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506
마탄의 사수 외전 (155)
에윈과 라르크가 있는 미니스 왕궁 내 비밀 전략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개전 이후 사흘차의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시점임에도, 행군의 평원 내에서의 지지부진한 소모전은 지속되는 중이었고, 센티널 산맥 방면 우회로는 모조리 막혀 있는 상황이었다.
샤즈라시안 연방은 렌스크라는 목 줄기를 틀어막힌 이후로 제대로 된 전투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전쟁 용병은 그쪽으로 갔군.”
그나마 믿고 있던 카드 중 하나가 크라벤에 의한 퓌비엘 해상 압력이었건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라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아무래도 퓌비엘 함대와 계속 함께할 작정인가 봅니다.”
“속단하긴 이르지 않을까.”
“하이하의 파트너 드래곤, 블라우그룬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까.”
그는 이미 블라우그룬과 루거의 동시 등장에 대해 여러 가능성을 점쳐 본 후였다.
루거로 크라벤 함대의 정신을 쏙 빼놓는 화려한 포격을 한 후, 그대로 블라우그룬을 다시 움직여 루거를 데려오게 하는 방법.
그러나 아직까지도 루거는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루거만 그곳에 두고 블라우그룬이 다시 돌아가는 모습도 목격되지 않았다고 했다.
굳이 해상전에 파트너 드래곤을 위치시킨 이유라면, 두 가지.
‘하나는 루거를 언제든 복귀시키기 위함이겠지만…… 그런 것치고는 쓸데없는 움직임이야. 그럴 거였으면 블라우그룬을 철저히 공간 결계 밖에 위치시키다가 필요할 때 재빨리 픽업하는 방식을 썼어야지.’
즉, 루거의 복귀 때문이 아니라면 블라우그룬을 굳이 크라벤 유저들의 눈에 띄게 만드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저는 오히려 블라우그룬 때문에 확언할 수 있겠습니다. 하이하가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요. 그곳에 자신의 파트너 드래곤을 계속해서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우리의 ‘시선’을 유도하려는 속셈이겠죠.”
“허허, 그럼 그 전쟁 용병이…… 하이하의 ‘대역’과 ‘미끼’를 자처하고 드레이크를 상대한다는 건가. 루거도 많이 변했군.”
에윈은 개과천선한 망나니 자식에게나 할 법한 말투로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니스 왕국 입장에서는 특별히 좋다고 볼 수도 없어 참모들의 표정은 전부 굳어 있었지만 두 사람만은 달랐다.
라르크는 피식 웃어 버렸다.
“루거가 그쪽에 있어서 퓌비엘 함대 무력화의 확률이 확 줄었는데도 즐거우십니까?”
“물론이지.”
에윈은 아무런 고민 없이 답했다. 시원한 그 답변을 듣는 다른 NPC들이 움찔거리며 에윈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초원의 여우가 어떤 알고리즘으로 인하여 ‘웃음’을 머금고 있는지 라르크도 물론 예측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단하긴 대단하군. 정보 작전 참모부장도 만만치 않은 NPC일 텐데 그 또한 불안해하는 게 눈에 보이건만…….’
라르크 자신은 인간이기에 웃을 수 있었다. 궁극적인 ‘단 하나의 목표’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황 전체를 아울러 봐야 하는 사령관급 NPC들은 결코 그럴 수 없건만, 그 사령관급 NPC 중에서도 최상급자인 에윈이 자신과 비슷한 사고 흐름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크라벤 쪽 현황은?”
“즉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라르크는 에윈의 지시에 곧장 시몬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시몬 씨, 18시 현재 전황은 어떻습니까?
―17시와 딱히 차이는 없수다! 17시 시점에서 퓌비엘 전체 해군 함선의 약 13% 격파! 지금도 동일!
―어허, 아직도 13%입니까? 아까 16시에도 13%였잖아요?
―누구 열 받게 하려고 그런 걸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다 알고 있으면 긁지 마쇼!
―에이, 누가 또 열 받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질문을 합니까. 궁금해서 그렇지.
물론 라르크는 다 알고 있었고 심지어 일부러 질문한 것이었다.
실제로 시몬이 〈통발 개방〉 스킬을 통해 바다 괴생명체들을 풀어놓은 직후, 크라벤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불과 2시간도 되지 않아 퓌비엘 전체 함선의 13%를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정도였다.
‘아니, 그것도 대단한 거지. 사실상 패닉에 빠져 버린 함대를― 무려 2시간에 걸친 퇴각 포격전으로 13%의 피해로 견뎌 낸 것도 대단한 거야.’
루거가 올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으나, 어쨌든 퓌비엘의 함대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게 미니스 전략실의 중론이었다.
그러나 버크의 지휘 통솔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하물며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람화정과 아르젠마트는 또 어떠한가.
