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09
마탄의 사수 (1009)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음, 서열 3위의 움직임은 없는 것 같고……. 작업해야겠죠?”
“그 작업이란 것도 사실, 저는 걱정입니다. 제가 스여흐의 환영을 만들어 공격했다지만 실질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겁니다. 하물며 서열 1위 할페티에게 일어난 일을 컬러 드래곤 측이 모를 리도 없고요. 늦어도 20분 안에는 그들이 와서 사체를 회수해 갈 텐데…….”
블라우그룬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하를 보았다.
스여흐가 했다고 생각되는 공격은 모두 환영일 뿐이었다.
블랙 드래곤들이 이상하다고 즉각 눈치챌 수 있을 정도의 ‘장난’ 수준밖에 안 되었으므로, 당연히 그의 공격이 실질적인 흔적을 남길 수는 없다.
말하자면 현재 죽어 있는 두 기의 블랙 드래곤 사체에는 이하의 공격 흔적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뜻!
“하이하 님의 공격은 다른 누구와도 비교가 불가능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저들도 눈치챌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 음, 그렇겠죠.”
“……네?”
“그렇게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요.”
“혹시 제가 드린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으셨다면―”
“흐흐, 블라우그룬 씨.”
“네, 하이하 님.”
이하는 블랙 베스를 들어 드래곤들의 사체가 있는 구릉지 인근을 살폈다.
나무들이 거세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다.
블랙 드래곤 할페티의 지배하에 있던 가디언 몬스터들의 최면이 풀리며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이리라.
“가디언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드래곤이 남겨 놓은 영역 표시, 그, 마나 흔적 같은 것도 이제 안 남는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지금은 저희가 들어갔다 나와도, 이후에 오는 드래곤들이 저희를 찾기 힘들 겁니다.”
“오케이. 그러면 됐어. 준비하자고요.”
철컥, 이하는 노리쇠를 잡아당겼다. 블라우그룬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무엇을―”
“따라와요! 〈고스트 인 더 쉘〉.”
투콰아아아────────……!
이하는 그에게 답하지 않고 곧장 이동했다.
관절 고착 상태에서 이동이 불편했으므로, 블랙 베스의 스킬을 활용하여 순간 이동을 한 셈이었다.
블라우그룬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며 구릉지를 살폈다. 어느새 연보랏빛이 번쩍인 그곳에선, 이하가 귓속말을 보내고 있었다.
“하핫……. 역시나. 대단하십니다.”
블라우그룬은 마나를 회수하며 스여흐의 환영을 없애기 시작했다.
이하는 그 장면을 보며 감탄했다.
가까이에서 봐도 환영은 실제처럼 느껴졌고, 바하무트의 환영과 달리 블랙 베스의 총구를 찔러 넣어 봐도 그 형체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단해.”
그렇게 이하가 감탄할 무렵 블라우그룬은 스킬을 사용했다. 6km 떨어진 이하에게 이동하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파트너: 출두〉.”
두 사람은 파트너였으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새로운 존경심을 지닌 채,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람화정은 손을 흔들었다.
울퉁불퉁한 바위 위로 매끈한 얼음의 매트리스를 생성한 후 그녀는 그곳에 드러누웠다.
“지루해.”
옆으로 다소곳이 누워 있었으나 그녀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굳어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었다.
람화정의 옆에서 팔짱을 껸 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는 알렉산더의 팔, 다리도 부르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과연 메탈 드래곤이다. 향후 천 년 이상의 시간을 이끌어 갈 리더를 뽑기 위해 이 정도 노력은 각오해야겠지.”
“……지루해.”
바깥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그들은 알지 못했다. 메탈 드래곤의 회의는 벌써 22시간째 진행 중이었다.
이하와 블라우그룬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시점에 시작한 회의는 이하가 두 기의 블랙 드래곤을 사살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현시점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하무트를 선출하기 위한 메탈 드래곤들의 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진행되었고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냥 커프케 님이 하시라니까요!”
