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an’s Shooter RAW novel - Chapter 1767
마탄의 사수 외전 (416)
람화연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하는 그사이 그녀가 무엇을 할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자청 아저씨한테…… 바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건가. 진짜 대단하다니까.’
이하 자신은 그저 본인이 얻게 된 능력에만 신경을 썼다.
스탯 포인트가 증가하고, 이래저래 속성 저항이 생기고, HP와 MP는 물론 방어력까지 막대하게 늘어나는 바람에 ‘이고르한테 한 번 베어 보라고 할까?’라는 쓸데없는 상상이나 하던 게 전부 아니었던가.
정작 그 와중에 주어진 작은 단서는 깨닫지 못하다니.
‘쩝, 변명하자면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얻어서 정신이 없기는 했다지만 말이지.’
향후 자신이 온 힘을 다해야 할 [절망의 미래] 대응과 관련하여 중대한 힘이 되어 줄 만한 단서를 놓치고 지나간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었다.
‘근데 이고르나 페이우 씨가 진짜 날 때리면 어떻게 되려나? 그쪽에도 [방어력 무시]나, [자신의 HP 대비 공격력 증가] 같은 스킬이 있기는 하겠지만…….’
어떤 옵션이 먼저 적용되어 어떤 식으로 될 것인가.
이러한 일은 실제로 부딪쳐 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랭커들이 아이템이나 스킬을 비밀로 하는 거겠지. 단순히 랭킹 몇 개 높다고 목에 힘 주고 다니기 어려운 거고……. 흐흐, 하여튼 미들 어스는 재미있다니까.’
단순한 수치만으로 고저를 정할 수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밝히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현실에서의 싸움 또는 현실에서의 경쟁과 같은 구조로 돌아가는 게임이 인기가 없어질 리가 없다는 걸 이하는 다시 한 번 깨달으며, 자신의 ‘캐릭터 창’을 열었다.
이름: 하이하 / 종족: 인간
직업: 마탄의 사수 / 레벨: 343 (4.139%)
칭호: 죽음을 초월한 / 업적: 298개
HP: 18,390(12,873)
MP: 28,505
스탯: 근력 921(+836)
민첩 24,999(+2,025)
지능 731(+481)
체력 503(+353)
정신력 2,384(+237)
카리스마 1,010(+10)
‘어쨌든 현재는 이 정도인데…….’
[레드 드래곤의 키메라 허물]의 효과는 물론, 각종 업적들을 획득한 이하의 현재 스탯 상태였다.기존 HP 최대치가 13,000 가량이었건만, 50% 이상을 획득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정도건만 MP까지 3천가량 증가하여 스킬 두어 번을 더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상태.
‘민첩도 그렇지. 또 난리들을 칠까 봐서 일단 ‘딱코’ 포인트로만 만들어 둔 건데…….’
민첩 스탯 또한 지난번 상황에서 약 575포인트를 투자, 자동 가산되는 것을 포함하여 어느새 24,999포인트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도 아직 스탯의 여유는 많았다.
남은 스탯 포인트: 2,880
즉, 이하가 최근 업적들로 얻은 스탯 포인트의 총합은 무려 3,450개였다는 뜻.
에고 웨폰 관련 퀘스트 중 초과 달성으로 인하여 얻은 업적부터 요리 업적까지 획득하며 또 한 번 압도적인 ‘스탯 긁어모으기’를 했다는 의미다.
‘그것만 있었던 게 아니기도 하지.’
요리 업적을 획득하기 직전에 얻었던 또 하나의 업적.
[티아마트여, 그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시겠습니까] 퀘스트 완료 이후에도 획득한 업적이 이하의 눈에 밟혔다.대단하군요! 당신은 컬러 드래곤의 여왕 [티아마트]에게 한때 컬러 드래곤 일족이었던 드래곤의 온전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메탈 드래곤과 컬러 드래곤은 ‘인간’을 대하는 방향에서부터 차이가 극심하다고 하죠.
메탈 드래곤은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파트너를 두지만 컬러 드래곤은 그들의 여왕 [티아마트]를 섬기는 것처럼 항상 ‘수직적 관계’만을 꾀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에 대해 컬러 드래곤의 여왕, [티아마트]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메탈도…… 컬러도……. 서로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지만 두 종족의 발전이 정체된 지가 벌써 몇천 년이 지났어. 메탈 일족은 인간을 파트너 삼아 자신들을 발전시키고자 했으나 큰 성과가 없었다. 파트너 없이 스스로의 노력만 고집하던 우리 또한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우리는 진지하게, 메탈이나 컬러 따위의 구분을 넘어서 드래곤이라는 종족 자체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 한 번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할지도 몰라. 메탈과 컬러와의 관계에서부터. 어쩌면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에서부터.”