‘얼음 속성 관련 스킬을 ‘바람’을 얻는 데에만 사용한 데다, 바다를 얼릴 경우 다시금 고래들한테 파괴될 염려가 있으니―.’
함선과 함선의 갑판을 연결해 버렸다?
그것도 최초 〈빅-프리즈〉를 사용할 당시 〈배리어〉 관련 스킬들을 써 버린 선박들만 골라서?
‘정신없는 전황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설마 그사이에 그런 선박이 어느 곳에 위치한, 무엇인지 전부 기억해 내는…… 것도 물론 할 수는 있는 일이지.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고. 하지만 그걸 실버 드래곤에 탑승한 채로 해내다니, 원.’
갑작스레 생긴 두꺼운 얼음 기둥들의 연결은 선박들의 항행을 상당 부분 제한하였고, 그렇게 약 3시간을 버틴 퓌비엘 해군은 마침내 루거라는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었다.
블라우그룬의 급속 비행이 아니었다면 퓌비엘의 피해는 3%쯤 더 늘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1시간 내내 완파시킨 건 고작 세 척뿐이요! 빌어먹을, 루거 저 인간은 포에 눈이 달렸나? 어떻게 우리가 장전하는 함선만 골라서 쏘고 있는 데다 사거리는 암스트롱 포 이상이라니까.
―흐흐, 삼총사가 괜히 삼총사입니까. 그래도 유리한 전황임에는 틀림없으실 테니까, 드레이크 제독님 잘 좀 다독여서 해 줘요.
―망할, 그건 해군 인간들한테 말해야지 나한테 말해서 뭐 하나? 몇 달간 모아 왔던 물고기 새끼들도 이제 다 놓쳤고…… 제기랄, 여기서 퓌비엘 함대 50%는 수장시켰어야 했는데.
‘이것도 거짓은 아니었겠지. 루거만 없었어도 현재까지 예측 피해는 약 30% 전후였어야 할 텐데. 쩝, 실제로 람화정이나 아르젠마트 등이 없었더라면…….’
퓌비엘 해군은 불과 6시간 만에 50%에 육박하는 피해를 입고 줄행랑을 쳐야 할 수도 있었다.
지금처럼 포격전을 나누며 서서히 후퇴하는 게 아니라, 대열과 진형을 전부 던져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항행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해상전의 우열은, 특히나 대규모 단체 해상전의 우열은 지휘관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선박의 성능과 포의 성능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니까.
크라벤의 함대가 출격 전 계획한 목표치에 비하면 삼 분의 일 조차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현재 퓌비엘 함대는 전체 함선의 약 13%가량의 피해를 입고 퓌비엘 항구 방면으로 퇴각 중이라고 합니다. 아마 밤도 더 늦고 한다면 추격이나 포격의 어려움도 있을 테니…….”
“나흘째의 해가 뜰 때까지 15% 피해도 못 입히겠군.”
“그렇다고 봐야죠.”
“〈백설〉의 마법도 내일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닐 테고.”
“쿨타임이 되든 안 되든― 어쨌든 쉽게는 못 쓸 겁니다.”
페이우와 〈황룡〉을 활용하여 해상전을 육지전으로 바꿔 버리는 기술은 이제 먹히지 않을 것이다.
드레이크는 퓌비엘의 함포가 닿지 않고 자신들의 함포만이 닿는 위치를 고수할 테고, 선두 함 몇몇 척의 유인에는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을 테니까.
“결국 전쟁 용병은 계속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겠지.”
초원의 여우는 웃었다.
“맞습니다. 키드 또한 렌스크에 틀어박혀 움직일 수가 없을 테니―.”
라르크 또한 킥킥거리며 그의 웃음에 답해 주었다.
무려 3개국이 몰아붙여도 개전 이후 뚜렷한 성과를 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도 그들이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보어만이나 니콜라스 또는 미니스의 국왕이라 할지라도 이번 국가전의 목표를 퓌비엘의 점령 또는 항복을 원하고 있겠지만, 이들은 달랐으니까.
그들은 이번 국가전의 핵심을 명쾌하게 꿰뚫고 있었다.
“―앞으로의 ‘자극’에는 하이하가 직접 반응해야겠죠.”
하이하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알렉산더로 하여금 하이하를 잡을 수 있는 확률을 최대한 높이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하느냐.
‘결국 전력의 분산이다. 삼총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만큼은 막았어야 했어. 쩝, 그걸 막기 위해 투자한 게 너무 크긴 하다지만― 어차피 내 알 바 아니고.’
사실상 키드 한 사람의 발을 묶기 위해 카렐린을 포함한 샤즈라시안 연방의 전력 전부를 쏟아부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루거는?
