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n Moorim Leveling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 뭔가 걸리는 게 있을 거예요.
문상이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글쎄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
“실은 내가 그곳에 두고 있던 끈이 끊어졌어요. 그래서 정확한 사정을 파악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그 소녀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 건 분명해 보여요.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처지에 몰렸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
“서역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어떻게 그 소녀와 연결이 되었고 어째서 같이 다녔나요? 왜 그 아이는 오 공자와 본거지로 돌아간 후 갑자기 곤경에 처했을까요? 전대 대모가 후계 작업을 완수하지 못하고 급사하는 바람에 입지가 불안하긴 했어도 나름 든든한 조력자들을 두어 그렇게 한순간에 몰락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나는 그제야 문상이 서역행을 운운한 까닭을 알았다. 그녀는 그저 내가 자신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녀는 모르는 걸 참고 넘기는 성미가 아니었다.
“말해줄 수 없나요? 그러면 나도 오 공자에게…….”
“됐소.”
“비밀로 하겠다는 말인가요?”
“문상과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오.”
“…….”
이번에는 문상이 침묵했다. 나는 잠시 그녀의 오해를 즐겼다. 가끔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상의 호흡이 가늘어지는 걸 인지하며 나는 입을 뗐다.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알려주겠단 말이오.”
“아!”
문상이 토해낸 짧은 탄성이 나를 흡족게 했다.
“그곳을 찾은 건 천벽의 극락촌에서 만난 상인의 소개 때문이었소. 포주 만화장의 배 대인이란 어른인데…….”
“말을 끊어 미안하지만 그 부분은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 파리나 총단에 든 이후부터의 일을 듣고 싶어요.”
하아, 역시.
“혹시 그 어른의 근황을 아오? 닷새 전 도산에 갔을 때 뇌옥에 갇혀있을까 봐 찾아보았지만 없던데.”
얘기가 옆길로 새서 마땅치 않은지, 아니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부담스러운지, 문상의 일시지간 호흡을 닫았다.
“그는 내가 신경을 쓸 만큼 비중 있는 인사가 아니에요. 알아보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우선은 하던 얘기를 계속했으면 싶네요.”
흠, 모르는 게 없는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군.
한편으로는 흥미로웠다. 문상이 이리 보챈다는 건 정말로 관심이 크다는 반증이었다.
“배 장주에게 받은 소개장을 들고 찾아갔더니 노파가 아니라 문상이 말한 소녀가 나를 맞이합디다. 자기가 새로운 대모라면서. 나이는 어리지만 정보조직의 수장답게 나에 대해 알고 있었소. 호감도 표하더군. 나는 그녀에게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대한 정보를 물었소. 그리고 길잡이를 붙여달라고 부탁했소. 그랬더니 자기가 지리에 능통하다며 나서더군. 그래서 같이 다니게 된 거요.”
“그렇게 큰 줄기만 말하지 말고 곁가지도 들려줘요. 사소한 거 하나라도 빼놓지 말고.”
좀 귀찮았지만 나는 문상의 요구에 응했다.
기억을 쥐어짜 가며 ‘사소한’ 내용까지 회상하고 있는데 문상은 수시로 끼어들며 흐름을 방해했다.
그녀가 특히 말이 많았던 대목은 두 군데였다. 하나는 나우가 함정을 파고 나를 암습한 사건이었고 다른 하나는 밀왕과의 조우였다. 전자에 관해서는 황당해했고 후자에 대해서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전대 대모를 통해 그가 사망했을 확률이 구 할 이상이라고 전해 들었는데 낭설이었군요. 그런데 정말 밀왕 본인이 확실한가요?”
“나야 모르지. 하지만 서역에 나를 기운만으로 압도할 수 있는 자가 따로 있다고 보긴 어렵잖소. 더욱이 나우도 그가 밀왕이라고 했고. 그러니 거의 틀림없을 거요.”
