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02
제102화 – 믿어 의심치 않소.
구 단계에 들어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라도 선정에 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육마가 나를 둘러싸기 전부터 선정을 끌어올렸던 나는 사방에 눈이 달린 것처럼 사위를 통찰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특히 도마와 독마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였다.
예상했던 대로 오마(五魔)는 최강자인 도마가 칼을 부리기를 기다렸고 실제로 그의 도첨에서 발출된 도풍이 합공 개시를 알렸다. 그러나 분명히 그보다 늦었음에도 검마가 날린 검기가 제일 먼저 내 가슴팍에 이르렀다. 속도에 관한 한 강호 최고로 공인받았던 낙일쾌검을 능가하는 빠르기였다.
선정과 선령의 공능을 빌면 아슬아슬하게나마 흘려낼 수 있을 듯싶었지만 나는 금강석도 쪼갤 것 같은 검마의 검기를 그대로 얻어맞았다. 그 번개를 피하려다간 강기가 서린 도마의 칼바람에 걸리거나 독마의 장심에서 쏘아져 나온 시퍼런 강선에 찍힐 위험성이 커서였다.
기방을 두르고 있었으나 검마의 검기에 찍힌 부위에 적지 않은 충격이 전해졌다. 두 치만 옆으로 맞았더라면 심장이 흔들렸을 터였다.
나는 요마와 기마에게도 타격을 허용했다.
기마의 쇠사슬에 당한 오른쪽 어깨는 그럭저럭 견딜 만했으나 요마의 장공이 스치고 지나간 옆구리는 내장이 파열되는 심대한 내상을 입었다.
나는 어째서 요마가 도마와 더불어 천마고원의 패자가 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그녀의 장공은 일종의 격공장이었다. 그래서 기방은 별 효용이 없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수단이었다.
장마의 장공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워낙 범위가 넓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나는 나를 덮친 무지막지한 장공을 기방으로만 감당해야 했다.
다행히 퇴로를 차단하느라 장공이 포괄하는 영역을 확장한 대가로 위력은 반감되었기에 기방이 깨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천만다행히도 가장 경계했던 도마의 칼바람과 독마의 독강은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빗겨낼 수 있었다. 총력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걸렸다면 낭패를 면치 못했을 터였다.
비록 내심 한계로 설정했던 세 개를 초과해 네 개의 공격을 허용했으나 나는 쓰러지지 않고 반듯한 자세를 유지했다. 요마의 격공장으로 인한 내상이 중했지만 검마의 검기와 기마의 쇠사슬, 그리고 장마의 장공은 기방을 부수거나 뚫지는 못했기에 눈에 띄는 외상도 없었다. 내상을 내색하지 않으면 적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하다는 뜻이었다.
반면 육마는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있었다.
원래의 자리를 보존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화력을 집중했던 후방의 도마와 기마는 몇 장이나 튕겨 나가 널브러졌고 좌우의 요마-독마도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면의 검마와 장마는 그들보다는 상태가 양호했지만 표정은 가장 나빴다. 내가 그들에게 마력을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끝난 공방전에서 내가 행한 반격은 이러했다.
나는 검마의 검기가 가슴에 꽂힐 찰나 내 양옆과 뒤쪽의 사마(四魔)에게 최대치의 선력을 담은 지공을 쏘아냈다. 그러고는 마두들의 공격을 피하거나 흘리거나 허용하면서 우수(右手)에 몰아두었던 마기를 검마와 장마에게 장공처럼 날려 보냈다.
지난 며칠간 수백 번에 걸쳐 반복 수련했던 노고를 실전에서 보상받은 나는 크게 고무되었다. 마기의 쓰임새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
구 단계에 올라선 나는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마력과 선력의 결합이었다.
이미 두어 차례의 경험으로 마기를 전투에 일정 정도 활용할 수 있음을 파악한 나는 우선 마정에서 추출할 마력의 양을 조절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기준은 선력이었다.
