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지상이나 천상이나
“이건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군.”
열 명의 시왕들이 다스리는 지옥을 거닐며 달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인 연청운의 부탁으로 흑기를 쓰는 무인들에 대해 조사하는 간단한 일이었다.
한데 조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허!허!허! 이런 개판이 있나.”
제자가 조사를 부탁한 영혼을 찾을 길이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명부에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았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틀림없이 자오경을 통해서 죽는 모습을 보았고, 죽은 자의 영혼이 명부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그 영혼이 없다.
황망한 마음에 저승차사에게 따져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이 참으로 심금을 울렸다.
“그냥 가끔 있는 일입니다. 매일 죽는 사람 숫자가 얼마인데, 실수가 나올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가?”
“저희 애들도 과도한 업무에 매일 혹사 중입니다. 삐져나간 영혼들 수거한다고 출장 나갈 여력이 없어요. 당장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쁩니다. 게다가 봉신대결계가 펼쳐지면서 이전처럼 지상 출장이 쉬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승차사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척이나 간단했다.
배 째.
당장 눈앞에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그 많은 영혼 중 몇 개 빠지는 것까지 신경 쓰기 힘들다는 거다.
“아무튼, 기다려 보시죠. 뭐, 보통은 하계에서 술법 관련 문제로 묶여 있는 것이 아니면, 땅에 매인 신령이나 귀신이 되는 게 일반적이니까요. 나중에 알아서 올라들 올 겁니다.”
문제가 있는 것을 말하면서도 저승차사는 무척이나 당당했다.
어쨌거나 본인 업무는 다 해내고 있으니, 자기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아래에서는 굳이 떠들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 쉬쉬하고, 위에서는 정확하게 짚어서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달마 역시 이렇게 하나둘 비는 영혼이 생긴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을 정도였다.
공무를 보는 이들이 복지부동하면 어떤 꼴이 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허!허!허! 잘 알겠네.”
여기서 다그쳐 봐야 답이 나올 일이 아니기에, 달마는 한발 물러섰다.
일손 부족으로 고생하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이런 말이 나오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한계라고 해도 무방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구나.”
그렇기에 달마는 저승차사의 넋두리를 이해하려 애썼다.
“쓰벌. 짜증나게시리. 부처 믿는 놈이면 극락정토에서나 나댈 거지 왜 여기서 지랄이야. 빡치게.”
돌아가는 도중 들은 말만 없었다면.
“허!허!허!”
갑자기 달마의 머릿속에서 최근의 과다한 업무가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극락정토의 업무를 수행하랴, 난리 난 서장 쪽 업무 도우랴, 종종 일손이 부족한 선계와 지옥의 업무 지원하랴.
여기에 제자의 부탁까지 있었다.
정말 한계의 한계까지 쥐어짜 내서 일을 하다 보면 하루가 십 년처럼 느껴질 정도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정말 체감상 십 년의 세월을 느끼는 거다.
요 근래 이러한 과다 업무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저승차사의 넋두리를 이해하려 했지만, 뒤이은 뒷담화는 납득할 수 없었다.
지만 바쁜가? 시간의 흐름까지 만져 가며 일하는 부처에게 뭐가 어쩌고 어째?
“허!허!허! 니미씨부랄타불!”
달마의 욱하는 성질이 튀어나왔다.
멀어졌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되돌아오는 달마의 손이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저승차사의 멱살을 잡았다.
“청구는 내 앞으로 하게.”
콰직!!
“꾸에에엑!!”
벼락처럼 떨어져 내린 달마의 당수가 저승차사의 뚝배기를 부숴버렸다.
물론 명부인 이곳에서는 그 정도로 소멸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과는 두둑하게 쳐줌세.”
달마가 머리통이 사라진 저승차사의 양신을 벽에 집어 던졌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 깽판 탓에 달마가 지불해야 한 인과는 좀 셌다.
