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01
제101화 – 방비는 알아서들 하고.
나는 칠마의 십여 보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그들을 하나씩 일별했다. 맨 왼쪽에 선 현마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우호적인 눈빛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다만 무리의 중앙을 차지한 풍만한 몸매의 중년 여인만은 적의나 경계심 외에 호기심으로 해석될만한 감정도 동공에 담고 있었다.
그녀는 요마임에 틀림없었다. 칠마 중 여인은 그녀뿐이니.
우측에서 두 번째로 선 백발의 마인은 도마일 터였다.
현마는 그를 조심하라고 했다. 최강의 무력을 바탕으로 사실상 육마의 좌장 노릇을 하는 데다 전날 마종의 출현을 알렸을 때 의심과 반발을 주도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현마 옆의 단구 노인이 더 신경 쓰였다.
노인은 독마였다. 보름 전 봉화산에서의 일을 포함해 평생 네 번이나 독으로 곤욕을 치렀기에 백독불침의 신체가 되었음에도 나는 독을 쓰는 자들을 경시하지 못했다.
다른 삼마(三魔)는 장마(掌魔)가 용왕을 방불케 하는 거한이라는 점만 빼면 딱히 주목할 점이 없었다. 그는 칠 척이 넘었고 체구 또한 외공을 익힌 무사처럼 우람했다.
검마와 기마의 외양은 그저 평범했다.
내가 멈춰 섰음에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고 다들 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반 각 가까이 지속된 침묵을 깬 이는 도마였다.
“네가 스스로를 마종이라고 주장하는 자더냐?”
“혹시 절대천룡이라고 들어보았소?”
내 반문에 요마와 장마만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그나마 마원 외부 상황에 대해 귀를 열어둔 모양이었다. 나머지는 근래 온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별호를 들어본 적조차 없는 듯했다.
황당하다기보다는 신기했다. 어떻게 바깥세상에서는 삼척동자들도 아는 이름을 모를 수 있을까.
“예쁜 공자가 바로 그 초신성이란 말인가요?”
요마가 육감적인 몸에 어울리지 않는 간드러지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소.”
거구의 장마가 끼어들었다.
“그자는 정파 나부랭이들이나 하는 짓을 일삼는다던데, 그런 자가 어떻게 마종이 된단 말이냐?”
나는 현마를 비롯한 칠마를 둘러보았다.
이제 나의 정체성을 밝힐 때였다.
“나는 마종이 아니라 마선(魔仙)이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선택한 명칭이었다. 마인으로 태어났으되 선인이 되고자 하는 이, 그것이 나였다.
내 말에 당황한 현마가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마종! 뚱딴지같이 마선이라니! 어찌 그런…….”
나는 손을 들어 현마의 뒷말을 막았다.
“하지만 이곳엔 마선이 아니라 마종의 후예로서 왔소.”
최초의 일성을 발하고는 침묵하던 도마가 나섰다.
“거기에 어떤 차이가 있더냐?”
“마선이라면 불문곡직 당신들을 응징했을 거요. 그러나 당신들을 품고자 했던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하오.”
“기회라니?”
“마종의 명을 따르는 보답으로 명맥을 보존할 수 있는 기회 말이오.”
요마의 선홍빛 입술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공자에게 우리 전부를 몰살할 무력이 있단 말인가요?”
나는 핵심을 담은 그녀의 질문을 묵살하고 말을 이었다.
“다들 기억하고 있을 테지. 선친의 명은 딱 두 가지요. 첫째, 사람들을 죽이지 말 것. 둘째, 사람들을 굶기지도 말 것.”
존재감이 없던 검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더러 마인으로 살지 말라는 게냐?”
“천만에. 현마는 선친의 명을 지키면서도 여전히 훌륭한 마인으로 건재하잖소? 그가 해냈으니 당신들도 얼마든지 가능할 거요.”
“우리가 거부한다면?”
나는 질문을 던진 장마를 응시했다. 기세에서 눌린 그가 내 시선을 피했다.
“그러든지. 다만 그 경우 후과는 각오해야 할 거요. 그렇게 할 시 마선이자 마종의 후예로서 마도를 지상에서 지워버릴 작정이니까.”
내 광오한 선언에 칠마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
뜻밖에도 나에게 제일 먼저 반발한 이는 유일한 아군으로 여겼던 현마였다.
