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답은 내 안에 있다
“장문경!”
“고매하신 허도진인께서 여긴 무슨 일이오?”
허도진인께선 장문경 선배의 이름 석 자를 힘주어 불렀고, 장문경 선배는 허도진인에게 비꼬듯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한 관계가 깊다고 생각할 만큼 흉흉한 분위기가 흘렀다.
‘장문경 선배를 나한테 보낸 분이 허도진인이신데 험악은 개뿔.’
일행 중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에 다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하지만 덕풍 윤가의 인물, 허도진인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화를 내고 있는 사내는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언성을 높였다.
“장문경, 네 이놈! 네놈이 천하십검의 일인이라 한들 죄 없는 인명을 이리 살상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누가 들으면 정말 무고한 피해자인 줄 알겠다.
허도진인 옆에서 개소리를 지껄이는 저자가 덕풍 윤가의 가주 윤진혁인 듯하다.
그 뒤에도 덕풍 윤가의 똥덩이들이 모여 있다.
어쩌면 장문경 선배가 손을 써 뒀다는 것이 허도진인일지도 모르겠다.
“시시비비를 가릴 게 있다면 당당하게 대문을 깨고 들어올 것이지. 어찌 이리 쥐새끼 사냥하듯 벤단 말인가.”
“쥐새끼를 쥐새끼답게 대할 뿐이오.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니 진인께서 관여하실 바가 아니오.”
“허허허!”
확실히 장문경 선배는 굳이 사당의 일을 언급하지 않은 채 허도진인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슬쩍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에서 덕풍 윤가의 똥덩이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는 허도진인을 믿고 덕풍 윤가가 우리에게 덤벼들도록 만들기 위한 계책이다.
한 판 붙어 보자고 나서면서도 묘한 시선이 오가는 것이 두 분 사이에는 이미 전음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증거가 지금 내게 닿은 전음입밀(傳音入密)이다.
[날뛰어 보거라. 뒤는 충분히 봐줄 것이다.]“내 검 앞에서도 계속 그리 오만할 수 있는지 어디 보겠다.”
[누가 알아보기 전에 허리춤의 그 송문고검은 감추도록 하고.]‘아차!’
입으로는 장문경 선배에게 도발을 날리면서 전음을 보내는 묘기를 보이시는 허도진인이시다.
이게 무당파의 양의신공인가?
하지만 뒤이은 조언에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손잡이 부근에 새겨진 송문고검의 문양을 가렸다.
다행히 덕풍 윤가의 똥덩어리들은 죄다 장문경 선배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들키지 않았다.
어느 정도 판이 만들어졌다고 여겼는지 장문경 선배가 뽑아 든 검에 기운을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와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던가.
검을 휘두르는 장문경 선배의 검에서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호흡. 발의 위치. 내기와 외기가 어떻게 어울려 최종적으로 검을 뻗어내는지.
그 흐름이 뚜렷하게 부각되어 보였다.
장문경 선배에게 느꼈던 요새(要塞)와 같던 벽이 더욱 단단해졌다.
가볍게 휘두른 검격일 뿐인데, 그 완성도는 발끝에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견고했다.
그런 검을 허도진인은 역시나 가볍게 흘려냈다.
티잉!
“큭!”
“으읏!!”
그렇게 흘려낸 검기의 여파가 허도진인의 뒤에 숨어 있던 윤진혁과 또 다른 한 명의 손발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내 근처에 있지 마시게.”
허도진인께서 상처를 입은 자에게 뒤늦은(?) 경고를 해주셨다.
‘일부러……인가?’
모를 일이다. 두 분이 펼친 검은 단순해 보여도 그 수준이 무척 높았기 때문이다.
짜고 치는 것 같지만, 부딪치는 기량에는 일말의 거짓도 없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덕풍 윤가만 손해를 봤다.
당장 허도진인의 뒤에 있는 덕풍 윤가 똥덩이들 중 가장 위협적인 자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해보겠나?”
