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5
15. 야수(夜獸)와 검룡(劍龍)(3)
“금방 날을 잡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나 뒤로 미루는구려.”
“준비할 기간이 필요하거든.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라 생각해 줘.”
남궁건의 말에 소종천은 적당히 대답하며 임무의 알림으로 시선을 주었다.
[만족] [비무를 통해 남궁건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십시오.] [보상 : 비무 결과 및 대상의 만족도에 따라 차등 지급.]‘미묘한 임무네.’
정확한 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임무.
‘만족도라. 승리를 바라지 않는 무인은 없을 텐데. 그러면 적당히 비등비등하게 싸우다가 져주기라도 해야 하나?’
그런 의문을 떠올리던 소종천은 이내 피식 웃고는 생각을 비워냈다.
주제넘은 말이다.
그런 상황을 변수 없이 연출하려면, 적어도 상대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결과가 어찌 되어도 보상이 나오는 임무라면, 잡생각은 하지 말고 최선이나 다하자.’
남궁건은 분명 자신보다 한 수 위의 무인일 터.
전력을 다해 부딪쳐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이다.
“본인과의 비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 하니, 기다림이 길다 투덜거리진 않겠소. 그동안 나 역시 더욱 검을 갈고닦으며 지내겠소이다.”
소종천이 말한 열흘의 기한에 남궁건은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수긍했다.
비무 일정을 잡은 소종천은 언제나처럼 낮에는 권법을 다듬고 저녁에는 대련 형식의 지도를 받으며, 남궁건과의 비무를 대비했다.
문제는 수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기다렸어.”
“아니, 진짜 미치겠네!? 나한테 왜 이러는데!”
그렇지 않아도 하루 종일 몸을 쓰면서 체력도 내공도 바닥까지 떨어졌다.
어서 가서 운공으로 기혈을 안정시키고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매번 한사혜가 귀신같이 나타나 길을 막아선다.
동선을 바꾸자니 어차피 목적지가 한 곳이라 피할 수도 없고, 숨어 들어가자니 숙소 근방은 죄다 공터라 훤히 눈에 띈다.
그렇다고 시간을 변경하기도 어렵다.
낮에는 자신의 일로 바쁘고 그나마 저녁에 개인 시간을 할애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는 곽진.
거기에 대고 밤마다 같은 방 여자애에게 두들겨 맞고 있으니, 지도 시간을 조절해 달라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무인이 비겁하게 이래도 되는 거냐! 이 시간은 항상 수련 때문에 지쳐 있는 몸 상태라고!”
“살살 할게.”
“차라리 낮에 대련 신청을 하던가!”
“나도 수련을 해야 해서 바빠.”
“망할!”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꼬박꼬박 대답은 해주는 게 더 짜증이 난다.
뱀이 움직이는 것 같은 묘한 걸음으로 접근해 조법을 펼치는 한사혜.
소종천은 욕설과 함께 남은 기력을 긁어모아 주먹을 내질렀다.
하도 시달리다 보니 이제는 여자라고 거리낌이 들지도 않았다.
딱히 원한 관계가 없는 무인들끼리 겨루는 비무의 경우라면, 여성의 얼굴이나 흉부 등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품위 없는 행동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한사혜는 소종천보다 약자가 아니었고 매번 피로한 상태에서 덮쳐오는 탓에, 그딴 배려를 하고 있을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
울분 외의 다른 감정이 담기지 않은 주먹이, 어느 급소든지 가리지 않고 틈이 보일 때마다 휘둘러졌다.
매번 소종천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시달리다가 풀려나는 월야의 비무.
만전의 상태가 아닌 소종천이 매번 손해를 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속수무책으로 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사혜의 몸 여기저기에 퍼런 멍 자국을 만들어주고, 얼굴에 제대로 한 방을 먹여 잠깐 코피를 흘리게 만든 적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기분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여성을 상대로 그런 짓을 했다면 평생 경멸의 눈초리를 받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한사혜는 소종천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할 때마다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었다.
‘미친개에게 물린 거야! 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기에!?’
