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621
마탄의 사수 외전 (270)
카르카노의 추측은 틀린 게 없었다.
실제로 화염 내성이 100%가 초과하여 마그마를 통해 죽을 수 없었던 이하는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아가자니―.”
이하는 뒤를 돌아보았다.
마그마와 바다의 경계선은 여전했다.
세차게 흐르는 마그마였으나 결코 바닷물이 있는 곳을 넘어가진 못하고 있었다.
즉, 선박으로 돌아가는 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돌아가서…… 뭘 하지?”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선박이 갑작스레 날아올라 마그마를 통과한다거나, 잠수함으로 변하여 마그마를 주파한다, 따위의 상상은 떠올릴 수조차 없지 않은가.
결국 선박에 몸을 싣고 마그마로 돌진하여 사망하는 게 ‘네 번째 강’을 건너는 방식이라면?
‘엎어 치나 메치나 나는 죽을 수 없잖아! 선박으로 돌아간다 한들 나는 기본적인 방법으로는 네 번째 강을 건널 수 없는 거야!’
이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화염 내성 100%라는 자신의 장점이 이런 곳에서 발목을 잡을 줄이야.
“아냐, 아냐…….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이 시도를 조금이라도 빨리 해 봤다는 거다.”
원래의 약속 시간까지는 무려 10시간이나 남았다.
‘기정이랑― 아마 보배 씨 그리고 키드와 루거는 좀 빨리 접속하겠지만…… 그렇다고 곧장 쫓아오진 않겠지. 비상 연락망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이 굳이 일찍 접속 일은―.’
이하는 생각을 멈추고 고개를 저었다.
분명 현실의 전화번호나 이메일 주소 따위를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미들 어스를 제외한다면 그들 모두와 직접적으로 연락할 수는 없다.
‘하지만…… 페르낭 씨나 라파엘라, 삐뜨르 씨는 바보가 아니다. 반드시 인터넷 커뮤니티라도 뒤적거리고 올 터.’
현재 미들 어스 전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한다면, 그들도 시간선이 다른 이곳, 〈세상의 끝〉에서의 일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즉, 그들의 접속 시간도 어느 정도는 앞당겨질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약 6시간에서 8시간 사이의 여유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결국 나는……. 그 시간이 다 지나기 전에―.’
네 번째 강을 건너야 한다. 동료들과 만나기 위해서라도.
주어진 방법이 아니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야 쉽지만서도 말이지…….”
이하는 마그마로 이루어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몇 킬로미터나 될 것인지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당장 고개를 좌, 우로 돌린다 해도 폭이 좁은 목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애당초 그런 식으로 마그마의 강이 설계되었을 거라는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한다.
그저 직사각형의 기다란 바다 그리고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은 직사각형의 기다란 마그마의 흐름.
이런 식으로만 디자인 된 맵이라면?
“미친 짓은 나름대로 여러 번 했다고 생각했는데, 흐흐흐.”
그렇다면 결국 선택해야 할 방법은 오직 하나, 직선으로 주파하는 것.
“최악의 경우는 이 ‘맵’이 이것으로 끝나는 경우인가.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이어진다거나, 또는 마그마의 끝을 넘는 순간, 뒤편의 바다 시작부에서 나오는― 루프Loop형식의 맵일 경우…….”
이하 자신은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블랙 베스로 자신의 머리를 쏴 버리지 않는 이상, 영원히 이곳에 갇혀야만 하리라.
“하아…… 하아…….”
이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와 불필요한 상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젠장, 그래서! 이건 뭔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전부 뭔가 현실의 고사故事나 이야기에 기반하고 있었잖아. 이건 뭐야? 심청이? 여기가 인당수? 아니, 심청이는 적어도 공양미 삼백 석이라도 받았지 나한테 뭐 줄 건데!”
불필요한 상념일 지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나 이하 특유의 재미없는 농담뿐.
그 와중에도 이하는 만약 기정에게 이러한 농담을 던졌다면 ‘스탯 포인트를 300개 주지 않았을까?’ 하며 웃었을 거라는 기대감과 함께 혼자 피식거리는 중이었다.
“……만나면 꼭 써먹어 봐야지. 후우, 좋아. 가자.”
이하의 참다랑어 하반신이 허우적거리는가, 싶었을 때 이미 그의 몸은 빠르게 속도를 높이는 중이었다.
시속 80km, 100km, 120km 이하는 마그마 속으로 잠수하며 외쳤다.
[내가 여명의 바다도 절반 가까이 주파했던 사람이야! 이까짓 걸 못 갈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구플!]그것은 자신의 마음 속 불안감을 날리기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그렇게 약 6시간 40분.