“해봅시다!”
그리고 두 거인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기 시작했다.
카카카캉! 캉! 카캉!
천하십검의 기량이 드러나며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칼바람이 불었다.
“으앗!!”
“피해!”
거기에 휘말린 덕풍 윤가의 똥덩이들이 허겁지겁 물러났지만, 대부분이 깊은 상처를 입었다.
허도진인의 검은 장문경 선배의 강검에 강하게 튕겨져 나갔고, 장문경 선배의 검은 허도진인의 유검에 부드럽게 흘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 덕풍 윤가의 피해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높다…….’
아득하기 그지없는 무공의 향연이 뇌리에 자리를 잡아갔다.
자연스럽게 뻗어내는 힘의 흐름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 재능인지, 아니면 천상에 있는 자오경이라는 신물과 이어지며 얻게 된 능력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분명 기이할 정도로 사부님들의 무공을 빠르게 습득했다.
무공을 쉽게 얻을 때야 좋았지만, 점차 무림을 겪으면서 내 생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 무공과는 달라.’
극강격. 극심뢰. 영강수.
모두 절기라 펼칠 때는 대단했지만, 그 사이사이의 연결은 쭉정이나 다름없다.
하늘에서 뚝 떨어져 산의 정상에 선 느낌이다.
거기에 이르는 동안의 과정이 생략되었으니, 어느 것도 힘을 자연스럽게 펼쳐내질 못했다.
‘사부님들은 힘이란 수행의 결과일 뿐,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하셨는데…….’
과정이 생략된 결과물은 수행의 결과인가, 힘의 추구인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절대고수들의 격돌을 보며 그 괴리감이 터져 나왔다.
“가슴이 답답하다…….”
심마(心魔)의 전조인 걸까? 가슴이 답답하고 피부가 간지럽다.
미친놈이 발광하듯이 손발이 통제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고 싶어 하는 느낌이다.
“저 어린놈들을 잡아!”
그때였다.
장문경 선배와 허도진인 사이의 격돌에 쑥대밭이 되고 있는 와중, 덕풍 윤가의 가주 윤진혁이 소리쳤다.
두 절대고수의 싸움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으니, 우리라도 잡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피가 요동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던졌다.
눈을 부라리며 달려오는 윤진혁을 냅다 들이박았다.
퍼억!
“컥?! 이, 이놈 봐라?”
나를 눈 아래로 내려 보던 윤진혁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딴 반응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극강격이…… 아니야?’
평상시라면 첫 격돌은 거의 무조건 극강격이었다.
극강격의 강맹함으로 상대의 투로를 박살 냈다.
‘나는 부끄러워하고 있나?’
마치 사부님들에 대한 부정(否定)처럼 느껴진다.
‘아니야!’
이러다가 정말 심마가 올 것 같다.
그런 가운데 머리를 스치는 말.
[장삼풍이 기반을 깔고, 달마가 담금질하고, 천마 놈이 다듬은 몸이다. 카카! 네 몸뚱이가 그리 허접하진 않아! 카카카!]사부님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몸을 믿어라!
돌원숭이가 충동질했던 감각이 다시 한번 약동했다.
그 근간에는 무당권과 소림권이 있었다.
나의 뿌리와 같은 무공들이 본능에 응하며 움직여주었다.
“이놈이!”
신경질적으로 뻗어내는 윤진혁의 일장은 무당파의 무공과 닮았다.
그에 맞서 내 손이 태극권의 투로를 그렸다.
‘무당파 무공은 원의 무공!’
부드러운 원을 그린 투로가 상대의 힘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전사(纏絲)를 그렸다.
그 순간!
퍼억!!
“크윽!!”
상대의 수를 튕겨내며 만들어진 틈새로 주먹이 폭발적으로 뻗어나갔다.
한순간에 무공의 기질이 돌변한다.
그 일격에 손해를 본 윤진혁이 뒤로 물러섰다.