저런 상대라면 감정 관계가 어떻게 표시되려나 싶어, 감정경의 사용기회가 남아 있을 때 상태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분명 앙심이나 원한 같은 거로 적혀 있을 거야.’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한사혜의 감정 관계는 ‘호감’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혼란에 빠진 소종천은 재차 한사혜 광녀설을 되새겨야 했다.
시간은 착실히 흘러 남궁건과의 비무까지 남은 기간 사흘.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300은 당첨!]아침에 눈을 뜬 소종천은 알림을 대충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간 일일 보상으로 얻은 은으로 세 번의 인급 뽑기를 돌렸는데, 전부 무색 영약으로 돌아와 내공 0.02와 근골 0.01이라는 결과를 남겼다.
오늘은 뽑기를 돌릴 만큼의 재화가 모이지 않았기에, 곧장 숙소를 나와 일과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의룡전.
밤마다 부상을 입고 돌아오게 되니, 이제는 낮에 의룡전을 들려 전날의 상처들을 치료받고 나오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치료를 받으러 오니, 의룡전의 의원들에게 자제를 좀 하라며 핀잔을 받기도 했다.
“자네 혹시 어디 표범 우리에서 자고 나오기라도 하는가? 어째 아침만 되면 매번 그리 뭔가에 긁힌 상처를 입고 오는 겐가?”
“……매일 밤, 암표범 한 마리가 덮쳐오긴 합니다.”
의원의 물음에 한숨을 푹 내쉬고 대답하니, 돌아오는 반응이 가관이었다.
“쯧쯧! 그런 거였군. 여자 문제였어.”
“예, 맞습니다. 이상한 년 하나 때문에 진짜 뒤질 것 같아요.”
“이곳 학관의 규율은 자유분방한 듯싶으면서도 엄한 구석이 있으니, 너무 거친 행위는 교관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게.”
“예? 그게 뭔 헛소리세요?”
“한창 불끈불끈하고 좋을 때지. 부럽네그려.”
“아니, 뭐라는 거야!”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이상한 말이나 해대는 의원을 보며 괜히 열을 내기도 했다.
그래도 괜히 밉보였다가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 자신만 손해이기에, 소란을 피우진 못하고 속으로 화를 삭이며 의룡전을 나섰다.
‘하…… 이러다 말라 죽겠네.’
몸에 상처가 생기면 치유를 위해 원기가 소모된다.
그렇지 않아도 무공을 수련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기력이 많이 필요한 일.
거기에 매번 부상과 회복을 반복하려니,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개운하지 않고 피로감에 시달린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상황이 소종천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기는 했다.
매번 지친 상태에서 치러지는 전투.
사정 따윈 봐주지 않고 몰아치는 한사혜 때문에, 육체가 극한까지 혹사당하고 감각은 칼날처럼 벼려지기를 반복한다.
자연히 신체의 힘을 한계까지 끌어내는데 익숙해져 갔고, 바닥을 드러낸 내공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법도 체득했다.
악조건 속에서 행해지는 전투가 무인으로서의 발전에 적잖이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하루만 수련을 빼먹고 쉰 다음에, 어디 숨어 있다가 암습으로 쓰러뜨릴까? 팔이라도 부러뜨려놓으면 한동안 편해질 수 있을 텐데.’
다만 그런 사실을 본인이 바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알았다 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소종천이었다.
밖에서는 매번 그리 사납게 날뛰면서, 숙소에서 마주치면 모르는 사람처럼 말 한마디 섞지 않는 한사혜.
계속 이대로 지낼 수는 없으니 뭔가 조치를 취하긴 해야 할 텐데, 상대가 무슨 살의를 가지고 덤벼오는 것도 아니니 대처하기 애매하다.
매일 얻어맞는다고 교관들에게 가서 질질 짜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건 너무 쪽팔리니 최후의 수단으로 미루고 싶은데.’
그렇게 마땅한 해결책 없이 고민만 깊어가는 동안.
어느덧 약속했던 열흘째가 다가왔다.
* * *
“지난 열흘 동안 오늘을 기대하느라…… 으음, 소종천 학우. 정말 괜찮은 거 맞소?”
“어.”
“하지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이는구려. 비무는 조금 더 미뤄도 좋으니, 정양에 힘써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소.”
“괜찮다니까.”
“허…….”
