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010
마탄의 사수 (1010)
“……장로?”
“컬러 드래곤의 장로? 컬러 드래곤들이 벌써 장로를 뽑았단 말이냐? 그 녀석들이 그럴 리가―”
“설마……. 설마!”
메탈 드래곤들의 사고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렉산더조차 느낄 정도였다.
블라우그룬이 바하무트를 사퇴한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정확히는 하이하가 제안했던 것!’
알렉산더는 팔짱을 껸 자신의 손톱이 살갗을 파고드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블라우그룬을 노려보았다.
블라우그룬은 메탈 드래곤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현 컬러 드래곤들의 장로가 된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플람므 님께서 메탈 드래곤의 수장에게 제안할 것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어찌……. 어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이지? 너희가 그 말을 한 지 고작 스무 시간 남짓이 지났을 뿐이다! 일을 성사시킨 것도 믿기 어렵건만 이 짧은 사이에…… 그것을 처리했다고?”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커프케조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를 정도였다.
마음의 흔들림은 눈동자의 흔들림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을 차분하게 살아왔던 에인션트 코퍼 드래곤마저도 당황케 만들 정도의 사건이라는 건 확실했다.
“그것은…….”
슈와아아아……!
블라우그룬이 말을 주저하고 있을 무렵, 그의 곁에서 다시 한 번 연보랏빛이 번쩍였다.
이번엔 이하가 〈파트너: 출두〉를 사용해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이하는 등장하자마자 종이를 펄럭거리며 원탁으로 다가갔다.
메탈 드래곤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으나 이하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탁자 위에 종이를 올려놓고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자아, 모두 얘기는 들으셨죠? 지금 협정으로 체결할 만한 사항이 뭐가 있나 확인하다가 혹시 또 추가할 게 있으면 미리 적어 놔야 할 것 같아서 왔거든요. 어디 보자, 우선 로페 대륙상에서 메탈과 컬러 드래곤은 각 드래곤의 영지를 침범하지 아니할 것이며―”
“자, 잠깐! 하이하! 어떻게 된 일인가?”
“어? 네? 아직 얘기 못 들으셨어요?”
베일리푸스가 이하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하는 베일리푸스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블라우그룬을 보았다. 블라우그룬은 고개를 저었다.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저희가 한 일이 워낙 비상식적이라 어르신들께서 아직 믿지 못―”
“아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시지 못했다, 뭐 이런 말이죠?”
“현명하신 어르신들이니 분명 이해는 하셨을 겁니다.”
이 자리에 있는 메탈 드래곤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자신들을 은근하게 띄우는 블라우그룬의 어법.
이하는 확실히 쥬브나일급 때와는 AI수준마저 다른 블라우그룬을 보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으음, 그러면 어떻게―”
“말해 주겠나. 블라우그룬의 파트너여.”
그들이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이하가 잠시 고민하는 찰나, 커프케가 운을 띄웠다.
“어떻게 플람므가 레드 드래곤이 되었는지. 블랙 드래곤을 처치했다면……. 그 반발은 어떻게 잠재울 수 있었는지, 자네가 말해 준다면 우리 모두는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네.”
메탈 드래곤 중 가장 먼저 평정심을 찾은 그는 다시금 평온한 얼굴로 이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하도 그를 비롯한 메탈 드래곤들을 보았다.
커프케의 조용한 말투 덕분에 메탈 드래곤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아 가며 표정을 바꾸는 것을 보며 이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럼?”
“어디서 잘난 척이야!? 빨리 말해, 인간!”
“아, 알겠습니다. 크흠, 그럼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까……. 우선 블랙 드래곤 서열 1, 2위를 죽인 다음부터 말씀드리면 될 것 같은데요.”
젤레자가 잠시 움찔했으나 이하는 어쩐지 웃음이 날 것만 같았다. 원탁에 둘러앉은 거의 모든 메탈 드래곤들이 자신에게 상체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어떻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지? 아니, 레드 드래곤이 모른 척해 주었다 한들, 다른 컬러 드래곤들은 어째서 자네들에게 반발하지 않았나.”
