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s are subscriber RAW novel - Chapter 400
399화 추적
사방이 난리다.
오죽하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움직이는 나를 향해 취죽 선생이 안쓰러운 눈길을 보낼 정도다.
그런데, 기색을 보니 뭔가가 더 남아있다는 느낌이다.
“……뭔가 더 있으신가요?”
“으음…… 확실한 것은 아니네만…….”
있긴 있다는 소리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라지만, 심각한 문제인 듯한 어감이다.
잠깐 뜸을 들이며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신 취죽 선생께서 심각한 내용을 풀어놓으셨다.
“서북 관문을 뚫은 자들을 염탐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소수이긴 하지만 북방계가 아닌 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 같다는구나.”
“서북 관문을 자력으로 뚫은 것이 아니라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한데…….”
다시 한번 말끝을 흐리신다.
아무래도 쉬이 믿기지 않는, 현실도피를 하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하셨다.
“……그자들이 도복을 입고 있단 이야기가 있더구나.”
“도복이라면…….”
“아무래도 공동파이지 싶구나.”
“……가지가지 하네요, 진짜.”
뒤통수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지금 뒤통수를 쓰다듬으면 머리카락 수준이 아니라 살점이 후두둑 떨어져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러다 제갈 군사보다 내가 먼저 탈모가 오겠다.
어쩐지 뜬금없이 뚫렸다 싶었다.
아마도 공동파가 간자가 되어 내부에서 성문을 열었을 공산이 지극히 높다.
무림에서의 이야기가 세간으로 흘러나가지 않아 생긴 문제다.
[어… 그…… 미안하다. 진짜 미안. ……어휴!]위에서 천사대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지간히 성깔이 있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말을 잇지 못하실 정도로 미안해하셨다.
[오늘 광성자가 공동파 출신들 줄 세우고 몽둥이질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아해야, 광성자에게 자오경 앞에서 하라고 할까? 신선들이 처맞는 소리 꽤나 귀한 거다?]슬슬 윗동네도 미쳐 돌아가는 것 같다.
아니, 미쳐 돌아가는 부분에 관해서는 슬슬이 아니다.
저 동네가 정상이 아닌 것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다.
“구파는 염병할…….”
“허허…….”
[크흠!] [커험! 컴!]내 심정을 이해하셨는지 취죽 선생께서 헛웃음을 흘리셨다.
선계에서도 장삼풍 사부를 필두로 구파와 관련된 분들의 한탄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달마 사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확실히 최근 달마 사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지가 꽤 되었다.
다시 이전처럼 어디서 구르고 계신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제자 된 도리로 일단 여쭤보긴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이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
“저도 그 부분은 기회가 되면 알아보겠습니다. 다만,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는 듯하니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시게나.”
“예…….”
안쓰러웠는지 취죽 선생은 가는 길에 먹으라고 다과를 챙겨주셨다.
받아온 다과는 취죽 선생의 거처에서 나오자마자 사라졌다.
이화에게 반을 주고 나머지는 모조리 입에 털어 넣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화는 사양을 하며 다과를 돌려주려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준 거 뺏는 건 나쁜 짓이라더라. 얼른 먹어.”
나는 다과를 이화의 입가로 쓱 밀었다.
“아암. 우우웅.”
이화는 황송한 듯 손에 받아든 다과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이화의 볼이 먹이를 잔뜩 집어삼킨 다람쥐마냥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귀엽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복잡했던 심경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더불어 단맛이 감도는 다과를 씹으니 가출했던 이성이 돌아온 기분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뱃속에는 검은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다.
찐득찐득하게 자리 잡은 이 검은 감정은 다 씻어내지 못했다.
깊은 실망감이다.
공동파가 멸천회주의 깃발 아래 선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는 무림만의 일이다.
하지만, 서북 관문을 열어 북방의 침공을 유도한 것은 민초들에게 심각한 사태가 될 우려가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오죽하면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다.
‘정말로 구파에 그만한 가치가 있나?’
내분으로 무너지고, 망가지고, 타락했다.
처음 무림에 동경을 가지던 시절과 달리 지금은 구파라는 두 글자에 담겨있던 무게감이 무척이나 초라해진 느낌이다.
그렇기에 이상하기도 했다.
멸천회주는 여전히 구파에 집착하는 느낌이 강했다.
멸천회주의 노림수에는 은연중에 구파를 겨냥하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왜일까?
‘뭐 떼어먹힌 거라도 있나? 아니면 멸천회주의 뿌리인 현청궁과 관련된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느꼈던 것이지만, 단순히 인과와 관련된 것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달마 사부는 어디 가셨습니까?”
[걔, 서쪽 갔어. 여래 미간에 뇌정을 꽂아버리겠다나 뭐라나.]“……예?”
듣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럽다.
직장 상사를 조지겠다니?
대체 얼마나 시달렸으면?
하지만 동시에 깊은 호기심이 일었다.
여래 대 달마라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뭐랄까…… 참 끝내주네요…….”
[구파가 다 그렇지 뭘.]천마 사부가 대놓고 비웃으신다.
구파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오늘따라 천마 사부의 목소리가 참으로 정겹게 들린다.
[어떠냐? 이번 기회에 그냥 구파를 쓸어내고 마도 천하를 해보는 건?]“아니, 그래도 그건 좀…….”
무려 천마 사부가 약을 팔고 계신다.
‘부업에 눈이라도 뜨셨나?’
이러다 똥지게 메는 일 때려치우시고 숙수도 하고, 안마도 하고, 저 하늘 너머까지 진출하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너는 다를 것 같냐?]그러고 보니 나도 달마 사부랑 비슷한 신세다.
도문과 불문.