목 아래로 성한 곳이 하나 없어 보이는 소종천의 모습에 남궁건은 살짝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약탕 속에서 멱을 감고 오기라도 했는지, 온몸에서 의룡전 고약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풍겨온다.
‘대체 얼마나 험한 수행을 하고 온 것이기에?’
괜히 열흘의 시간을 달라 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고약한 냄새 때문에 비위가 상하긴 하지만, 남궁건은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표정을 관리했다.
몸이 저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수련을 하다니, 눈앞의 상대 역시 그만큼 자신과의 비무를 기대하며 준비했다는 뜻일 터.
‘그런데 너무 의욕이 과해 몸을 상하게 만든 것은 아닌가 싶군. 저래서는 전력을 다하지 못할 것 같은데.’
남궁건의 우려와 달리, 소종천의 상처는 몸을 움직이는 데는 별 지장 없는 생채기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워낙 상처의 수가 많아 붕대를 칭칭 감고 있으니, 중상을 입은 게 아닌가 하는 오해를 살 만한 모습이긴 했다.
‘부상자인 것은 감안하고 싸워야 하겠어.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모용설호와 소종천의 비무를 관람했을 때, 남궁건은 꽤나 자극을 받았었다.
자신의 기준에서 봤을 때 수준 자체는 그리 높다고 할 건 아니었으나, 실전을 방불케 하는 그런 투박한 싸움은 제법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었다.
특출한 재능과 뒷받침된 노력으로 또래 중 제대로 검을 섞을 자가 없는 실력을 지닌 남궁건.
그에게 유일한 단점은 대련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남궁건의 아비는 현 남궁세가 가주의 차남이었다.
정실이 아닌 첩실에게서 본 자식.
힘을 실어줄 외가가 없기에,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단은 직계의 혈족이기에 비전의 무공들을 전수받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명가의 비법에 따른 육성과정을 제대로 거치지는 못했다.
특히 남궁건의 재능을 경계한 정실부인의 견제로, 대부분의 시간을 지도 없이 홀로 검을 휘두르며 보내야 했다.
주변에 도움을 줄 이가 얼마 없는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된 연습 상대를 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이만큼의 수준에 올랐으니 그 재능이 독보적이긴 하다.
어쨌거나 그런 가문을 떠나 잠룡학관에 입관하게 된 남궁건.
그에게 이곳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여겨지는 점을 꼽으라면, 연습 상대가 되어줄 이가 이전과 달리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하나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아, 나는 조금…… 다른 비슷한 실력자와 겨루는 게 좋지 않겠어?
-같은 대주들하고 어울리지그래?
입관 후 처음으로 치른 연습 비무.
오랜만의 대련에 흥에 겨워 전력을 쏟아부었다가 상대를 무참히 패배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생도들 대다수가 남궁건과의 비무를 피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절제해야겠지.’
남궁건은 소종천을 보며 검에 손을 가져갔다.
싸우던 모습이 마음에 들어 비무를 하고 싶단 의사를 넌지시 흘리긴 했었다.
또 거절당할까 싶어 대놓고 비무 신청을 하진 않았는데, 의외로 저쪽에서 먼저 가볍게 손을 섞어보자고 다가와 주었다.
그렇기에 옅게나마 호의를 가지고 있는 학우다.
저런 꼴로 나타났으니 기대했던 수준의 비무를 치르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친선 비무라는 목적에 맞춰 적당히 상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대로 시작하겠소. 남궁세가의 무사, 남궁건. 대연검법과 창궁무애검법을 사용할 것이오.”
“소종천. 소림오권.”
“소림? 그러고 보니 심법으로 시끄러웠을 때도 소림의 무공이라 들었던 것 같은데, 권법 역시도 소림의 무공이었구려.”
“뭐, 그렇지.”
“옛이야기에서 이름은 많이 언급되는 것 같지만, 이제는 마주칠 일이 없는 문파의 무공이라 들었는데 신기하군. 아무튼, 보기 어려운 공부, 기꺼운 마음으로 겪어보도록 하겠소.”
“잘 부탁해.”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기세를 끌어올리며 서로와의 거리를 좁혔다.
뽑기로 무림최강 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