마침내 이하는 보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다들 기다려요! 내가 그렇게 빨리 출발했는데! 이제서야 말이야!”
멀찍이 보이는 육지와, 그곳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동료들을.
양팔을 번쩍 들고 흔들어 대는 건 역시나 기정이었다.
“혀어어어어엉―!”
“이하 씨! 뭐야, 뭐야! 어떻게 된 거야!”
“하, 하하핫…… 마그마를 헤엄쳐 오다니, 이건 또 무슨…….”
그런 기정의 곁에서 팔짝팔짝 뛰는 보배 그리고 못 말리겠다는 듯, 이마를 짚고 고개를 흔드는 혜인.
“우하하핫! 따라잡았다! 아니, 내가 따라 잡힌 건가? 하여튼! 드디어 왔다고요! 진짜 멀어도 너무 멀고, 전방에 아무것도 없어서 불안한 게 아주 그냥―. 키드! 루거!”
이하는 그들에게 답하면서도, 라이벌이자 전우 그리고 동료인 〈삼총사〉의 이름을 외쳤다.
당연히 키드나 루거가 웃는 얼굴로 이하를 반겨 줄 리는 없었다.
“뭐 하다가 이제 오는 겁니까. 당신 때문에 40분 늦었습니다.”
“망할 놈, 죽지도 않네, 죽지도 않아.”
손목에 시계도 차고 있지 않으면서 괜히 손목을 가리키는 키드와, 콧방귀를 뿜어 대며 투덜거리는 루거의 목소리도 이하의 귀에는 똑똑히 들려왔다.
물론 그들 외에도 어찌나 놀랐는지 깜짝 선물을 받았다며 기뻐하는 삐뜨르와 무릎을 짚으며 가까스로 서 있는 페르낭도 있었다.
“하이하 씨와 알면 알수록 말이죠, 놀랄 만큼 놀랐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직 멀었죠. 하이하 님에게 놀라는 건 이제부터 시작일 텐데요.”
카르카노는 페르낭의 곁에 서서 중얼거렸다.
그들이 얼마나 놀라고 또 기쁜 마음인지, 어쩌면 이 시점에서 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 카르카노일 것이다.
“다들 보고만 있을 거예요!? 가서 부축이라도 해 오세요! 〈홀리 배리어〉!”
라파엘라는 기정과 보배, 키드, 루거 등의 유저들에게 쉴드를 걸며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뭍에 거의 다 도달하고 나서부터는 〈인어화〉를 해제한 채, 허우적거리는 이하를 기정이 가장 먼저 붙잡아 올렸다.
“하아, 하아, 고맙다, 기정아.”
이하의 몸 전체에서 마그마가 뚝뚝 떨어졌다.
물보다는 조금 더 점성이 있는 액체는 지표면에 닿자마자 검게 굳어 가고 있었다.
그 안에서 ‘발버둥’을 쳐 봤던 기정이기에 알 수 있었다.
“고, 고맙기는 뭘. 근데 형―. 고생 좀 했나 보네.”
이하가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많은 기력을 소모했을지.
아무리 스태미너가 다 떨어져도 최고 속도로 헤엄을 칠 수 있다지만, 그것도 게임 시스템상 가능한 수준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쉼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건 이하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데다 하물며 참다랑어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최고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달리기의 ‘전력 질주’와 같은 것.
화염 내성 100%라서 HP가 꽉 차 있을 텐데도 굳이 기정에게 어깨를 맡기는 이하의 행위 자체가 이미 그가 탈진에 가까운 상태라는 걸 말해 주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하가 기정에게 몸을 기댄 것은 거기까지였다.
“빨리 빨리 오십시오.”
“네 녀석이 늦어 가지고 할 일이 산더미다, 산더미.”
라파엘라에게 스킬을 받았어도 그들은 이하를 부축하지 않았다.
모자챙을 슬쩍 들어 올려 눈을 빛내는 키드와, 팔짱을 낀 채 부산스럽게 발을 떨고 있는 루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이하도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흐흐, 역시 나 없으니까 일이 안 돌아가지?”
이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억누르며 웃음을 보였다.
이하의 앞을 가로막아 선 키드와 루거는 그 웃음에 화답하며 길을 터 주었다.
“없어서 돌아가지 않는다기보다는―.”
“우리가 귀찮을까 봐 너한테 맡기는 거다. 크하하핫!”
그리고 마침내 이하도 보았다.
다섯 번째 강을 지키고 있는 존재이자, 일행들이 이곳에 발이 묶여 있던 이유.