마기에 잠식되면 곤란했다. 하여 나는 선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마정에서 마기를 뽑아냈다. 현재 내가 발할 수 있는 마력은 선력의 절반가량이었다. 구 단계 전과 비교하자면 열 배 이상의 양이었다.
그럼에도 마정엔 아직 엄청난 마기가 잠재되어 있었다. 정확히 얼마나 남았는지는 측정할 수 없지만 그 전부를 체득하기 위해서는 천지조화지경에 들어야 할 터였다. 그러지 않고 욕심을 부리면 한순간에 악마로 화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내 속에서 파괴와 살육의 욕구가 들끓고 있었다.
***
소기의 목적을 십분 달성했으나 아직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육마 중 한 명이라도 내 경고를 어기고 손을 쓴다면 치명타가 될 터이기 때문이었다.
기실 나는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요마의 장공에 의한 내상만이 아니라 제멋대로 폭주하는 마기도 다스려야 했다. 거기에 검마의 검기와 기마의 철삭에 각각 좌우 어깨를 얻어맞아 일시지간 전투 불능 상태였다.
선정으로 육마의 동태를 살피던 나는 요마에게서 불길한 전조를 발견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가 그 흉험한 장공을 재차 쏘아낸다면 대책이 없었다.
나는 땅바닥을 뒹구는 와중에도 냉혹한 안광을 분출하는 요마에게 직설적으로 위협했다.
“죽고 싶소?”
각자 자세를 바로잡던 오마가 어리둥절한 표정들을 공유했다. 말귀를 알아들었을 터이지만 요마는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이죠?”
“보아하니 아까 내가 주었던 경고가 유효한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마종, 아니 마선께서 오해하신 거예요. 제가 감히 어떻게 마선의 명을 거스를 수 있겠어요.”
중년으로 보이나 실제 나이는 팔십이 넘었을 요마가 소녀처럼 생글생글 웃었다. 나는 칠마 중 누군가 반역한다면 그녀가 첫 번째가 될 것임을 예감했다.
어쨌거나 이로써 큰 고비를 무사히 넘겼다.
별안간 현마가 부르짖었다.
“마종께 경배드리오.”
그가 땅바닥에 오체투지하자 육마가 움찔했다. 기마와 장마, 그리고 검마는 엉거주춤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다른 세 마두가 가만히 있자 다시 무릎과 허리들을 폈다.
나는 명칭을 바로잡았다.
“마종이 아니라 마선이라니까.”
“노부에겐 마종이외다.”
고집을 부린 현마가 육마를 재촉했다.
“뭣들 하는가? 어서 마종께 예를 표하지 않고. 방금 그 신위를 직접 겪고도 의심이 남아있단 말인가?”
육마가 마지못해 엎드리는 시늉을 했다. 나는 그들을 막았다.
“그럴 것 없소. 당신들의 절은 천마가 된 날 받을 거요. 현마도 그만 일어나구려.”
“명을 받드오.”
현마가 싹싹하게 몸을 일으켰다. 나는 육마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떫은 감을 씹고 있는 듯한 낯짝의 도마에게 물었다.
“어쩔 거요?”
“뭘 말이오?”
현마처럼 말투를 바꾼 도마가 반문했다.
“내 선친의 명을 따를 테요, 아니면 나와 적이 될 거요?”
도마가 우물쭈물하자 요마가 그를 거들고 나섰다.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야 마종의 위엄을 알지만 아랫것들은…….”
나는 요마의 말을 잘랐다.
“그래서 당신들을 부른 거 아니오? 수장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라고. 명을 거역하는 자들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목을 날려버리시오들.”
“그래도 되나요? 아까는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면서요?”
나는 말꼬리를 잡는 요마를 노려보았다. 내상이 중했지만 그녀만 상대한다면 얼마든지 제압할 수 있었다. 내 눈빛에 담긴 징치의 의사를 읽은 요마가 꼬리를 내렸다.
“여하간 나는 무조건 마종이 시키는 대로 할 거예요. 죽이라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리고.”
도마를 제외한 네 마두가 앞다투어 요마에게 동조했다. 나는 끝까지 버티는 도마를 압박했다.
“당신도 결정하시지.”