“그것은…….”
커프케의 물음과 함께, 이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할페티를 비롯한 서열 2위 블랙 드래곤을 사살하고 약 5시간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감히 인간이― 컬러 드래곤의 원수가 이 자리에 발을 들이미는가!”
파아아아앗────────……!
[네 녀석을 천 년간 박제해 주마!]즉각 변신한 화이트 드래곤이 냉기 브레스를 뿜어 댔다.
이하는 그것을 보면서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플레임 버스트〉.”
블라우그룬은 조용히 손을 뻗어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캐스팅 시간조차 필요 없을 정도의 즉발 스킬이었음에도 파괴력은 차원이 달랐다.
냉기 브레스를 모조리 증발시키는 것으로도 에너지가 남아, 그 공격이 화이트 드래곤의 본체까지 향할 지경이었다.
화이트 드래곤은 황급히 회피 기동을 하며 그것을 피해 냈다.
방금 전까지 길길이 날뛰던 드래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블라우그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순식간에 파악했으리라.
자신이 상대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것까지 말이다.
[으음―! 메탈 드래곤이라! 플람므!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그는 곧장 이하와 블라우그룬의 곁에 있는 레드 드래곤에게 일갈했다.
플람므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말했으나 그녀의 뜻은 미니스의 남부 산맥, 컬러 드래곤들의 긴급회의에 소집된 모든 드래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할페티와 줄메크의 죽음에 대해, 여기 있는 인간과 메탈 드래곤이 증언을 하러 온 참이요. 이제 모두 모인 듯하니 이야기를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그녀의 말을 들은 화이트 드래곤은 잠시 멈칫거렸다. 그가 무어라 말을 할 새도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컬러 드래곤들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나 역시 그따위 망발만 아니었어도 이딴 회의에 참석치 않았을 거요! 어찌 플람므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카라니크.”
“설마 할페티 님께서 인간 따위에게 당했다는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거짓, 거짓! 가진 거라곤 머릿수밖에 없는 인간 놈들이 그랬을 리가 없소! 근방의 모든 인간 마을을 불태우고 나면 놈들은 반드시 진실을 말하게 될 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까만 머리를 바싹 깎은 건장한 남성이 소리쳤다.
중년을 넘어섰으나 그의 피부는 탄력을 잃지 않았다. 플람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그녀 못지않은 강인함을 지닌 드래곤.
―실제로 싸워 본다면 플람므 님이 질 수도 있겠는데요? 어떻게 생각해요?
―점쳐 보기 쉽지 않겠습니다. 블랙 드래곤 서열 3위다운 기운이군요.
이하와 블라우그룬도 조금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가 소집된 것은 물론 컬러 드래곤의 서열 1위 할페티와 서열 2위 줄메크의 사망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블랙 드래곤들의 줄초상 소식에 컬러 드래곤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그들 모두가 부랴부랴 이곳으로 달려와 자리를 채운 상태였다.
물론 그 소식을 가져온 건 이하와 블라우그룬이었으며 이 자리를 소집한 것 또한 에인션트 레드 드래곤, 플람므였다.
“나도 인간들이 죽였다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카라니크.”
현재까지 전달된 소식은 오직 하나, 〈할페티와 줄메크의 죽음〉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됐단 말입니까? 아니, 무엇보다 할페티 님의 사망 소식을 저, 저 인간이! 티아마트 여왕에게 상처를 입힌 건방진 인간이 가져왔다는 게 말이나 된다는 말씀입니까!”
플람므가 목소리를 낮출수록 카라니크는 방방 뛰었다.
최초로 울분을 토해 냈던 화이트 드래곤은 물론, 블루 드래곤과 옐로, 그린 드래곤 등도 이하에게 고운 시선을 보내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하에게 쉽사리 일갈할 수 없었다.