컬러 드래곤의 여왕은 자신의 일족 중 하나를 그 실험 대상으로 삼아, 드래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당신! 뭇 드래곤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당신은 과연 컬러 드래곤의 여왕, [티아마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보상: 스탯 포인트 500개
해츨링급 컬러 드래곤에 대한 친밀도 +50%
쥬브나일급 컬러 드래곤에 대한 친밀도 +30%
어덜트급 컬러 드래곤에 대한 친밀도 -20%
에인션트급 컬러 드래곤에 대한 친밀도 -40%
(명예의 전당이 없는 업적입니다.)
티아마트에게서 ‘알’에 대한 소유권을 완전히 인정받은 시점에 획득한 업적.
이하는 이 업적에 대해 몇 번이나 보았다.
‘결국 티아마트는 쿠즈구낙’쉬와 플람므를 단순히 불쌍하게만 여긴 것도 아니었다는 뜻이지. 애당초 그들의 ‘알’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그것을 대상으로 어떤…… 거대한 실험을 해 보려는 작정이었을 거야.’
업적에 나온 문구 그대로라면 [메탈과 컬러의 관계] 또는 [드래곤과 인간의 관계]에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구조를 형성한 후 그것을 발판 삼아 드래곤이 새로운 도약을 하길 원한다는 게 아닌가.
‘그러나 일반적인 드래곤들에게 이러한 급진적인 사고방식이나 실험은…… 제아무리 여왕이라 할지라도 반발을 살 수 있었던 걸까.’
티아마트가 레드 드래곤의 알을 가져가려는 척하면서도 끝끝내 이하에게, 또한 블라우그룬이라는 원시룡 파트너를 둔 인간에게 맡긴 것은 결국 ‘새로운 실험’을 잘 해낼 거라 믿었기 때문이라는 걸까.
어린 드래곤들과의 친밀도는 상승하지만, 나이가 찬 드래곤들과의 친밀도가 하락하게 되는 보상 및 페널티만 봐도 얼추 그녀의 의도는 파악할 수 있는 일이었다.
‘현재는 나에게 맡겨진 알에 대한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는…….’
이미 태어나 존재하는, 대륙의 모든 드래곤에게 그러한 발전 방향을 가르쳐 주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오빠?”
“어, 어어. 끝났어?”
업적을 보며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이하는 람화연의 부름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취한 조치에 대해 일러 주었다.
“응. 요리하니까 생각나서 쪽으로도 한번 알아보라고 했지.”
“오? 하긴, 화연이 너도 친밀도 정도는 충분히 파 놨겠구나. 자청 아저씨도 그렇고―.”
“아니? 오빠 이름 대니까 바로 알려 주던데. 뭐, 나와 오빠의 관계를 그쪽에서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엥? 내 이름만으로? 거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데?”
퓌비엘 왕국의 최고 정보 길드이자 미들 어스의 시스템을 활용한 NPC 정보 길드.
이하는 오랜만에 들어 보는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들어 을 들른 적도 없거늘, 자신의 이름을 댄 것만으로도 ‘마담 루’가 정보를 알려 줬다?
당황한 이하를 보며 오히려 더욱 황당해하는 것은 람화연이었다.
“가끔 오빠는 오빠 자신을 너무 모른다니까. 이제 정보 길드는 우리가 아쉬운 소리를 하는 곳이 아냐. 그쪽에서야말로 오빠한테 도움을 받고 싶어서, 오빠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곳이 됐다고. 도대체 언제 적 을 생각하는 건지…….”
“그, 그래? 그렇게 됐나? 하긴, 랭킹 1위가…… 쉬운 건 아닌데―.”
어떤 의미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아냐. 알렉산더가 있던 시절에도 정보 길드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지. 오빠라서 그런 거야. 오빠라서. 도 그렇고 티아마트 부활 관련도 그렇고…… 가끔 보면 신기해.”
당장 최근의 시점에서 삼 개국 연합을 사실상 혼자만의 힘으로 종결지어 버린 퓌비엘 구국의 영웅, 하이하와의 친밀도는 현시점 미들 어스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로 취급되고 있었으니까.
새삼스럽게 자신이 지닌 가치에 대해 깨닫고 뿌듯해하는 이하를 보며 람화연은 헛웃음을 흘려야만 했다.
“그래서? 아까 하려던 얘기는 뭐야? 블라우그룬 님과 젤레자, 그 스틸 드래곤이 왜?”
“흐흐, 그게 말이지……. 아,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내가 레드 드래곤 허물을 얻은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데.”
이하는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빠르게 요약해 주었다.
플람므의 허물에 대해 알게 된 것.
그 허물을 얻기 위해 간 곳에서 쿠즈구낙’쉬와 플람므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것.
해당 허물을 얻기 위한, 사실상의 인스턴스 던전 클리어 이후 받은 보상.
“드래곤의 알!? 그―. 그 두 사람의 알이 냉동되어 있었다고? 잘됐네!”