“그렇게 건재한데 그는 왜 그런 소문이 나돌게 방치했을까요? 여러 왕국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도 수수방관하고. 밀궁의 지배력을 현저히 약화시킬 게 뻔한데.”
“그걸 왜 나한테 묻소? 문상이 전문이잖소? 나는 문상이라면 그곳의 사정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만들 순 없어요. 꿰맞출 정보 조각이 너무 없어요. 그나마 있던 연줄마저 사라졌으니 지금은 더더욱 막막하고요. 그래서 말인데…….”
말끝을 흐린 문상이 예상했던 말을 꺼내놓았다.
“다음에 서역에 가서 그 소녀를 만나면 밀궁의 사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내 줄래요? 이건 단순히 내 호기심을 해소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오 공자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무슨 소리요?”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요. 아무튼 전장을 돌아다니느라 까먹지 말고 이 당부를 꼭 기억해둬요.”
“하지만 지금 나우가 어떤 형편인지 모르잖소? 나를 돕기는커녕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 처지일 가능성이 높은데. 어쩌면…….”
나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나를 위로하려는 듯 문상이 긍정적인 전망을 밝혔다.
“운신에 제약이 생겼겠지만 그 소녀는 일정 기간은 안위를 보장받았을 공산이 커요. 오 공자가 금강저와 벽력운을 부리는 특급술사들을 상대로 신위를 현시한 덕분이죠. 파리나의 원로들은 결코 오 공자가 지닌 잠재력을 경시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그 소녀는 안전할 거예요. 그녀의 주장대로 정말로 아홉 달, 아니 이젠 채 여덟 달도 안 남았네요, 아무튼 그 기간 이내에 오 공자가 밀왕을 능가하는 무력에 도달하고 그를 입증하면 그들로서는 심히 난감해지지 않겠어요? 장담컨대 그걸 확인할 때까지는 절대로 그 아이를 내치지 못할 거예요.”
“그게 나우의 계산이긴 했소만.”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두뇌가 빼어나게 비상한 편도 아니고 서툰 구석도 많지만 제법 강단과 수완이 있는 아이예요. 나름 험난한 행로를 거쳐 오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면서도 생존만 한 게 아니라 정점에 이르기까지 했으니 보통은 훨씬 넘을 거예요. 어쨌거나 제 앞가림은 하고도 남을 아이이니 너무 걱정 말아요.”
희한하게도 문상에게 그 말을 듣자 나우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
나는 방금 전에 보류했던 화제로 되돌아갔다.
“밀궁의 사정을 아는 게 어째서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소?”
“이번엔 오 공자가 맞춰 볼래요?”
“나한텐 문상 같은 재주가 없소.”
“그새 잊었나요? 나는 보기 좋게 틀렸잖아요. 그리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아요. 오 공자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니까.”
“괜히 붕 띄우지 마쇼. 어지럽소.”
“그러지 말고 한번 해 봐요.”
“뭐, 별로 어렵진 않은 것 같소만. 아직 내 무력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으니 지난번처럼 서역을 돌아다니다 밀왕에게 걸리면 경을 치를 것 아니겠소? 그러니 밀궁의 동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 그러려면 내부 사정을 최대한 많이 파악해야 할 테고.”
당연히 맞을 거라 여겼는데 문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내가 원한 답은 아니에요.”
“그럼 그냥 말해보쇼. 대체 나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거요?”
“조금만 더 생각해봐요. 오 공자라면 분명히…….”
불현듯 하나의 이름이 떠오른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검룡이군.”
“그래요.”
“그가 그날 사용한 사술이 밀궁의 수법이라는 거요?”
“단정하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잠깐. 나는 문상에게 그가 다른 이들을 꼬드겨 나를 암해하도록 사주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말한 적이 없소만. 헌데 어떻게 조사한 거요?”
“조사라고 할 것까진 없어요. 그저 몇 가지 자료를 검토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애초에 그걸 알아볼 동기가 없었잖소?”
“그렇지 않아요. 뚜렷한 계기가 있어요.”
“……아르. 아르였군.”