컬러 드래곤의 입장에서 이하가 어떻게 보일까.
티아마트 처치에 대한 페널티를 받아 이하의 스탯도 다소 감소되어 있었으나, 사실 그것은 이하가 뿜어내는 버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설사 에인션트급의 드래곤이라도 어깨를 펴기 어려울 정도의 버프가 이하에게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블라우그룬의 힘과 그들을 보호하는 플람므의 위세가 더해지자 일반 컬러 드래곤들은 완전히 기가 죽은 셈이었다.
“인간이 아니면 메탈 드래곤이란 말입니까? 플람므 님, 망령이 드신 거 아뇨?”
“카라니크 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플람므 님께 그런―”
“아레브, 네 녀석이야말로 분수도 모르고 나서는구나! 감히 카라니크 님께 네가 말할 처지가 되는가!”
아레브는 카라니크에게 쓴소리를 하려 일어섰으나 그는 곧장 반격당해야 했다. 그러나 반격한 드래곤은 카라니크가 아니었다.
여태껏 카라니크의 곁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블랙 드래곤, 스여흐였다.
“스여흐…….”
“스여흐? 스여흐 님이라 부르지 못하겠나! 건방진! 카라니크 님, 아무래도 레드 드래곤 녀석들이 수를 쓰는 게 분명합니다. 저곳에 있는 인간, 우리들의 원수는 얼마 전 아레브 녀석과 대담을 요청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저들이…….”
스여흐는 아레브에게 다시 한 번 소리친 후, 카라니크에게 속삭였다. 카라니크는 인상을 한껏 찌푸리며 아레브와 플람므를 번갈아 보았다.
“대담? 여왕님을 죽인 원수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나섰지, 아레브?”
“……그는 그저 쿠즈구낙’쉬 님의 전언을 일러 주기 위해 나를 부른 거였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레브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블랙 드래곤들의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하는 그 장면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먼저 나서지 않았어. 분명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었는데……. 주의 깊게 행동하는 놈이다. 지금도 나와 레드 드래곤이 결탁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하다니.’
스여흐는 자신이 먼저 나서서 불을 붙이는 성격이 아님이 분명했다.
주변에서 불을 붙이기 위해 일어서면 그곳에 기름을 들이붓는 타입. 이하는 그런 성격의 유저와 NPC들을 몇 명 알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가만두면 얼마나 피곤한지도……. 잘 알지.’
약삭빠른 성격의 대표들 때문에 고생한 적이 적지 않다. 이하는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이하 님.
―음, 역시 싹수가 노란 놈이였어요. 처음 볼 때부터 재수 없었지만…….
―하지만 똑똑한 놈입니다.
“후우우우…….”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작전도 틀리지 않았다.
분명히 먹힐 것이다.
단순히 레드 드래곤 플람므를 장로로 만드는 게 이번 작전의 목표가 아니었다.
“맞습니다. 저는 그때의 대담과 관계없이 그저 증언을 하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하가 앞으로 나서자 카라니크를 비롯한 모두의 눈이 모여들었다.
“네놈이 무슨 증언을 한다는 말인가! 할페티 님과 줄메크 님을 죽인 진범이라고 알고 있단 말인가!”
―괜찮아요. 이제 와서 우리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까. 역시 싹수가 노란 놈은 일찌감치 밟아놔야 해.
“네. 그건 거기 있는 스여흐라는 드래곤의 짓이었습니다. 인간들과 결탁해서, 블랙 드래곤과 싸우는 모습을 제가 봤습니다.”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묘수 중 하나가 바로 블랙 드래곤, 스여흐의 몰락이었다.
스여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네 이놈! 감히 무슨 망발을 하는가! 내가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
이하는 가방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꺼냈다. 작은 수정구처럼 생긴 그것을 내밀며 이하는 입을 열었다.
모든 드래곤들의 눈이 수정구로 집중되었다.
그중에는 드래곤이 아닌 생명체의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