모여 있던 저금통이 꽤나 허전해졌을 정도였다.
덕분에 눈앞의 난관이 더더욱 암울하게 느껴졌다.
“허허. 이 인과는 대체…….”
흑기를 쓰는 것들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달마는 지금 손을 대려는 부분에 대한 인과의 대가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것을 느꼈다.
자력으로 천상에 오른 존재들쯤 되면, 해도 되는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의 구분을 쉽게 할 수 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초월적인 존재지만, 그런 신선들에게도 제약은 있었다.
그 제약을 해제하기 위한 대가가 인과다.
“대체 뭐기에…….”
지불해야 할 인과의 크기만 보더라도 쉬이 건드릴 수 없는 일이다.
달마는 천상에 오른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경각심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달마를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선계에서 손꼽히는 파벌 중 하나인 곤륜의 핵심을 담당하는 곤륜십이선의 필두.
“웬일이시오? 태을진인께서 곤륜을 다 벗어나시고?”
“영업하러 왔네.”
“그건 또 뭔 소리이시오?”
“자네 제자 이야기지. 그게 아니면 무어겠는가?”
태을진인의 입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자 연청운의 이야기가 나왔다.
달마가 께름칙한 눈으로 태을진인을 바라보았다.
태을진인이라면 선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물이다. 그런 존재가 제자 연청운에게 목을 매는 모습을 보인다니.
“자오경을 보고 있는 곤륜 신선들이 부탁을 해 와서 말일세. 하계의 곤륜산이 그립다는구먼. 한데 조만간 자네 제자가 그 부근을 지나갈 수도 있지 않은가. 십만대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곤륜산이 있으니 말일세.”
봉신대결계로 모든 것이 닫혀버린 지금은 지상을 엿보는 일 자체가 막혀버렸다.
단 하나, 연청운을 비추는 자오경을 제외하고.
그렇기에 천상의 존재들이 연청운의 행보에 미쳐 날뛰는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절절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움직일 것 같았다.
……라고 햇병아리라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곤륜산에 들르는 길에 싹이 보이는 수행자가 있으면 겸사겸사 선근을 틔워 달라는 말도 하시겠소?”
“그야말로 바라마지않는 일이겠지.”
태을진인은 환하게 웃었다.
“허 참.”
천상의 존재들이 제자 연청운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은 달마 또한 진즉에 알고 있었다.
제자의 모습과 이를 통해 보여지는 지상을 순순히 즐기는 자들도 많았지만, 제자의 손을 통해 신입 신선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에 기대감을 가지는 자들도 상당했다.
실제로 공료라는 아해가 탈각의 가능성을 연 이후로, 극락정토의 부서장이 은연중에 업무량을 줄여주기까지 했다. 무려 삼 푼이나!
서장 쪽 난장판으로 폭주하는 업무량에 극락정토가 수라장이 되었음에도 나름 업무 배분에 배려가 있을 정도였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문제가 많구려.”
명부도, 선계도 한계였다. 천상계가 어느 정도로 몸이 달아올라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지경이다.
달마는 제자 연청운의 행보가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다.
“물론, 맨입으로 해 달라는 건 아닐세.”
살짝 안색이 어두워지는 달마의 표정을 보며 태을진인이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해 왔다.
“요즘 재미있는 거 알아보고 다니는 중이라며?”
태을진인에게서 조용하게 흘러들어오는 것에 달마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이 정도 인과를?”
“넣어 둬, 넣어 둬.”
흡사 뇌물수수 중인 악덕 관리 같은 언행이다.
제자를 팔아먹을 생각이 없는 달마가 이를 뿌리치려 했으나, 다음 이어진 태을진인의 말이 그 행동을 막았다.
“‘표면적’으로는 자네 제자에 대한 후원일세. 허나 자네가 알아보고 있는 건은 내 개인적으로도 지원할 가치가 있는 일이야. 비단 자네 제자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지.”