“나 역시 모두와 같은 뜻이오.”
마침내 도마도 저항을 포기했다. 일대일(一對一)로는 도저히 나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이었다.
나는 마무리를 지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을 뿐이오. 내가 천마에 등극한 날 그날까지의 결과를 두고 평가할 작정이오. 약속을 어기거나 등한시한 자들에겐 지옥을 열어줄 터이나 충실히 이행한 이들은 마도천하의 주역으로 삼겠소.”
현마가 탄성을 터뜨렸다.
“오오! 꿈만 같구려. 살아생전 마도천하를 볼 수 있게 되다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현마와 달리 육마는 떨떠름한 표정들이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거니와, 당신들이 내 선친이신 마종의 이름으로 행해야 할 일은 단 두 가지요. 첫째, 자신이 지배하는 땅에 든 모든 이들의 생명을 보호할 것. 둘째, 그들을 굶기지 말 것. 좀 전에 요마가 지적했듯 쉽지 않을 것임을 아오. 하루아침에 이제까지의 삶을 완전히 버려야 할 테니까. 하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음을 현마가 증명했소. 다들 그를 본보기로 하여 그가 한산에서 이루어낸 위업을 실현하도록. 그러면 심판의 날 지옥의 유황불에 떨어지는 대신 나와 더불어 천상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게요.”
이번에도 현마만이 내 연설에 감응한 듯했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육마로부터 충심 어린 복종을 받아내는 건 목표가 아니었다. 그저 마원을 인세의 지옥에서 사람 사는 땅으로 바꿀 첫걸음을 내딛고자 했을 뿐이었다.
나 자신의 이득은 일 푼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오늘의 행사는 오로지 내 부모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소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이날의 행사가 훗날 내게 얼마나 거대한 보답을 안겨 줄지를.
***
육마는 떠나고 현마만 남았다.
나에게 다가오며 그가 말했다.
“믿기지 않는구려.”
“뭐가 말이오?”
“전날 한산에 나타났을 때 마종은 내 상수가 아니었소. 헌데 불과 한 달여 만에 이런 초(超)강자가 되다니. 이제는 마종이 일 년 후 천마의 신화를 현세에 구현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믿기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월 초순 오죽채에서 건곤장과 겨루었을 때 나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나를 십 초 이내에 짓이길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그와 버금가는 고수 여섯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모조리 격퇴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걸 일컬어 기적이라고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는 어려웠다. 노인네의 잔소리가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경이로운 발전 속도에 현기증이 일 지경이었다.
이러다 정말로 탈이 나지 않을까. 온 힘을 다해 위태롭게 쌓아 올린 탑이 어느 순간 갑자기 허물어지지 않을까.
나는 언젠가부터 마음 한구석에 똬리를 튼 두려움을 몰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기호지세였다. 이왕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끝까지 달려야 했다. 이제 와서 삼사십 년 참구를 통해 천지조화지경에 이르기를 도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내년 봄이면 무후와 대면해야 하지 않은가. 그날까지 최소한 그녀와 비등한 무위에 오르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었다. 그러니 무조건 달리고 또 달려야 했다.
***
현마도 내게 작별을 고했다. 그는 한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동으로 갈 참이었다. 그곳을 장악한 잡마류의 마인들을 평정한 후 현마류의 터전으로 삼기 위함이었다.
허리가 꼬부라졌음에도 놀라운 신법을 현시한 현마의 신형이 멀어진 후 나는 적벽 위로 뛰어올랐다. 현마에 따르면 전날 내 부모는 그 둔덕 너머에서 날아왔다고 했다.
높이가 고작 이삼 장에 불과한 둔덕에 올라서니 광대한 벌판이 보였다. 벌판이라고 했지만 실은 우둘투둘한 구릉(丘陵)이 연이어 펼쳐진 불모지였다.
노인네의 회상을 통해 보았던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며 삭막한 땅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일순 뒷덜미가 서늘해졌다.
설마!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킨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 신기루가 일렁였다. 유령 같았던 신기루는 곧 선풍도골 노인의 형상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