“아니, 젤레자야,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미 한 분의 형님을 잃은 내가……. 다른 형님을 두고 그런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어. 베일리푸스 형님이 맡아 주시지요.”
“불가능하다. 나는 파트너가 있는 몸. 메탈 일족과 나의 파트너를 두고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것이다.”
가장 큰 교착은 역시나 유력 후보들의 다툼이었다.
상당수 메탈 드래곤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건 베일리푸스가 아니라 에인션트 코퍼 드래곤, 커프케였다.
죽어 가는 바하무트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그 뜻을 함께하기에 가장 유연하고 또 부드러운 드래곤.
선대 바하무트의 유지를 가장 적절하게 이을 수 있다는 게 드래곤들의 합일된 의견이었다.
“형님은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대 바하무트의 죽음조차 막지 못했던 나약한 드래곤일 뿐입니다. 마나를 조금 다룰 줄 안다지만 그까짓 능력으로 바하무트가 된다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당사자인 커프케가 고사하고 있는 상황!
만장일치라면 강제로 시킬 수라도 있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베일리푸스를 지지하는 메탈 드래곤들도 몇몇 있었으니까.
젤레자는 커프케의 겸양 어린 말을 들으며 버럭 소리 질렀다.
“조금이라뇨! 지금 이 자리에서 제 움직임을 1초 안에 마비시킬 수 있는 건 커프케 님뿐이잖아요! 다른 분들은― 다른 분들은 캐스팅도 하기 전에 제가 턱주가리를 날려 버릴 수 있다고요!”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에게 상당수의 눈길이 쏠렸다.
무투파에 속하는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불쾌하다는 듯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지지 않았다.
“시험해 보실 분? 패럴라이즈로 저를 마비시킬 수 있거나, 아니면 신체 능력으로 막을 수 있으시면 인정해드립니다. ‘지금 이 거리에서’ 저를 막을 수 있는 분은 여기에 안 계셔요.”
젤레자는 오히려 주변의 드래곤들에게 사나운 눈길을 뿌렸다.
아직 어덜트급임에도 그녀가 보이는 자신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고, 실제로 바하무트의 레어 정도 되는 좁은 공간이라면 그녀의 민첩성을 쫓을 수 있는 드래곤이 없었기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건 역시나 커프케의 말뿐이었다.
“그, 저기……젤레자야, 말을 좀……. 예쁘게 하는 게 어떻겠니.”
“……그럼 커프케 님이 바하무트가 되어 주세요.”
“불가능한 거래 조건을 내미는 것은 드래곤으로서의 덕목에 맞지 않는구나.”
“아이, 답답해!”
젤레자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베일리푸스도 의자에 기댄 채 조용히 커프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교우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바하무트가 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동시에 알렉산더와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알렉산더는 베일리푸스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눈을 감고 답했다.
―그렇다.
―그러한가. 바하무트가 된다면 나의 이동 반경은 상당히 제약될 터. 그대와 함께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
―으음……. 허나 지원은 나올 것이지 않은가. 내가 정의를 집행하는 그때, 나의 곁에만 있어 준다면 충분하다.
―장담할 수 없다.
베일리푸스의 답변에 알렉산더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자신의 파트너 드래곤이 바하무트가 되는 건 미들 어스를 통틀어 가장 큰 영광이다.
한 번 정해진다면 자신의 드래곤이 죽기 직전까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가 된다.
‘무엇보다……. 용기사라는 나의 직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알렉산더가 생각하고 있는 건 2차 전직, 그 너머였다.
‘바뀔 수 있다.’
어쩌면 그 누구도 도달 못 한 [3차 전직]에 다다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큰 도박이었다.
정작 바하무트가 된 이후 전 대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메탈 드래곤의 수장은 더 이상 자신과 함께하지 못하게 된다면?
또는 바하무트가 되었으므로 파트너를 결연하고 다른 드래곤과 파트너를 붙여 준다면?
