가 날아갈지도 모르겠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아군의 행태에, 소종천은 절로 얼굴을 일그러졌다.
뽑기로 무림최강 16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