바로 따라붙는 내 움직임은 소림권의 강맹함이다.
무당권과 소림권은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선명하다.
윤진혁의 입장에선 갑자기 상대가 바뀌었다고 느낄 정도로 그 기질이 달랐다.
파파팍!
순식간에 수세에 몰린 윤진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수를 교환할 때마다 허도진인과 장문경 선배가 만들어낸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튄다.
하지만 놀랄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무, 무슨!!”
나조차도 놀랄 움직임이 나도 모르게 펼쳐졌다.
원의 흐름을 살리면서도 저돌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초식과 초식마다 손의 형태가 바뀌며 소림권과 무당권이 불규칙하게 튀어나왔다.
소림권인가 하면 어느새 무당권으로 바뀌어 금나수를 걸어온다.
뿌리치려고 하면 흔들린 틈으로 폭발적인 권격이 매섭게 뻗어낸다.
“이 무슨 잡탕이냐!!”
나름 속가 무당권에 조예가 있는 만큼 그 변화의 폭을 알아봤는지 윤진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젠 내 무공이 어떤 것인지 가늠조차 못 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런 윤진혁의 반응은 이미 관심 밖이다.
본능적으로 펼치는 무당권과 소림권에 섞여 있는, 생각지도 못한 묘리에 빠져들었다.
소림권을 펼칠 때 힘을 떨치는 방식에는 은연중 극강격의 묘리가 차환되어 적용되었다.
무당권을 펼칠 때는 영강수의 흐름이 힘을 유도해 줬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 내 몸 안에는 이미 사부님들의 절기가 녹아들어 있었다.
‘나는 천하의 멍청이였구나.’
과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염치없이 결과만 넙죽넙죽 받아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
너무 크고 거대했기에 단번에 녹여내지 못했던 과정들이 담겨 있었다.
답은 내 안에 있었다!
이미 사부님들은 내 안에 답을 만들어놓았다.
나는 그저 그 답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찾아낸 답을 따라 그 길이 물꼬를 트며 하나의 흐름을 자각했다.
‘내가 오만했을 뿐이야.’
사부님들이 말씀하셨다.
지금 지상의 무공은 불완전하다고.
오직 나만이 완전한 무맥을 이었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다.
눈앞의 장관을 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느껴진다.
보라!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고자 피땀 흘린 이들의 결실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집착한 것은 나였어.’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힘 좀 생겼다고 주변에서 떠받들어지는 걸 부담스럽고 싫어한 주제에, 한 편으론 그걸 즐긴 것 같다.
그래서 매달렸다.
모두가 우러러볼 특별한 것들에.
손쉽게 얻은 특별함을 손쉽게 다룰 생각만 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좀 더 진솔하게 본 내 민낯은 창피할 정도로 얼간이 같았다.
‘이런 멍청이가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자연스럽게 자존심을 내려놓고 정신을 몸에 맞추었다.
그 순간, 잠깐이지만 정신과 마음 그리고 육체가 하나인 듯한 감각이 들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되는 감각.
신력과 내력이 함께 움직이고, 삼재일기공이 이전에 없던 반응을 보인 순간이기도 했다.
뻗어내는 주먹에 그 힘이 실렸다.
“허엇?!”
내 주먹에 실린 힘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윤진혁이 다급히 흘려내려 했다.
우직! 콰가가가가!
“크악!”
하지만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처럼 팔이 뭉개졌다.
뻗어나가는 힘을 다 해소하지 못한 윤진혁의 몸이 거세게 바닥에 팽개쳐졌다.
한 지역을 주름잡는 절정고수를 일방적으로 뭉갰다.
“후우우…….”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윤진혁과 달리 나는 배 속이 시원해진 기분이다.
머릿속 뚜껑이 확 열려 버린 것 같은 청량한 감각에 숨을 고르던 나는 문뜩 주변의 변화를 느꼈다.
“……응?”
장문경 선배와 허도진인의 격돌은 어느새 멈춰진 채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