루거 또한 드레이크 제독이 몸소 이끄는 크라벤의 대함대를 투입해서 발을 묶은 게 아닌가.
결국 [국가 단위]의 전력을 그저 하이하를 도울 만한 유저들의 분산 코드로 여겨야만 현재의 전황을 살피며 ‘웃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라르크는 자신처럼 웃고 있는 초원의 여우, 에윈에게 감탄했고.
‘그리고 그걸 이 NPC조차도 알고 있다는 건 결국, 미들 어스의 최고위급 시스템…… 그 시스템이 인식하고 인정한다는 뜻이겠지.’
동시에 그 점이야말로 미들 어스의 AI가 하이하라는 [개인]을 [국가 단위] 이상의 위험 요소로 인정했다는 점이므로 무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라르크 대령?”
“예. 이제부터 진격 속도를 높이고……. 공격적으로 나가 보겠습니다.”
척하면 척. 정보 작전 참모부의 작전 장교는 거침없이 답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이하는 자신의 레어 앞에서 울상을 짓고 있었다.
* * *
“하아아아아…….”
이하가 한숨을 내쉬어도 딱히 반응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데베베치는 들리지도 않는 척을 하고 있었으며 카르카노도 완전히 기가 죽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데베베치야 원래 그렇다 쳐도 카르카노까지 조용히 있다는 게 엔정으로선 버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다그칠 수도 없었다.
평소 ‘스승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라며 나서야 할 카르카노가 울적한 기분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엔정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흠, 크흠. 그…… 무슨 일, 있― 으신가? 요?”
엔정이 억지로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이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말했다.
“시티 가즈아 끝났어. 완전히 점령당했다고.”
“아……!? 크흠.”
사실상 미니스 측 영토에 가까이 있던 시티 가즈아가 만 사흘을 꼬박 버틴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다.
이하와 루거가 〈라이트닝 랜스〉 작전을 개전과 동시에 타격했고, 샤즈라시안 연방의 렌스크가 점령당했듯, 시티 가즈아 또한 개전 당시부터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안대 외에는 특별히 방어 병력을 주둔시키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심지어 성주인 이하 자신이 그곳에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았나.
‘처음부터 탄환 생산 설비는 수도에도 마련해 두었고…… 선전포고 당시부터 주요 NPC들과 재산들은 전부 다 수도로 옮겨 놓고 이제 와서 뭘 아쉬워하는 거지?’
시티 가즈아가 미니스로부터 3일을 버틴 이유는 딱 하나다.
비어드 브라더스가 만들어 둔 ‘자동 강설 장치’ 때문!
날씨와 관계없이 시티 가즈아 도시 전체를 감싸며 내리는 눈雪은 미니스 병력들로 하여금 주변 접근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즉, 그 어떤 물리적 방어 시설도 없이 3일을 버틴 건 ‘하이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이며 해당 장치에 대한 마나 배터리가 소모되자마자 시티 가즈아를 빼앗긴 게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대단하지. 하이하― 단장의 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어. 지키기 힘든 도시는 유형적인 무언가로 지키려 하지 않았어. 자신의 이름 하나, 그 명성만 내걸어 오히려 무형의 힘으로 지켜 낸 거니…….’
엔정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하는 말했다.
“원래대로라면 미니스의 맹공을 막아 내고 퓌비엘의 전진기지가 되어서…… 물약이랑 스크롤 세율 500% 책정해 놓고 퓌비엘 전쟁 자금에 빨대 좀 꽂으려고 한 건데.”
“……응? 무슨―.”
“알렉산더 그 인간만 없었어도 〈하얀 죽음〉 한 번 딱! 쓰고 그때 배터리 좀 충전시켜 놓고 했으면 최소 일주일은 더 갔을 거란 말이지. 비어드 브라더스가 그거 개발하느라 시티 가즈아 자금 엄청 잡아먹었다고.”
엔정은 이하에게서 또 다른 존경과 경외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사단원이라도 이 정도는 타박을 해도 되지 않나 싶어 입을 열고자 했을 때, 줄곧 울상을 짓고 있던 이하의 표정이 급변했다.
입을 열던 엔정은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받아 내야겠지? 이번 국가전이 끝났을 때, 시티 가즈아를 되찾는 건 물론이고 그 근방에서 받아 낼 수 있는 건 다 받아 낼 거다.”
이하는 조용히 으르렁거렸다.
이하의 ‘쓸데없는 투정’에 대꾸조차 하지 않던 데베베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희가 하는 겁니까?”
“응. 전황을 바꾸려면 몇 개의 뛰어난 사단, 몇 명의 압도적인 랭커가 있어야 한다지만 우리는 그런 것도 필요 없어.”
이하는 삼인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탄환 한 발만 있어도 돼.”
그들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생성되었다.
[한 발의 총알이 갖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