선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끼는 게 달마만은 아니라는 거다.
“결정적으로 꼰대들이 너무 조용해. 분명 자네 제자를 옹호하는 신선들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아는 그 꼰대들은 그런 눈치를 볼 성격들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꼰대 소릴 듣는 것이기도 하고. 당연히 잡음 정도는 일어날 줄 알고 나름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 다들 합죽이가 되어 버렸어.”
“꼰대답게 꽉 막혀 있을 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제하고 있단 소리구려.”
“맞네. 뭔가 따로 생각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 왠지 자네가 알아보고 있는 일들이 그쪽과 이어질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라네.”
태을진인이 보고 말하는 것은 위쪽에서 바라보는 자의 시선이었다.
“그런 거라면 직접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소?”
“내가 움직이면 일이 너무 커져 버리네. 자칫 소득도 없이 괜히 얌전히 있던 꼰대들만 자극해버리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 자네가 적임이야.”
달마는 자신에게 일을 맡기겠다는 태을진인의 강력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꼰대라는 단어의 정의가 혼란스러워졌다.
아무리 봐도 이 양반도 만만치 않게 그쪽 기질이 있어 보이는데…….
“그럼 고생하시게. 제자에게 말도 잘 전해주고.”
용무를 끝낸 태을진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아…….”
덩그러니 남은 달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몸이 두 개라도 됐으면 좋겠구나.”
달마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황량한 민머리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달마의 심정을 대변했다.
***
사람이 생활함에 있어 필수적인 세 가지 중 하나가 먹는 것이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와 노숙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이에 소홀해지게 된다.
다만, 요리 실력이 있다면 어느 정도 이를 보강할 수 있게 된다.
“누나는 여전히 요리를 잘하네요.”
“고마워. 맛있게 먹으렴.”
설아 누나가 만든 음식은 말린 육포에 간단한 향신료로 맛을 낸 요리로 단순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내공이 느껴진다고 할까나.
설아 누나는 예전부터 요리 실력이 상당했다.
가끔 놀러 가면 백무호와 나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는데, 하나같이 훌륭했다.
무공만큼이나 요리에도 재능이 있었던 것이 아닐…….
“여전히는 무슨. 너야 잘 만들어진 것만 먹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실패작들은 죄다 내가…… 쿠엑!”
“…….”
‘괜찮나, 저거? 한순간 턱이 돌아간 것 같았는데?’
감탄이 나올 정도로 깔끔한 일격이었다.
깝죽대는 백무호를 단번에 착한 아이로 만든 설아 누나가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기가 있네.”
“……봄에요?”
“그럼 날벌레로 해 두자. 이름 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때려잡을 벌레의 종류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냐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가끔 바퀴벌레 잡을 때의 어머니 같은 눈으로 설아 누나가 백무호를 바라봤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저것도 남매의 정 같은 거다.
설아 누나와 허물없이 지내는 백무호가 무척이나 부럽다.
그 순간 걱정 하나가 떠올랐다.
‘산적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아무래도 대부분 남자겠지?’
설아 누나는 누가 봐도 미인이다.
산적 새끼들이 설아 누나에게 찝쩍거릴 공산이 농후하다.
그 모습을 참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참아 봐야지.’
동시에 다른 걱정이 뒤를 이었다.
나를 광신도에 가깝게 따르는 이화와 종 노인 그리고 은근슬쩍 따라오고 있는 마인들.
산적들과 대면했을 때 기선제압을 한답시고 헛짓거리를 하는 산적들이 있을 공산 역시 농후했다.
내가 조롱당하면, 이들이 참고 넘길 수 있을까?
‘내 지시가 내려지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움직이지 말라고 이야기해 놔야겠네.’
일단은 일의 성사가 우선이다.
보복은 합의가 파투 난 뒤에 해도 되는 거다.
나는 미리부터 참을 인(忍)을 새겨 보는 연습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