‘인간과 드래곤을 파트너 삼는 것은 바하무트의 고유 권한 중 하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
알렉산더와 이하, 람화정 모두 파트너 드래곤의 지목은 바하무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드래곤과 인간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는 게 바하무트의 능력이라면 그것을 끊는 것 또한 가능할지도 모른다.
혹여 그렇게 된다면 알렉산더의 계획도 모두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알렉산더가 은근하게 떠보는 말에 베일리푸스는 모두 모호한 답변만 내놓고 있었으니, 알렉산더가 어떤 의견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한 상태였다.
“괜찮은가.”
“바하무트, 관심 없어.”
“알고 있다.”
“그럼. 아무나 해.”
“불가능하다.”
“재미없어.”
아르젠마트와 람화정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아르젠마트의 이름도 바하무트의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올랐었다.
다른 드래곤들과 달리 가장 최근 ‘피로트-코크리’라는 마왕의 조각을 상대했고, 또 그녀가 만들었던 시티 페클로를 조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싫소. 파트너와 함께.”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문제가 있는 드래곤이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단 두 마디로 자신을 밀어주던 드래곤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후, 그는 그저 회의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베일리푸스 형님이야말로 선대 바하무트 님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분. 선대의 유지를 받들기에 충분합니다. 하물며 앞으로의 시대, 앞으로 닥칠 위험까지 고려한다면…… 파트너 인간과 함께 세계 곳곳의 선봉을 담당하셨던 베일리푸스 형님이야말로 바하무트에 가장 적합한 드래곤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커프케는 지속적으로 베일리푸스를 밀었다.
그때마다 베일리푸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알렉산더 또한 커프케의 말을 듣거나 베일리푸스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흔들리고 있었다.
‘아르젠마트가 빠른 포기를 한 것도, 블라우그룬이 사퇴를 표명한 것도 결국……. 파트너의 의지였다.’
람화정이 바하무트에 관심이 없으니 아르젠마트는 포기했다.
이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블라우그룬은 사퇴했다. 베일리푸스가 아직까지 커프케의 말에 휘둘리는 건 결국 자신이 어느 한 방향으로 완전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은가.
‘만약 바하무트를 원한다면―’
베일리푸스는 커프케를 밀고 있는 다른 드래곤들을 설득시켜 바하무트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베일리푸스 또한 사퇴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커프케에게 힘이 실리게 된다.
그 모든 결정을 끝낼 수 있는 게 자신이다. 용단을 내려야만 할 때임에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렉산더는 잘 알고 있었다.
‘정의를 집행하고, 선을 수호한다 했거늘…….’
알렉산더는 처음으로 자신의 〈콘셉트〉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미들 어스 내에서의 권력과 힘은 곧 현실에서의 권력과 힘 그 자체로 이어진다.
바하무트라는 자리에서 쏟아질 수많은 이권들이 그의 미들 어스 플레이 본질을 흔들 수준이라는 의미였다.
“흐으으음…….”
인간으로서 당연한 갈등이긴 하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알렉산더는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해 보았으나 별다른 위로가 되진 않았다.
미들 어스를 오직 게임으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면 게임 그 이상의 무엇으로 생각할 것인가.
알렉산더는 고민했다. 그리고 그때, 바하무트의 레어 한구석에서 연보랏빛이 번쩍였다.
“음?”
“누가…….”
“블라우그룬?”
“블라우그룬! 어찌 돌아온 것인가.”
메탈 드래곤들은 그곳에 나타난 블라우그룬을 보며 놀라 물었다.
바하무트의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말해 놓고 굳이 회의 자리에 참석하는 이유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냐? 선대 바하무트께서 가장 아끼셨던 게 너라는 걸 나는 기억하고―”
“아뇨, 커프케 님.”
“―음?”
블라우그룬은 커프케의 말에 빠른 거절의 답변을 건넨 후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곤 멋쩍게 웃었다.
“컬러 드래곤의 장로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는데요.”
그 웃음은 자신이 가져올 말의 후폭풍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메탈 드래곤 모두의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