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257
마탄의 사수 (1257)
치요는 그를 보며 말했다.
“당신의 그 ‘연기’는 정말 섬뜩할 정도였어. 뭐, 그 덕분에 〈신성 연합〉도 속아 넘어간 것 같고…… 본격적으로 마왕군이 로페 대륙에 가기 전에는 침투해 놔야 하지 않겠어요?”
능글맞은 태도로 권유해 보지만 파이로는 쉬이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치요로서도 짜증 나는 점이었다.
파이로는 뱀파이어의 힘을 사용하여 염마가 되었다.
그 힘 덕분에 기브리드의 키메라를 ‘깔때기’로 몰아넣을 수 있었다.
피로트-코크리가 중상을 입고 마왕군 본진에 돌아왔을 때, 그녀가 카일과 재빨리 벗어나는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파이로를 보내 놨기 때문’이지 않은가.
만약 파이로의 불이 기브리드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걸 푸른 수염이 알 경우, 그는 결코 치요 자신을 살려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가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도 치요는 〈제3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한 최선의 수를 두었다.
문제라면 그 수를 두며 움직였던 ‘말’이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당신에게서 뱀파이어의 힘을 빼앗지 않은 이유…… 당신 또한 뱀파이어의 힘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 두 가지가 ‘같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계속 무시할 건가요?”
그는 일개 뱀파이어다.
자신은 뱀파이어를 모두 다스릴 수 있음에도 저런 태도를 두고 봐야만 하다니!
‘이고르라도 있었다면― 그 멍청한 자식.’
시노비구미의 뱀파이어들은 정보 수집용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레벨과 실력에서부터 상당히 부족한 그들을 실전용으로 써먹을 순 없었으니까.
결국 치요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뱀파이어’는 파이로가 사실상 전부였으므로, 파이로가 건방진 모습을 보여도 맞춰 줄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파이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피로했으나 치요는 그 대답만으로도 진심을 다해 웃을 수 있었다.
“간단해요! 이미 그들에게 충분한 ‘연기’를 보여 줬으니까! 당신은 당당하게 〈신성 연합〉의 일원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내가 뱀파이어인데 그들이 믿어 줄 리가 없지.”
“천만에, 천만에! 그때 보여 줬던 연기처럼, 치요 그 멍청이가 까먹었다, 라던가! 아니면― 으음, 뱀파이어의 힘은 남았으나 그녀의 통제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다, 같은 식으로 꾸며 내면 되지 않겠어요?”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디어를 마구잡이로 풀어놓으며, 치요는 그를 바라보았다.
파이로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연기라……. 훗.”
가볍게 내뱉은 웃음, 치요는 그 웃음을 듣자마자 표정을 바꿨다.
아무리 파이로가 필요한 입장이라지만, 무엇이든 다 맞춰 줘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것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
“……왜 웃는 거지?”
더 이상 경어를 사용하지 않는 그의 말에 파이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앉은 자세로, 서 있는 치요와 눈을 마주쳤다.
“우스우니까.”
“뭐가?”
“……내 행동이.”
“그래서? 말을 안 듣겠다? 네 녀석이 하이하와 비등비등하게 겨뤄 볼 기회라도 잡을 수 있는 건, 전부 〈염마炎魔〉 때문이라는 걸 잊었나?”
“그랬지.”
파이로는 치요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치요는 한시름 놓았다는 것을, 선을 넘으려던 파이로를 짓눌렀다는 걸 깨달았지만 표정에는 그 기쁨을 드러내지 않았다.
“뱀파이어의 힘을 없애고― 다시 예전의 아무것도 아니었던 놈이 되고 싶다면 언제든 말해. 네 녀석은 영원히 하이하를 이길 수 없게 될 테니까.”
“이긴다……?”
“언제든 이길 기회는 올 거야. 내가 반드시 그런 기회를 만들어 줄 테니, 파이로 당신은 〈신성 연합〉으로 가서―.”
“이긴다는 게 뭐지?”
화르르륵……!
파이로는 손바닥을 펴며 그곳에서 작은 불꽃을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검붉은 색을 지닌 불꽃이 일렁거리며 타올랐다.