“얘기가 다르지 않으냐? 나는 네가 오늘 마종이 되면 충성을 맹세하고 마도천하 건설에 일익을 담당할 참이었다. 그런데 마도 멸살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이냐? 정녕 그런 의도라면 나부터 마도 사수를 위해 저항하련다.”
현마의 눈에 불길이 일었다. 그러고는 피를 토하듯 격렬한 음성을 쏟아내었다.
“마도는 지난 일천 년간 정사(正邪) 무림에 눌려 한 번도 중원의 주역이 된 적이 없었으나 실질적인 전력은 늘 최강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마도에 대해서만큼은 똘똘 뭉쳐 견제하고 핍박했을 리가 없지 않으냐. 설령 그랬더라도 우리가 항시적인 내분으로 골병이 들어있지 않았다면 몇 번은 사마의 세력들을 물리치고 천하를 제패했을 게다.
나는 네가 마도의 영원한 숙원인 마도천하를 실현하리라 기대해 마지않았다. 그러기 위해 먼저 마도일통부터 하러 나선 것이라 믿었고. 하여 온 힘을 바쳐 너를 도울 작심이었다. 네가 오늘 이들을 평정해 마종으로 인정받으면 이들과 더불어 네게 충성을 맹세하고 견마지로를 다할 작정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배반하다니. 이것이 이십 년이나 묵묵히 마종의 명을 수행한 노고에 주는 보답이더냐? 이럴 순 없다. 마도 멸살이라니.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
현마의 분노와 결의는 다른 육마를 흥분시켰다.
위기였다.
당장 전투가 벌어지고 현마가 육마에 가세하면 심히 곤란해질 터였다.
여섯도 버거운데 하나가 더 얹히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그러기 전에 도주하는 것이 현명한 방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지금 국면에서는 약세를 드러내는 순간 바로 수세에 몰릴 터이기 때문이었다.
현마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나는 침착한 목소리를 발했다.
“오해했구려. 아니면 부주의하게 들었든가. 전제를 밝혔잖소? 이들이 당신처럼 내 선친이신 마종의 명을 따르기만 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거요.”
현마의 표정은 여전히 거북이 등딱지처럼 딱딱했다. 하여 나는 그를 구슬렸다.
“그리고 마도천하 말인데, 당연히 이루어질 거요. 일 년 안에.”
현마는 물론이고 육마 전원이 동요했다. 요마가 그들의 심사를 대변했다.
“공자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있나요? 마원 밖에 삼제일후(三帝一后)라는 어마어마한 괴물들이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요? 그들 하나하나가 우리 일곱을 짓이길 수 있을 만큼 강하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십오 년 전 창제란 자가 이곳에 쳐들어왔을 때 전대(前代)의 검마와 장마는 그자의 일초도 받지 못하고 목이 달아났어요. 무림에 그런 괴물들이 넷이나 있는데 어떻게 마도천하를 이룬다는 거죠?”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준비했던 답을 꺼내놓았다.
“천마라면 능히 해낼 수 있소.”
칠마류의 수장들이 일제히 눈을 부릅떴다. 이번에도 요마가 그들을 대표해 의문을 제기했다.
“공자가 천마인가요?”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천마라 자부할 수 없소. 그래서 일 년이라는 기한을 둔 거요.”
“그렇다면 일 년 후에는 천마가 될 거라는 말인가요?”
“그렇소. 기실 일 년도 필요 없소. 열 달이면 충분하오. 내년 사월이나 오월, 이곳에 마원의 모든 마인들을 집결시킬 거요. 그리고 그날 천마로서 마종의 명이 지켜졌는지를 확인하고 거역한 자들을 심판한 연후 마도천하의 제일보를 내디딜 것을 선포할 작정이오.”
도마의 냉랭한 음성이 달아오른 공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너는 마종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난데없이 천마라니? 그리고 설령 천마가 된들 정사 무림의 무존(武尊)들을 대적할 수 있겠느냐? 천마는 신화일 뿐, 실재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더냐?”
“나는 이미 그들 전부를 만나보았소. 그들의 무위도 익히 알고 있소. 따라서 내가 천마라고 할 때는 당연히 그들을 능가하는 절대지존(絶對至尊)을 지칭한 거요.”