“둘이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던가요? 아무튼 맞아요. 두 달 전 봉화산에서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녀가 용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보양으로 갔다기에 의아했어요. 그래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뭔가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더군요. 그녀가 아니라 자하옥관의 관주에게서. 사람을 현혹해 뜻대로 조종하는 술법에 관한 자료를 구하고 있더군요. 바로 직감했죠. 용궁 공주가 부탁한 것임을.
그다음은 쉬웠어요. 수순을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면 처음이 나오니까요. 나는 용궁 공주가 무엇을 의심하는지 알았어요. 누구를 의심하는지도요. 셋 중 멍청한 년과 순진한 녀석을 제하면 하나만 남잖아요.”
“대단하구려. 그 작은 단서만 가지고 거기까지 추론하다니.”
“비아냥거리는 거 아니죠?”
“그럴 리가.”
“그렇다면 감사히 받아들이죠. 그나저나 용궁 공주는 답을 찾았나요?”
“어땠을 것 같소?”
“내가 보기엔 심증을 확인할 자료를 찾지 못했을 듯싶어요. 왜냐하면 중원엔 그녀와 십전공자 수준의 고수들에게 통할 술법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문상은 서역으로 눈을 돌린 거요?”
“그래요. 거기야말로 온갖 기상천외한 비술들의 요람이자 보고(寶庫)예요. 이번에 오 공자도 직접 경험하지 않았나요? 다른 이였다면, 예컨대 본련의 태상봉공이라 해도 파리나의 어린 수장이 놓은 덫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철벽운에 금강저 세 개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진용이에요. 그거 아나요? 그 기물들은 공히 팔대신물(八大神物)에 속해요.”
“그렇다면 검룡도 그런 기물을 부렸단 말이오?”
“증명할 수는 없지만, 그랬으리라 봐요.”
“구체적으로 어떤 기물인지도 짐작하오?”
“물론이죠. 용궁 공주와 십전공자는 둘 다 초절정의 무위에요. 일시지간이나마 그런 이들을 장악할 수 있었다는 건 범상한 기물이 아니란 뜻이에요. 십중팔구 팔대신물에 준하거나 그 자체인 기물일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환상환(幻想環)이 유력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의 내밀한 욕망을 극대화시키고 억눌린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하도록 촉발하는 공능을 가진 기물이에요. 그거라면 능히 찰나지간 두 사람을 현혹시킨 후 조종할 수 있었을 거예요.”
“검룡이 그 기물을 어떻게 구했을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뭐요?”
“서역의 술법과 술사들에 대해 아는 바가 있나요?”
“그 방면으로는 완전히 문외한이오.”
“그렇군요. 그럼 간단히 설명할게요. 한 마디로 기물과 술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요. 어느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도 존재 가치가 없어지죠. 즉, 술사는 기물을 가져야지만 술법을 부릴 수 있어요. 반대로 술사의 손에 들지 않으면 기물은 그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아요.”
“검룡이 술사라는 말이오?”
“그래요. 그리고 내가 아는 중원인은 절대로 술사가 될 수 없어요. 특히 팔대신물 급의 기물을 부릴 수 있는 특급술사는 무조건 서역 정통 법계의 핏줄을 이어야 해요.”
“검룡이 거기 출신이란 소리요?”
“우리가 그에 관해 나이와 이름 말고 아는 바가 있었나요? 이름이야 그냥 붙이면 그만이죠. 용궁 공주에게도 중원식 이름이 따로 있잖아요. 백연이라고 했던가요? 아무튼 검제의 후계자가 서역 태생일 거라는 데 내 손목을 걸 수도 있어요. 단지 거기서 태어난 정도가 아니라 지금까지도 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음이 틀림없어요. 어쩌면 밀왕하고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다면 가볍게 취급할 사안이 아니군.”
“그래요. 그러니 그 아이가 가진 정보력을 빌어 밀궁의 사정을 가능한 한 세세하게 알아봐요. 이리저리 캐다 보면 뭔가 걸리는 게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