“그랬다니까! 그래서 그걸 티아마트랑 컬러 드래곤들이 존재하게 둬선 안 된다고 찾아왔는데―.”
자신이 그들로부터 알을 지켰다는 이야기.
그러나 알은 인간이 지닌다 하여 부화시킬 수 없다는 정보.
당황하던 찰나, 이미 이하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시점에서부터 해당 알의 ‘입양’을 결정한 블라우그룬과 젤레자 그리고 그것을 승인한 바하무트까지.
“크흠, 그래서 바하무트 님의 허물도 받게 된 거고, 그 허물을 여기 에 먹인 거거든.”
=큭큭……. 그렇게 말로만 설명해서 될 것 같은가. 그 허물은, 실체도 없는 껍데기 따위가 아니었다. 내가 여태껏 먹어 본 피 중 가장 신선한 피조차 그 허물의 가치에 비하면―.=
“블랙, 쉿. 하여튼 그건 그렇게 된 상태야. 블라우그룬 씨랑 젤레자 님은 아직 결혼식은 안했지만 바하무트 님으로부터 사실상 부부의 공인을 받은 셈이지.”
“그렇네…… 확실히 내가 하는 ‘미들 어스’랑 오빠가 하는 ‘미들 어스’는 달라.”
람화연은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이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주로 캐슬 데일에서의 사무 처리 및 퓌비엘 왕궁에서의 행정 그리고 NPC들과의 관계 개선 등등의 일만 하는 람화연에게 있어, 이하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환상 속에서나 겪을 법한 것이니까.
“크흠, 그래서…… 우리 화연이 한테도 줄 게 하나 있지.”
“나?”
“응, 아까 말했잖아. 쿠즈구낙’쉬와 플람므 님의 허물을 얻으면서―.”
“……어덜트급과 쥬브나일급 허물이 뒤엉킨 키메라는 오빠의 ‘장비’에 먹였고 해츨링급 허물 하나는 파이로 씨한테 줬으니―.”
“흐흐, 계산도 빠르시네. 맞아. 레드 드래곤의 해츨링 허물. 아직 하나가 남았지.”
툭, 이하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곱게 손질된 해츨링의 허물.
쿠즈구낙’쉬와 플람므의 숨겨진 장소에서 가져온, ‘마지막 허물’이었다.
“세상에, 이걸…… 나한테?”
“화연이 너도 이거 섭취하고 나면…… 적어도 [절망의 미래]의 전쟁 발발 시점에서도 조금 더 안전해질 수 있을 거야.”
이하의 옷보다 다소 밝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적갈색의 그것을 보며 람화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하는 세상 뿌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곧 이어진 그녀의 말에는 역시나 한 방 맞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왜?”
람화연이 물었다.
“으, 응? 왜라니? 말했잖아. 화 속성 내성부터 시작해서―.”
“아니……. 그니까. 어차피 내가 이걸 먹는다 한들― 감염체한테 한 방에 죽냐, 두 방에 죽냐 정도의 차이겠지. 아마 ‘위대한 옛 존재’로 불리는 것들에게서는 도망가기도 벅찰 것이고.”
이하는 조금 전 답변을 되풀이하려 했지만 람화연은 먼저 고개를 저으며 반론을 제시하고 있었다.
실제로 [절망의 미래]의 전투가 개시되었을 때, 람화연이 해츨링급 키메라 허물을 섭취하였다고 하여 특별한 전투 능력을 보여 줄 수 있을까.
‘뱀파이어 퀸’의 능력이 있긴 하다지만 사실상 이동용 또는 박쥐들을 부려 캐슬 데일 근처의 감시용 정도로 사용하는 것 외에는 실전 자체를 치르지 않은 지 오래된 그녀에게 ‘레드 드래곤 키메라 허물’이 제대로 된 효용을 낼 수 있을까.
람화연은 자신의 능력을 객관화하여 살피며 말한 것이었으므로 이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어……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건―.”
“이게 마지막 허물이라고 했지, 오빠? 그리고 오빠의 아이템, 그 위에 키메라 허물을 [올려놓는 것]만으로 자동 합성되었다고 했고?”
“―그, 으, 응.”
그저 이상한 소리로 고개만 끄덕이는 게 이하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거기까지 대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이하는 람화연의 눈빛이 반짝거리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 생각이 있을 때. 그것도 아주 좋은 발상을 떠올렸을 때 주로 보여 주었던 자신의 예비 신부의 눈빛.
거기에 더하여, 조금 전 그녀가 자신에게 한 질문을 떠올려 보자면?
그녀가 조금 전까지 관심이 있었던 대화 내용에 대해 떠올려 보자면?
“화연아, 너 설마…….”
이하조차 발상해 내지 못한, 말도 안 되는 계획.
“그럼 레드 드래곤의 허물을 그 ‘알’에 섭취시키면 어떨까?”
이하는 새삼 자신의 예비 신부가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았다.