마두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내가 마종이 아니라고 한 건 마도를 넘어서는 절대자가 되겠다는 뜻이었소. 마선으로서 내 궁극적인 목표는 천마이자 신선이오. 내가 그 봉우리에 오르는 날, 세상은 마도천하가 될 뿐만이 아니라 지상의 선계(仙界)로 화할 것이오.”
다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낯짝들이었다. 마도천하와 선계는 상호모순이 아닌가. 사실 나도 정확한 내용은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어떤 모습이건 천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질 것이었다.
***
언변으로써 칠마를 구워삶았지만 아직 요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마무리가 남아있었다. 여기서 초를 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결정적인 관문을 앞두고 나는 미리 짜두었던 작전을 은연중 점검했다.
육마는 반드시 나를 시험하고자 할 터였다. 현마의 전언과 내 호언만 듣고서 굴종할 리 만무했다. 나는 그들 여섯의 합공을 감당함으로써 내가 허풍을 떤 게 아님을 증명해야 했다.
쉽지 않은 과제였다. 솔직히 성공 확률이 삼 할도 안 될 듯싶었다. 그나마도 ‘비장의 패’가 통할 것을 감안한 예상이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해내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 편히 천지조화지경으로의 여정에 전념할 수 있었다.
요마가 기다렸던 언사를 내뱉었다.
“공자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전망과 희망이 있음을 알고 싶어요.”
“어떻게 말이오?”
“간단해요. 우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면 혼을 내줄 힘이 있음을 보여주기만 하면 돼요.”
“그럽시다.”
내가 선뜻 응낙하자 마두들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기대 반, 의구심 반이라고나 할까.
“단 각자 일초씩만 허용하겠소. 그 정도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 이후에도 손을 쓰는 자가 있다면 나를 적대시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가차 없이 응징할 거요.”
나로서는 필수불가결한 사전조치였다. 이 안전장치를 두지 않으면 위급지경에 처할 공산이 컸다.
“그러니 다들 일수에 전력을 쏟는 게 좋을 거요. 참! 되도록 가볍게 응대하겠지만 혹 다치는 이가 나올지도 모르니 방비는 알아서들 하고.”
모두들 마른침들을 삼켰다. 뒤에 덧붙인 말의 효과였다.
현마가 이미 검증을 마쳤다는 이유를 들어 발을 뺐기에 나머지 여섯이 원진을 형성하며 나를 그 안에 가두었다.
내 정면에는 검마와 장마가, 후위엔 도마와 기마가 자리 잡았다. 요마와 기마는 내 좌우에 섰다.
내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포진이었다. 나는 가장 강하다는 도마와 유독 신경 쓰이는 독마가 내 앞에 서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구미에 맞게 그들을 재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이 조건에서 최선의 수를 찾아내기로 했다.
일단 여섯 줄기의 공격을 모두 기방으로 막아내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그리되면 내 동체는 형체를 상실할 터이고 내부도 회복 불능으로 파괴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바로 저승행이었다.
세 개까지가 내가 설정한 한계였다. 넷까지도 잘하면 견딜 수 있을지 모르나 단지 즉사를 모면하는 수준일 뿐 처참한 꼴이 될 것임에 분명했다. 엉망이 된 몸으로는 육마를 장악하기 어려웠다. 그에 더해 가일수를 하려 드는 자가 나올 우려도 상당했다.
기방에 직격을 허용할 세 개도 가급적 상대적으로 약한 기마, 검마, 그리고 요마의 공격이어야 했다. 특히 도마의 공격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했다. 독마의 독장도 어떻게든 흘려내야 했다. 구 단계에 오름으로써 획득한 독에 대한 내성을 이 자리에서 시험해보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반격도 필수였다. 내게 여력이 있음을 과시해야 육마가 승복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력의 분산으로 인해 그들 전부에게 유의미한 충격을 가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마력의 동원은 불가피했다. 그것이 내가 마련한 ‘비장의 패’였다.
나는 건곤기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마력을 끌어냈고 지난 사흘간 그것을 부리는 연습을 했다. 목표했던 선력과의 융합은 실패했지만 일회적이라면 선력과 거의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육마의 호흡을 살펴보던 나는 후방의 도마가 선공할 것임을 감지했다. 그러나 그 직후 나에게 날아온 것은 그의 칼바람이 아니라 검마의 검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