뭔가 사이가 안 좋게 느껴지는 두 천상계에 모두 적을 두고 있다.
당연히 양쪽에서 시달리게 될 것은 명약관화다.
하지만, 난 이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원인을 아는 만큼 해결방법 또한 알고 있다.
‘내가 꼭 멸천회주 조지고 천상 쪽 인력 빵빵하게 채운다.’
나는 이화를 들쳐업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사천 남동부 내강을 향해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 가운데, 평소보다 높은 위치에서 허공답보를 펼치며 달렸다.
보다 넓게 보기 위함이다.
정보가 오가는 시차를 생각하면 남만야수궁과 점창파는 이미 내강을 벗어나 있을 공산이 높다.
상황에 따라서는 땅 위를 달리며 흔적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이화를 돌아보았다.
“이화야.”
“예.”
“혹시 청조를 찾을 때처럼 추적할 수 있을까?”
“잇고 있는 매개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알아야…….”
혹시나 싶어 물었지만, 역시나 어려운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내가 무리한 요구를 한 건데. 괜찮아.”
등에 업혀있는 이화의 몸이 축 처지는 것이 느껴진다.
설아 누나와는 다른 느낌이다.
“어휴! 그러지 말라니까.”
나는 손을 들어 이화의 머리를 북북 문질렀다.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달렸던 탓인지 머리카락이 부하게 일어났다는 것이 손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꽤나 헝클어졌을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기운을 차렸는지 이화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대신 다른 걸 해보겠습니다.”
“어, 해봐.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든.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이화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어 내뱉는 숨결에서 색다른 소리가 났다.
가늘고 낮게 흐르는 호흡은 마치 휘파람 소리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함께 주변으로 뭔가가 다가왔다.
“새?”
크고 작은 새들이 허공을 달리는 옆으로 따라붙는다.
나란히 날아가는 새들이 나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마치 ‘이 인간은 뭔데 날아다녀?’라고 하는 듯한 시선들이다.
그중 하나가 이화의 어깨 위에 앉았다.
“위협적인 사람의 무리를 찾아라.”
삐이이이!
이화가 지시를 내리자 긴 울음소리와 함께 새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단하다.
길들이지 않은 야생의 새를 불러내 지시를 내리다니!
“우리 이화 정말 대단하구나.”
“……도움이 되었다니 저도 기쁩니다.”
내 칭찬에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뿌듯해하는 기색도 느껴진다.
순수하게 내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기뻐한다.
이런 아이를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번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삐이! 삐익! 삐삐삐!
그러는 사이 흩어졌던 새 중 일부가 돌아와 조류 특유의 삐약거리는 소리로 재잘거렸다.
내겐 그저 새소리였지만, 이화는 아닌 모양이다.
“북쪽입니다.”
“북쪽이라…….”
남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북쪽을 언급했다는 건 내가 그만큼 지나쳐왔다는 소리다.
이는 남만야수궁이 빠르게 북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화가 없었으면 한참 헤맬 뻔했네.”
“오라버니라면 금방 찾았을 겁니다.”
“너무 기특한 소리만 하지 말고. 그러다 하루 종일 머리만 쓰다듬을라.”
“어어…….”
지나가듯 툭 던진 말인데 이화의 대답이 늦다.
바라지만 차마 말을 못 꺼낸다는 느낌이랄까.
“해줘?”
“……아뇨.”
아니라곤 하지만 진짜 거부는 아니다.
‘아이 취급을 좋아하지 않던 녀석이.’
반응이 좋아서 가끔 머리를 쓰다듬기는 하지만, 너무 싫어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편이었는데, 이제 보니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다.
아니면 뭔가 심경의 변화 같은 것이라도 있었던가.
“알았다.”
나는 한 번 더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반 시진쯤 더 올라가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전투가 있었나 본데?”
나무가 부러져있고, 땅이 파여 있다.
강한 힘의 격돌이 오간 흔적들이다.
“사천 무림인들이 대응하고 있는 거구나.”
나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있지 않아도, 스스로의 집과 지켜야 할 것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가자!”
“예!”
흔적을 찾았으니 쫓는 것은 어렵지 않다.
땅에 남겨진 흔적을 따르자 어느덧 그 끝에 있는 자들의 존재가 느껴졌다.
파공음과 격렬한 충돌이 자아내는 파장.
피부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떨림이 선명해지는 가운데.
크허허허헝!
맹수의 포효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남만야수궁이다.
개개인의 무력도 출중하지만, 밀림의 맹수를 길들여 부린다는 풍문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왔다는 소리다.
한층 더 속력을 냈다.
그 끝에 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흑애무천을 비롯한 사파무인들이었다.
청성파도, 아미파도, 사천당가도 아니다.
자유분방한 차림의 호한(豪悍)들이 짐승의 가죽을 두른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누구냐!”
그런 가운데 나를 알아차린 자가 검극을 겨눈다.
파앗!
공기를 가르는 쾌검이 단숨에 거리를 좁히며 뻗어왔다.
사일검!
점창파를 대표하는 검을 펼치는 두 검수가 좌우를 점하며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그 순간 이화의 노성이 터져 나왔다.
“주인님께 검을 겨누다니! 건방지다!!”
감정적으로 소리친 이화의 노성에 반응하듯 불꽃이 파도처럼 일어난다.
거칠게 몰아치는 불꽃의 분노가 내 앞길을 연다.
“우웃!”
“이런 사술이!!”
옷에 불이 붙은 점창파 검수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다시금 이화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는 욕구를 뒤로 물리며 내 손이 허공을 격했다.
퍼퍽!
자연스럽게 펼쳐진 격공장이 물러나는 점창파 검수의 머리를 날렸다.
그리고 이화가 열어준 길을 향해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