전쟁광이라는 별명까지 있는 루거조차도 꼼짝할 수 없어, 이하의 등장을 그토록 반겼던 이유.
[하이하.]영령 늑대 군왕, 로보가 이하의 이름을 말했다.
이하는 그에게 말했다.
“비켜 달라고 해도, 비켜 주지 않을 거죠?”
[물론이다. 너와 나의 계약은 지정된 영토의 수호. 그뿐. 지금 이곳에서 너는 나의 피수호자가 아니라 그저 경계를…… 아니, 경계를― 넘은 것인가?]로보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그가 흘리듯 뱉은 말에 가장 먼저 눈치를 챈 건 혜인이었다.
“자, 잠깐. 그러고 보니 우리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자인데……. 하이하 씨는 ‘그 방법’으로 오지 않은 거잖아요?”
“어라? 어어어? 그러네!? 뭐야, 형은 그러면 어떻게 된 거야?”
기정의 호들갑을 듣고도, 로보의 얼빵한 혼잣말을 듣고도 이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혜인과 기정 그리고 이제는 이곳의 모두가 궁금해하는 바로 그 ‘답변’을 이하는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밤―!
경계선을 새롭게 그리는 힘 업적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지 않고 죽음을 겪은 자 업적을 획득하였습니다.
‘죽음을 초월한’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죽지 않고 죽음을 겪은…….”
이하는 자신이 얻은 업적 중 하나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로보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설령 하이하, 크흠, 네가 현재 살아있는 상태로 죽음을 겪었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의 끝〉에 한정된 것. [영계靈界]로의 입장은 허락할 수 없다!]영령 늑대 군왕이 호통 쳤다.
굵고도 커다란 목소리는 마그마의 강에서 잠시 물보라가 쳐 오를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 그의 목소리에 겁을 먹는 유저는 없었다.
그것은 이하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이곳에 있는 일행들 또한 죽음은 겪었을 테니 당연히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는 해 본 다음이겠죠?”
두 번째 업적은 물론, 세 번째 얻은 칭호 또한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효과를 지니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자’라고 한다면 다른 일행들 또한 선박과 함께 스스로를 파괴했으므로 이곳에 있는 것일 터, 당연히 그들에게도 이것과 유사한 업적이 생겼으리란 걸 이하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그러한 업적이 있음에도 일행들은 영계에 진입하지 못한 상태이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단서가 남아 있음을 이하는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겁니까?”
따라서 이하는 물었다.
[그렇다. 너 또한 죽음을 겪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 그러한 죽음은 내가 인정할 수 없다. 진정한 죽음은 망각,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조차도 자신에 대해 잊어야만 성립되는 일! 그것을 겪고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모순! 따라서 나는 영계의 관리자로서―.]“나는…… 겪었습니다, 로보 님.”
[―뭐……?]그리고 로보가 미처 답변을 끝내기도 전, 이하는 이미 웃고 있었다.
로보와는 자신의 레어에서부터 숱하게 대화를 나눴던 사이다.
영계의 관리자로서 그는 영계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없지만 [죽음]과 [망각]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추측은 해 볼 수 있었다.
하물며 이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의 설명에서 나왔던 [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도 쓰여 있지 않았던가.
“제가 사실 가장 걱정했던 게 이 부분이었거든요. 혹시나 [망각의 정령] 같은 게 있었으면 어쩌나, 싶은 거? 근데 그런 건 없다는 걸로 판명됐으니까. 안 그래요, 프레아 씨? 혜인 씨?”
이하에게 있어 걸림돌은 딱 하나였고 그것은 프레아, 혜인을 동반한 다크 엘프의 부락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바 있다.
적어도 다른 암 속성 정령왕들조차 ‘망각의 정령’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미들 어스를 통틀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다.
그러한 일은 숱하게 진행되어 왔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러한 자격을 지닌 사람은……. 이하 자신뿐이다.
“망각은 소멸을 의미하죠. 그리고 소멸이라면……. 자기 자신조차 ‘삭제’시키는 일이라면, 제가 한 번 겪어 봤거든요.”
자기 자신조차 지워 버려 그 존재를 영구히 없애 세상 모든 것에서부터 망각시키는 것.
“저는 《마탄의 사수》로서, 일곱 번째 《마탄》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로보 님도 아실 거라 믿습니다.”
미들 어스의 전사全史적인 세계관을 통틀어 유일하게 마탄의 사수에서 벗어난 마탄의 사수.
다섯 번째 강을 넘을 수 있는 요건은 이하,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