갑작스런 그 태도에 시노비구미 유저들이 움찔거렸으나 그는 그대로 불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치요는 당황한 채 그에게 말했다.
“그, 그거야― 하이하를 죽이는 거지. 정정당당하게, 1:1의 싸움에서. 혹은 1:1의 싸움이 되지 않더라도! 나와 함께, 아니, 여기 계신 카일, 자미엘 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너는 반드시 이길 수 있어.”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뻔했다.
파이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 죽여 놓았던 파이로의 마음속에, 새로운 불꽃이 타오르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를 맹목적으로 만들어 놔야만 한다.
팍―!
파이로는 주먹을 쥐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타오르던 불꽃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파이로는 말했다.
“역시.”
“뭐가― 뭐가 역시라는 거지?”
“난 틀렸어.”
“아니, 틀리지 않았―.”
“너도 틀렸어. 치요.”
그는 주먹을 폈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다시금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타오르던 불과는 색이 달랐다.
검붉은 색이 아니라, 샛노란 빛을 머금고 타오르는 붉은 불꽃.
“너― 파이로―.”
“바로 잡기엔 늦었을지 모르지만, 바로잡는 시도도 안 하는 건 남자가 할 짓이 아니지.”
그에게서 더 이상 뱀파이어의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죽여!”
시노비구미의 유저들과 치요는 곧장 파이로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카일도 파이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채였다.
“그래, 죽여라. 나도 ‘죽어서 가는 게’ 나으니까.”
파이로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혼자 죽지는 않아. 〈화염천주───────!〉”
화르르르르르……!
그의 몸에서부터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주변의 모든 산소를 태워 버리며 비대해지는 화염 속에서, 작은 총성이 울렸다.
솟구친 불기둥은 곧 꺼졌다.
파이로는 키드와 한 약속을 지켰다.
* * *
“그럼 팔레오들도 전부 다 배치된 거야?”
“응. ‘언데드 피쉬’가 선박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이미 봤잖아. 부표를 들어 올릴 정도라면, 당연히 병력도 태울 수 있을 테고― 어차피 〈마나 중계탑〉이 없는 이상, 그들이 올 방법도 빤하니까.”
람화연은 이하의 물음에 빠르게 답했다.
로페 대륙으로 팔레오들을 모두 옮긴 후에도 그녀의 지휘는 끝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팔레오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동시에 그들의 힘을 마왕군의 로페 대륙 침공 시 적재적소에 막을 수 있도록 동부 해안가를 기준으로 곳곳에 배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하이하 당신이 용궁에 있는 인어들까지 데려온 건 정말 큰일 한 거였어.”
“뭐, 거기까지 생각한 건 아니고 내가 빨리 로페 대륙으로 오기 위해서 접선한 거였는데…….”
최근 로페 대륙을 떠들썩하게 한 건 크라벤 왕국이었다.
이하가 〈마나 중계탑〉을 파괴하고, 용궁의 해신을 설득하여 모든 인어를 로페 대륙 인근으로 이동하도록 했을 때, 그들이 선택할 곳은 당연히 하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대단한 일한 거야. 드레이크가 다시금 크라벤의 제독이 되다니.”
그들은 크라벤 인근의 바다로 향했고, 크라벤의 국왕을 포함한 해군 전원은 드레이크를 다시금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퓌비엘 입장에서는 껄끄럽지만, 〈신성 연합〉 입장에선 그보다 도움이 되는 게 없지.”
“그렇지. 응, 안 그래도 크라벤 국왕님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 근데 진짜 그럴 의도가 아니었긴 해.”
“너무 겸손할 필요 없어. 운도 실력이니까.”
겸손이 아니라 정말 의도치 않은 일이었기에 부끄러워하는 이하를 보며, 람화연은 귀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표정과 달리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녀의 말투가 다소 딱딱한 것도 이유는 있었다.
현재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은 블라우그룬의 레어였기 때문이다.
드래곤의 레어에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블라우그룬도 마찬가지였다.
람화연을 인정했기에 베푼 ‘예외’이기도 하며 동시에 블라우그룬이 람화연에게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블라우그룬은 이하와 람화연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그는 이하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었다.
람화연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하에게 물었다.
“……근데 저 고양이 같은 건 뭐야?”
“그, 그게 좀―.”
이하는 람화연의 입을 황급히 막아 보려 했으나 레어 내에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맑게 퍼져 있었다.
구석에 앉아 있던 블라우그룬도 반사적으로 일어서 이하를 바라보았다.
“그게 바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하이하 님.”
“……헤헤. 너무 그러지 말아요, 블라우그룬 씨. 블라우그룬 씨도 동의 한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제가요? 제가 동의를 했었나요?”
블라우그룬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적어도 이하를 상대로는 보인 적 없는 얼굴이었기에, 람화연은 잠시 움찔거렸다.
“어쨌든! 내가 뭐, 한다고 했을 때! 받아들였으면 그게 동의죠! 안 그래요? 그리고 키메라는 또 만들면 되니까요. 앞으로 48시간이면 다시 쓸 수 있어요.”
“하이하 님이 강제로― 휴우우우…… 아니, 키메라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재료! 하이하 님이 사용하신 재료! 사라져 버린 재료! 지금은―.”
블라우그룬은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하와 람화연 그리고 블라우그룬은 모두 같은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반투명의 고양이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저 고양이형 키메라가 되어 버린! 그 재료가 아까워서 그렇다고요! 흐윽, 당분간 〈라퓨타〉에 갈 수 없으니, 구할 수도 없는 재료일 텐데…….”
블라우그룬은 그 고양이를 가리키며 울먹였다.
이하는 황급히 그의 곁으로 가 그를 다독여 주었다.
“너,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나도 반성하고 있고― 뭐, 나중에라도 얼마든 구해 줄 수 있지 않겠어요? 마왕군도 쳐부수고 하면―.”
“그건 그때죠! 제가 더 열 받는 건, 그런 재료를 날려 버리며 탄생한 저 키메라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겁니다!”
블라우그룬의 목소리에 담긴 설움은 람화연도 느낄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먹던 음료를 내려 두곤 반투명의 고양이를 향해 다가갔다.
외형은 분명 짧은 털을 자랑하는 고양이였다.
반투명이라는 걸 제외하고 다른 고양이와의 차이점이라면 단 하나.
“이게 ‘키메라’라고? 흐음, 확실히 특이하긴 한데…….”
“으, 응. 반투명인 것도 신기하고. 어쨌든 내 ‘소환수’ 격인 키메라인 것도 신기하지만―.”
“능력이 이게 다야? 공중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거?”
그 고양이가 지상과 공중을 가리지 않고 걸어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허공을 날고 있다는 개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곳에 무언가 디딜 게 있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걷는 모션은 보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 정도였다.
이하는 람화연의 날카로운 질문을 들으며 어쩐지 가슴이 쓰렸다.
“……아직―까지 확인된 건, 뭐, 그래.”
“아직까지? 소환수라면 어차피 관리 창에 다 뜰 거 아냐. 거기에 스킬 없어? 스탯은 어떤데?”
“스, 스킬은, 크흠, 없고. 스탯도 뭐…… 평범해.”
이하의 〈소환수 관리 창〉에서도 기타 스킬이 나오지 않는 키메라.
충성도는 100으로 고정되어 있으나, 다른 모든 스탯이 1이고 심지어 HP조차 1인 키메라라니!
이하는 차마 모든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이것이 전설급 재료 아이템으로 만들어 낸 키메라라고 말한다면 미들 어스의 어딜 가도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했으니까.
물론 그것은 이하의 생각일 뿐이었다.
드래곤급 NPC에게는 유저의 레벨과 스탯을 파악하는 기술이 있다.
‘수준’과 ‘능력’으로 표현되는 미들 어스 고유의 시스템 중 하나를 블라우그룬이 모를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쓸모없는 고양이는 전투에 방해만 된다고요! 하이하 님을 위해서라도 이건 제가―.”
“어? 어어! 블라우그룬 씨!?”
블라우그룬은 검지로 고양이를 가리켰다. 그의 검지 끝에서 순식간에 전격계 기운이 모여들었다.
“자, 잠깐만!”
파츠츠츠츠츳────────!
이하가 말릴 새도 전격계 스킬은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HP 1의 고양이에게 적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